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비 연구-제3권-투후는 누구인가

김일제 충효순심 한조막급(金日磾忠孝淳深 漢朝莫及) 해석

문무대왕 2025. 4. 15. 12:56

10. 宋書 南史의 두기(杜驥)에 기록된 김일제 충효순심 한조막급(金日忠孝淳深 漢朝莫及) 해석

 

유유(劉裕, 363-422): 송무제(宋武帝) 405년 환현(桓玄)을 격파하고 420년 송(420-479)나라를 건국하고, 권문세가를 누르고 강력한 중앙집권책을 추구했다.

전란으로 시대가 혼미하고 인구이동이 잦았던 남북조 시대에 막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주해온 두기 형제는 권문세족으로서 유명한 서진의 진남장군 두예(杜預, 222-285)의 후손이었고 군벌 유유(劉裕)의 정벌에 참여하였지만 전전하며 막차를 탄 바람에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지 못함을 탄식했다. 어느날 유송의 3대 황제 유의륭(宋文帝劉義隆, 407-453)과 김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다음과 같다.

 

宋書 沈約(441-513, 蕭梁,
南史(당나라 태종 시대 이연수(李延壽) )
번역
杜驥字度世京兆杜陵人也高祖預晉征南將軍曾祖耽避難河西因仕張氏苻堅平涼州父祖始還關中兄坦頗涉史傳高祖征長安席捲隨從南還太祖元嘉中任遇甚厚歷後軍將軍龍驤將軍冀二州刺史南平王鑠右將軍司馬度北人,朝廷常以傖荒遇之雖復人才可施為清塗所隔,坦以此慨然嘗與太祖言及史籍  
上曰:「金日忠孝淳深,漢朝莫及恨今世無復如此輩人。」坦曰:「之美,誠如聖詔假使生乎今世養馬不暇豈辦見知。」上變色曰:「卿何量朝廷之薄也。」坦曰:「請以臣言之臣本中華高族亡曾祖晉氏喪亂播遷涼土世葉相承不殞其舊直以南度不早便以荒傖賜隔胡人,牧圉,便超入內侍齒列名賢聖朝雖復拔才臣恐未必能也。」上默然 유의륭(太祖): “김일제는 충효의 마음이 깊었고,  한나라 당시 조정엔 그를 넘어설만한 사람이 없었다. 지금 조정에는 김일제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못함에 통탄함을 금치 못하겠구나
두탄: “김일제의 미덕이란 열과 성을 다해 성스런 조정의 부름에 답한 것입니다. 그가 오늘날 다시 살아난다면 말을 키우니라고 바빠 한숨의 틈도 없을 것이며 그래서 어찌 그가 인정받고 발탁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얼굴색을 변하며 말하길: “경은 어찌 조정이 야박하다고 말할 수 있소이까?”
두탄: “청컨대 신에게 물어본다면 한 마디 하겠습니다. 신은 본래 중원의 권문사족 출신입니다. 증조부가 서진의 팔왕지란에 희생되었고, 5호 시대에 국토를 전전하며, 조상 대대로 한 계통을 이어받으며 옛것을 지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맨 늦게 남쪽으로 내려온 바람에 배척받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일제는 흉노 오랑캐 출신으로 비록 몸은 말을 키우는 노비이었지만 일찍이 궁중의 내시로 들어가는 행운을 입어 유명한 사람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성상이 인재를 발탁한다고 해도 신은 거기에 미치지 못함을 황공하게 여깁니다.”
이에 송태조는 말없이 묵묵부답이었다.
北土舊法問疾必遣子弟驥年十三父使候同郡韋華華子玄有高名見而異之以女妻焉桂陽公義真鎮長安,州主簿,車騎行參軍,員外散騎侍江夏王義恭撫軍刑獄參軍書都官長沙王義欣後軍錄事參軍  
: 時分 渡口, ,
傖荒: 남북조시대 남인들이 북인들에 대한 멸칭
歷涉: 度越: 넘다, 통과하다
: 仕途
牧圉: 牛馬, 播遷中 君王車駕, 養牛馬
見知: 알려지다, 인정받다
涼土: 서진 말년에서 북위(北魏)에 이르기까지 서북쪽 건립 할거 정권

 

이와 같이 송서에서는 투후를 쓰지 않고 대신 金日(김일제)라는 인명을 썼다: “金日忠孝淳深 漢朝莫及”, “之美 誠如聖詔”. “胡人 牧圉”).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북인 출신으로 남조 왕조에서 출세하지 못한 까닭은 이미 먼저 내려온 사람들로 다 차 있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유는 먼저 내려온 이민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급암적신”(汲黯積薪)이라는 성어가 있지 않는가? 한서 급암전에 “黯褊心 不能無少望 見上 言曰:‘陛下用群臣如積薪耳 者居上’ 구절이 있듯이 겨울철 장작 나무를 쌓아 올릴 때는 늦게 온 나무가 위로 올라가는데 그것과 같이 원로들이 신진세력에게 밀려나는 것을 보라. 전쟁이 나고 인구이동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변화의 시대에선 기존 질서의 기득권세력은 힘을 쓰지 못하고 혼란한 시대를 틈탄 사람이 출세할 수 있다. 기회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다.

탕평책을 실시한 영조의 영조실록에서 전하듯이, 인재는 위에서 먼저 알아봐 주고 발탁하는가 아니면 아랫 사람이 스스로 기회를 찾아서 오를 수 있는가? 요즈음 부모 찬스 쓰는 음서의 시대에서 개천에서 용 나듯이 김일제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가? 아니면 한무제가 김일제를 먼저 알아봐서 발탁할 것처럼 윗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인가?  위든 아래든 여튼 김일제 같은 사람은 스스로 수신제가를 한 덕분에 발탁될 수 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인데, 어찌 수신제가 하지 않고서 평천하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재발탁의 요건에 대해서 영조실록에 기록된 김일제 관련 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