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문무대왕 2025. 4. 23. 12:14

후기 -6-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조지 오웰은 글쓴이가 책을 쓰게 된 동기를 4가지를 들어서 설명했다. 

(i) 순전한 에고이즘 


이에 대한 오웰의 설명을 그대로 번역해 본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은 후에도 자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뜻으로,[1] 어릴 때 모른다고 자신을 무시하고 으시대던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해주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이 동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기치는 것이고 실은 가장 강력한 동기일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30살이 넘으면 홀로서 자기 혼자만의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버리게 되고 삶이 대개는 거의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거나 또는 힘든 일에 짓눌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자신의 고유한 삶을 펼쳐가기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심지 굳은 사람 그런 특출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도 한데, 아마 글쓰는 사람도 이 부류에 속하지 않나 싶다. 전업 작가라면 언론사 기자들보다 돈에 대한 욕심이 적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과대포장하거나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뇌물죄는 뇌물을 받은 대가가 무엇인지를 법적 증거로써 입증시켜야 한다. 뇌물을 받은 대가로 상대성을 어떤 보상을 주는 것 법률적 대가성을 라틴 법률용어로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라고 부른다. 변호사들 중에는 간혹 무료 변론으로 대가없이 봉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나라가 망하고 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고 노예 신세로 전락되기 때문에 국가가 망할 백척간두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라를 지켜내고자 전선에 뛰어드는 그것과도 같다. 역사상 최고의 변호사이었던 추양鄒陽열전에 나오는 고사로써 이해해 보자. 노중연魯仲連은 사마천의 평가대로, 어떤 관직도 없는 변사였지만 거리낌없이 호탕하게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쳐 제후들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언변을 높이 날리며 고관대작 권력자들을 꺾은 일로 세간의 칭송을 받았다. 노중연에게 변호에 대한 수고비를 건네자 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뛰어난 선비가 천하 사람들로부터 숭상을 받는 이유는, 그들은 능히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화를 물리쳐 주고, 재난을 없애 주며, 분쟁을 해결해 주면서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바로 대가를 바라고 하는 장사꾼들의 행위에 불과한 일이 됩니다. 어찌 제가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글쓰기는 인간의 기록 본능에서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2] 러시아 북극함대의 잠수함이 폭발하여 거기에 승선한 군인 모두가 죽어갔던 그 사건을 기억한다. 타임지 잡지의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바닷속 칠흙같이 어두운 잠수함 속에서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 그 군인 한 명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펜으로 글을 남긴다. 러시아 군인이니 러시아말로 적었는데 영어로 번역된 그 말은 "I am writing blind".[3] 한석봉이 어머니가 떡국을 썰던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글을 썼듯이 캄캄한 어둠 속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서도 그 사람은 펜을 들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기록 본능으로 인해서 잠수함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잠수함 사건의 상황을 설명할 여건도 되지 못했을테지만 또 글조각을 남긴 동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가족을 향해 적은 글 한 조각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로 작동될 수 있다는 것 또 그처럼 인간의 역사 발전에는 의도하지 않는 법칙이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죽어간 군인이 남긴 수첩의 메모의 내용은 러시아 군당국이 밝혔던 잠수함 사고 내역과는 달랐고 그것을 반박하며 진실을 파악하게 만든 하나의 생생한 증거였다. 

 

(ii) 미적 추구 열망

 

언어 사용 말과 글을 쓰면서 얻는 즐거움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오는 즐거움, 자신이 느낀 소중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길 원하는 마음 등으로 오웰은 설명했다. 글쓰기는 단어 선택과 문법 규칙을 따라야 하고 논리적 전개와 개념적 이해가 따르기 때문에 법과 철학적 사유 활동과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요즈음의 인터넷 세계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영역에 해당할 것 같다. 소쉬르의 언어철학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글쓰기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되는 법칙과 규칙을 하면서 간단함 속에서 복잡한 것을 복잡한 것에서 간단한 것을 발견해내며 확장과 수축의 반복해 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4]

 

(iii) 역사에 남을 기록 욕구 충동

 

역사에 남을 기록 욕구 충동은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려는 욕망과 진실을 발견한 것을 남겨서 후대들이 이용해 주기를 바라면서 기록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것”으로 오웰은 설명한다. 역사적 기록으로써[5] 의미가 남을 것으로 본 글쓰기의 동기는 황현의 매천야록이 있을테고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가 전형적으로 보여줄텐데, 전장의 일지를 적어야 했던 군인의 직업적 의무감에서 남겼던 아니면 역사적 의무감을 의식해서 난중일기를 썼던 난중일기가 없었더라면 한국의 역사가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사관이 아닌 유신의 애강남부가 그렇듯이 비록 사관이 아니고 군대의 장군 이순신이었건만 그가 쓴 난중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넘는 최고의 역사서에 해당한다. “충신장은 연극 각본으로써 즉 문학적 목적에서 쓰여졌으나 역사의 기록의 목적으로써도 쓰여졌음을 분명히 적고 있다.[6]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그릇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경구로써 알 수 있는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재판을 하는 이유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에 표현된 법언이 말해주는대로 보복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류의 영원한 보전을 위한 회복적 정의 또 그러한 배경하에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공동체적 표현으로 보는 관점 또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재판이 기록으로 남는 이유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한낱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격언에 들어 있다. 그래서 기록은 옛무덤 속에서 발견되는 질그릇만큼이나 질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 않는가?

 

(iv) 정치적 동기

 

‘정치적’이란 말은 오웰이 정치적 동기를 설명한대로,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이 세상을 끌고 가고자 하는 의도, 올바른 사회가 실현되도록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바램 등 최소한 사회적 동기가 있다”는 그것을 말한다. 잘못된 사회를 개선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노력은 꼭 정치인만이 해내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진실을 공유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7]

 

세상과의 소통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조지 오웰이 설명한 글쓰기의 동기를 인용하여 조금 장황하게 적어봤다. 위의 4가지 동기 중 개인적 동기가 가장 강할 것 같다. 그러므로 언젠가 비문을 꼭 해석해내리라는 어릴 적에 품었던 꿈을 이제서야 이룬 것에 해당한다. 혁명의 꿈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이루어진다.[8] 나는 내 가슴 속에 품었던 이제까지의 생각을 세상에 드러냈다. 장자가 말한 盡其所懷 爲天下配”(진기소회 위천하배)의 포부로써 말할 수 있다. ‘도는 천하의 도이다. 그것을 품 속에 넣어 감출 수만은 없다. 천하에 충만하고 후대 만세까지 행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슴 속에 품은 것을 흉금없이 털어 놓고, 천하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내가 글자를 배우기 이전 보았던 비석들에 새겨진 한문들을 보면서-읽어내지를 못했으니- 다음에 커서 언젠가는 제대로 의미를 깨우치리라는 의지를 다졌다. 역발산기기개의 항우가 어릴 적 "글이라는 것은 본래 자기 성과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하다고 말하며 무력에 의한 패권 추구와 중원 통일의 꿈을 키웠는데, 나는 그와 반대로 영어 표현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펜은 칼보다 힘이 더 크다)는 뜻의 문화 덕화 교화의 가치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두었고, 항상 글의 힘’(the power of language)[9]을 믿었으며,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신성시하며 책은 발뒷금치로도 넘지 않고 애완동물 다루듯 사랑했다. 우리집 기둥에 매달아 놓은 명심보감책을 장백단이 기둥에 매달아놓은 굴비고기 쳐다보듯 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꿈꿨다.[10] 할머니는 동짓달 시린 밤 손자들을 위해 다락방에 꼭꼭 감춰둔 군고구마의 정을 심어주셨는데, 우리들이 어렵게 살던 보릿고개 시절 어머니로부터는 오태백의 겸양지덕을 아버지로부터는 엄격한 충신장의 길을 배웠다.[11]

2020

 

나에게 2020은 기적의 해가 되었다.

 

“2020”은 미국의 ABC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최고로 시청률을 구가한 시사인터뷰 프로그램의 타이틀 이름이기도 한데 그 말에는 우리들 눈의 좌우 시력은 2.0을 가졌다는 함의가 있다. 20/20 프로그램은 언론인의 대명사 바바라 월터즈가 앵커우먼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20/20”이란 말은-영어 발음은 트웬티 트웬티그대로 읽는다- 두 눈 좌우 시력이 2.0 2.0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론인의 사명이란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균형감각을 갖고 똑바로 사리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 즉 언론인은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을 배제하고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실대로 보도한다는 사명감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반만년 한국사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완성해 낸 것에 해당한다.  오천년의 한국 역사가 펼쳐진 이후, 문무왕 서거 후 1340여년의 세월, 1795년 문무왕릉의 비문 파편이 발견된 이후 225년이 넘도록 국내외의 기라성 같은 석학들이 많았건만 추사를 비롯한 어떤 학자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문무대왕이 이룩한 위대한 통일 업적과 영원한 역사정신을 복원한 이 책은 인류의 영원한 유산으로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문무왕의 영원불멸의 인류 정신을 드높이고 흠모할 뿐이다. 사마천과 장형과 반악과 유신과 양형을 성령으로 따라간 나에게 앞서간 선조들이 남겨주신 선물이고 우리들 모두에게는 인류의 유산으로 여겨질 것이다. 반만년의 한국사 속에서 코페르니쿠스 아인슈타인 뉴튼 갈릴레오의 망원경, 아니 어거스틴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추구한 평화를 구하는 기도의 의미를 담고 싶다는 나의 바램이다.

 

뉴튼은 “한 사람이 한 세대에 걸쳐서 우주를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다.”고 말했는데, 그의 말을 빌려서 내 자신의 부족함을 전하고자 한다.[12] 

 

“나는 눈 앞에 떨쳐진 거대한 바다의 진실을 모르는 채, 해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13]



[1] “이래서는 안된다. 군자는 죽은 다음에도 이름이 전해져야 한다.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내 자신을 드러내겠는가.

子曰:「弗乎弗乎君子病沒世而名不稱焉吾道不行矣吾何以自見於後世哉?」乃因史記作春秋上至隱公下訖哀公十四年十二公

[2]  공자, 及西狩見麟,曰:「吾道窮矣!」喟然嘆曰:「莫知我夫!」子貢曰:「何莫知子?」子曰:「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이래서는 안된다. 군자는 죽은 다음에도 이름이 전해져야 한다.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후세에 내 자신을 드러내겠는가.” 子曰:「弗乎弗乎,君子病沒世而名不稱焉。吾道不行矣,吾何以自見於後世哉?」乃因史記作春秋,上至隱公,下訖哀公十四年,十二公

[3] "I am writing blind", "All personnel from sections six, seven and eight have moved to section nine. There are 23 of us here. We have made this decision because none of us can escape." 콜레스니코프 Kolesnikov 대위의 수첩 handwriting. 쿠르스크 Kursk 핵잠수함 침몰 사고는 2000 8 12일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훈련 중이던 러시아 해군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해저로 침몰하여 승무원 118명 전원이 질식사한 대형사고였다.

[4] 공자가 춘추를 쓴 의의는 뒤에 오는 성인을 기다리고 군자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또한 이것을 즐거워하는데 있다. 其諸君子樂道堯舜之道與?末不亦樂乎堯舜之知君子也?制《春秋》之義以俟後聖,以君子之,亦有樂乎此也

[5] 사기 태사공자서, “故述往事 思來者”, 그 때문에 지난 날을 서술하여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 것’; 유신 애강남부 구절; 춘추의 서수획린.

[6] “충신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高らかに呼ばはれば列座の諸士も賞美の詞 末世末代ふる義臣 これも偏へに君が代の 久しき例ためし竹の葉のえを ここに書き”.  “거사 성공(또는 거사 성공 후 광명사로 질서정연하게 퇴각하고 막부의 선고 결정을 기다린 의연한 행동)에 대해서 모두 잘했다고 칭찬이 대단하였다.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충신의 본보기로서 전해지고 의사로서 받들어 지리라. 이들이 있어 국가(천황가)는 영원히 이어진다. 대나무 잎이 언제까지나 푸르듯, 이들의 영광은 영원무궁하리라. 삼인의 공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7] 내가 공유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생각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여겨서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I don't share my thought because I think it will change the minds of people who think differently. I share my thoughts to show people who already think like me that they're not alone.”

[8] 한비자, 화씨지벽 설명 부분 이하 참조. 夫珠玉 人主之所急也 和雖獻璞而未美 未爲王之害也 然猶兩足斬而寶乃論 論寶若此其難也 今人主之於法術也 未必和璧之急也 而禁群臣士民之私邪 然則有道者之不 特帝王之璞未獻耳”.  희망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과 정당성 주장한페비안 협회이념-영국 노동당 이념 기초-을 참조하라. (Pease, “The History of the Fabian Society”, 1916.)

[9] Words do indeed make worlds.  Saying what we believe and believing what we say. ‘言靈信仰을 참조하라. 한편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조지 오웰의 언어의 타락에 대한 우려를 참고하라.  또 프랑스 한림원의 탄생과 그 의무 그리고 프랑스의 원형 프랑스의 정신을 계승하고 전승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자 최후의 보루로써 심혈을 쏟아 발간하는 프랑스어 사전 편찬 임무의 프랑스 한림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역할을 참조하라. 참고로 짧게 보충하면, 오웰은 정치와 영어의 관계에 대해서 짧게 평했는데, 정치의 타락과 영어의 타락은 상호 밀접하게 영향을 준다고 봤다.  “In our time, political speech and writing are largely the defence of the indefensible”. 우리 시대에 정치적 말하기와 글쓰기는 대체로 방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방어이다.  홍길동이가 말한대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세상에서는 추상적인 완곡화법-euphemism유퍼미즘-은 거짓말이나 기득권 체제 유지의 선전 수단이 된다. 한편 ‘PC’가 사회를 변혁시키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볼 수 없다. ‘Political Correctness’ 또한 정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장치가 된다. 

[10] 추씨 가문의 선조 노당 魯堂 추적 秋適 (1246-1317) 선생이 펴낸 明心寶鑑” (20세기에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 영어책명은 “The Precious Mirror of Bright Mind”) “명심보감이 책을 장백단이 동량에 매달아두며 매일 쳐다본 굴비고기와 같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쳐다보면서 자랐다.  나는 언제나 언어의 마력을 믿고 싶다. ‘글의 힘에 대한 신앙적 형태는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보다 쉽게 확인된다. 일본 신도의 코토다마 言靈 信仰이 그것인데, 이러한 글의 힘은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면 초기 심리학자로 유명한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이론-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최근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에 가깝다.

[11] 추홍희, “이스털린 경제학책 가운데 빗나간 케인즈의 예언을 설명하는 다음 부분을 참조하라. 케인즈는 마르크스가 죽은 해인 1883년에 태어났다. 경제학자 케인즈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테마 하나는 사람들이어떻게 지혜롭고 즐거우며 또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이었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의 전화로 유럽이 황폐화되고 지성의 힘이 흔들릴 때 케인즈는 러시아의 혁명의 예처럼 폭력이 수반하는 급진적 변화에 기대지 않고서도 자본주의를 절대절명적인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1929년 뉴욕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일어났다.  1930년대 대공황은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져들었고 실업자로 넘쳐났다.  모든 것이 부족한결핍의 시대이었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힘든 시대이었다. 거듭된 정부의 경제실책으로 인해서 실업은 비정상적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암울한 절망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던 암울한 절망의 시기에도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케인즈는 경제성장의 핵심이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에 있다고 보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빈곤과 실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케인즈는 담대한 주장을 펼쳤다. 케인즈의 담대한 희망은 그가 1930년 발표한 “100년후의 경제 전망이라는 에세이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우리 손자 세대가 맞이할 경제적 가능성 논문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는 단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삶의 여건들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자본주의의 엔진은돈에 대한 사랑이라는 강박관념에 의해 굴러가는 체제인데, 이것은 또한 선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복리(double interest: 복리의 위력을 참조하라)의 위력이 작용하여 미래에 소득이 늘어나게 된다. 100년 후에는 사람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망하면 이렇다. 만일 자본이 연2%의 비율로 증가하고 인구 증가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며, 생산성이 연1% 증가한다면 1백년 후 문명 세계에 살게 될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1920년대에 비해 4배에서 8배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케인즈는 결핍의 시대가 사라지고 대신 풍요의 시대가 오게 된다고 전망하면서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 풍요도 함께 성장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케인즈의 유토피아적인 견해를 나타나는 문단을 보자. “종교적 원칙과 전통적 미덕이 부활할 것이다.  탐욕은 악이고, 고리대금업은 범죄이며, “돈에 대한 애착은 가증스러운 것이고, 미덕과 올바른 상식의 길을 걷는 사람은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수단보다 목적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이고, 유용성보다 선함을 선호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루 시간들을 귀중하고 선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가르쳐주는 사람들, 있는 그대로의 사물로부터 직접적인 맛을 볼 수 있는 즐거운 사람들, 수고도 없고 걱정도 없는 들판의 백합꽃과 같은 사람들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케인즈의 담대한 예언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오고, 실업의 위험이 사라지고, 노동시간은 적고, 풍요한 여가가 넘치고, 고상한 삶으로 충만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던 케인즈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케인즈의 예언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하게 되었고 (그로닝겐 통계에 의하면, 1973년 이후 미국의 1인당연간 근로시간이 204시간 더 늘어났다), 사람들의 삶은 행복하지 못하고, 빈곤과 실업의 문제는 아직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요원하기 때문이다. 결핍의 시대가 사라져 더이상 경제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던 케인즈의 예언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담대한 예언이 여지없이 빗나간 것처럼, 불행하게도, 케인즈의 낙관적 예언도 빗나가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비관론이건 낙관론이건 선지자적 예언의 전망을 허용하지 않는 복잡한 체계인지 모른다.

[12] “Ne obliviscaris” -Forget not those who have gone before us. 

[13] 한 마디만 추가하자면, 陶淵明, “乞食중 한 구절, “感子漂母意 愧我非韓才 銜戢知何謝 冥報以相貽”.  자신에게 술 한잔 건네주는 친구에게 한신이 초왕이 되기 전 강가에서 낚시하며 한량으로 지낼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한신에게 근처 강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가 왕손이 끊길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에 배고픈 한신에게 주먹밥을 건네주었는데 이에 한신이 왕위에 오른 다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여인네에게 밥 한끼 값으로 천금을 쳐서 갚았다던 스토리 즉 그 사람의 인물됨을 미리 알아본 준 그 감사의 은혜를 도연명은 자기에게 술 한 잔 사준 친구에게 그 같은 고마움을 느끼는데 자신은 한신처럼 후에 왕위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니니 그래서 한신처럼 은혜를 갚을만한 처지가 못됨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다만 그 감사한 마음을 내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잊지 않고 꼭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결초보은의 마음을 읊은 내용이 이 구절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여기서 꺼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과 무릉도원 그 파라다이스를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당대에서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우리들 마음 속의 양심과의 결단을 다함께 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친구 사이다. 서로 주고 받는 은혜에 대한 보답은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 가서라도 나타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