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의 웅략천황 유조문은 수나라 고조의 유조문을 도용한 것
9. 일본서기의 웅략천황 유조문은 수나라 고조의 유조문을 도용한 것
“일본서기”의 웅략천황 유조문은 300여 글자가 수나라 고조의 유조문을 도용한 결과물이라는 연구가 있다 (川端 俊一郎, “隋高祖遺詔の雄略天皇遺詔への盗用”, 2002). 8세기경에 쓰여진 일본서기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주장되어 왔으나, 웅략천황의 유조문이 조작되었음으로 밝혀진 것은 일본서기의 내용이 역사 조작이 개입되었음을 방증하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雄略天皇유랴쿠텐노(418-479)웅략천황은 479년에 이미 사망했고, 반면 隋高祖楊堅(541-604)수고조 양견은 541년에 태어나서 604년에 죽었으므로 후자의 유언문이 전자의 유언문으로 쓰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웅략천황의 유조문은 수고조의 유조문 중 처음의 130여자와 마지막 100여자 정도를 제외하면 중간의 300여자가 수고조의 유조문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웅략천황의 유조문은 다음의 方今區宇一家煙火萬里百姓乂安四夷賓服 此又天意欲寧區夏 구절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수서 秋七月丁卯 詔에 나오는 구절 方今 區宇一家 煙火萬里 百姓乂安 四夷賓服 豈是人功 實乃天意과 거의 비슷하다.
수서 고조본기 고조 유조문
隋書卷二帝紀第二高祖 高祖遺詔
秋七月丁卯詔曰日往月來唯天所以運序山鎮川流唯地所以宣氣運序則寒暑無差宣氣則雲雨有作故能成天地之大德育萬物而為功況一人君於四海睹物欲運獨見致治不藉群才未之有也是以唐堯欽明命羲和以居嶽虞舜叡德升元凱而作相伊尹鼎俎之媵為殷之阿衡呂望漁釣之夫為周之尚父此則鳴鶴在陰其子必和風雲之從龍虎賢哲之應聖明君德不回臣道以正故能通天地之和順陰陽之序豈不由元首而有股肱乎自王道衰人風薄居上莫能公道以御物為下必踵私法以希時上下相蒙君臣義失義失則政乖政乖則人困蓋同德之風難嗣離德之軌易追則任者不休休者不任則眾口鑠金戮辱之禍不測是以行歌避代辭位灌園卷而可懷黜而無慍放逐江湖之上沈赴河海之流所以自潔而不悔者也至於閭閻秀異之士鄉曲博雅之儒言足以佐時行足以勵俗遺棄於草野堙滅而無聞豈勝道哉所以覽古而嘆息者也方今區宇一家煙火萬里百姓乂安四夷賓服豈是人功實乃天意朕惟夙夜祗懼將所以上嗣明靈是以小心勵己日慎一日以黎元在念憂兆庶未康以庶政為懷慮一物失所雖求傅巖莫見幽人徒想崆峒未聞至道唯恐商歌於長夜抱關於夷門遠跡犬羊之間屈身僮僕之伍其令州縣搜揚賢哲皆取明知今古通識治亂究政教之本達禮樂之源不限多少不得不舉限以三旬咸令進路徵召將送必須以禮
秋七月乙未日青無光八日乃復己亥以大將軍段文振為雲州總管甲辰上以疾甚臥於仁壽宮與百僚辭訣並握手歔欷丁未崩於大寶殿時年六十四遺詔曰嗟乎自昔晉室播遷天下喪亂四海不一以至周齊戰爭相尋年將三百故割疆土者非一所稱帝王者非一人書軌不同生人塗炭上天降鑒爰命於朕用登大位豈關人力故得撥亂反正偃武修文天下大同聲教遠被此又是天意欲寧區夏所以昧旦臨朝不敢逸豫一日萬機留心親覽晦明寒暑不憚劬勞匪曰朕躬蓋為百姓故也王公卿士每日闕庭刺史以下三時朝集何嘗不罄竭心府誡敕殷勤義乃君臣情兼父子庶藉百僚智力萬國歡心欲令率土之人永得安樂不謂遘疾彌留至於大漸此乃人生常分何足言及但四海百姓衣食不豐教化政刑猶未盡善興言念此唯以留恨朕今年逾六十不復稱夭但筋力精神一時勞竭如此之事本非為身止欲安養百姓所以致此人生子孫誰不愛念既為天下事須割情勇及秀等並懷悖惡既知無臣子之心所以廢黜古人有言「知臣莫若於君知子莫若於父」若令勇秀得志共治家國必當戮辱遍於公卿酷毒流於人庶今惡子孫已為百姓黜屏好子孫足堪負荷大業此雖朕家事理不容隱前對文武侍衛具已論述皇太子廣地居上嗣仁孝著聞以其行業堪成朕志但令內外群官同心戮力以此共治天下朕雖瞑目何所復恨但國家事大不可限以常禮既葬公除行之自昔今宜遵用不勞改定兇禮所須才令周事務從節儉不得勞人諸州總管刺史已下宜各率其職不須奔赴自古哲王因人作法前帝後帝沿革隨時律令格式或有不便於事者宜依前敕修改務當政要嗚呼敬之哉無墜朕命
雄略天皇 일본서기 웅략천황유조문
日本書紀卷第十四雄略天皇
八月庚午朔丙子天皇疾彌甚與百寮辭訣並握手歔欷崩于大殿遺詔於大伴室屋大連與東漢掬直曰
「方今區宇一家煙火萬里百姓乂安四夷賓服此又天意欲寧區夏所以小心勵己 日愼一日蓋爲百姓故也臣連伴造 毎日朝參國司郡司 隨時朝集何不罄竭心府 誡勅慇懃義乃君臣情兼父子庶藉臣連智力內外歡心欲令普天之下永保安樂不謂遘疾彌留至於大漸此乃人生常分何足言及但朝野衣冠未得鮮麗教化政刑猶未盡善興言念此唯以留恨今年踰若干不復稱夭筋力精神一時勞竭如此之事本非爲身止欲安養百姓所以致此人生子孫誰不屬念既爲天下事須割情今星川王心懷悖惡行闕友于古人有言知臣莫若君知子莫若父縱使星川得志共治國家必當戮辱遍於臣連酷毒流於民庶夫惡子孫已爲百姓所憚好子孫足堪負荷大業此雖朕家事理不容隱大連等民部廣大充盈於國皇太子地居儲君上嗣仁孝著聞以其行業堪成朕志以此共治天下朕雖瞑目何所復恨」一本云「星川王腹惡心麁天下著聞不幸朕崩之後當害皇太子汝等民部甚多努力相助勿令侮慢也」
是時征新羅將軍吉備臣尾代行至吉備國過家後所率五百蝦夷等聞天皇崩乃相謂之曰「領制吾國天皇既崩時不可失也」乃相聚結侵冦傍郡於是尾代從家來會蝦夷於娑婆水門合戰而射蝦夷等或踊或伏能避脱箭終不可射是以尾代空彈弓弦於海濱上射死踊伏者二隊二櫜之箭既盡卽喚船人索箭船人恐而自退尾代乃立弓執末而歌曰瀰致儞阿賦耶鳴之慮能古阿母儞舉曾枳舉曳儒阿羅毎矩儞儞播枳舉曳底那唱訖自斬數人更追至丹波國浦掛水門盡逼殺之一本云追至浦掛遣人盡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