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뒷면 13행 해석-태자계견승천
비문뒷면 제13행 태자계견승천
卽入昇忘歸射熊莫返太子雞」
제13행을 국편위는 “묘(昴)에 들어가서는 돌아감을 잊으시고,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 태자 계(雞) …”으로 해석했다. 국편위 해석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入昇忘歸
국편위는 “昴”(묘) 글자로 판독했는데, 정확한 판독 글자는 유희해의 판독대로, “昇”(승) 글자로 판독하는 것이 옳다. 이 비문 구절을 昇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비문 문맥상의 의미와 일치한다. “昴星”(묘성)은 별자리 28수 가운데 서방백호7수 제4성에 속한다.
만약 글자 판독을 “昂”으로 하는 경우, 昂(앙)은 높은 곳을 쳐다보다 仰,高의 뜻이니 입승(入昇)이라는 뜻에 가깝게 된다. 입승은 들어가다, 오르다의 뜻이니, 入室升堂(입실승당)-신의 경지에 다다르다-의 성어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입승의 昇(승)자와 升(승)은 같은 의미의 글자이다.
忘歸
忘歸(망귀)는 돌아감을 잊다, 忘返(망반)이라는 뜻이다. 사랑에 빠져서 돌아갈 것을 잊어 먹어 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조식의 낙신부에서 표현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의 그것이다.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큰 바다를 유람하더니 돌아갈 생각을 잊은 듯 그리움은 더해가네. 밤 깊어도 잠들지 못하고 무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렀네.
한 번 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忘歸之矢(망귀지시)이고, 형가의 역수가에서 표현되듯이 우리 삶에서 죽음은 한 번뿐이기에 한 번 죽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소슬 바람 소리 쓸쓸하고, 강물은 더없이 차가운데, 이제 무사가 한 번 건너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망반(忘返), 망귀(忘歸)는 죽음을 뜻하는 말로 죽음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초사 구가의 좌사의 오도부에서의 구절의 표현이 그것이다, “東風飄兮神靈雨 留靈修兮憺忘歸” ,“舜 禹 游焉 沒齒而忘歸”.
그러므로 入昇忘歸[1](입승망귀)는 편히 가시라는 승천의 의미이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 것이다. 入昇忘歸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인망정식(人亡政息)을 말해준다. 무릇 대자연은 모양새가 있다. 태어나 뼈빠지게 일하고, 늙으면 은퇴하고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고, 죽는 것은 휴식이로다: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逸我以老 休我以死” (장자, 대종사).
射熊莫返
射覆(사복)과 射虎(사호)
우리들의 윷놀이할 때 주사위를 종지기 속에 넣고서 종지기를 공중을 향해 높이 던지는데 이런 모습에서 주사위 윷놀이를 射覆(사복)이라고 한다. 예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주택복권 추첨할 때 진행자가 출연자 사수가 화살시위를 당기기 직전 “쏘세요” 이런 명령을 하는데 사복의 단어 뜻이 그것인바 射覆(사복)은 윷놀이 유희의 일종이다.
2008년 경주 임해전 터에서 정육면체 주사위 발굴되었는데, 이 정육면체 주사위에 벌칙놀이의 내용이 적혀 있다. 주사위를 굴려 위로 나타난 면에 새긴 문구의 내용대로 행해야 하는 술자리 벌칙들을 적은 것인데, 이 가운데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飮盡大笑(음진대소)-술잔을 다 비우고 크게 웃는 것, 三盞一去(삼잔일거)-술 석잔을 한꺼번에 원샷하고 마셔야 하는 것, 禁聲作舞(금성작무)-말없이 춤만 춰야 하는 것, 自唱自飮(자창자음)-노래 부르면서 동시에 마셔야 하는 것, 任意請歌(임의청가)-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衆人打鼻(중인타비)-여러 사람 코 후비기, 弄面孔過(농면공과)-얼굴을 간질거려도 참아야 하는 것, 醜物莫放(추물막방)-더러운 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自唱怪來晩(자창괴래만)-화음있는 가곡을 부르다 뒤에 가서는 놀라 자빠지며 자지러지는 것 등의 알아 맞추기 게임 벌칙 놀이가 있다.[2]
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민속놀이에 사복과 비슷한 알아 맞추기 게임 射虎(사호)라는 놀이가 있다. 射虎(사호) 놀이는 등불에 비추어 수수께끼 알아맞추기 놀이인 猜灯謎(시정미) 놀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정월대보름날 행해지는 중국의 민속놀이라는데, 채색등을 내걸고 불을 밝힌 후 수수께끼를 종이에 적어 오색등에 붙이면 사람들이 수수께끼 답을 맞히는 풍습이라고 한다.
射(사) 글자는 화살을 쏘는 shooting(슈팅)의 뜻이 있는 단어이지만 射覆(사복)이나 射虎(사호)의 놀이를 뜻하는 단어들에서 보다시피 전이된 다른 뜻도 있다.
照射(조사) 放射(방사)
射(사)는 빛을 발하다는 照射(조사),放射(방사)의 뜻이 있다. 영어로 irradiate의 뜻이고, 밤중 고대마루에서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이나 등대불을 연상해 보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모습이 그것 아닌가?
위에서 설명한대로 射覆(사복)과 射虎(사호)의 뜻을 알아차렸다면, 문무왕릉비에서의 “射熊莫返”(사웅막반)의 뜻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射覆(사복), 射虎(사호), 射熊(사웅)의 뜻을 좀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여러 역사서에 나타나는 문구들을 통해서 알아보자. 호랑이 사냥, 곰 사냥에 이어 사슴 사냥의 뜻이 들어 있는 “射糜”(사미)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기의 糜(미) 글자는 고라니, 노루를 지칭하는 짐승 이름인데, 통상 사슴이나 또는 산양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시골에 가면 고라니가 차에 치여 죽는 경우를 흔히 보기도 한데 고라니 노루 사슴 산양 이런 짐승들의 공통점 하나는 토끼처럼 산 위를 향해서 달아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사슴은 눈이 덮인 높은 설산에 자주 나타난다.
이들 짐승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다는 본능에서인지 높은 곳으로 토끼는 경향이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어보면 왜 표범이 육천미터가 넘는 그 높은 산의 정상 근처에서 죽어 있는지 왜 표범이 그렇게 높은 설산까지 올라가서 죽었는지를 의문하는 것으로 소설의 서두가 시작된다. 사슴 동물의 삶과 죽음의 본능을 이해해 보라. 높은 바위를 잘 타는 산양이나 사슴 등은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 뒤돌아서서 즉 정상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조망을 하며 자기를 죽이려 오는 사냥꾼의 동태를 살핀다. 그러므로 사냥꾼이 사슴을 보다 쉽게 사냥하려면 사슴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즉 사슴의 뒷통수를 노려서 화살이나 총을 쏘는 것이 현명한 사냥술이다. 그런데 사람인 사냥꾼이 이들 짐승보다 바위타기를 잘 할 수가 없으니 어찌 사슴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가 있겠는가? 기껏해야 높은 곳으로 화살시위나 총구를 겨눠서 사슴을 잡는 법이고, 또 사냥개를 필요로 한다.
고려대학교와 고려시대 고려(高麗)의 의미- 射糜麗龜(사미려구)
춘추좌전에 “射糜麗龜(사미려구)”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麗(려)는 나타나다 著(저)의 뜻이다. 高麗(고려)대학교나 고려시대의 국호 高麗(고려)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대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고대광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표현대로 높은 곳에 쌓고 할리우드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드높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것처럼 ‘고려’는 ‘높은 곳에서 나타나다’ 즉 ‘아름답게 높이 빛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봉건시대로 치면 귀족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겠다. 이러한 "고려"의 뜻대로 밤하늘 불꽃놀이처럼 높은 곳에서 빛나는 것은 극히 아름답지 않는가? 요즈음 나사에서 제공하는 우주천체의 사진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듯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모두 아름답게 빛난다.
여기의 射糜(사미)는 麗龜(려구)의 뜻처럼 ‘높은 곳에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뭍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높이 올라온다는 것인가?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사슴을 우리들은 두 눈을 들어 위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사슴은 높은 곳에서 나타난다. 사슴은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서 높은 곳의 바위틈에서 낮잠을 자다가 아침 저녁으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물이 흐르는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데 그렇게 사슴은 높은 곳에서 나타나기에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을 할 땐 바위 많고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산 속으로 떠나지 않는가?
춘추좌씨전 선공12년(BC 597) 기사에 “麋興於前 射麋麗龜(미흥어전 사미려구)” 구절이 있는데, “노루가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높은 곳으로 튀었다”는 뜻이다. 춘추 해설서에서 “此射麋麗龜 謂著其高處 故杜以龜爲背之隆高當心者”으로 정확하게 해설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위의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射熊(사웅)은 射糜(사미), 射虎(사호) 射覆(사복)의 뜻처럼 ‘높은 곳에 나타난다’는 의미나 비유나 은유로 전이된 명사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射熊(사웅)은 국편위 번역처럼 동사로 쓰여서 ‘곰을 쏘아 맞추다’의 뜻이 아니라, 곰이 빛을 발하듯이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다, 하늘에 올라 캄캄한 밤하늘에도 별처럼 빛나다’ 즉 비유적인 의미로 ‘하늘에 오르다’ ‘영면하다’의 뜻의 명사로 쓰인 말이다.
서양 어린이 동요에 ‘곰 사냥을 나간다’는 bear hunting(베어 헌팅) 동요가 있는데 이 곰사냥은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사냥을 직접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흉내 내고 묘사하며 아이들에게 용감성을 길러주는 롤 모델의 의미로써 곰을 사냥하는 이미지를 그려낸 상징성의 노래이다. 어릴 적 말맞추기 놀이를 자주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말에는 비유와 은유 등 사물을 의인화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들이 곰사냥을 직접 할 수 없지 않는가? 사람들은 상상력으로 그려서 사물을 이해한다.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낱말 한글자 한글자의 뜻으로 쪼개고 분해해서 해석한다면 결코 문장 속에서의 쓰인 올바른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국편위는 “射熊莫返”을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 해석했는데, 국편위의 번역은 앞 뒤 문장의 의미가 서로 그 뜻이 통하지 않는 잘못된 번역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문무왕릉 비문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내용의 문장이기 때문에 사냥하는 수렵의 장면 같은 뜻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射熊(사웅)은 국편위 번역처럼 ‘곰을 화살로 쏘아 맞추다’의 뜻이 아니라, 射(사)는 빛을 발사하다는 뜻의 단어로써 작은곰자리에서 빛나는 북극성 그 별이 별빛을 반사(反射)하듯이 ‘죽어서 돌아오다’, 하늘에 올라 캄캄한 밤하늘(솔처럼 송송히 나있는 새까만 곰털)에도 별처럼 빛나다의 뜻으로 쓰인 것이고, 따라서 사웅(射熊)은 비유와 은유적인 이미지로 ‘하늘에 오르다’ ‘영면하다’의 뜻이다.
莫返(막반)은 국편위가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 해석했지만 이 국편위 해석은 틀렸다. 莫返(막반)은 사기 진본기에 나타나는 “西巡狩 樂而忘歸(서순수 요이망귀)” 구절의 의미와 같은 말이다. 즉 莫返(막반)은 忘歸(망귀)와 같은 뜻이며 그와같이 죽음에 대한 완사로 쓰인 것이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결코 되돌아 살아오는 법이 없다. 죽음은 영원한 침묵, 죽음의 다리를 한 번 건너면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다. 우주공간은 너무나 크고 넓고 광활하기에 한 번 죽음의 여행에 오르게 되면 두 번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막반이다.
莫返=亡歸
“莫返” 부분 글자 판독에 대해서 황수영과 이난영은 판독 불가라고 여기고 글자 판독을 보류하였는데, 다수의 판독자들은 유희해의 판독과 같이 “莫返”(막반)으로 판독하였다. 유희해는 “莫返”으로 판독하였는데, 莫(막)은 無, 沒有, 不, 不能의 뜻이니, 莫返은 ‘돌아오지 말라’, ‘돌아가지 않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귀의(歸依)는 불교 용어로 익숙해진 단어인데 歸依(귀의), 皈依(귀의)하다는 귀래(歸來)하다, 返回(반회)하다, 돌아오다, return(리턴)의 뜻이다. 그러므로 ‘막반’이라고 하면 ‘돌아오지 못하다’는 뜻이다. 죽음이란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는 것, 막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莫返(막반)은 亡歸(망귀)하고 같은 뜻으로써 이 두 단어는 죽음에 대한 완사 유퍼미즘으로 쓰인 말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비문의 ‘射熊莫返’(사웅막반)은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다’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의 뜻이 된다.
한나라 양웅의 長楊賦(장양부)의 “射熊館”(사웅관)의 의미로써 새긴다면[3], ‘죽은 자여! 이제 적멸보궁 같은 깊은 산 속의 사웅관에서 편히 쉬소서!’의 의미가 되겠고,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도에 나타난 “입궁”의 의미로 새긴다면, ‘혼자서도 걱정없이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먹을 것 다 차려 놓았으니 자손들이 부귀공명을 누리도록 잘 지켜주소서!’의 의미이고, 도교적으로는 ‘신선 승천’의 의미이고, 기독교적으로는 사도신경 구절의 예수의 “하늘에 오르사”가 되고, 요즈음의 흔히 쓰이는 애도의 말로써는 “하늘(천국)에서 편히 쉬소서!”의 표현이 된다.
熊熊
熊(웅)은 동물 곰을 지칭하는 뜻뿐만 아니라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熊熊(웅웅)”하면 불꽃 화염(火焰)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 이글이글 불길이 매우 거세게 세차게 치열하게 타오르는 모양-火勢 旺盛을 이르는 형용사이다. 烈火(열화)같이 타오르는 불길의 모양을 웅웅(熊熊)이라고 형용하는 표현을 쓴다. 웅웅의 소리나는 발음은 벌이 윙윙거린다는 우리말의 소리성의 의미와 같다. 왕벌에 쏘이면 팔뚝이 산이 되도록 벌겋게 달아오르지 않던가? 웅(熊) 글자가 能(능)자와 불 炎(염)자를 조합하고 있다. 불을 내다 뜻이 아닌가? 곰은 웅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유용한 약재로 쓰이고, ‘곰 발바닥’은 무사의 신발(일본의 지금껏 남아 있는 사무라이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무사의 신발)로 쓰였다. 그리하여 곰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임이 틀림없다.[4] 곰은 그 큰 덩치로 나무타기를 잘 하고, 사람처럼 서서 직립해서 걷기도 하기 때문에 일어서서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기도 한데, 맨 처음 한자 형성이 어떤 심오한 뜻이 있는지 그것까지는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사람이 화를 내면 으르렁거리는 불곰처럼 무섭게 보여서일까? 곰은 초나라의 시조인 웅역의 토템인데, 초나라 사람으로 불굴의 의지 곧은 절개 충신의 대명사 굴원이 더욱 유명하다. 웅녀는 먼 고대로 올라가면 모계사회의 전통을 전해주고, 초사는 곰 토템과 많은 연결성을 갖고 있다.
어라, 활활 불 타오르는 불화자가 알고 보니 새가 날개 타고 훨훨 하늘로 올라가는 상이네!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이 炎炎(염염), 熊熊(웅웅), 불곰(rampant bear)의 형상이었구나![5] 불이 곧 날개라는 이야기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왜 불의 임금 불 타오를 堯(요)자 요임금, 赤帝, 帝堯가 별자리 남방주작 익수-즉 시방새 날개 처녀자리 날개에서 빛난다는 경성, 명성인 줄 이제 알아차릴 수 있지 않는가! 왜 북두칠성에는 네모난 국자 모양이 있고 그 반대의 위치에 있는 남두육성에도 국자가 있겠는가? 좌우의 날개로 새가 날듯이, 득도하려면 즉 하늘을 날아 오르려면 날개를 타야 하는거고, 그같이 날개는 양쪽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한쪽이 잘못되면 추락한다. 태양까지 날아갔던 이카루스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만물은 짝을 짓고 있다. 우주만물의 이치가 그렇다면 인간사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음양 상극 좌우 조화 말이다.
설문해자 해설을 보면 “火始燄燄”이라고 하고, 燄燄(염염)은 焰焰과 같은 글자인데 孔子家語(공자가어)에서 “焰焰不滅 炎炎若何”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모습을 焰焰(염염)하다로 표현하는 유신의 등부(燈賦)의 구절 “輝輝朱燼 焰焰紅榮 (휘휘주신 염염홍영)의 구절을 상기하라.
熊熊(웅웅)은 炎炎, 燄燄, 焰焰, 庸庸, 融融 등과 같은 말로써 우리말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다의 의미와 같다. 웅웅(熊熊)이든 웅(熊)자 한 낱말이든 불길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르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射熊하면 ‘빛을 발하다’의 뜻을 갖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웅막반의 뜻은 “죽어서 영원히 빛나소서!”
문무왕릉비문의 “射熊莫返”은 국편위가 번역한대로의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국편위의 번역은 틀렸다. 莫返(막반)은 忘返(망반), 忘歸(망귀)와 같은 뜻으로 죽음에 대한 완사로 쓰였고,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서 빛나다’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 문맥상 올바른 해석이 된다. 또 ‘신선승천’의 도가사상과 첨성대의 역사적인 의미를 쫓아서 “射熊莫返”을 해석하면, ‘하늘나라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라’의 뜻이다.
별자리- 왜 북극성인가? -북극성과 천연(天淵)
첨성대의 맨 위 사각형 정자가 4개가 아닌 2층 4각형 구조로 8개인 이유가 무엇인가? 망원경은 두 개의 거울로 이루어진다. 갈릴레오가 중국에서 가져온 망원경을 개량해서 천체 관측을 해냈고 그리하여 뉴튼의 우주물리학의 탄생을 알렸는데 갈릴레오의 망원경이나 우리선조들이 사용한 대나무 망원경이 그렇고, 최근의 허블 우주망원경 또한 그런 구조이다.
북극성은 곰자리에 있다. 한국인의 자양강장제로 잘 알려진 약품이 “우루사”인데 이 우루사라는 단어는 라틴어 “Ursa”(우루사)로써 곰자리를 지칭한다. 북극성이 있는 곰자리에는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두 개 별자리가 있다. 곰은 웅담이 말해주듯 웅장한 사내의 의미를 가진다.
28수 별자리이론, 井宿(정수) 角斗奎井(각두규정) 등으로 쉽게 설명이 된다. 도교의 경전 星經(성경)의 의미를 좇아서 설명하는 것이 첨성대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첨성대의 모양은 옥정이고, 황천이고, 천정이다. 영토적으로 해석하면 하왕조를 개창한 우임금의 탄생지 곤륜산 곤지이고 한반도의 백두산 천지이고, 한라산의 백록담인데 이와 같이 하늘에 솟아 있는 연못 호수를 성경에서는 별자리 이름 “天淵(천연)”이라고 부른다. 또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여덟 개의 기둥, 4통8달의 의미, 8개의 천주가 있다는 우주관 등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
실물감각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듯이, 북두칠성 근처 북극성을 찾아내는 방법은 두 개의 4각형 상자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두 개의 사각형 상자 그림을 이용해서 북극성을 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첨성대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두개의 4각형 상자 모양은 그것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북극성은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기에 북극성은 붙잡이 별이고, 그러므로 뱃사람들의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잡아주는 키잡이 역할을 하는 별이다. 뭇별들의 중심이 되어 영원히 그 자리에서 빛나는 북극성이 영원불멸의 관념을 대변해주는 대상이 아니겠는가? 북극성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두 사각형을 이용해서 보다 쉽게 찾아진다. 위키에서 가져온 북극성을 나타내는 곰자리 그림을 참조하라.
우리 선조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 하나는 ‘사람은 죽어서 그 영혼은 별에다 기탁한다’는 생각이었다. 근대의 서양의 유명한 생떽쥐빼리의 “어린 왕자” 소설을 읽어보면 쉽게 이해하리라.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라는 책이 서점가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어찌 우리 인간의 영혼이 그처럼 가까이 머물러 있겠는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저 멀리 우주 공간 속으로 날아간다. 끝없는 침묵으로 끝없는 우주공간 속으로. 저 무수한 별들의 공간 속으로.
눈은 마음의 창- 상상력과 진리 탐구
인간 영혼의 상상력의 산물이 28수 밤하늘의 별자리 이론이고, 사마천이 사기에서 대한민국의 기원을 기록해 놓은대로 기자조선의 의미,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의 음양오행설, 문무왕릉비문의 별자리 설명, 첨성대의 별자리 이론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 영혼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우주처럼 해와 달처럼 별처럼 영원하다는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말해준다. 이것이 조선의 참된 역사이고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영원 불멸상이다. 별은 영원한 삶으로 인내하는 불사약이고 그래서 인간은 어린 왕자가 되어 밤하늘 사다리를 타고 별로 올라가 별을 따고 영원한 우주 여행을 즐기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어린 왕자”의 눈으로써만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 법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려니.
밤하늘에 스치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의 창으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맹세하면서 밤하늘의 유성을 쳐다본 적이 있지 않는가?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 앞에 부모님을 욕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죽기를 각오하며 결의를 다지고 맹세하는 엄숙한 출정식의 의미가 그것이다.
射熊莫返
“射熊莫返”을 국편위는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했는데, 국편위의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射熊莫返(사웅막반)의 의미는 (문무대왕이시여 안타깝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떴지만) 죽어서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의 뜻이다.
莫返(막반)은 忘返(망반), 忘歸(망귀)와 같은 뜻으로써 ‘죽음’을 뜻하는 유퍼미즘으로 쓰였다.
射熊(사웅)은 着其高處(착기고처)의 뜻 즉 화살 시위를 공중 높이 쏘는 모습 그래서 화살이 거기에 도달하다의 뜻이다. 着(착)은 着陸(착륙)하다, 附着(부착)하다의 말에서 알다시피 ‘무엇무엇에 접촉하다’의 뜻을 갖는 글자이다. 射熊(사웅)은 곰사냥이라는 뜻에서 한무제 때 수렵하던 사냥터의 별장을 射熊館(사웅관)으로 불렀다.
또 着(착)은 연소하다, 등불에서 불을 밝히다-灯發光-의 뜻이 있는 글자이다. 着(착)은 나타날 著(저)의 뜻이고, 따라서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서 바라다 보인다-懸著高處(현저고처)-의 뜻이다. 실적이 현저(顯著)하게 높은 사람은 남들이 쳐다보고 선망하지 않든가? 밤하늘의 별이 그 모습 아닌가? 밤하늘의 별은 국기봉 쳐다보듯이 고개를 쳐들고 우러러 보아야 보인다. 이러한 묘사를 이해한다면, 射熊(사웅)은 유신의 마사부에 나오는 표현인 “登百尺而懸熊(등백척이현웅)” 구절의 “懸熊”(현웅)과 같은 뜻이다. 대포를 공중 높이 쏘아 올리면 밤하늘 폭죽놀이처럼 공중에서 빛난다. 화살을 공중에 쏘아 올리면 오늘날 총을 공중에 쏠 때 불이 나는 모습과 같다. 호머의 오딧세이에서 클라이막스는 오딧세이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한 화살쏘기 시합이었고, 오늘날에도 새해 마지막 날 제야의 종소리 행사의 클라이막스는 불꽃놀이이다. 화살과 폭죽이 공중에 폭발하고 빛나는 폭죽놀이의 원리를 이해하면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서 빛나다’의 의미가 도출된다.
그러므로 射熊(사웅)은 ‘하늘에 높이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라’의 뜻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射熊(사웅)과 莫返(막반)을 결합한 射熊莫返(사웅막반)의 뜻은,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
太子鷄犬昇天(태자계견승천)
28수 별자리 이론 가운데 동방청룡 심수(心宿)에 三星(삼성)이 있는데, 가운데는 천왕(天王)의 자리이고 앞쪽의 별을 “태자”라고 부른다. (心三星 中天王 前為太子 後為庶子 火星也).
진서 천문지에 “抱北極四星曰四輔 所以輔佐北極而出度授政也”의 구절이 있고, 觀象玩占에 북극성 별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北極五星在紫微 宮中 一曰天樞 一曰北辰 天之最尊星也 其紐星天之樞也 天運無窮 三光迭耀 而極 星不移 故曰居其所 而眾星共之 其第一星 主月 太子也 第二星主日 帝王也 亦為太乙之座 為最明而赤者也 第三星主五行 庶子 第四星后宮也 第五星天樞也”.
북극성 작은 곰자리 사각형 첫째 자리에 있는 별을 태자라고 부르는데 이 태자별은 달을 주관하는 별이다. 이런 성경의 의미를 쫓아서 문무왕릉비 비문에 나오는 구절 “太子鷄▨▨▨”은 태자를 별의 동의어로 해석하여 달과 별은 밝게 빛나는데 이제 닭 우는 소리가 들리니 곧 아침이 밝아올 것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뜻은 묘소에 밤샛동안 오랜 시간 앉아서 대화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곧 신새벽이 되었으니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뜻은 아침이 밝아온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뜻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鷄明(계명) 또는 鷄鳴(계명)이 있다. “日月出矣 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해와 달이 돋아서 밝은데 관솔불을 끄지 않으면 그 빛은 헛된 것이 아닙니까?” 曉起(효기),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주인이 세상을 떠나서 의지할 곳 없는 닭이나 개처럼, 세상을 떠난 문무왕을 향해서 ‘지난 날의 쌓인 옛정을 생각하면 눈물을 훔치게 된다’는 의미가 전개될 것으로 전후 문맥상 그 내용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나타내는 표현에는 이밀의 진정표(陳情表)의 “臣不勝犬馬怖懼之情”, 반악의 서정부(西征賦)의 “猶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의 구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모자식간의 정을 기리며 연모하는 마음-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
不勝犬馬怖懼之情(불승견마포구지정)은 ‘몸과 마음을 다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못할까 그런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고, “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견마지연주 절탁모어궐정)은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마음처럼 대궐을 그리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을 훔친다’는 뜻이다. 농장에서 개와 닭에게 주인이 모이와 밥을 줄 때는 줄줄이 따라다니고 오로지 주인만을 알아본다. 그런 까닭에 개와 닭은 주인을 따르는 연모지정이 각별한 반려동물이다. 托慕(탁모)는 살아 생전의 정을 생각하며 추모의 정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太子雞▨▨▨-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
“太子雞▨▨▨”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편 “太子雞犬升天” (태자계견승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후 문맥상 큰 무리없다.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의 출전과 의미
태자계견승천(太子雞犬升天)이란 말은 한나라 고조 유방의 손자인 회남왕 劉安(유안)이 도교를 신봉하였는데 마침내 불로장생의 금단의 단약을 먹고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는 고사에서 비롯된다. 왕충(왕충은 유가로서 전형적인 무신론을 전개하였다)의 “論衡”(논형)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다: “淮南王劉安坐反而死 天下并聞 當時并見 儒書尚有言其得道仙去 雞犬升天者”.
태자는 한무제 때인 기원전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에서 변을 당한 태자 유거(劉據) 등 역사상 수없이 희생된 태자를 지칭할 수 있다.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역사를 보면 무고지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찾아진다.
升仙太子(승선태자)
열선전에 소개되어 있는 승선태자(升仙太子)는 무측천의 승선태자비문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다. 주영왕 周靈王(BC 545년 사망)의 태자 왕자진(王子晉)을 말한다. 공자가 주나라 영왕 때 태어났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소개된 김수로왕의 구지산(緱氏山) 설화의 주인공이 승선태자이다. 7월 칠석날 구지산 정상에 학을 타고 내려오다-“乘白鶴駐山頭”, 부구공을 만나 득도 승천했다는 승선태자는 조선의 영조 때의 사도세자처럼 희생된 사람으로, 오악 가운데 숭산(嵩山)에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다. 숭산은 요임금의 장지가 있는 곳이다.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은 “一人得道 雞犬升天” (일인득도계견승천)의 의미와 같은 뜻이다.
一人得道 雞犬升天 (일인득도 계견승천)
이 표현은 ‘한 사람이 득도하면 그를 따르던 같은 집안 식솔들까지 승천한다’는 의미이므로,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승선태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한 것처럼 문무왕이 이제 신선승천하시었으니 나머지 사람들도 덩달아 승천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太子雞▨▨▨“ 태자계견승천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의 내용을 추측해 본다면 아마도 “百夫決拾”, “首者倡導 其衆必起” 이런 내용이 아닐까 추측한다. “一人善射 百夫決拾”(일인선사백부결습)이란 숙어표현은 건국 시조와 관련된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데, 이 표현은 국어(國語)오어(吳語)에 출전한다. “夫 申胥 華登 簡服 吳國之士于甲兵 而未嘗有所挫也 夫一人善射 百夫決拾 勝未可成也”. 한 사람이 활을 잘 쏘면 만인이 따라 한다는 뜻으로 최고 지도자의 영도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전투에서 장수가 앞장서서 나서면 사졸들은 당연히 용감무퇴의 정신을 발휘하여 승리한다는 말로써, 사회 지도층이 리드를 잘하면 인민 민중들은 필시 따라간다는 “수자창도 기중필기”의 표현과 그 의미가 같다. 최고지도층 한 사람이 잘 하면 민중들에게 파급되어 국가 사회 전체가 잘나가게 된다는 뜻이다. 리더가 잘하면 모두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리더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지도층의 솔선수범론 “一人善射(일인선사)”의 개념은 화랑의 정신으로 활짝 꽃 피었고, 프랑스의 전통적 윤리 개념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한다.
一人善射 百夫決拾와 이순신 장군의 훈시 一夫當逕 足懼千夫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는 ‘한 명의 병사가 길목을 막으니 족히 천 명의 병사가 두려워한다’는 병가의 경구로써 이순신 장군의 일화로도 잘 알려진 구절이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12척밖에 안 남은 전선으로 그 열 배가 넘는 적을 마주한 중과부적의 극한적 상황에서 즉 울돌목 명량해전에 앞서 병사들에게 전투에 임하는 결사적인 정신무장을 요구하며 일장 훈시를 하였다.[6] 이 때의 훈시 구절이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이었다. 이 말은 오기병서에 기술한 대로 최후 항전를 맞이하여 결사적인 정신으로 전투에 임할 것을 주문하며 군사들의 결기를 다지고 분전을 독려하는 전쟁터에서의 훈시에 해당한다. 오자병법의 설명대로 “一人投命 足懼千夫(일인투명 족구천부)” 즉 한 사람이 결사항전 죽음으로써 천명의 적을 당해낸다는 뜻이고,[7] 보다 쉬운 말로는 “사즉생” 즉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제13행 요약
卽入昇忘歸 | 하늘에 올라 (신선승천하여) 돌아올 생각은 잊으시고 |
射熊莫返 | 저 세상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저 높은 곳에서 (횃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웅장하게 빛나소서! (문무대왕이시여 안타깝게도 갑자기 세상을 떴지만) 죽어서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 |
太子雞▨▨▨ 太子雞(犬升天) |
승선태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한 것처럼 문무왕께서 신선승천하신다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다함께 승천할 것입니다 |
[1] 당태종의 “제범”에 “登暉璇極” 표현이 나온다. (梁簡文帝 謝爲皇太子表曰 臣以 毓慶雲霄 憑暉璇極 璇極 謂寳位也 登 升也 暉 顯也).
[2] 노형석, 통일신라 14면체 주사위의 비밀은,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54416.html. 한겨레 2014-09-08.
[3] 한서, 양웅(揚雄)전에 소개되어 있다. “長楊賦”에서 “張網置罘 捕熊豪豬狖玃狐兔麋鹿 載以檻車 輸長楊射熊館” 그리고 “羽獵賦”에서 “於是禽彈中衰 相與集於靖冥之館”의 구절이 설명하다시피, “사웅관”은 “정명관(靖冥館)”을 지칭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덕흥리 고분이 전해주듯 “용궁”이 되겠고, 유불선으로 말하면 “지령인걸”로 표현된다. “지령인걸”의 의미를, 굴원의 초사 “국상(國殤)”의 구절로 가져오면, “身既死兮神以靈 子魂魄兮爲鬼雄”이다. 각자 어떠한 종교를 가졌든 (즉 그곳을 단테의 깊은 심연이든, 불교적 용궁이든, 도교와 기독교의 저 높은 하늘 나라 천국으로 생각하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영원한 침묵’을 하고 있으며 또 죽음이란 꼭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그것을 흔히 순수 알갱이, 고갱이, 정신, 혼백 등으로 말하든 여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형체로써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지 않는가?
[4] 사천성의 팬더 곰은 지금 동물원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서, 그 옛날 오왕 합려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의 서시가 사람들 몰려 있는 시장통에서 잘 생긴 자신의 미모를 보여주는 얼굴 값으로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하여서 세상의 돈을 다 쓸어 모았던 그것처럼 말이다! 펜트하우스 도색잡지로 돈을 다 쓸어담는 원리가 그 오래전 옛날부터 전해오는 것이 아닌가?
[5] 사람들이 “불곰”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곰은 이렇듯 불과 연관이 있다. 요사이의 유행어에 불금이 있는데, 이 ‘불타는 금요일 밤’의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다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지 않겠는가?
[6] 이순신 난중일기를 참조하라. 9월 15일 [양력 10월 25일] 계묘일, 날씨는 맑았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전날 밤 우수영에서 휘하의 장수들을 모아놓고 이와 같은 내용의 사즉생의 전투자세를 주문했다.
[7]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으면 그를 쫓아간 천 명 모두가 겁을 낸다. 비록 한 명이지만 그 한 명의 도적이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들어 자기를 해치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명이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臣請率以當之 脫其不勝 取笑於諸侯 失權於天下矣 今使一死賊伏於曠野 千人追之 莫不梟視狼顧 何者 恐其暴起而害己也 是以一人投命 足懼千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