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앞면 3행 해석-경진씨는 누구인가
3행 鯨津氏 경진씨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국편위 해석: … 경진씨(鯨津氏)를 파견하여,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추홍희 해석: 이에 경진씨를 파견하여 한반도의 약점을 조명하고 보고하게 하였다. 한반도는 동쪽으로는 개오라는 지역을 국경으로 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팔계 지방에 맞닿아 국경으로 삼고 있는데, 바다를 서로 접하고 있다. 하늘의 부름에 응한 천자가 여름철 붉은 서기를 타고 (준마처럼 빠르게 배를 달려) 내려오니 (전쟁을 불러온) 백호는 (자기죄상을 자백하고 두 손을 들어 하늘에 빌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고 도의의 정치를 펼치니 인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궁전안에는 봉황이 내리고 교외밖엔 기린이 뛰어 놀며 바다에는 청룡이 노닐었다).
3행문장을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띄어쓰기로 재배치하면 다음과 같다.
□□派鯨津氏 映三山之闕 東拒開梧之境 南鄰八(桂)之際(海)接 黃龍 駕朱蒙 (馳赤馬) (招)承白武 仰▨▨」
□派
“□派鯨津氏映三山之闕”의 “□□□派”파 앞의 결자를 메꾸어 본다면 글자 뜻 그대로 파견하다의 의미의 단어인 於是遣派(어시견파)가 적절하다. 오늘날 남한에서는 상호(相互)라고 쓰는데 북한에서는 호상(互相)이라고 쓰니 남북한간에 어감이 약간 달라진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존중, 상호작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듯이, 오늘날에는 파견이라는 어순으로 익숙하지만 遣派(견파)의 어순으로 쓰더라도 같은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팔경(八經)에서 “兵士約其軍吏 遣使約其行介”의 표현을 보라. 遣使(견사)는 派遣使者(파견사자)의 뜻인데, “견당사”의 말로 익숙한 표현이고, 使(사)는 派(파)의 뜻과 같은 ‘사람을 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이다. 누가 경진씨를 파견했을까? 당연히 선왕 선후(先后)가 파견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이 되겠다.
鯨津氏 경진씨
“鯨津氏”경진씨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경진씨는 헌원씨, 혁서씨, 신농씨, 이기씨, 중랑씨 (軒轅氏 赫胥氏 神農氏 伊耆氏 仲良氏) 등의 수다한 선인선현들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제왕 귀족 등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을 가르킬 때 쓰는 경칭의 표현이다. 전국시대(BC 475-BC 221)에 쓰여진 竹書紀年(죽서기년)의 黃帝軒轅氏, 帝摯少昊氏, 帝顓頊高陽氏, 帝嚳高辛氏, 帝堯陶唐氏, 帝舜有虞氏, 帝禹夏后氏 등을 참조하라.
庚辰氏
고대 역사적 기록을 탐문해 보면 “경진씨”와 같은 발음이 나는 역사적 인물이 존재한다.
경진씨의 성격은 분골쇄신하며 용맹성이 강한 사람이다. 고래잡이 용감한 사람들의 출신 배경을 역사를 찾아 올라가 보면, 대우치수 시기에 흉악무도한 사람들을 처치하여 용감성을 나타낸 “庚辰氏”(경진씨)를 찾을 수 있다. 용감한 탐험가 고래잡이 鯨津氏(경진씨)의 선조로서 庚辰氏(경진씨)를 추적해 볼 수 있겠다. 庚辰氏경진씨는 대우치수 시대에 크게 활약하여 신격화된 인물인데, 그에 대한 기록은 당나라 때 이공좌의 악독경에 전해진다. “禹 怒 召集百靈 獲 淮 渦 水神 無支祁 授之章律 鳥木由 不能制 授之 庚辰. 庚辰 以戰逐去 頸鎖大索 鼻穿金鈴 徙 淮陰 之 龜山之足下 俾 淮 水永安而流注海”. “古岳瀆經”(고악독경)의 경진씨에 대한 사료는 저자의 “세계가 깜짝 놀라고 한국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경천동지 문무왕릉비”을 참조하라.
간지 세차로 “庚辰”(경진)은 “龍年”(용년)이라고도 말한다. 한반도의 고대왕국 “辰國”은 용나라이고, 동쪽은 해뜨는 시작의 동방청룡의 자리이고, 용은 고대로부터 제왕의 상징 심벌이었고, 청룡상은 고대로부터 중국문화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청룡상이 중국 문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1959년 발굴된 중국 하남성 낙양 二里頭村(이리두촌) 고대유적지의 유물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하남성 낙양 二里頭(이리두) 유적지에서 20012년 출토된 용모양 녹송석상감용기 綠松石龍形器 (“中華遺產” 圖片, 2016, 11). |
동이족 동해왕 낙랑해왕의 역사를 고찰해보면 庚辰氏(경진씨)의 후손이 鯨津氏(경진씨)의 선조와 연계되는 역사가 찾아진다.
鯨津氏(경진씨)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비문 전체의 문맥을 통해서 판단하면, 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김춘추 태종무열왕을 가르킨다.
돌아가신 선왕의 정식명칭을 비문 글자수에 한계가 있는 비석에다 그런 공식명칭을 쓰기 보다 또 그런 경칭은 역사상 유명 인물의 반열에 올려 놓는 경칭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氏(씨) 글자를 생략하고서 鯨津(경진)으로만 쓴 것은 고대 당시에 허용되던 표현으로 이해된다.
비문 뒷면 20행에 등장하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뼈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粉骨(분골)은 삼국사기에서 기재하고 있듯이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써 “몸이 부셔지는 것도 마다하고 진심전력으로 나라를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의미인 것이지, 경진에 뼈를 분(粉)하다의 개별축자적 낱말의 뜻으로 쪼개진 의미가 아니다.
삼국사기 “兄弟及兒 懷金拖紫 榮寵之極 夐古未有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
“저희 형제와 아들들이 금인(金印)을 품고 자주색 인끈을 달게 되어 영예와 은총의 지극함이 전에 없었던 것이라서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모두 부리시는데 쓰임이 되기를 바랐으며, 간과 뇌를 들판에 발라서라도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였습니다.” (국편위 번역).
고래를 長鯨(장경)이라고 말하는데 장경은 큰 고래 大鯨(대경)으로 부르기도 한다. 좌사의 吳都賦(오도부)에 “長鯨吞航 修鯢吐浪” 구절이 나오는데, ‘고래가 배를 삼키고 도롱뇽이 물을 품는다’는 뜻이다. 송나라 陸游(육유)의 長歌行(장가행)에 “人生不作 安期生 醉入 東海 騎長鯨” 구절이 있는데 ‘술에 취해 동해바다로 나가 고래등을 타볼까나’ 뜻인데, ‘고래등을 탄다’는 말은 우리나라 70년대 유행했던 대중영화 “고래 사냥”의 주제가 가사의 의미와 비슷하다.
長鯨(장경)은 巨寇(거구)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큰 왜구’라는 장경의 의미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갖고 있었으니 문무왕이 동해왕 즉 낙랑해왕의 타이틀을 갖고서 일본해 태평양까지 바다를 주름잡았다는 역사는 신라후기 장보고의 청해진 무역, 문무왕의 중흥선조 김수로왕의 해상왕국 등의 역사를 되찾을 수 있으므로, 19세기말이 되어서야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태평양을 진출한 일본의 역사에 대비하여 가야와 신라의 바다 재패 역사를 되찾는 작업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 경진씨를 長鯨(장경), 巨寇(거구)에 비유했다는 역사의 기술에 숨어 있는 의미를 들여다보면, 김춘추는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당나라와 일본과 고구려 백제 등 동해와 황해와 태평양을 둘러싸고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국들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외교적 책략을 구사했던 사실이 함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長鯨(장경)은 술고래, 長鯨豪飲(장경호음)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래가 물을 마시듯 마시다 즉 대식가(大食家) 또는 비유적으로 巨寇(거구), 탐욕이 지나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김춘추가 대식가였다는 사실은 삼국유사에 기재되어 있다. “王膳一日飯米三斗 雄雉九首 自庚申年滅百濟後 除晝膳 但朝暮而已 然計一日米六斗 酒六斗 雉十首”.
“태종무열왕은 하루에 쌀 세 말과 장끼 아홉 마리씩 먹어 치웠다.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후 점심을 거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 식사로써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후로 점심을 걸렸다는 삼국유사에 기재된 이야기들은 태종무열왕의 영토적 확장 즉 삼국통일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비유적 의미가 숨어 들어 있다. 신라에 투항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김춘추를 대식가에 비유하여 깎아내리고자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서 김춘추를 신성스런 용모를 지닌 사람으로 기술했다. 삼국유사, “在東宮時 欲征高麗 因請兵入唐 唐帝賞其風彩 謂爲神聖之人 固留侍衛 力請乃還”. ‘태자 시절에 고구려 원정을 위해 군사를 빌리려 당나라에 갔다 당나라 황제가 그에게 성스럽고 존엄한 풍채라고 했다 황제가 곁에 있기를 원했지만 설득하고 돌아왔다’. 사람의 생김새 용모 풍채가 신성(神聖)스럽다는 표현은 그가 풍기는 용모가 장엄해서 감히 함부로 범접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신과 같은 모습이라는 의미의 神聖(신성)이란 말은 신선(神仙)이란 의미 즉 땅이 곧 무너지는 진동이 일어나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거나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언제나 허허 웃으면서 사람 차별하지 않고 항상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거인이라는 의미 이외에 생김새가 “천하대장군”의 장승처럼 또는 처용의 모습처럼 무서워서 함부로 범점하기 힘든 무인 같은 호인(好人)의 풍모를 지닌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645년 일본은 다이카 쿠데타(大化改新)가 일어났고 그 이년후인 647년 김춘추가 일본을 방문하여 정세를 정탐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大化三年 기사에 金春秋를 “春秋美姿顔善談咲”라고 표현했다. 김춘추의 자태가 아름다운 풍채를 지녔고 얼굴 안색은 곱고 선한 모습이며 웃으며 담소를 즐긴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다. 咲(소)는 웃음을 짓다의 소(笑)와 같은 뜻의 글자이다.
일본인들의 기사 번역을 보면 “金春秋が美男子で笑顔を絶やさない好人物であったことが記されている” 인데, 미남자라고 말할 때 얼굴이 욘사마 배용준처럼 여자같이 곱다는 뜻의 미남자라기 보다는 적국에 온 담판가로서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고 웃음 지으며 말을 이어가는 침착한 사람 즉 신선 같은 영웅적 이미지를 그려놓은 표현이다.
항우의 해하가에서 나오는 표현인 虞美人(우미인)을 아름다운 여자 미녀로 해석하는 것은 항우의 절명시의 깊은 의미를 파악해내지 못한 사람의 해석에 불과하다. 목마탄 사람 즉 뱃머리에 달린 나무닭을 말하는 “목계”의 교훈이 있는데, 어떠한 절망적인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침착하게 살아나오는 사람을 우리는 영웅적인 인물로 추앙한다.
삼국사기에서 김춘추를 “王儀表英偉 幼有濟世志”라고 평했는데, 이 구절은 태종무열왕은 ‘몸가짐과 태도가 남달리 위대하고 영웅적인 기개를 나타냈고 어려서부터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고 큰 뜻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儀表(의표)는 용모나 자태가 당당(堂堂)하다는 뜻으로 비범한 김춘추의 풍채를 말해주는데, 이 삼국사기의 구절은 문무왕릉비 비문앞면 4행의 “勲超三□□巍蕩蕩不可得而稱者 ” 문장 내용과 일치한다. 무열왕 김춘추가 천하귀인이었다는 묘사는 문무왕릉비문과 당서와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모두에서 일치되는 사실이다.
<고래 사진>
三山
三山(삼산)은 전설로 내려오는 봉래, 방장, 영주의 세 삼신산(三神山)을 가르킨다. 삼산은 지명으로 흔히 쓰이는 명칭이지만, 삼면이 산이나 바다로 둘러 쌓인 원뿔처럼 깊숙한 반도 지형을 가르키는 일반명사화된 흔한 표현이다. 인류의 문명은 강을 따라 형성되었는데, 강줄기는 험준한 산맥을 넘나들고 평야지대에 이르면 물고기를 잡는 그물망처럼 한 면은 트여 있는 이러한 삼산의 지형에 주로 터전을 잡는 인류의 생활 환경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三山(삼산)이라는 지역 명칭을 쓰고 있는 곳을 여러 나라들에서 찾아보면 한 두 곳이 아니고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삼산 지형은 복건성의 무이동 계곡, 바다를 끼고 있는 반도지형의 복주가 그에 속한다.
三面(삼면)이란 ㄇ 형식의 구조를 말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三面際水(삼면제수)를 가르킨다.[1]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이 김상헌의 시조 구절 “삼각산”이 양각두(羊角頭) 즉 三列山(삼열산)을 말한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 일자눈썹을 가진 사람을 무인 장군될 생김새라고 말하는데, 일자각을 용각(龍角)이라고 말한다. 요즈음 자동차운전면허시험에서의 난코스인 “T”자 코스를 지칭하는데, 三面(삼면) ㄇ 형식은 반도 지형을 말한다. 고인돌, 돌을 지칭하는 우뚝할 兀(올) 글자가 이 뜻을 지닌다.
삼산의 모양은 송나라 曾鞏(증공)이 “道山亭記”도산정기에서 표현하듯이, “三山者鼎趾立”(삼산자정지립) 삼발이 솥이 서 있는 모양을 이른다. 세 개의 산이 서로 병렬적으로 서로 싸고 있고 한 곳은 트여 있다. 삼국지의 역사가 워낙 우리들의 뇌리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흔히 “천하삼분”이라고 말하는데, 삼발이는 가장 안정적인 형태에 속한다. 그런데 왜 삼발이가 안정하다고 여기는가? 솥은 트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막힌 솥은 없다. 바람이 들어가고 바람이 나오는 문이 있어야 한다.
도산정기에서 삼산의 무이동계곡을 예찬하고 묘사하고 있다. 三山鼎立(삼산정립)의 전설따라 삼천리를 가보면, 삼산은 바다 가운데 위치한 봉래(蓬莱) 방장(方丈) 영주(瀛州)의 세 三神山(삼신산)을 지칭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三神山(삼신산)은 道山(도산)과 같은 말이고, 도산은 신선이 사는 仙山(선산)과 같은 뜻이다. 당송팔대가 소식의 봉화진현랑의 싯구에 나오는 “三山舊是神仙地 引手東來一釣鰲” 표현은 삼신산을 가르킨다.
한반도를 선인들이 사는 곳이라 예부터 여겨왔는데 그것은 반도지형을 지칭하고 또 신선처럼 살아가는 한반도의 주인공 한인들이 선량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삼산지형 즉 반도지형에 속하고, 전형적인 길상복지에 속한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한반도와 네덜란드인데 왜 그토록 많은 인구가 집중해서 살고있는 지 그 이유가 필시 있지 않겠는가? 바다나 강 바닥에 솟아오른 지형을 영어로는 그린포인트(Green Point)라고 부른다. 반도지형은 그리스 이태리 등 모든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통틀어 반도지역은 모두 길상복지이다. 바다와 물이 겹치는 곳에는 물고기도 풍부하다.
闕
闕(궐)은 왕이 거처하는 조정궁전, 수도 서울의 궁전대궐, 궁전 건물은 담장으로 에워싸여 있는데 그 출입문 좌우에 설치한 망루(望樓)를 가르키는 말이다. 또 石闕석궐이란 말에서 보여주듯 묘 앞에 좌우로 서 있는 비석을 가리키기도 한다. 闕(궐)은 이런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뜻도 가지고 있는데, 궐(闕)은 豁口(활구), 틈, 갭, 缺口(결구)의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수경주에 나오는 “兩岸連山 略無闕處”이라는 표현은 산이 연달아 있어서 트인 곳이 없다는 뜻이다. 궐(闕)자가 결점(fault)을 뜻하는 말로 쓰인 예는 유명한 제갈량의 출사표, 사마천의 보임소경서에서도 확인된다.
사마천은 그 편지에서 “拾遺補闕”(습유보궐)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拾遺補闕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과실을 바로잡고 보완하다는 뜻이다. 즉 결점이나 잘못을 바로잡다는 뜻에서 補闕(보궐)을 쓰고 있다. 보궐선거라는 용어에서 그 뜻을 잘 알고 있으리라. 또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반드시 결점을 보완할 수 있고, 널리 이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必得裨補闕漏有所廣益”(필득비보궐루유소광익)이란 말을 쓰고 있다. 闕漏(궐루)는 빠지고 누락된 것, 裨補(비보)는 결점을 보충보완하다는 뜻이다.
당태종의 “제범”에서 간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納諫(납간)편에 “恐有過而不聞 懼有闕而莫補” 구절이 나타난다. 국왕은 고대광실 구중광궐에 갇혀 살기에, 높은 누대를 받치고 있는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랫사람들 가운데 혹 과실이 있어도 그것을 솔직하게 알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결함이 있어도 그것을 고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러한 은폐 시도가 나타나는데 그러한 경향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종대왕은 신문고를 설치해서 만약의 잘못을 직접 듣고자 했던 것이다. 당태종은 신하가 정의에 옳고 바른 말을 하면 설혹 그 말솜씨가 조금 서툴어도 그 부족함을 탓하지 않았으며, 논리가 곧고 이치에 맞으면 설령 그 문장표현력이 서툴어도 문장력을 탓하지 않았다.
인간 세상이란 부족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 어떤 결함이라도 전혀 없는 청정무구의 사회가 될 수 없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결점이 없는 완전무결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그러므로 인간사회는 어떤 결함이 나타나면 그것을 고치고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 실질이 중요한 것이지 외양의 바깥 형식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화려한 치장이 항상 나쁜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사마상여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할 줄 아는 타고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의미가 통하는대도 불구하고 괜히 꼬투리잡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하수에 속한다.
위의 예와 같이 역사상 최고의 문장가들이 불후의 명문에서 궐(闕)자를 결점이나 부족한 것을 이르는 말로 쓰고 있는데, 왜 국편위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서 그저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이렇게 엉터리로 번역했는지 심히 유감이다.
삼국유사에서 삼면의 바다를 끼고 있는 한반도 지형이 신라의 약점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羅人云 北有靺鞨 南有倭人 西有百濟 是國之害也”
闕文
비문의 마멸된 글자 부분을 “缺”(결)자 부분이라고 부르는데, 이 결(缺)자의 의미는 결손(缺損)되어 있다는 뜻이다. 결손되고, 흠결이 있거나 빠뜨려지고 일글어져서 판독이 안되는 글자 부분을 가르키는 말로 “闕”, “上闕”, “闕三字” 등의 표현들로 쓴다. 缺(결)과 闕(궐)은 같은 의미이다. 闕(궐) 글자가 빠진 것, 脫漏(탈루), 결함, 흠결, 결손의 缺(결)의 뜻을 갖고 있다는 예문사례는 공자의 “闕文”(궐문)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闕文(궐문)은 문장 중에서 빠진 글자를 지칭하는 말인데 글의 의미가 해석이 안되는 부분을 이르기도 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의 “吾猶及史之闕文也” 구절이 그런 뜻으로 쓰였다.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이 구절의 뜻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하길, “나는 그래도 사관이 탈루된 글자나 이해가 안가는 글자가 있으면 빼놓고 공란으로 남겨두는 것을 보았고, 말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타게 하였는데, 지금에는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 것 같네!”
공자의 이 말은 의문이 생기거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비워 두거나 또는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겸손함과 신중함이 있어야 되는데, 몰라도 아는 척하며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을 마치 옳은 것인양 억지로 우기려는 세태를 비판하는 지적이다.
闕(궐)은 대궐의 뜻만이 아니라 부족한 결손의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공자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같은 한갖 미물들이 공자가 쓴 글자의 의미마저 놔두고, 오로지 宮殿闕庭(궁전대궐)의 궐(闕)자의 뜻으로만 해석을 제한하려고 한단 말인가?
映
당나라 흘간유의 시 “海日照三神山賦(以耀輝相燭 珠庭燦然為韻)”에 나오는 “金闕互映”의 의미를 살펴보고 비문 이 구절의 뜻을 찾아보자. 金闕互映(금궐호영)의 뜻을 보자. 금궐은 선인이 거처하는 곳 또는 임금의 궁전을 뜻하고 映(영)은 서로 비추다, 서로 어울리다의 뜻이다.
그런데 비문에서의 映(영)글자는 ‘보고하다, 반영하다’는 의미이지, ‘비추다’의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비문의 映(영)은 照射(조사)하다의 뜻이 아니라, 反映(반영)하다 즉 빛을 반사시켜서 조명하다 영어로 reflect의 뜻으로 쓰였다. 유신(庾信)의 咏畵屏風(영화병풍) 싯구절 “狭石分花徑 長橋映水門”에서의 映(영)이 반조(反照)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상부에 보고할 때는 곰곰이 따져보고 보고서를 올리기에 검토(reflection)의 과정을 겪는다. 그러므로 映(영)은 윗선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신화사전을 찾아보면 이러한 뜻의 사례로 映映群衆意見(영영군중의견)을 들고 있다. 또 映襯(영친)하면, 서로 잘 어울리다, 서로 비추다의 뜻이고,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병렬하여 대비를 선명하게 하는 수사학을 말한다. 반딧불에 비추어 공부를 하다의 형설지공과 같은 뜻으로서 映雪讀書(영설독서)라는 표현이 있다.
따라서 “派鯨津氏映三山之闕” 구절에서의 闕(궐)은 대궐 궁전의 뜻이 아니라 결점이라는 뜻이고, 三山(삼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한반도를 지칭하고, 鯨津氏(경진씨)는 선왕 태종무열왕을 지칭하고, 映(영)은 반영(反映)하다, 조명하다, 의견을 보고 전달하다의 뜻이다. 당서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의 사서에서 모두 기재하고 있는 바대로 경진씨를 당나라에 파견하여 삼면의 적으로 둘러쌓인 한반도의 결점을 조명하고 반영하여 전쟁전략을 수립하였다는 역사를 전달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삼면의 바다를 끼고 있는 한반도 지형이 신라의 약점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羅人云 北有靺鞨 南有倭人 西有百濟 是國之害也”. 신라의 약점은 북으로는 말갈을 접하고 남으로는 일본을 접하고 서쪽에는 백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것인데, 문무왕릉비 비문에서 삼산의 결점은 동으로 개오하고 국경을 맞대고 남으로는 팔계와 바다로 접해 있는 반도지형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국편위가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이렇게 번역한 것은 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비문에 말하는 삼산의 결점은 동으로 개오하고 국경을 맞대고 남으로는 팔계와 바다로 접해 있는 반도지형이라는 것이다. 비문 앞면25행에서 北接挹婁(북접읍루)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일부 논자들은 국편위와 같이 “□接黃龍駕”을 北接(북접)이라고 마음대로 끼워넣고 마치 동서남북의 방향대로의 기계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북쪽으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과 그 나라는 挹婁(읍루)이기에 “북접황룡”의 표현을 북쪽과 마주한 황룡의 뜻으로 새길 수 없다.
東拒開梧之境 南鄰八桂之際 海接
거(拒)는 막다, 拒守(거수)는 지키다, 拒敵(거적)은 적을 저지한다는 말이니, 동거(東拒)는 국경 동쪽을 이른다. 수서 동이 백제전에 백제의 국경을 “南接新羅 北拒高麗”(남접신라 북거고려)라고 적고 있는데 백제는 남쪽으로는 신라와 북쪽으로는 고려와 국경을 접한다는 말이다. 주서(周書) 동이 고구려전에 고구려의 국경을 “東至新羅 西渡遼水二千里 南接百濟 北鄰靺鞨千餘里”라고 적었는데, 동지(東至)신라 서도(西渡)요수 남접(南接)백제 북린(北鄰)말갈 이렇게 동서남북의 국경선을 말하고 있다.
東拒開梧之境(동거개오지경)은 동쪽으로는 개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뜻이고, 南鄰八桂之際(남린팔계지제)는 남쪽으로는 팔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海接(해접)은 이 동쪽과 남쪽의 국경인 개오와 팔계가 바다를 끼고 접해 있다는 뜻이다.
拒, 鄰, 接, 承 이 단어들은 다같이 ‘접하고 있다’는 뜻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주서 수서 구당서의 사서에서 보이듯이 국경선을 표시하는 표현들이다.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이렇게 각각 東拒, 南鄰, 西承, 北接 (비문앞면3행과 25행에 등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開梧
비문에서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명칭을 개오(開梧)라고 말하고 있는데, 중국의 전설상 동쪽 국경을 “개오”라고 불렀다. 최초의 출전은 여씨춘추에서 찾아진다. “其以東至開梧 南撫多鷃 西服壽靡 北懷儋耳 若之何哉” (呂氏春秋, 任數). 하지만 이들 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르키는 지는 알 수 없다.
“蒼梧”(창오)라는 지명은 산수풍광이 아름다운 계림이라는 유명한 관광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오주(梧州)지역이고, 지금의 베트남인 남월(南越)과의 국경 지역에 해당한다. 창오라는 지명은 요순시대 때부터 존재했는데 한나라 때인 기원전 111년 창오군을 설치했다.
창오나 개오(開梧)나 한자훈으로는 그 뜻이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창오는 중국의 남쪽 국경에 해당하므로, 문무왕릉비문에서의 동쪽 국경을 접하는 지역명의 개오하고는 약간 다른 개념으로 보인다.
일본이 중국과 접하는 해협의 이름이 “대우해협”인데 이 대우는 우임금을 가르키는 말이다. 역사 기록은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사서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임금의 남순 정벌 때 일본이 정벌되었다는 추측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의 “대우 해협(大隅 海峽)”이라는 지명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大隅의 우(隅)자가 모퉁이라는 뜻으로써 일본의 최남단 큐슈 모퉁이에 치우친 곳이라는 지형상의 명칭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의 역사 발전 단계상 큐슈가 가장 먼저 발전했고, 또 일본의 최초 수도가 위치한 독립국이었다는 측면에서 모퉁이라기 보다는 최첨단의 입지에 속했다. 큐슈에 위치했던 대우국이나 대우해협은 대우치수 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추측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대우(大隅)는 대우(大禹)로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일본이 접하고 있는 국제 해협으로 대한해협이 있고 또 북동쪽으로는 홋카이도 북해도 섬을 마주 대하고 있는 “진경 해협”이 있다. 이 진경해협까지 경진씨가 치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홋카이도 섬은 일본의 4대섬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근래 명치유신기까지는 외국으로 취급되었고 그에 따라 개항 무역항이 따로 개설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볼 때 “개오”의 최대 근접치는 일본 본토섬의 동북부 맨끝 지역인 “奧州”(오주) 지역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말에 산간오지라는 말이 있듯이 오주는 변경 지역을 말한다. 奧州와 梧州는 발음상으로 같은 말임을 볼 때 “開梧”(개오)는 일본의 동북부 끝인 오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일본의 동북쪽에 경진씨의 성씨가 남아 있고, 홋카이도와 본토 섬을 가르는 해협 명칭이 “경진” 글자의 의미를 갖는 “津軽”(쓰가루 해협)이라는 명칭 그리고 경진 관련 지명 등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 輕津(경진)은 물살이 빠른 나루터를 말한다.
개오를 일본의 동북쪽 끝단으로 확장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비조(飛鳥)시대의 유물로 확인되는 인물들인 大海人(대해인), 대진황(大津皇), 오오쓰노 미코 大津皇子의 대해, 대진이 경진과 연관되지 않았겠는가? 물론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은 당시 내전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내용으로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라고 하거늘, 숙청된 소가씨의 기록처럼 졸지에 싹 없어지고 말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측이 패자에 대한 기록을 없애버리는 이유는 후환이 두렵다는 사실에 있다. 한무제가 그랬듯이 후환이 두려워서 모조리 쓸어 없애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1145년 ‘조선일천년래제일대사건’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의 김부식 도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200년대, 1500년대에 일어난 일도 조작이 가능한데 하물며 그보다 한참 오래 전인 700년대의 일을 역사조작하기란 훨씬 더 쉬었으면 쉬었지 더 어려웠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한서에서도 역사 도그마화하여 곽광과 상호대비시키며 “금일제”를 “투후”라며 역사를 바꿔치기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런 천벌받을 몹쓸 짓은 천성지금의 선조 무덤을 도굴하는 것만큼, 카톨릭의 면죄부 장사만큼, 조선말의 양반 족보 편입하기만큼 비일비재한 일이 아니었던가? 고려가 말갈족의 금나라, 거란족의 요나라, 몽고족의 원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였고, 또 조선 세종의 중흥시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아 여진족 만주족 청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는데 그동안 어찌 올바른 역사가 살아 남을 수 있었겠는가? 숙신 읍루 말갈 거란 여진 만주 몽고 이들은 지파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종족으로 판단하면 같은 족속에 속한다.
1135년 묘청의 패배 이후 조선 건국까지 257년, 병자호란 이후 일제합병까지 274년, 이렇게 530년 동안 만주족의 식민지로 전락했는데 어찌 민족혼이 살아 남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조선 건국과 임진왜란 때 발발까지 230년 동안 민족 중흥기를 마련했건만 그 이후 만주족과 일제의 식민지로 다시 전락하는 바람에 자주 독립 한반도 한민족 국가는 쓰러지고 말았다.
南鄰□桂之□□接
결자된 부분의 글자를 여씨춘추에 등장하는 “개오”의 기록과 같이 고대문헌을 통해서 추측해보면, 남쪽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은 “八桂”(팔계)라고 추측된다.
境(경)과 際(제)는 국경이란 뜻으로써 비슷한 말이다. 그리고 동쪽과 남쪽은 이와 같이 바다로 접하고 있기 때문에 “海接”(해접)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구당서 신라전에 東及南方倶限大海 (동급남방구한대해)라고 적고 있는데 신라의 동쪽과 남쪽은 바다와 접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동구개오지경 남린팔계지제는 바다로 접해 있다는 “海接”해접으로 이해된다.
결자 부분을 이렇게 채우면, “東拒開梧之境 南鄰八桂之際 海接”으로 완성된다.
그러면 八桂(팔계) 지역은 어디를 말할까? 역시 개오처럼 사료로써 증빙하기는 쉽지 않다. 산해경에 “桂林八樹 在番隅東”(계림팔수 재번우동)이라는 기록이 나오지만 구체적인 지역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계림이 동쪽 끝이라는 말은 이해되는데, 구체적 위치를 증빙하는 자료를 찾기 어렵다.
팔계를 창오가 있는 계림지역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중국의 남쪽 지역을 가르키는 거의 일반화된 또는 시적 지명인 것 같다. 어찌됐든 한반도의 남쪽 지역은 중국의 남방 지역과 같이 연결된다. 몇 해 전 중국 남방 지역에서 뗏목을 타고서 한반도에 도착하는 실제 항해 루트를 시험적으로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베트남 즉 남월 지방이나 복건성 대만을 거쳐서 한반도로 항해하는 루트는 일찍이 개척되었다.
八荒(팔황)
八桂(팔계)는 八荒(팔황)으로 대체되는 말이다. 팔황은 팔방의 먼 곳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한서 항적전에 ‘팔방 먼 곳까지 삼키는 마음이 있다’라는 “有幷呑八荒之心” 표현이 나온다. 안사고는 “八荒 八方荒忽極遠之地也”, 팔황은 ‘팔방의 매우 먼 곳’이라고 주를 달았다.
팔방은 八紘(팔굉)으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이다. 八紘(팔굉)의 사전의 뜻은 八方極远之地(팔방극원지) 즉 세상 끝까지를 말하는 천하를 의미한다.
인(夤)은 심야 밤 깊은 시간의 인 글자의 뜻이고, 八夤은 멀리 떨어진 팔방 오지 지역 八方邊遠之地을 이른다. 그로므로 地跨八夤(지과팔인)은 그의 활동 반경과 그 영역이 사방 팔방 먼 변방까지 뻗어나갔다는 뜻이다.
黃龍 황룡
黃龍(황룡)은 비문 뒷면에 나오는 불길한 오멘의 징조의 의미로 쓰인 “黃熊表祟”(황웅표수)에서의 황웅의 의미와 반대로 상서로운 기운을 펼치는 황룡의 의미로 쓰였다.
문무왕릉비문에서의 黃龍(황룡)은 금나라 건국 시기보다 430년 이상 오래된 그 훨씬 이전의 일이므로 지금의 길림성에 있는 금나라(금국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 청나라의 전신으로 당나라가 망한 이후인 1115년 개국하여 1234년 망했다)의 수도였던 黃龍府(황룡부)를 지칭하는 지명의 의미로 쓰일 수 없다.
여기서 황룡은 지명이 아니라, 黃龍戰艦(황룡전함)을 지칭하는 말이다. 황룡전함(黃龍戰艦)을 줄여서 황룡함(黃龍艦)이라고 부른다. 위촉오 삼국지 시대 때 오나라의 손권이 건조한 함대를 青龍艦(청룡함)이라 불렀다. 남사 왕승변전에 청룡함 백호함이 등장한다. “又造二艦 一曰青龍艦 一曰白虎艦 皆衣以牛皮 并高十五丈 選其中尤勇健者乘之”.
한편 龍艦(용함)은 천자 황제가 타고 있는 큰 배를 말하니, 황룡은 천자의 수군 해군을 비유하는 뜻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천자의 수군 부대가 붉은 구름을 타고 바다로 말처럼 빠르게 달려 내려오니 서쪽의 백호는 말들이 넘어지고 말탄 군사들은 땅으로 떨어져 하늘을 쳐다보는 아수라장이 되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黄龍(황룡)은 좋은 뜻을 가진 말로써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다. 사기 봉선서에 나오는 “黄帝得土德 黄龍地螾見”의 의미처럼 물기가 흐르고 기름진 땅에는 지렁이가 나오는 법인데 그런 누런색의 지렁이가 나오는 옥토를 말한다. 황룡은 한선제 때와 삼국시대 오나라의 연호로도 쓰였다. 한선제 때 신라가 건국되었다고 하므로 황룡은 어찌됐든 신라와 인연이 깊은 말이다. 황룡은 누런 색의 용을 말하니 노란색의 황제 복장을 입은 제왕을 지칭한다. 황룡은 큰 동물로써 하늘을 난다는 비룡재천의 의미를 갖고 있어 정복전쟁을 떠날 때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다.
용오름
용트림 용오름이라는 바닷속 회오리 선풍을 말하는 용어가 있다. 용은 회오리 바람을 말하는데 이런 비유적인 의미로 사막에 있는 모랫바람을 황룡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막의 모래는 황색이니 사막에 먼지가 이는 경우는 차를 타고 가거나 말발굽을 달리면 사막의 먼지 바람이 장관을 이루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고대의 봉건사회에서 왕조의 교체는 전쟁을 통해서 일어났으니 사막에 먼지바람이 이는 경우는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
황룡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새로운 군주를 지칭하는 말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고 새로이 제왕의 자리에 오른 군주답게 새로이 정통성을 확보한 신흥개창 군주를 진명천자(眞命天子)라고 부르는데 진명천자를 황룡에 비유한다. 백제와 일본을 멸망시킨 당시의 진명천자는 당태종이었다.
□接黃龍,駕朱蒙 □□□ □承白武
黃龍(황룡)은 천자를 비유하는 말이므로, 天子乘霞雲(천자승하운), “육룡이 나르샤”라는 TV안방드라마로 잘 알려진 주례의 “天子駕六”(천자가육), 명노남의 “嘉禾樓賦”(가화루부)의 “天子乃乘鸞輅”(천자내승란로)의 표현을 생각해낸다. 鸞輅(란로)는 황제와 황후가 타는 가마를 말한다.
黃龍駕朱蒙□□□ 黃龍駕朱蒙(驅百靈) |
천자의 해군 전함이 붉은 구름을 타고 새처럼 말처럼 쏜살같이 달려 오니 |
朱蒙 주몽
蒙氣(몽기)는 지구상을 덮고 있는 대기(大氣)를 지칭했던 말이다. 지금은 하늘에 있는 공기, 대기라는 말이 흔한 표현이지만, 한서를 보면 蒙氣(몽기)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대기를 지칭하니 雲氣(운기) 즉 구름을 말한다. 경방(京房)전에 “蒙氣衰去 太陽精明”, 황경전의 “蒙氣數興 日暗月散” 등의 표현이 보인다. 작금의 우리말에 몽기(蒙氣)라는 말이 있는데, 몽기는 동트기 전이나 해진 직후 곧바로 어두워지지 않고 빛이 남아 있어 어슴프레한 그 때를 이른다.
이 때 하늘에 구름이 서려 있으면 붉게 물들어 서기가 스며든듯 그런 몽롱한 기분이 드는 경우를 경험하는데, 그 때의 붉은 서기가 서린 구름을 朱蒙(주몽)이라고 말한다.[2]
따라서 비문에서의 朱蒙(주몽)은 주서와 삼국사기가 기술한 대로의 고구려의 시조인 朱蒙(주몽) 그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님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하다. 여기서 朱蒙은 사람 인칭이 아니라, 한자 낱말의 의미 그대로 붉은-朱 기운이 서려 있는 구름-蒙, 즉 상스러운 구름을 말한다.
만약 “주몽”이 사람을 지칭하는 글자라면 “黃龍駕朱蒙”(황룡가주몽)이 아니라, ‘朱蒙駕黃龍’(주몽가황룡)-‘주몽이 황룡을 타고’라는 의미의 문법대로, 주몽이 주어이고, 타다-駕(가)는 동사, 황룡은 목적어로 기능하게끔 한자어순을 구성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황룡이 주어이고 주몽은 목적어의 위치에 있는 “황룡가주몽”의 어순임을 확인하라.
朱火(주화)는 불이 탈 때 나타나는 붉은 색의 불꽃, 등불 燈火(등화), 燭火(촉화)를 말한다. 또 朱火(주화)는 여름날의 더운 공기 즉 서기(暑氣)를 뜻하는 말이다. 진자앙의 싯구에 “閑臥觀物化 悠悠念群生 青春始萌達 朱火已滿盈”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의 朱火(주화)는 여름날 夏天(하천) 또는 그 더운 공기 서기를 뜻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군은 여름철인 5월 26일 서울 금성을 출발해서 6월 18일 남천정에 이르고 7월 10일 백제의 수도 사비에 당나라 군대와 도킹하기로 전략을 짰다. 5만 명의 정예 신라군은 7월 9일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했다. 백제를 칠 때의 전쟁 상황을 보면 문무왕릉비문에서 말하는 묘사가 실감난다.
“駕朱蒙□□□西承” 주몽 다음의 마멸된 3글자 □□□의 의미를 추측하면 몰다 이끌고 달리다의 뜻을 갖는 낱말이 적합하다. 이런 뜻으로 몰고 달리다의 뜻으로 치(馳), 驂(참), 馭(어)라는 글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구절의 뜻은 황룡이 상스러운 붉은 색깔의 구름을 타고-駕朱蒙, 새처럼 말처럼 빨리 내달려 내려왔다-“馳赤馬” 또는 “驅百靈”(구백령)는 의미가 되겠다.
이와 같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새처럼 말처럼 치달려 내려왔다’의 의미인데, 이는 뒷면 내용을 해석할 때 설명하겠지만 승선태자비문의 문학적 시적 표현 구절인 “驂鸞馭鳳 升八景而戲仙庭 駕月乘雲 驅百靈而朝上帝”의 의미하고 부합된다. 이 구절을 번역하면, “새들과 함께 신선의 길로 날아가네. 화려한 무지개색깔 그곳을 넘어 신선이 사는 선경에 다다르네. 달나라 수레를 타고 구름을 타고 꾀꼬리 새떼(새는 천사를 의미함)를 이끌고 옥황상제를 뵈올 듯하네”.
용감한 장수는 구름처럼 달린다. 먹구름이 몰려올 때 얼마나 무섭게 빨리 다가오는지 그것을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알리라. 회오리바람이 몰려올 때 얼마나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지를. 그래서일까? 건릉 술성기에 猛將如雲(맹장여운)의 표현이 나온다.
□承白武
“□承白武”에 대해서 다수의 판독자는 동서남북 방향의 서쪽을 뜻한다고 보고 “西承白武”로 해석하고 있다. 국편위는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이와같이 번역해석했다. 하지만 나는 “□承白武”에 대해서 “招承白武”(초승백무)의 의미로 해석한다.
동거(東拒) 동쪽으로는 누구와 접하고, 남린(南鄰) 남쪽으로는 누구와 접한다는 국경 표시의 말과 같이 서승(西承)은 서쪽으로는 백호와 접하고 있는 뜻이다. 구당서 신라전에 東及南方倶限大海 西接百濟 北鄰高麗 (동급남방구한대해 서접백제 북린고려)라고 적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는 동쪽과 남쪽이 큰 바다에 임하고 있고, 그 서쪽은 백제, 그 북쪽은 고려와 마주하고 있다. 신라의 서쪽 국경은 백제이었으니 西承白武(서승백무)가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삼국유사에서 “北有靺鞨 南有倭人 西有百濟”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서승백무는 西有百濟(서유백제)와 같은 뜻이다.
비문의 “□承白武”(서승백무)에서의 “武”(무)는 사졸, 병사, 사병, 병졸(兵卒)의 뜻 영어로 솔저(soldier)의 뜻을 품고 있다. 회남자의 “勇武一人 爲三軍雄”(용무일인 위삼군위)의 구절에서 무는 병졸 솔저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承白武”(승백무)는 수많은 군사들을 대파했다는 의미를 품고 있어, 따라서 수백(數百)의 군사병졸 무(武)의 뜻으로 풀이된다.
군대에서 장군과 병졸의 차이는 하늘과 별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武”(무)가 ‘步武(보무)도 당당하게 씩씩하게 걷는’ 군인의 모습을 그릴 때 “보무”의 “무”는 걸음 보 각보(脚步)를 뜻하고, “무인”의 무는 “문인”과의 대칭적 표현 즉 문에 대응하는 무의 뜻 즉 군사적인 일 무력을 지닌 무림의 뜻으로 쓰였고, 사무라이 무사 (武士)라고 말할 때의 무는 용맹(勇猛)한 사람을 이르는 형용사 용맹의 뜻으로 쓰인다.
한편 白武(백무)는 白虎(백호)와 같은 말이다. 삼국유사에서 문무왕을 文虎王(문호왕)이라고 기재한 이유가 무엇일까? 꼭 피휘원칙만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의 “첨성대 연구” 책에서 설명한다.
招承(초승)
招承(초승)은 자기 죄상을 자백하고 인정하고 승인(承認)한다는 의미이다. 초(招)는 초빙(招聘)하다, 자초하다의 뜻에서 보다시피, 스스로 불러와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소월의 싯구로 잘 알려진 초혼의 뜻도 나갔던 혼을 불러와 맞이하는 것을 뜻한다. 承(승)은 계승(繼承)하다의 뜻에서 알다시피, 밑에서 받드는 모습을 이른다. 임금으로부터 은혜를 입으면 ‘승은(承恩)이 망극하나이다’라고 고개를 땅에다 대고 엎드려 감사함을 전하지 않는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수없이 등장하는 식상한 장면이다. 승은(承恩)의 승은 은혜를 아랫사람이 밑에서 손을 받치고 받는 것을 말한다. 흙먼지받이 가리개, 햇빛 가리개 양산처럼 흙먼지받이 휘장막을 承塵(승진)이라고 불렀다. 한나라 유희의 석명 석상장(釋床帳)에 “承塵 施于上 承塵土也”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초와 승의 낱말 뜻으로 알 수 있듯이 招承(초승)은 “招供承認”(초공승인)의 줄임말로써 따라서 承認罪狀(승인죄상)의 의미로 쓰인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우리말의 “초승달”의 어원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나뉘겠지만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 뜨고 또 초승달이 연이어 연달아 반달로 향해가고 보름달로 부풀어 오르는 달의 차고 기움 그 영사기처럼 돌아가는 달의 모습에서 초승달의 어원이 생기지 않았을까?
“白武”(백무)를 삼국유사의 해석처럼 “白虎”(백호)로 풀이하고, 이러한 招承(초승)의 의미로 “□承白武”의 결자 부분을 해석하면 백호는 전쟁을 불러들이고 초래한 자기 죄상을 자백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두 손을 들고 빌었다는 의미로써 문장의 내용이 이해된다.
“白虎”(백호)는 백마(白馬)와 같은 이미지로써 백기를 든 항복한 사람의 의미로 쓰인다. 우리들 가운데는 백마부대가 유명하고 이육사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백마, 백호를 용맹한 영웅적 이미지로 이해하는 경우가 태반이겠으나 전쟁과 연관되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복을 할 때는 백기를 들고 백마를 타고 나가서 고두배를 한다는 항복 의식의 전통에 따라서 백마나 백호는 항복의 이미지로 쓰여지고 있다.
백호(白虎)의 28수 별자리 의미는 서방의 수호신으로 쓰였다. 西方白虎七宿(서방백호칠수) 奎宿(규수)에 해당한다. 서방칠수는 奎,娄,胃,昴,畢,参,觜 이 (규, 루, 위, 묘, 필, 삼, 자)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밤하늘에 천마인 백호의 별자리가 나타날 때는 가을로 접어든 절기에 해당한다. 여름이 끝나가고 추수의 계절로 접어들면 용맹무쌍한 백호가 드높은 밤하늘을 수놓고 거닐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논에 숨어든 독사 같은 사악한 것들을 쓸어버린 후에야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는가? ‘접어들면’의 뜻이 ‘承接’(승접)의 ‘承’(승)이다. 서방칠수 제일수 규수를 승냥이라고 부르는데, 이 승냥이의 한자는 “狼”(랑)이다. “狼”(랑)은 승냥이, 이리를 뜻하고, 선덕여왕의 왕릉이 있는 산 이름을 “狼山”(랑산)으로 부르는데 여기의 랑산은 서방칠수를 뜻한다.
仰□□□
仰(앙)은 손을 들고 비는 모습의 仰手(앙수),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다의 앙수(仰首)의 단어에서 알다시피 고개 들고 높이 쳐다보는 모습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仰□□□의 결자 부분의 내용을 추측해보면 仰人翻馬(앙인번마)의 의미가 이 부분의 내용이 아닐까? 바로 앞의 구절이 서승백무이고, 이 “□承白武”(서승백무)에서의 “武”(무)는 사졸, 병사, 사병, 병졸의 뜻 영어로 솔저(soldier)의 뜻으로 쓰였음을 볼 때 그렇다.
앙인번마는 “人仰馬翻”(인앙마번)과 같은 뜻이다. 인앙마번은 전쟁에 참패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뜻의 4자성어 표현이다. 전장에서 말이 넘어지면 사람이 말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그러면 말탄 사람과 말은 하늘을 쳐다보게 되지 않는가? 이런 묘사를 통해서 인앙마번은 전쟁에 패배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서쪽의 군사들 즉 서쪽으로 국경을 접하는 백호는 전쟁에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는 내용이 이 결자 부분의 문장으로 생각된다.
하늘높이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실성하듯이 외치며 웃는 모습을 두고서 仰天大笑(앙천대소)라고 말하는데 그와 같은 의미를 상기하라.
仰叫皇穹(앙규황궁)
하늘에다 통곡하는 모습을 그려보라. ‘하늘을 향해 살려 달라고 소리치다’ 仰叫皇穹(앙규황궁)의 표현이 어울린다. 이 표현은 삼국지 위지 도겸전에 나온다.
仰鼻噓吸(앙비허흡)
발랑 뒤로 넘어져 코가 깨지고 하늘 보고 울부짖는 그 모습을 묘사하는 초사 구탄 우고(憂苦)에 나오는 구절인 仰鼻噓吸(앙비허흡)의 구절이 여기에 어울린다.
3행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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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派鯨津氏 | 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先后(선후)가 경진씨를 파견하여 |
映三山之闕 |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한반도의 (국토방위상의) 결점을 반영하게 하였다. |
東拒開梧之境 | 동쪽으로는 개오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
南鄰□桂之□- 南鄰(八)桂之(際) |
남쪽으로는 팔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
□接- (海)接 |
이 동쪽과 남쪽의 국경은 바다를 끼고 있다. |
黃龍駕朱蒙□□□- 黃龍駕朱蒙(驅百靈) |
천자의 해군 전함이 붉은 구름을 타고 새처럼 말처럼 쏜살같이 달려 오니 |
□承白武 (招)承白武 |
(전쟁을 불러온) 서방 백호는 (자기 죄상을 자백하고) |
仰□□□- 仰(人翻馬) /(仰叫皇穹) |
(두 손을 들고 항복하고 하늘에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말들이 넘어지고 병졸들은 땅으로 떨어져 하늘을 쳐다보는 아수라장이 되고 크게 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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