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산을 기부하고 자선을 행하는 것일까
5. 왜 재산을 기부하고 자선을 행하는 것일까?
자선과 기부의 전통 1-셰익스피어의 경구
세계 갑부 서열 1-2위에 올라 있는 빌 게이츠와 웨런 버핏은 자신들의 가진 부와 재산을 모두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가진 것 중에서 자기 입고 먹고 살고 남은 것 그 중에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작은 돈을 내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세상의 부귀를 다 가진 그런 최고의 재산가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가진 부와 재산을 자신의 핏줄을 타고난 사람들도 아닌 자선 단체에다 기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세계 최고의 갑부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자신들이 가진 재산을 자선단체에다 모두 다 내놓는다는 것일까? 어떤 요인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까?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믿고서? 그런데 영미국의 법제도와 문화에선 그것이 하나의 전통으로써 확립되어 있는 것같다. 영미국인에게 있어서 자식은 못 믿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법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하리라.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추구하는 법정이 바로 “equity(형평법)”이다.“법과 정의 (law and equity)”는 “보통법과 형평법”의 두 법원을 말하는데 이 두 법체계는 오늘날에는 하나의 사법부 법원으로 통합되었다. 영미국인의 기부 자선의 문화, 전통, 법제도의 심연을 파악해 들어가 보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제1장에서 “자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네트 제1장에서 “자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1장처럼 어떤 책이라도 제1장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리라. 1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셰익스피어가 제1장에서 자선을 말하고 있는 그 이유를 좀더 깊이있게 찾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셰익스피어는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남에게 동정심을 보여야 함이 마땅하고 또 그렇게 자선을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박애 정신의 기독교적 사랑은 자선을 행하는 것으로써 외부로 표현된다. 더욱이 셰익스피어 시대 당시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사라져 버린 대전염병 흑사병이 창궐했던 때임을 상기하라. 자선은 영미국인의 전통, 문화적 관습, 일상적 태도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제1장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풍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법,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또 영원히 지속된다.
하지만 사람은 노년기를 지나면 사라지고,
젊은 후계자가 그의 유업을 이어 받는다.
그런데 넌, 자기 혼자만의 풍요를 위해
연료를 독점하고 삶의 불꽃을 혼자만 이어가려 하느냐!
자기 혼자만 챙기다 보면 고대광실도 곧 사라지고 마는 법,
따라서 그런 태도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넌 지금 세계 최첨단 패션으로 치장하고,
젊고 멋진 자태를 뽐내며 봄의 전령사인양 설쳐대고 있으니,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묻어버리려 하는구나!
이보게, 젊은이, 타인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죽이는 거라오.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여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인 탐욕자라고 지탄받을 거외다.
죽고 나서 좋은 평가를 들으려면 이 우주만물의 법칙을 잊지 마시오.[1]
기부와 자선의 전통 2-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 위대한 양심의 힘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기아 해방을 위해서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동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일신의 편함을 추구해서는 결코 아닐 것이요, 자기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동정심이 넘쳐서 불현듯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자선 사업에 쏟아 부은 것은 아니리라.
세계 최고의 갑부인 카네기, 버핏, 게이츠 등 수많은 월 스트리트 재산가들이 자기가 평생 모은 모든 재산을 모두 공익 자선 사업에 선뜻 내놓은 동기가 무엇일까? 그들이 자선 사업을 펼치게 만드는 것-그것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담 스미스의 통찰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이익 추구도 아니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느끼는 동정심만으로도 부족하며, 최고 부자인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보다 강력한 힘은 이기주의나 이타주의를 초월한 그 무엇에 있다. 여기의 그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각자의 의견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자선 또한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포함된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살아 있는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 즉 인류동포에 대한 사랑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데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인 인간의 내부 마음속에 살아있는 양심(conscience)이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결론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라는 두 개의 서로 배타적인 이분법적 구분의 함정에서 벗어나 제3의 해결 구조를 열어주는 창문이고 열쇠가 된다. 아담 스미스의 인구에 회자되는 저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자.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자신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기애의 본성”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니었다. 양심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힘에 속한다. 양심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는 도덕감정론의 3부3장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소극적인 감정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사람의 적극적인 원칙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기애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의 물렁한 힘이 아니며, 신이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있는 동기이다.[2] 그것은 이성, 법칙, 양심, 가슴속의 살아 숨쉬는 것, 인간 내면의 흉중에 있는 것,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자이고 조정자이다.[3]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개인은 대중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처럼 수치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 한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말이다.[4]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로지 이 ‘중립적인 관전자(impartial spectator)’로부터이고 이 중립적인 관전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기애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5]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의 추악성, 자기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자기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인 관전자이다.[6]
많은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사람들 자신의 성격 속에 들어 있는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7]
기부와 자선의 전통 3-‘신중함’의 가치와 ‘보수성’의 가치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차원적인 해석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선은 불확실성이 따르는 미래의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에 따라야 하고 또 미리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인 ‘삶의 지혜의 원칙’과 ‘보수성의 원칙’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전장치가 된다.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또한 노여움 때문에, 또한 증오 때문에, 또한 이기심 때문에, 또한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 때문에 살인죄를 저질러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면,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인간은,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은 사랑과 박애 정신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8]이러한 멜빌의 견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삶의 지혜’의 원칙
자선이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에 해당한다든지 그런 다른 고차원적인 해석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선은 ‘삶의 지혜의 원칙’에 따라서도 행하는 것이 옳다. 부모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세상 지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 말씀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성경의 이소처럼 그렇게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을 들어서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대체로 다들 동의하지 않는가? 사람이 살면서 축적해온 그런 경험적 법칙에 속하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을 현자라고 말한다. 성현의 말씀은 우리들이 듣고 따라 행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지혜로운 원칙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선은 지혜의 원칙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 장치에 해당하는 것이니만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자선이 행하는 것이 좋다. 세상 지혜의 원칙은 십계명 같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지혜의 말씀을 모아놓은 잠언이나 격언 같은 정도에 해당하는 좋은 원칙이다.
신중함의 가치와 보수성의 원칙
“신중의 원칙” 또는 “보수성(Prudence)의 원칙”의 내용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6부1편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9] 건강, 재산, 지위,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울이는 신중함은 그것만으로 정말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신중함이 그보다 더 훌륭한 가치라고 평가 받는 용기, 박애 정신, 정의감과 함께 결합될 때 그 가치가 빛난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미덕은 자기 절제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지혜롭고 분별있는 행동이 개인의 건강, 재산, 지위, 명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욱 크고 고상한 목적을 계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적절하게 추구하는데 나타날 때 이것을 신중함이라고 말한다.”[10]
보수성의 원칙을 회계학 개념으로 설명해보자. 재무 재표 작성 기준으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 존재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를 택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익은 예상에 의하여 인식하지 말아야 하고, 손실에 대한 충당금의 설정은 예상될 경우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 자산 평가는 저가로, 부채와 경비는 고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회계 원칙은 과대 표시는 과소 표시보다 위험하다는 가정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낙관주의에 의해서 잘되면 좋은 거고, 또 반대로 비관주의에 의하여 그러한 가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손해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미래 일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미래의 일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위험과 리스크가 따르게 된다. 불확실성의 위험과 리스크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보수성의 원칙이 지배하게 된다. 법과부모님 같은 보수주의자는 대체로 보수성의 원칙에 의해 지배당한다. 자기 자식을 해치려고 하는 부모나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일을 추진하면 그대로 좋은 것이지만 만약 비관주의적 견해가 존재하는 경우 그러한 나쁜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된다. “자선을 행하면 복 받는다”고 가정하고서 자선을 실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 비록 복은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벌은 받지 않기 때문에 (물론 자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파스칼의 “내기”의 확률 이론처럼 벌 받을 지 안 받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미리 자선을 행하면 마음이라도 편한 것 아닌가?) 따라서 자선은 행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헌금은 하나님 명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고차원적인 신학적 이론은 차치하고서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조심하라”는 이런 보수성의 원칙은 세상 경험칙상 대개 옳은 것으로 확인된다. 자선은 적선이 될지언정 결코 낭비가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도 자선은 대개 좋은 일이다.[11]
경솔함의 비싼 대가
아담 스미스는 신중함보다 경솔함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전쟁 영웅과 강도살인자는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사람들은 전쟁 영웅들에게는 갈채를 보내는 반면 강도살인자에게는 경멸과 증오를 보내는 그 차이점이 바로 어리석음과 경솔함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의 이 견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의 생각은 분명히 재음미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해당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위대한 정복자들의 폭력과 불의한 행동을 보고는 흔히 어리석은 경이와 찬탄을 하게 되지만, 좀도둑이나 강도 살인자들의 폭력과 불의는 언제나 경멸과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전자는 후자보다도 수백 배나 유해하고 파괴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가장 영웅적인 대담성을 가진 업적으로 간주되곤 한다. 후자는 언제나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천박하고 무가치한 범죄일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행위로 간주되며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전자의 불의한 행위는 적어도 후자의 불의만큼 크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전자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은 후자의 그것들만큼 크지 않다.[12]
사악하고 무가치한 재주꾼들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신임을 받으면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사악하고 무가치한 바보들은 언제나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큰 경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가장 큰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신중함이 다른 미덕들과 결합하면 가장 고상한 성품을 구성하는 것처럼, 경솔함이 다른 악덕과 결합하면 모든 성품 중에서 가장 사악한 성품을 차지한다.[13]
동기와 의도의 중요성 그리고 결과의 중요성
동기(motive)는 어떤 행동을 낳은 원천 (to induce a certain action)을 말한다. “원인없는 결과없다”는 자연 법칙에서 동기는 원인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무엇 때문에 범죄를 저질렸는지 즉 범죄를 불러온 동기가 무엇인지는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관의 수사방향이나 변호인의 무죄입증에 또는 검사의 유죄입증에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기도 하고 판사의 선고형량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동기는 형법상 요구되는 의도(intent), 기도(선동죄나 무고죄에는 이러한 기도가 입증되어야 한다)와는 약간씩 다른 차이가 있다. 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때 그 범죄 행동을 불러 일으킨 동기까지를 입증해 내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범죄는 범죄의 행동에서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별도로 무슨 목적으로 또는 어떤 동기에 의해서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 그 부분까지를 추궁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과실치사나 부주의에 의한 재해로 인해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살인죄에서는 동기를 규명해 내야하는데, 살인죄에서 범인의 살인 동기를 찾는 이유는 살인죄는 자주 일어나는 사건도 아니고 또 인간으로서 가장 최고의 흉악범죄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살인 사건의 경우 (과학에서 원자를 발견해 들어가듯이) 그 배경과 동기까지를 촘촘히 추적하여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범죄 동기를 추적하는 이유는 유사 범죄에 대해서 미리 예방적인 처방전을 발견해 내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껏 살인 범죄에 대한 수많은 분석을 통해서 그에 대한 동기와 유형을 찾아 냈고 그에 따른 여러 범주로-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범주로 나눠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사람들의 행위는 대개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주에 거의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살인 동기는 거의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살인이 비난받는 이유는 살인의 동기 때문이 아니라 살인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살인 행위가 일어났고 그에 따라 사람이 죽었다는 그 결과적 행위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살인 동기의 존재 여부에 따라 고의적 살인(murder)과 과실치사(manslaughter)로 구분되고 그에 따라 범죄에 대한 비난과 처벌의 강도가 달리 적용된다.
사람의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 의도, 목적에 대한 앞의 설명을 자선에 적용해 볼 때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선에 대한 동기를 놓고서 왈가왈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혹자는 정치인들이나 재벌들이 연말연시에 선심쓰듯 보여주는 전시성의 자선 행사에 어떤 비판을 가하는 경우가 보이기도 하는데 자선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비난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동기와 의도가 숨어 있던 이유를 불문하고 살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선에 대해서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비난의 타당성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자선은 언제 어디서나 적선이 될지언정 결코 낭비는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도 자선은항상 좋은 일이다.[14] 결론을 하나 덧붙인다면 자선에 대해서는 칭찬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설령 자신이 행한 자선에 대해서 공개적인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자선과 선행의 실천 그 자체에 대한 ‘만족감 (his/her own happiness)’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동정심과 자선은 인간 본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15]
[1]We desire that all created things may grow more plentiful,
So that nature's beauty may not die out,
But as an old man dies at the hand of time,
He leaves an heir to carry on his memory:
But you, interested only in your own beauty,
Feed the radiant light of life with self-regarding fuel,
Making a void of beauty by so obsessing over your own looks,
With this behavior you are being cruel to yourself.
You are now the newest ornament in the world, young and beautiful
And the chief messenger of spring,
But you are burying the gifts you have been given within yourself
And, dear one, because you deny others your beauty, you are actually wasting it.
Take pity on the world, or else be regarded as a selfish glutton,
By the laws of God and nature you must create a child, so that the grave does not devour the memory of your loveliness.Shakespeare, William. Sonnet 1.Ed. Amanda Mabillard.Shakespeare Online. 20 Aug. 2009. < http://www.shakespeare-online.com/sonnets/1detail.html >.
[2] When our passive feelings are almost always so sordid and so selfish, how comes it that our active principles should often be so generous and so noble?When we are always so much more deeply affected by whatever concerns ourselves, than by whatever concerns other men; what is it which prompts the generous, upon all occasions, and the mean upon many, to sacrifice their own interests to the greater interests of others? It is not the soft power of humanity, it is not that feeble spark of benevolence which Nature has lighted up in the human heart, that is thus capable of counteracting the strongest impulses of self-love. It is a stronger power, a more forcible motive, which exerts itself upon such occasions.
[3] It is reason, principle, conscience,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the man within, the great judge and arbiter of our conduct.
[4] It is he who, whenever we are about to act so as to affect the happiness of others, calls to us, with a voice capable of astonishing the most presumptuous of our passions, that we are but one of the multitude, in no respect better than any other in it; and that when we prefer ourselves so shamefully and so blindly to others, we become the proper objects of resentment, abhorrence, and execration.
[5] It is from him only that we learn the real littleness of ourselves, and of whatever relates to ourselves, and the natural misrepresentations of self-love can be corrected only by the eye of this impartial spectator.
[6] It is he who shows us the propriety of generosity and the deformity of injustice; the propriety of resigning the greatest interests of our own, for the yet greater interests of others, and the deformity of doing the smallest injury to another, in order to obtain the greatest benefit to ourselves.
[7] It is not the love of our neighbour, it is not the love of mankind, which upon many occasions prompts us to the practice of those divine virtues. It is a stronger love, a more powerful affection, which generally takes place upon such occasions; the love of what is honourable and noble, of the grandeur, and dignity, and superiority of our own characters., TMS III.I.47.
[8]“Aside from higher considerations, charity often operates as a vastly wise and prudent principle—a great safeguard to its possessor. Men have committed murder for jealousy’s sake, and anger’s sake, and hatred’s sake, and selfishness’ sake, and spiritual pride’s sake; but no man that ever I heard of, ever committed a diabolical murder for sweet charity’s sake. Mere self-interest, then, if no better motive can be enlisted, should, especially with high-tempered men, prompt all beings to charity and philanthropy.” Melville,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9]Section I Of the Character of the Individual, so far as it affects his own Happiness; or of Prudence, http://www.econlib.org/library/Smith/smMS6.html.
[10] Wise and judicious conduct, when directed to greater and nobler purposes than the care of the health, the fortune, the rank and reputation of the individual, is frequently and very properly called prudence. (Smith,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VI.1.16.)
[11] 참고로 보수성의 원칙은 변호사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12] The violence and injustice of great conquerors are often regarded with foolish wonder and admiration; those of petty thieves, robbers, and murderers, with contempt, hatred, and even horror upon all occasions. The former, though they are a hundred times more mischievous and destructive, yet when successful, they often pass for deeds of the most heroic magnanimity. The latter are always viewed with hatred and aversion, as the follies, as well as the crimes, of the lowest and most worthless of mankind. The injustice of the former is certainly, at least, as great as that of the latter; but the folly and imprudence are not near so great. A wicked and worthless man of parts often goes through the world with much more credit than he deserves. A wicked and worthless fool appears always, of all mortals, the most hateful, as well as the most contemptible. As 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rtues, constitutes the noblest; so im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ces, constitutes the vilest of all characters.
[13] As 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rtues, constitutes the noblest; so im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ces, constitutes the vilest of all characters.
[14]Melville, H.,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1853).
[15] Roberts, R.,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 An Unexpected Guide to Human Nature and Happiness”, Penguin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