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왜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자신만의 생각을 해내지 못할까

문무대왕 2025. 4. 17. 12:37

 

3.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비판적 사고

 

비판적 사고나 창의적 사고 체계를 함양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지금까지 행해진 학교 교육의 잘못된 방향과 식민지 교육의 목적론과 방법론이 자리잡고 있다고 단언해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나의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며, 다만 비판적 사고의 개념 그리고 소크라테스 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신선놀음 바둑두기 같은 게임에 몰두할 때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야단을 맞은 적이 있는데 이런 때 사용하는 말로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爛柯(란가)라는 속담이 있다. 상전벽해가 되는 변화무쌍한 인간세상에서 침잠하고 성찰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잘못하다간 나르시스트처럼 우물안으로 빨려 들어 가고말 위험성이 크다. 변화가 많은 세상사에서 거짓을 식별하고 옳은 것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앞 뒤를 분간하고 수풀을 헤쳐갈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유와 전제와 결론이 확실하게 뒷받침되는가를 꼼꼼히 따지는 사고가 필요한데, 이를비판적 사고라고 말한다. 이는 호수에 얼굴을 들여다보고 자기 반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찰省察이고, 반악潘岳 싯구로는 푸른 호수에 몸을 돌이켜 성찰한다는 思反身於綠水(사반신어록수)이고, 근대 교육학의 개념으로는 존 듀이가 말한 성찰적 사고(reflective thinking)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써, 비판적 사고는 주장의 근거를 통해 지식을 꼼꼼하게 검증하는 것이다. 

 

진시황제의 중원통일은 검으로써 이루어졌는데, 이 법가 통치철학의 검은 글자하고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검찰檢察공화국이라는 비아냥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오늘날 불행한 한국의 형국에서의 검찰과 같은 의미의 어휘로 쓰이게 된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는 진나라가 망한 원인을 다시 고찰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방에게 올린 진나라가 망한 원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어에서 육가가 논한대로, “秦非不欲爲治 然失之者 乃擧措暴衆 而用刑太極故也 是以君子尙寬舒以苞身 行中和以統遠”, 진나라의 실패 원인은 백성들에게 형법을 극에 달할 정도로 이용해서 포악한 정치를 펼친 것에 있었다. 

 

상앙의 법가 사상을 법의 지배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시황제의 통일의 기초 검은 일제 시대와 같은 법에 의한 지배 rule-by-law이었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통치이념인 법의 지배’(rule-of-law)가 아니었다. 상앙과 이사의 진나라나 스탈린의 공산 소련이나 일제 명치시대 군부정치나 오늘날 북한의 백두 체제나 모두 말로는 법에 의한 통치체제였다. 하지만 이들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연법 사고가 작동하는 진정한 법의 지배와는 거리가 멀었고, 총칼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약탈적 지배 체제 그래서 소수지배계층만이 고대광실을 차지하고 떵떵거리고 사는 나라民弱國”(민약국강)의 권위주의 압제적 억압 통치 체제였다. 자유와 민주주의와 토론이 말살된 억압사회에서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가 꽃이 피거나 열매를 결코 맺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편 칼은 도장을 파는 수단인 것처럼 잘못된 글자를 미리 점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예전에 여자가 시집을 갈 때 은장도를 챙겨갔는데 부녀자가 단칼을 간직하는 이유는 자기 검열이거나 비상상황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에 있었다. 양귀비처럼 또는 풍신수길의 처가 단칼로 자결을 하는 것처럼. 그런 은장도를 묘사하는 시선詩仙 이태백의 싯구, “寶劒雙蛟龍 雪花照芙蓉 精光射天地 雷騰不可衝구절이 있다. 시퍼런 칼날이 춤추는 가운데 풍호자 같은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나서듯, 가을서릿발 秋霜추상같이 엄격하게 자기 검열하는 것, 그렇게 매서운 눈초리로 틀린 글자를 검열하는 것, 군대에서의 인스펙션(inspection)검자의 뜻이다. 자신의 의견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하고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추상같이 단호하게 제시해야 한다. 일말의 잘못됨에도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그것을 논증할 수 있는 사고력이 비판적 사고에 해당한다.[1] 

 

왜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자신만의 생각을 해내지 못할까?

 

새로운 발견은 외부적 시각에서 전혀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발견되기 쉽지 않다는 와호장룡의 어려움이 있거나 또는 어떤 직관적이거나 계시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직관력을 가지기 힘든 이유로는 이성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습관적 태도에 있다고 말들을 한다. 만약 나의 연구 결과를 얻는데 직관이나 계시적인 생각이 통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한국과 여러 외국의 문물과 사고를 직접 겪어 보고 통찰한 가운데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발견의 과정에서 어떤 내적 가슴 속에서 일어나오는 직관력이나 영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내가 우주천체의 근원적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이성적 능력으로써가 아니었다.  지성은 발견의 과정에 크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적 가슴 속에서 튀어 오르는 무언가에 있는데-그것을 직관 또는 무엇을 하려는 의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해결책이다.”[2]

우주 질서의 법칙은침묵하고 있다. 다만 인간은 거기에 이미 존재한 진리를발견하면서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 왔다. 우주는빅뱅하고 원자 분자 운동처럼 잠시도 쉬지 않지만, 뉴튼 아인슈타인 등 위인들의 전기가 말해주듯, 인간은 침묵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로 우주 천체를 관측한 뒤 그가 발견한 진리를 담은 책의 제목을별의 메신저라고 붙인 의도는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눈과 머리와 가슴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그 과정을 말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천체 관측과 원자 운동(DNA 나선구조)의 발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외양과 실체는 다를 수 있다. 5%의 보이는 우주와 95%의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흑암 Dark Matter이 존재한다. 사람은 벌이 꿀[3]을 창조해내듯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차이를 통합해내는 사고 체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의 발견에는 해석 작업(interpretive process)’이 개입된다.



[1] Beyer, B., “Critical Thinking” (1995), 참조.

[2] 아인슈타인, “I did not arrive at my understanding of the fundamental laws of the universe through my rational mind.  The intellect has little to do on the road to discovery.  There comes a leap in consciousness, call it intuition or what you will, and the solution come to you.”

[3] 모방과 창조적인 일을 비유로써 쉽게 설명하는 데 벌꿀의 예를 자주 들고 있다. 에라스무스가 들고 있는 벌의 비유를 읽어 보자. “자연계에서 한 예를 보자.  벌은 벌집에 꿀을 모이기 위해서 하나의 수풀에서 재료를 모와 오는가? 그게 아니라 벌은 온갖 종류의 꽃, 잡목, 수풀 모두를 정말 열심히 날아다니지 않는가? 또 벌이 모아온 것 그것이 바로 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벌은 그들이 모아온 재료를 자신의 기관을 이용하여 액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이전의 꽃이나 수풀이 가졌던 향기나 맛은 가려낼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재료들이 적당한 비율로 서로 혼합된 것인데 벌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양은 한 가지 풀을 뜯어 먹고서 우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암소는 온갖 가지 풀을 뜯어 먹고 또 풀에서 즙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 즙에서 변화된 우유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Erasumus, Ciceronianus (The Ciceronian) at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