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앞면 14행-슬픔은 파도를 넘고
14행 슬픔은 파도를 넘고 - 舜海而霑有截懸 堯景以燭無垠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국편위 번역: 순(舜)임금은 바다와 같이 덕을 내려도 절현(截懸)이 있었고, 요(堯)임금은 해와 같이 밝게 비추어도 은▨(垠▨)이 없었다. …
추홍희 번역: (哀思如潮 극도(極度)의 비통한(悲痛)한 심정)
(漲)舜海而霑有截 (슬픔과 사모의 정이 솟구치고 밀물처럼 밀려와) 애도의 물결은 파도를 타고 바다 건너 먼 해외에까지 적셨다.
懸堯景以燭無垠 높이 내걸린 추모의 등불은 끝없이 넓은 곳 광대무변의 모든 지역까지 비추었다. (존경하고 숭모하는 추모의 정이 끝없이 모든 지역에서 타올랐다).
비문 13행과 비문 14행
□□□□□□□□□□□□□□□□□□□□□ 宮車晏駕遏密在辰以□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댓구절 표현 형식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구절을 해석의 편의상 재배열해 보자.
□舜海而霑有截 | □순해이점유절 |
懸堯景以燭無垠 | 현요경이촉무은 |
두 구절은 철저히 댓구적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비문 9행에서의 □□者皆知其際 承德者咸識其隣 구절 7글자/7글자의 댓구적 문장 표현 기법과 유사하다.
□□者皆知其際 | 그가 남의 뜻을 받들고 베푸는 사람 즉 승의자(承意者)임은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
承德者咸識其隣 | 그가 승덕자(承德者) 즉 많은 은사와 덕택을 받은 사람임은 이웃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구절의 개별 단어 의미를 분석하면 다음 표와 같다.
漲 | 懸 | 밀려 스며오다-漲 <-> 공중에 내걸다-懸 |
舜 | 堯 | 요(천관대제), 공중 높을 요 <-> 순(지관대제), 땅의 누운 풀 堯 高也; 舜 舜草也 (설문해자) |
海 | 景 |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다-海 <-> 높은 곳에 매달려 밖으로 드러나다-景 |
而 | 以 | “握金鏡以御寰瀛 致衢樽而歡億兆” (두광정) |
霑 | 燭 | 스며들다-霑 <-> 밖으로 빛나다-燭 |
有 | 無 | 유 <-> 무 |
截 | 垠 | 반듯이, 절단-截 <-> 끝, 가장자리-垠 |
이 구절은 두 문장이 완전한 댓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국편위가 번역한 “… 덕을 내려도 절현(截懸)이 있었고”의 의미가 아님은 분명하게 보인다. “有截懸”(유절현)- (截懸)이 있었고-이 아니라, 有截(유절)이라는 숙어단어의 의미로 구절로 끝나고, “懸堯景”(현요경)으로 문장이 새로 시작되는 구조이다.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7글자/7글자 문장 구조이다.
哀思如潮(애사여조) 슬픔은 파도를 타고
13행의 구절 “□宮車晏駕遏密在辰以□”의 문장 내용과 14행의 “□舜海而霑有截” 순해 앞의 결자 부분을 의미상으로 연결해 보면, 문무왕이 홀연히 승하하셔서 슬픈 감정이 솟구친다는 의미의 문장 내용이 찾아진다. 이러한 내용에 어울리는 표현이 哀思如潮(애사여조)이다. 哀思(애사)는 애상곡처럼 비애사념이 솟구친다는 의미이고 潮(조)는 해조류 즉 밀물을 말하므로, 슬픈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문무왕이 서거하여서 빈소를 차리자 애도조문객의 추모발길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오다는 의미 즉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조문객 가운데는 멀리 해외에서까지 조문을 하려고 찾아왔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문무왕 장례식에 당나라에서 국가 조문 사절단을 파견했었다. 哀思如潮(애사여조)는 극도(極度)의 비통한(悲痛)한 심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潮(조)는 바닷물이 불어났다-swell, 쓸려가는 것 즉 밀물과 썰물, 조수, 조류를 말한다. 슬퍼서 많이 울면 눈이 퉁퉁 붓는데 그렇게 슬픈 감정이 솟구치고 불어나는 것을 스웰(swell)이라고 말한다. 바다에 가면 스웰 현상을 느낄 수 있다. 漲潮(창조)는 밀물, 만조를 뜻하고, 落潮(낙조)는 썰물, 간조를 말한다. 조류는 추세를 나타내므로, 이런 뜻에서 潮(조)는 시대의 사조(思潮) 등의 단어가 쓰인다. 해안가 모랫사장을 걸으면 바닷물이 스며들어오고, 습기가 축축하고 눅눅하다. 이런 측면에서 潮(조)는 습(濕)하다는 의미를 갖고 이러한 사례로 潮氣(조기), 潮濕(조습)을 쓴다.
海 바다 해
이순신 장군은 하늘 앞에 맹세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삼척장검을 들고 하늘 앞에 맹세하니 강산도 감동하여 색깔을 바꾸는도다. 단칼로 쓸어내 깨끗이 처리해버리니, 붉은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 같은 이순신 장군의 맹서문을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은 “海誓山盟”(해서산맹)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내는 것에 그 큰 의미를 갖는다. 산은 높고 바다는 낮은 곳에 있다. 바다가 바다인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 큰 그릇에 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바다를 천지라고 말했다. “海 天池也 以納百川者”. 유유장천 세상의 모든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가까운 바다 동해 서해 黃海(황해) 渤海(발해) 四海(사해) 등 구체적 지역의 바다의 명칭이 있고, 近海(근해) 沿海(연해) 緣海(연해) 등 먼바다와 얕은 연근해 깊이 구분에 따른 바다가 있고, 조류를 뜻하는 潮海(조해)가 있고, 전설상 신선이 거처한다는 성해(聖海)가 있다. 薄海(박해)는 해변에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공영달소에 "外迫四海 言從京師而至于四海也”라고 말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바닷가까지 쭉 이어지는 중국의 내부 수로길을 말한다. 薄海(박해)는 또 薄海朝貢(박해조공)이라는 송사의 표현이 있는 것처럼, 해내외 각지, 광대한 지역을 지칭한다.
학문의 세계 배움의 바다와 자강불식(自强不息)
삼국사기의 표현에도 나오는 단어인 學海(학해)는 배움의 바다 즉 바다처럼 끝없는 학문의 세계 진리의 전당 상아탑 학계를 말한다. 왜 학해라고 부르는가? 양웅은 학행(學行)에서 "百川學海而至于海 丘陵學山不至于山 是故惡夫畵也”이라고 말했다. 이인의 주해를 보면, 여기의 “畵”(화)를 그치다의 “止”(지)로 해석했다. 이 구절의 중어사전의 풀이를 보면, “言百川流行不息 所以至海 丘陵止而不動 所以不至于山 謂做學問當如河川流向大海 日進不已”으로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해나가는 것, 자강불식(自强不息), 일진불이(日進不已)의 학문의 태도를 강조한다. 따라서 이 구절의 번역은,‘모든 강물은 쉼없이 흘러서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언덕배기는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언제나 멈춰 있기 때문에 산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배움을 그만두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는 한없고 끝이 없다. 우주의 끝이 있는가? 제아무리 학문박식이 넓은 현인이라고 해도 지식과 학문의 세계는 우주처럼 끝없이 무한히 확장되기에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유한한 삶의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조금도 쉬임없이 계속 나아가는 길 밖에 없다. 이것을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말한다.[1]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멈추는 법이 없고 돌고 도는 별과 태양이 한시도 쉬지 않는 것과 같다. 하늘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끝없이 넓다. 수평선은 끝없고 광대무변하게 펼쳐진다.
오늘날의 태평양을 남해(南海)라고 불렀는데 이 남해의 고칭으로 漲海(창해)가 있다. 구당서 지리지에 창해를 “渺漫無際”라고 기술했는데. 묘만무제 끝없이 멀고먼 바다를 창해라고 불렀다.
인산인해
이처럼 바다는 끝이 없기에 수량의 많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인다. 잘 알고 있는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이나, 북한이 심심하면 꺼내드는 협박 카드인 “불바다” 발언의 火海(화해) 등의 바다가 말해주는대로 수많은 사람들로 人山人海(인산인해)를 이룬다는 표현이 있다. 또 海(해)는 또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고’의 뜻의 煮海爲鹽(자해위염)의 표현에서의 바닷물, 해수(海水)의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 해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제 “□舜海而霑有截” 구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기초를 쌓게 된다. 문무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덕행을 베풀었던 성현철인 같은 분이었는데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들의 슬픈 감정은 어떠했겠는가?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슬픔이 밀물처럼 솟구치고 애도의 감정이 넘쳐나 바닷물을 적시고 그 바닷물이 불어나 저 먼 지구 반대편 외국에까지 적셨다는 것 아닌가? 상가는 밤새 불을 밝혔고 조문객들로 꽉 들어차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해외에서도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는 정황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舜
풀처럼 눕는 순한 바다와 아침 이슬과 같은 위험
우리들이 숨바꼭질할 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열마디를 세면서 술래잡기를 하는데, 그처럼 무궁화꽃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이다. 무궁화꽃을 木槿花(목근화) 舜英(순영)이라고 별칭으로 부르는데, 그 아름다운 무궁화꽃은, 하룻밤 사이에 역사가 바뀐다고 말하고, 영고성쇠가 하루아침에 변한다, 부귀영화가 일순(一瞬)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상앙열전에 朝露之危(조로지위)의 말이 나온다. 상앙은 각종의 개혁 법률을 제정하고 엄정한 법의 적용으로 인해서 기득권층의 반발을 샀다. 이에 상앙에게 朝露之危(조로지위)의 충고의 말을 건넨 사람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당신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는 마치 아침 이슬과 같다”. 일본의 국화는 사쿠라 벚꽃인데, 벚꽃의 개화 시기는 반짝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 무측천이 한탄했듯이 일장춘몽 인생무상이고, 우리 백년도 못사는 우리인생인데, 그 일순간의 삶의 무상함의 경고를 우리나라 국화 무궁화꽃이 훨씬 더 크게 전해주지 않는가? 벚꽃은 보름을 피어 있지만 무궁화꽃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이니 말이다.
有截(유절)
截(절)은 절단하다, 절연(截然)의 단어에서 알다시피 작두나 가위로 잘라내는 것을 뜻한다. 截(절)은 가위로 비단을 자르면 일자로 반듯이 나아가는데 그처럼 반듯한 모양, 가지런한 모습을 이른다. 반듯한 모습은 복종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군대 정렬에서 꼿꼿하게 정렬된 모습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표시를 나타낸다. 그래서 원래는 ‘해외유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해외라는 단어를 생략해도 그 본뜻을 나타나기에 충분해서 (왜냐면 복종은 주로 해외 먼 곳에서 해오는 것이니까) ‘유절’만으로 쓰게 된 것이다. 문무왕의 통치력이 해외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가리킨다.
海外有截 해외유절
시경, 長發(장발)에 “九有有截”(구유유절)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현은 “截 整齊也 四海之外率服 截而齊整”이라고 주석했다. 후대에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海外”(해외)라는 말은 생략하고 “有截”(유절)만 써서 그 뜻을 나타냈다. 중어사전의 설명은 보면, “此處割取有截二字 以代海外” (‘유절’ 두 글자를 취해서 ‘해외’를 대신했다).[2] 북제서 번손(樊遜)전에 나오는 “有截之內 皆蹈德而詠仁”의 구절이 그런 사례이다. 이백의 명당부에 “武義烜赫於有截”(무의훤혁어유절) 구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쓰였다. 여기의 유절은 “해외유절”의 생략형으로 “유절”은 “해외”라는 말을 대신했다. 有截(유절)은 반듯이 잘라지듯 가지런한 모습을 나타내는 뜻에서 “해외”까지를 보탠 의미이다. 이백의 명당부에 “武義烜赫於有截” 표현에 대한 역주에서 “有截”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는 “李白 文 譯註”(100쪽)의 역주를 그대로 인용한다.[3] 건릉 술성기에서의 “財成有截”(재성유절), 또 백거이의 “刑禮道策(형례도책)에 나오는 “方今華夷有截 內外無虞 人思休和” 구절의 有截(유절) 의미 또한 그것과 같다.
학문은 주고 받는다. 배움의 바다는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까지 맞닿아 있는 것이고 해외에서 오는 것뿐만 또 반대로 맞닿아 있기에 해외까지 영향을 미친다. 병 속에 띄운 편지는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도달하고 또 후쿠시마의 원전수는 남태평양까지 돌고 돈다. 수많은 신라의 젊은이들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이유가 무엇인가?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중원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면 왜 선인들이 사는 한반도 금수강산으로 피란을 오고 이민을 오고 문화의 꽃을 피웠겠는가? 학문은 세계는 백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통합과 포용의 길이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어찌 살아갈 수 있는가?
학문은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것,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다같이 통한다. 건축학은 이집트 피라미드나 그리스 파르테논이나 로마의 판테온이나 뉴욕의 트리니티 처치나 한국의 첨성대나 다같이 건축의 원리가 통용되고,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다같이 영원하다.
堯舜 요순
역사상 태평성대 황금시절을 “요순우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들의 역사와 사람들 마음 속에 매우 깊숙이 자리잡은 요순우 임금이기에 요순우라는 명칭은 거의 일반명사화되었다. 大舜(대순)이라고 말하면 순임금의 존칭이다. 舜日堯年(순일요년)하면 요순 임금님이 통치하던 시대, 태평성대를 비유하는 말이다. 요임금이 천관대제 화관대제 신격화되었고, 순임금님은 지관대제로 신격화되었다. 요임금은 하늘에 비기고, 순임금은 바다에 비유된다.
舜海(순해)라고 표현하면 ‘바다’를 뜻한다. “순(舜)임금은 바다와 같이 덕을 내려도”라는 국편위의 번역은 얼토당토않는 잘못된 해석이다. “舜海”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중국의 고전 시가 문장을 검토 분석한 논문을 참조하면 (陳宣諭, “李白詩歌海意象”, 2011) 바다에 대한 시적 표현 기교와 그 의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舜海而霑有截
懸堯景以燭無垠
여기서 요(堯)와 순(舜)은 댓구적 표현기교로서 문장 구조속에 끼어 들어서 강조용법으로 쓰였다. 댓구적 표현 기교로 쓰였으므로 □舜海(순해) 앞의 결자 부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당나라 요숭(651-721)의 교묘가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此時舜海潛龍躍 此地堯河帶馬巡 |
이때 바다엔 잠겨있던 용이 뛰어오르고 이때 강에는 말부대가 지나가리라 |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순해 요하가 특정명사가 아니라 강조표현의 표현기교로 쓰인 것이다. 요순임금은 천하태평 황금시대를 나타내주는 대명사이고, 따라서 요순이 들어가는 말은 미칭이고, 좋은 뜻을 나타낸다.
霑
霑(점)은 浸濕(침습), 침윤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물기가 스며들다의 뜻이다.
가랑비에 옷젖다는 우리속담이 있는데, 도연명의 “歸園田居”(귀원전거) 싯구절에 “道挾草木長 夕露霑我衣” (도협초목장 석로점아의)이 나오는데, “길 좁고 초목이 우거져 밤이슬 옷깃을 적시네” 이 구절에서 霑(점)이 비가 스며들어 옷을 적시다의 뜻이다. 눈물이 흘려 내려서 옷깃을 적시는 그런 극한 슬픔의 현장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때가 아닌가? 강엄의 恨賦(한부)의 “聞悲風汩起 血下霑衿” 구절의 표현이 그것을 말해준다.
14행 懸堯景以燭無垠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구절을 해석의 편의상 재배열해 보자.
□舜海而霑有截 | |
懸堯景以燭無垠 |
그러면 7자 7자의 댓구적 문장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 댓구절 표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의 설명을 참조하라.
懸(현)
懸(현)은 절에 가면 “괘불탱화”를 내걸어 놓는 경우가 보이는데 거리가 懸隔(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멀리서도 사람들 눈에 잘 보이도록 공중에 높이 매달아 걸어 놓는다는 뜻의 掛(괘)의 뜻이다. 공중에 매달린 저 깃발! 백두산 천지 폭포처럼 높은 하늘에 걸린듯한 폭포를 懸瀑(현폭)이라고 말하고, 공중부양의 느낌이 들 정도로 절벽에 서면 위험한데 이런 경우를 懸崖絶璧(현애절벽)이라고 말한다. 범인 몽타쥬를 그려넣고 현상금을 내건 경우가 가끔씩 새기는데 이 때의 공개수배의 현상(懸賞)금이 내걸다의 의미이다.
懸堯景에서 堯글자는 강조표현기교로 끼어 들어갔다고 해석하면 “懸景”(현경)이 되는데 현경(懸景)은 해와 달 日月(일월)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日月長懸(일월장현)이라고, 해와 달은 공중에 높이 매달린 것과 같이 크게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가? 조식의 시 “朔風”(삭풍)에 “四氣代謝 懸景運周”의 구절의 현경이 해와 달 일월을 의미한다. “遠樹懸金鏡”이라는 표현에서 金鏡(금경)은 달빛을 말하니 遠樹懸金鏡(원수현금경)은 멀리 나뭇가지에 달이 걸려 있네, 이러한 낭만적인 모습은 요즈음 발달된 카메라 기술 덕택으로 보름달을 스쳐지나가는 비행기의 모습을 찍는 사진을 흔히 보게 된다. 보름달이 뜬 날 시골의 바깥을 나가보면 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
景(경)
명심보감에서 경행록(景行錄)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는데, 景(경)은 경행(景行)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경행(景行)은 “景行仰止”의 줄임말로 숭고한 덕행을 뜻하고 이 말의 출전은 시경의 “高山仰止 景行行止” 구절이다. 채옹의 “樹碑表墓 昭銘景行” 표현이 말해주듯, 묘 앞에 비석을 세우고 명을 적어 놓은 것은 살았을 때의 큰 덕행을 기르는 목적이 있다.
숭고한 덕행 즉 덕행이 높아야 존경을 받고 숭모의 대상이 된다. 景(경)은 높을 고(高), 큰 대(大)의 의미를 갖는 낱말이다. 해와 달처럼 높고 크기 때문에 높이 우러러 바라보고 숭모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景(경)은 仰慕(앙모) 敬慕(경모) 즉 존경하고 숭모하고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뜻에 佩服(패복), 信服(신복)의 단어가 쓰인다. 영어로 admire, respect이다. 상복에 허리띠를 차는 이유는 이러한 신복, 패복의 의미가 있다.
景(경)은 높은 경치(景致), 풍경(風景), 풍광(風光)을 의미한다. 야경(夜景)이나 가을풍광(秋景)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景(경)은 해(태양)를 뜻한다. 景(경)은 태양을 말하니 해는 빛을 낸다. 景(경)은 햇빛 日光(일광)을 이른다. 날이 밝으면 하늘에 빛이 비친다. 강엄의 이별부에 “日出天而耀景”의 景(경)은 햇빛을 말하고, 장재의 칠애시 구절의 “朱光馳北陸 浮景忽西沈”에서의 景(경) 또한 빛을 발하던 해가 서산 너머로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낱말로 쓰였다. 장재의 칠애시에 대한 번역 해석은 “문무왕릉비 비문 연구 하권/제3권”을 참조하라.
景(경)은 景曜(경요) 景光(경광)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빛이 빛나는 모습을 이른다. 해처럼 높은 것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따라서 景(경)은 고대에서 그림자 영(影)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그림자의 뜻에서 景(경)은 영정(影幀)의 뜻으로 쓰였다. 영정은 고인의 사진을 말하며 진영(眞影)을 그려 놓은 진주 논개 사당 등 사당을 영당(影堂)이라고도 불렀다. 부고를 듣고 찾아온 조문객(弔問客)들은 영정(影幀) 앞에 절을 하고 고인의 죽음에 애도(哀悼)를 표시한다.
또 景(경)은 바닷가 어촌에서 어망을 걸어 놓은 모습이나 양계장 닭치는 집에서 닭이 못 올라가도록 대롱 위에서 펼쳐놓은 덮개, 씌우개, 가리개, 籠罩(농조), 燈罩(등조)를 뜻하는 낱말이다. 위에 덮는 덮개의 의미에서 외출시 걸쳐 입는 옷, 적삼의 의미와 같이, 솜옷 위에 걸쳐 입는 덧옷을 의미하는 낱말로 쓰인다. 초혼제에서 하얀 덧옷을 지붕 위에 걸어 놓는 것이 이런 의미이다. 패복 신복은 죽은 사람을 경모하고 숭배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러한 경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景(경)은 따르다의 의미를 갖는데 즉 景從(경종)이란 말이 그것이다. 그림자가 따라 다니듯이 긴밀하게 뒤따라가는 모습을 말한다. 가의의 과진론(過秦論)에서의 “天下云集響應 嬴糧而景從” 구절의 景從(경종)이 양식을 휴대하고 따르는 모습을 말한다. 장례행렬의 모습이 그것 아닌가? 명정이 나부끼는 장지로 가는 행렬뿐만 아니라 조문객을 받고 추모의 정을 나눌 때 밤새도록 불을 훤히 밝혀놓는데 그와 같은 모습을 “懸堯景以燭無垠”의 표현이 나타내준다.
景(경)은 빛나는 光(광), 옷 衣(의복), 그림자 影(영),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에서 별자리 景星(경성)은 가장 밝게 빛나는 세성(歲星) 즉 목성을 이르고 이들 밝은 별들을 德星(덕성)이라고 부른데 덕성의 의미에서 현인재사(賢人才士)가 나타나는 비유적 의미로 쓰인다.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행성)이 목성 금성인데, 덕흥리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되는 세차신앙은 12년 주기의 목성을 중심으로 삼았다. 목성의 크기는 지구의 약 300배이다. 목성의 밝기나 강한 중력은 주위 행성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임으로 태양계에서는 제왕으로 부를 수 있다. 진국 신라 조선과 한당(漢唐)은 선조가 木德治世(목덕치세)의 제곡 고신씨로서 서로 연결된다.
燭(촉)
燭(촉)은 불을 밝히다는 조(照)의 뜻이다. 상가집은 밤새도록 불을 밝혀 놓는다. 燭(촉)은 촛불을 밝히다는 실물로써의 화촉(火燭)-양초, 신혼 첫날 밤 신혼방에 불을 밝히다 洞房花燭(통방화촉) 의미가 있지만 비유적으로 빛을 비추다는 光燭(광촉)의 의미가 있다. 사기의 노중연열전에 나오는 “名高天下而光燭隣國” 구절이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명성이 자자하면 아인슈타인처럼 독일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그 이름이 빛나지 않는가? 문무왕 그 이름은 이웃나라에까지 빛난다-光燭鄰國(광촉린국).
無垠(무은)
垠(은)은 가장자리, 변두리, 절벽, 邊(변),岸(안)을 뜻하는 낱말이다. 즉 범위의 한계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無垠(무은)은 그 한계가 없다는 뜻이니 광대무변의 지역을 의미한다. 無垠(무은)은 一望無際(일망무제) 無邊無際(무변무제) 遼闊無邊(요활무제)와 같은 표현으로써 끝없이 넓은 곳까지의 뜻이다. 懸景燭無垠(현경촉무은)은 해와 달은 끝없이 넓은 곳 광대무변의 지역까지 고루 비춘다는 뜻이다.
□舜海而霑有截 懸堯景以燭無垠
문무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덕행을 베풀었던 성현철인 같은 분이었는데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들의 슬픈 감정은 어떠했겠는가?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슬픔이 밀물처럼 솟구치고 애도의 감정이 넘쳐나 바닷물을 적시고 그 바닷물이 불어나 저 먼 지구 반대편 외국에까지 적셨다는 것 아닌가? 상가는 밤새 불을 밝혔고 조문객들로 꽉 들어차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해외에서도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는 정황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14행
□□□□□□□□ | |
□舜海而霑有截- (潮)舜海而霑有截 |
슬픔과 사모의 정이 솟구치고 밀물처럼 밀려와 애도의 물결은 파도를 타고 멀고 바다 건너 먼 해외에까지 적셨다. |
懸堯景以燭無垠 | 높이 내걸린 추모의 등불은 끝없이 넓은 곳 광대무변의 모든 지역까지 비추었다. |
(존경하고 숭모하는 추모의 정이 끝없이 모든 지역에서 타올랐다) |
[1] "The way of success is the way of continuous pursuit of knowledge."
[2] 後人割取《詩》句“有截”二字代稱九州,天下.
[3] 이백의 명당부에 “武義烜赫於有截”(무의훤혁어유절) 구절에 대한 역주에서 “有截”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는 “李白 文 譯註”(100쪽)의 역주를 그대로 인용한다:
“有截(유절): 자를 듯 가지런한 모습. ‘해외’라는 뜻으로 당나라의 통치력이 미치는 곳을 가리킨다.
[王] 《시경⋅상송⋅(장발長發)》에 “바다 바깥까지 가지런하다.”라고 했는데, 정현의 전에 “‘절’은 가지런하다는 뜻이다. 사해 밖에서도 복종하여 자른 듯이 가지런하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詩⋅商頌》: “海外有截.” 鄭玄箋: “截, 整齊也. 四海之外率服, 截而齊整.”)
[安] 여기서는 ‘유절’ 두 글자를 취해서 해외를 대신했다. 예를 들면, 《북제서⋅번손전》에 “구주 내에 모두 덕을 밟고 인을 노래했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이다. ({《詩⋅商頌⋅長發》: “海外有截.”} 此處割取有截二字, 以代海外, 如《北齊書⋅樊遜傳》之“有截之內,皆蹈德而詠仁.” 卽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