공산당 해산 법률
1. 공산당 해산 법률-The Australian Communist Party Dissolution Act 1950 (Cth)
공산당 해산 법률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공산당은 불법단체로 판명되고 따라서 강제 해산되며 공산당의 재산은 보상없이 강제 몰수한다. (2) 공산당 관련 단체(노동 조합 등)에 대한 불법 단체 판명 권한은 총독에게 위임한다. 이들이 국가의 안전과 방위에 위협을 준다고 총독이 판정하면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강제 해산되고 재산은 몰수된다. (3) 총독의 권한으로 국가의 안전과 방위에 위협이 주는 사람은 공산주의자임을 판정할 수 있고, 이들은 정부 기관이나 노조단체 등에 취업이 금지된다.
이러한 내용의 호주의 공산당 해산 법률은 미국의 1946년 스미드 법률, 남아공화국의 1950년 공산주의 진압 법률, 호주의 1916년 불법 단체 법률 등을 기초로 해서 제정되었다. 하지만 법률 제정자들은 공산당을 강제 해산하려는 것에는 헌법상의 장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고민하였다.[1] 정부 내각 회의에서도 전투적인 노조단체들의 강경 투쟁에 대한 대처 수단으로써 별도의 강제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마땅한 수단은 없고 단지 노조 스스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논의되었다. 강경 파업 사태에 대해 군병력을 투입하여 강제 진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었지만 이것도 노조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논의되었다.[2]
연방정부(호주는 내각제 정치 체제이므로 정부와 입법부는 엄밀하게 분리되지 않고 내각cabinet동일체로써 책임을 진다)가 헌법이 정한 목적내에서만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데 정당을 불법단체화하려는 법률을 제정하기 해서는 정당이 국가 방위의 위협이 된다는 논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50년은 2차 대전이 이미 끝난 지 4년이나 지난 평시 상황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국가 안전에 큰 위협을 주는 대상이고 따라서 국방 목적상 정당을 강제 해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국방 목적 그 자체를 궁색하게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3] 이러한 헌법상의 장애를 회피하고자 9개 조항의 법률 제정 배경과 목적을 상술하는 법률 취지문을 법률 전문에 삽입시켰다. 법률 전문에다 이 법률이 국방[4]의 목적상 필요하다고 법률제정권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했다.
공산당 해산 법률이 헌법이 부여한 입법부의 제정 권한들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점을 미리 해소하기 위하여 통상적인 법률과는 다르게 특별히 전문과 취지문을 삽입하고 거기에 법률 제정의 타당성을 미리 법기술적으로 잘 규정해 놓았다. 법률 취지문에 헌법 51조에서 열거하고 있는 의회의 입법권에 따라 국가의 안전과 방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법률을 제정한다고 분명하게 법률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하여 놓았다. 헌법 51조 해당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의회는 본 헌법에 의거하여 연방의 평화, 질서 및 선량한 통치를 위해 다음 사항에 대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가진다. ……(xi). 연방 및 각 주의 육해군 방위, 연방 법률의 시행 및 유지를 위한 무력의 통제……”
법률 취지문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개념 정의를 하였는데 제4조는 “호주 공산당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설명한 바대로의 공산주의 기본 이론에 따라서, 정권을 잡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할 수 있을 혁명적인 상황 (호주공산당이 혁명적인 소수자로써 활동하고 있는)의 도래를 돕거나 고무하려는 활동 또는 운영에 관계하는 경우”[5]라고 규정하고 있고, 또 3조에서 “공산주의자”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기를 “공산주의자란 함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발전시킨 공산주의의 목표, 정책, 이론, 원칙 또는 교범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사람을 말한다.”[6]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 정의는 규정의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해석의 관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큰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예컨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구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바로 직전의 집권여당이었던 노동당의 당원들이나 노조단체의 지도부들 중에 자신들의 이념성향을 마르크스 이론에 기반한 “사회주의자”라고 여겼던 당시의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마르크스나 레닌이 주장했던 목표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산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었다. 오늘날도 유럽 다수의 국가들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중도좌파 정부의 경우 자신들의 정당 명칭을 “사회주의자 Socialist”라고 부르고 있다. 서구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자들과는 구별된다.[7] 더구나 정치적 이념이란 좌우를 획일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누구를 공산주의자라고 분류 판단하느냐의 문제는 자의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의 잣대는 기준이 모호하고 방대해지는 고무줄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것이다.
4조에서 호주공산당은 불법 단체로써 판명되고 따라서 법적 해산을 위해서 법정관리인이 임명한다고 규정하였다.
또 5조에서 공산당 이외의 다른 단체들의 불법단체 판정은 총독의 단독 권한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는데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옹호하는 또는 공산당이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정책 결정이 좌우되는 공산당 부속 기관은 불법단체로 판정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이 단체 지도부에 있지만 그 단체들은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단체들도 불법단체로 판명될 수 있다는 위험이 크게 존재하였다. 설령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공산당을 지지하거나 그 활동에 연계되는 것이 아닌 것이 대개의 경우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또한 정부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공산주의자들로 판명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였다.
6조와 8조의 규정으로 공산당의 연관 단체들이 불법 단체로 판명되면 강제 해산되고 이를 위해서 법정관재인을 선임하게 되어 있었다.
공산당이 불법단체화되면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의 지도부에 포진하고 있었던 부두, 항만, 탄광, 철도 노조 등 강경파 노조단체들 또한 불법화되고 강제 해산이 될 것은 분명하여 그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이런 시각을 반영하는 한 노조단체의 항변은 옮기면 다음과 같았다: “세계적인 경험을 통해 보면 정부가 한 정당을 강제 해산시키게 되면 정치 이념과는 상관없이 항상 다른 정당을 억압하고 또 노동조합 지도부를 재판절차도 없이 투옥함으로써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하는 전조임을 알 수 있다.”[8]
7조1항에서 불법단체의 구성원이나 지도부에 속해 계속적으로 조직원으로 남아서 활동하거나 또는 자신이 불법단체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어떠한 것이라도 소지하고 있거나 내걸고 있는 경우들을 포함하여 사정을 알고서 고의적으로 불법 행위를 지속하면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이 규정은 예컨대 불법단체로 판명된 공산당의 배지나 팜플렛을 들고 다닌 경우에도 형사 처벌될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국민 기본권을 크게 박탈하는 것이었다.
9조에 의해 총독[9]은 공산주의자 혐의가 있는 누구라도 공산주의자로 판명되면 형사 처벌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형사처벌을 구체적인 행위가 아닌 단지 공산주의 이념을 지녔다고 해서 처벌한다는 것은 형사법원칙의 기본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러한 혐의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경우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증거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9조4-5항에서 규정하였는데 이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되었다.[10]
2. 공산당 강제해산 법률에 대한 위헌무효 헌법 소송 제기
공산당과 10여 개의 노동조합 단체들은 공산당 해산 법률에 대해서 연방정부가 그러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위헌 무효임을 확인하는 헌법 소송을 연방대법원에 즉시 제기하였다. 공산당과 해당 노동조합 단체들은 대법원에 공산당 해산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켜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법률안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되었다. 대신 대법원은 정부가 공산주의자로 판명하는 절차와 공산당 건물의 압수 절차를 대법원의 헌법 재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시적으로 중지시켰다.
정부는 이러한 대법원의 직무 정지 가처분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10월 20일 공산당 자산을 강제적으로 압수하기 위해서 파산관재인을 임명하고 공산당의 전국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 절차를 전격 단행하였다.
공산당 해산 법률이 통과된 지 1주일도 안된 1950년 10월 25일 당시 노동당 부대표를 맡고 있던 에바트 의원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서 평소 자신의 신념에 따라 부두노동자 단체의 변론을 맡기로 하였다. 야당의 지도부 의원이 당시 여론이 매우 불리한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강경 노조 단체를 변호한다는 결정은 노동당이 여론의 공격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매카시즘의 당시 상황에서 야당의 지도부 당의 제2인자 인물이 공산당을 법정에서 변호한다는 것은 공산당의 동조자이거나 지지자로 인식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당 의원으로서 공산당의 법정 변론을 맡은 결정에 대해서 당 고위지도부에서는 “윤리적으로 타당하고, 변호사로서 당연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바보스런 행동”이라고 비판하였다.[11]하지만 노동당 대표는 에바트 의원이 대법원에서 공산당의 변론을 펼치는 일은 당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의 인권 변호사로서의 명망과 법조인의 양심에 따른 개인적인 행동으로써 이해해 주었다.[12] 실제로 에바트 의원은 헌법 소송에서 훌륭한 변론을 수행해 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난 뒤 실시된 총선에서 에바트 의원은 “자유의 수호자 대 공산주의의 수호자”라는 선거구호를 내건 2차 대전 참전 영웅인 상대후보로부터 크게 고전하고 간신히 243표차로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1] 호주 빅토리아주 공산당 활동에 대한 정부 특별조사위원회가 1949년 5월 19일 설치되고 (Victoria Government Gazette, 1949, vol. 2, p. 2831) 1950년 4월 28일 의회에 활동 결과를 보고하였다.
[2] (2001) 27(2) Monash University Law Review 253, at 274.
[3] 1950년 호주에는 5개의 정당이 존재하였다. 호주 공산당은 1920년 창당되어 2차 대전의 전시 상황속에서도 지속되었고, 1944년 주의회 의원 한 명을 배출했다.
[4] “necessary ... for the security and defence of Australia.” 의회의 입법권은 헌법 제51조에서 열거하고 있다. “의회는 본 헌법에 의거하여 연방의 평화, 질서 및 선량한 통치를 위해 다음 사항에 대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가진다. 1. 타국과의 또는 주 상호간의 통상. ……6. 연방 및 각 주의 육해군 방위, 연방 법률의 시행 및 유지를 위한 무력의 통제……”
[5] “AND WHEREAS the Australian Communist Party, in accordance with the basic theory of communism, as expounded by Marx and Lenin, engages in activities or operations designed to assist or accelerate the coming of a revolutionary situation, in which the Australian Communist Party, acting as a revolutionary minority, would be able to seize power and establish a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6] ‘communist’ as ‘a person who supports or advocates the objectives, policies, teachings, principles or practices of communism, as expounded by Marx and Lenin.
[7] 러셀과 케인즈의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유” 참조하라. Russell, "Why I am Not a Communist", in “Portraits from Memory’; 케인즈, “소련에 관한 단상(1925) “설득의 정치경제학 Essays in Persuasion”중 (1931).
[8] Experience throughout the world has shown that the banning of one political party by a Government, irrespective of political ideology, has always been a prelude to suppression of other political parties and the smashing of Trade Unions with imprisonment of Trade Union Officials, in many countries without trial.
[9] 총독의 권한, S 61 of the Constitution provides:- "The executive power of the Commonwealth is vested in the Queen and is exerciseable by the Governor-General as the Queen's representative, and extends to the execution and maintenance of this Constitution, and of the laws of the Commonwealth."
[10] 판결이유에서 밝히듯이 형사법의 기본원칙이 도치될 수 있는 경우는 특수한 전쟁 상황에서나 허용될 예외적인 현상이다.
[11] ‘ethically correct, professionally sound, and politically very, very foolish.’
[12] 보수당 정권에서 호주 수상(1975-1983년)을 지낸 맬콤 프레이저는 자서전에서 국민투표 반대 투쟁을 이끌어 승리한 에바트 의원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마 자신도 그때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훗날 회고하였다. “He won, rightly. It was much to his credit; it said a great deal about principle and his readiness to support principles. Where do we see such courage today, such determination? Perhaps that is why bad policy has assumed a dominance in certain areas.” Simons And Fraser, Malcolm Fraser: The Political Memoirs, 2010, at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