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비 연구-제1권-비문 앞면 해석

비문 앞면 12행 해석-이효치국-1

문무대왕 2025. 3. 28. 12:03

12행 문무왕 & 당태종 以孝治國 이효치국

12

□□□□詩禮之訓姬室拜槗梓之□□□□□□□□□□□□大唐太宗文武聖皇帝應鴻社□

국편위 번역: ()와 예()의 가르침에 … (하고), 주나라는 교재(橋梓)에 경의를 표하였다. … 당나라 태종문무성황제(太宗文武聖皇帝)가 사직의에 응하여

추홍희 해석: (신하들은 항상 바른 길을 걷고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진실대로 간언하여야 하고)[1],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제후는 부자간의 믿음의 원칙을 지키고 결코 패역을 저지르거나 교만하면 아니된다.  당태종 이세민은 (전쟁에서 희생된 군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국가가 나서서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12행 不言而信(불언이신)以孝治國(이효치국)-아버지의 엄명은 무엇이었는가?

以孝治國(이효치국)

姬室(희실)橋梓之道(교재지도), 移木之言(이목지신)

최초의 왕으로 도교의 시조로 추앙받는 黄帝(황제)의 성()이 희()성이다.  주나라 선조 후직(后稷)씨는 황제지후(黄帝之后), 황제의 희()성이고, 주나라 황실의 성씨도 희()성이니 주나라 왕조를 희주(姬周)라고 부른다.  주나라 문왕 희창(姬昌)을 姬伯(희백)으로 부르고, 주왕조의 성씨가 희()이니, “朕本姬室远裔”(짐본희실원예)이라고 말하면 짐은 본래 주나라 황실의 먼 후손이라는 뜻이고, 姬室”(희실)은 주나라 왕조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姬室(희실) 주공단

周公旦(주공단)은 주나라 시조 주문왕(周文王)의 넷째 아들이고 주무왕周武王(BC 1087-BC 1043)의 동생으로 태어나 아버지와 형의 주나라 건국 대업을 보좌했다. 반란을 평정하고 수도를 천도하고, 예약을 마련하여 사방의 인재들을 버선발로 뛰쳐나와 예우하고 교화의 덕정을 펼쳐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하자 천하 모두가 귀부해왔다.  조조의 단가행에서 읊은周公吐哺 天下歸心”(주공토포 천하귀심)이 주공단의 역사적 위치를 핵심적으로 집약 평가해준다.  무측천이 690년에褒德王”(포덕왕)으로 추봉했다.[2]

 

姬室(희실)과 拜() 橋梓之道(교재지도)

희실(姬室)”은 주나라 왕조를 지칭하는 단어이고, 주공단은 주나라 건국 시기의 최고권력자로서 먼 훗날 공자가 태어나는 공자의 고국 공자의 고향 곡부가 위치한 곳 산동성의 노나라에 자신의 아들 백금을 제후에 봉했던 역사적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서, 姬室(희실)橋梓(교재)와 拜()의 세 단어를 조합하면 고사성어伯禽趨跪”(백금추궤)의미를 갖는다.  橋梓(교재)는 부자지간의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뜻하는 말이다.  ()는 무릎 끓고 절을 하는 것 拜()의 뜻을 갖는 글자이다.  姬室(희실)橋梓(교재)와 拜()의 세 단어에서 나타나는 내용은 자식은 부모의 뜻을 받들고 이어받는다는 자승부교(子承父教)”, 자승부업(子承父業), 백금추궤(伯禽趨跪)의미를 갖는다. 

백금추궤(伯禽趨跪)주공단이 그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의 제후로 봉하고서 제아무리 최고권력자라고 해도 결코 교만해서는 아니된다는 겸손의 국정철학을 가르친 고사성어이다.[3]  

따라서 비문 12행의 姬室拜槗梓之▨” (희실배교재지□)의 문구에 대해서 국편위가 번역한 주나라는 교재(橋梓)에 경의를 표하였다는 해석은 의미가 전혀 연결조차 되지 않는 엉터리 번역이다.  비문 12행의 姬室拜槗梓之▨”제후는 부자간의 가르침과 믿음의 원칙을 지키고 결코 패역을 저지르거나 교만하면 아니된다는 의미이고, 이를 당시의 국정철학 이념으로써 표현하면 以孝治國(이효치국)을 의미한. 

12행 □□□詩禮之訓姬室拜槗梓之□ □□□□□□□ 구절 내용은, 以孝治國(이효치국)의 국정철학을 기술하는 내용에 해당한바 그 뜻은, (신하들은 항상 바른 길을 걷고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진실대로 간언하여야 하고)[4],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제후는 부자간의 믿음의 원칙을 지키고 결코 패역을 저지르거나 교만하면 아니된다.

백금추궤, “伯禽 觀於橋梓 入門而趨 登堂而跪” (주노백금 관어교재 문이추 등당이궤) 표현은 상서대전과 문선 등 거의 모든 역사서에서 기재하고 있는 문구이다.  아래의 글은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문단이다. 

仰俯(앙부)와 入門而趨登堂而跪(입문이추등당이궤)

橋梓(교재)의 의미에 대해서 문자해석을 해보자.  ()는 고개를 숙이다의 低頭(저두)의 뜻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다는 측면에서 상대방을 어른으로 모시는 경칭의 의미를 갖고 있다.  시경에서의入門而趨 登堂而跪” (입문이추 등당이궤) 표현의 뜻과 같이, 고귀한 왕족의 신분이지만 말단 청소부터 시작하여 배움의 길에 정진하고 이런 각고의 과정을 통해서 성장발전하고 그리하여 부모의 뜻을 깨닫게 되었을 때-이런 때를 득도했다는 표현을 쓴다- 기쁜 마음으로 부모에게 달려가-(), 제아무리 부자지간이라고 해도 군신관계처럼 예의를 갖추고 무릎을 끓고서 아뢰는 모습을 상기하라.  ()는 무릎 끓고 절을 하는 것 拜()의 뜻을 갖는 글자이다.  ()은 俯()의 상대적인 의미로써 하늘을 위로 쳐다보는 것 앙수(仰首)의 의미 그리고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먹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상상되듯이 仰藥(앙약)이라는 말은 독약을 먹고 자살을 한다는 의미이다.  주나라가 상나라의 폭정 왕을 토벌하는 정벌을 나설 때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데 만약 전쟁 포로가 되면 자살을 택할 테니 그러면 자식이 관(재목梓木은 관 널판을 짜는데 쓰이는 나무) 앞에서 무릎 끓고 슬픔을 거둔다는 전쟁과 포로의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다리 橋()는 원고료의 稿() 글자하고 비슷하니, 아버지는 미리 계획을 가고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림의 완성은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해낸다.  아버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타협 없니 대쪽과 같이 살다가 적국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죽음마저 선택하면 아들은 그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고자 꼭 살아남아서 아버지의 시체를 거두고 (전장터에 묘를 써놓고 가로세로의 십자가 나목으로 표시해둔다) 장례를 치루고 (전쟁이 끝난 후에 반장함) 아버지의 유언을 완성해낸다-는 부자지간의 엄명 완수 恪守父命(각수부)의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의 주노공세가에 기재된대로 역사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부모의 엄명을 완수하는 것이 효의 근본이라고 효경은 孝莫大于嚴父적고 있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면 어찌 법을 지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보통의 착한 사람들은 스스로 법을 지키고-“人皆趨令”(인개추령), 따라서 이런 착한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어찌 집집마다 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다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家給人足”(가급인족).[5]

 

아버지의 엄명은 무엇이었는가?

교만하지 말라

梓木(재목)은 관을 짜는데 사용되는 질이 좋은 나무이다.  요즈음은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주로 심는데 옛날에는 재()-가래나무를 궁전 앞 도로에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굴원과 유신의 시에 재나무가 등장하는데 이런 까닭에 재나무가 보이는 곳을 임금이 사는 궁전에 비유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교목은 대들보 써가래라는 우리 목조건축용어에서 보듯이 동량-집의 기둥이 되는 중심적인 목재로 쓰인다.  橋木(교목)은 한자 뜻으로 보면 교량목이다.[6]  지구의 경위는 직물을 짜듯이 가로 세로로 엮어 있는데, 교목은 다리를 놓는 가로대 벌판-다리의 횡목 빔(beam)을 이르고, ()목은 세로대 즉 기둥받침을 이른다..  사다리를 만들 때 종적과 횡적으로 널판과 버팀목이 필요하다.  가로대와 세로대의 서로 이음매 없이 다리나 사다리를 만들 수 없다.  사람의 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고 단언한 법치주의의 대가 상앙의 말을 기억하라.[7]

이와 같은 비유법에 따라서 부모는 횡목 널판대 가로대요, 자식은 그것을 떠받치는 기둥 세로대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종적이면 자식은 형제지간으로 나란히 양쪽으로 퍼져나가는 횡적 팽창적 존재이다.  사람이 갈비뼈로 태어나고, 또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는 말의 뜻은 의 특성적 모습에 기인한다.  ()는 왕연수의 노영광전부에 나오는 旁夭蟜以橫出에서의 夭蟜(요교)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교는) 절지동물 누에곤충을 지칭하는데, 박물관의 공룡의 뼈 구조물이 보여주듯, 절지동물 뱀과 악어의 배의 모습이 그러하듯, ()의 모습을 이른다.  이런 절지동물의 뱃가죽이 보여주듯이 옆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오늘날에는 칸막이가 수없이 이어지면서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고 기차가 다니는 사다리 모양 철로가 그것이다.  기차가 터널 속을 들어갔다 터널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높은 산에 가서 보면 장관인데 그렇게 옆으로 나오는 모습을 교라는 글자로 쓴다.   따라서 도교에서 최고의 민족 신으로 추앙받는 황제(黃帝)의 장지가 교산(橋山)에 위치한다.  다리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터널 속으로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기에 교산(橋山)이라고 부르고, 최고의 장지 길지 최고의 명당 자리로 알려져 있다.  요즈음의 토목 공학에서 최고의 예술이 다리 건축 아닌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는 굽은 것을 바르게 펴는 교정하다, 匡正(광정)하다 뜻의 矯()와 통하는 글자이다.  ()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의 구절에서의 의미와 같이 교수(矯首)는 앙수(仰首)와 같은 뜻으로 높이 쳐다본다는 뜻이다.

다리 구조를 알다시피, 교목은 높은 곳으로 쳐다 보는 仰()이요, 재목은 빔, 위에서 아래로 굽어 보는 俯()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仰俯(앙부)는 음양 자웅암수 오목볼록 요철(凹凸)하고 같은 개념이다.  세상 만물은 호로 선 것이 아니라 짝으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  다리가 그렇듯이 집을 지을 때 가로대와 세로대가 서로 요철로 맞물려 하나가 되듯이 말이다. 

 

詩禮之訓 시례지훈

詩禮之訓(시례지훈)의 의미는 논어에 출전한다.  공자 같은 대성인도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취급하지 않고 똑같이 공평무사하게 대했다.  공자가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어떤 특별과외-논어에는 특이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異聞”(이문)으로 적었다-를 시킨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논어에서 분명히 말했다: “孔子之敎其子無異於門人”, (공자지교기자무이어문인), 공자께서 아들을 가르침에 다른 제자들과 다름이 전혀 없었다.  교육은 평등해야 한다.  배움의 기회를 다같이 부여하는 기회의 균등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똑같이 대우하고 길러내는 평등의 교육관이 중요하다.  국민평등교육이 실현되려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르치는 교육자의 公平無私(공평무사)함을 요구한다.  공자같은 대성현도 자기자식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공부시키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시경과 예기를 배우게 했다는 뜻에서 시례지훈이라는 말은 子承父教”(자승부교)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자는 교육자이었으니 공자와 그의 아들인 백어를 두고서 자승부교라는 말이 적합할테지만 다른 일반 사람들은 자식이 부친의 사업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자승부업(子承父業)을 쓴다.  봉건시대 왕권에 비유한다면 문무왕이 부친인 태종무열왕의 왕위를 계승하여 이어받는다는 것, 嗣君(사군)을 의미한다.  

자승부교

봉건시대에서는 대부분 부친의 직업을 자식이 계승했으니 직업을 배제하고 가정교육측면에서 보면, 子承父教(자승부교)자식은 부모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따른다는 준승부모교회(遵承父母教誨)의 뜻이다.  시례지훈의 의미에 대해서 그 출전인 논어 계씨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스승께 특별한 가르침이라도 들었는가?  백어가 대답했다.  없다.  한번은 스승께서 당상에 홀로 서 계실 때 내가 총총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시경(詩經)을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시경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라고 말씀했다. 나는 되돌아가 곧장 시경(詩經 시문학)을 배웠다.  또 어떤 다른 날 그 때처럼 뜰 앞을 바삐 지나치는데 스승이 예법禮(禮記예기)을 배웠느냐하고 물으시기에 아직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예기를 배우지 않으면 바로 설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돌아와 곧장 예(禮記)를 배웠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들었다.  진항이 물러 나와 기뻐하면서 말했다.  하나를 물었는데 셋을 깨우쳤다.  시경에 대해서 알고 예법에 대해 알았으며 또 군자가 그 자식을 편애하지 않음 그것이었다.

 

시례지훈 설명 구절에 나오는 而過(추이과정)은 교재지교의 구절에 나오는 入門而而跪”(입문이추 등당이궤)의 구절의 의미와 같다.  ()는 종종걸음으로 걷다는 뜻으로 배우면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실천한다는 뜻이다.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거리면 무언가를 주저한다는 의미인데 부모자식간에는 무엇을 주저할 필요가 없으며 무언가를 배우고 깨우치면 즉시 실행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래서 학교를 갈 때는 즐겁게 빨리 가서 배우고 수업이 끝나면 그 배운 것을 부모에게 직접 말씀드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손살같이 뛰어서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달려오지 않았는가?

 

伯禽趨跪(백금추궤)와 교재지도

유향의 說苑(설원) 건본(建本)편에 시경에서 언급한 伯禽趨跪(백금추궤)의 의미를 설명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버지가 자식을 왜 그렇게 엄히 다스리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하자 상자(후에 진시황의 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상앙이 저술한 商君書商子라고도 부른다)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8]  

주공단의 장자 백금은 상자를 스승으로 삼고 공부에 일로매진한다.  상자는 백금에게 부자지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교재지교의 비유로써 설명했다.

商子曰 「二子盍相與觀乎南山之陽有木焉 名曰橋」 二子者往觀乎南山之陽 見橋竦焉實而仰 反以告乎商子 商子曰 「橋者父道也」 商子曰「二子盍相與觀乎南山之陰 有木焉 名曰梓」 二子者往觀乎南山之陰 見梓勃焉實而俯 反以告商子 商子曰 「梓者 子道也」 二子者明日見乎周公 入門而趨 登堂而跪 周公拂其首 勞而食之曰 「安見君子」 二子對曰 「見商子」 周公曰 「君子哉 商子也」 두 사람[9]은 남산의 북쪽에 가서 거기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고 오라.  그 나무이름은 교()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시키는 말대로 남산 북쪽에 자라는 나무를 살펴 보니, 교목이 실로 하늘 높이 꼿꼿하게 솟구쳐 서 있었다.  (그 꼿꼿한 자세에 두려움이 느낄 정도였다). 돌아와 상자에게 보고 느낀 바를 보고하자 상자가 답을 말했다, “교목(橋木)은 아버지의 가는 길 그 부도(父道)를 말해준다.  그러면 이제 두 사람은 남산의 남쪽을 가서 거기에 자라는 재()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를 보고 오라.  학생 두 사람은 지시대로, 파도치듯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재목(梓木)을 관찰해보니, 땅에 엎드린 모습 굴복의 자세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돌아와 선생 상자께 보고하니, 선생은 말했다: “재목(梓木)은 자식이 취해야 할 예의를 말해준다”.  이만하면 교육과정을 마쳤다고 여겨진 두 학생은 다음날로 주공단을 알현할 수 있었다.  아들은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총총걸음으로 마루에 올라 엄부자모 앞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주공단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동안 배움의 노고를 치하하고 후한 음식을 내주며 말을 건넸다.  선생은 누구였던고?”  소개받은대로 상군 밑에서 배웠습니다.”  상군서[10]는 현재까지도 뛰어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책이로구나!”

 

 

비문 뒷면 20행 번역

이상과 같이 비문 뒷면 20행의 구절 표현 내용을 살펴본 바, 20행의 구절은 4자 띄어쓰기 구조로 비문을 재정리하고 이 행의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嚴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軀 葬以積薪 薪盡火傳/穀神不死 靈光不滅[11]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을 진실로 이루었네.

도를 중하게 여기고,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네.

평소 존경한 고인을 흠모하면서 운구를 쌓은 나뭇단 위로 옮기어

불을 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네

나무는 타고 나서 재가 되어도 나무불은 다시 타오르듯이 인간의 정신은 자자손손 면면히 이어간다네.

신진화전처럼 곡신불사처럼 인간의 정신은 꺼지 않고 영원하다네.

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몸바쳐 충성을 다한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네.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던 까닭이리라.

(저 높은 산의 우뚝 솟은 바위처럼 성배처럼 영원무궁토록 문무왕의 그 큰 이름 자손만대까지 전해지리라!)

 

 

관자의 교육 이론

 

국가의 의무

당태종은 전투를 마치고 귀환도중에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장렬히 쓰러진 군인들을 위해서 떨어진 기러기를 보듬어 주듯이 해골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주면서 조문을 직접 지어 대성통곡을 하며 명복을 빌어 주었는데 그 때 시 구절을 옮겨보자.  그토록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당신이 정작 당신의 몸을 보호할 만한 재주는 가지지 못했던가요?  그러면서도 나라에 충성할 마음은 남아 있었던지 나라를 위해서 홀연히 몸을 던졌다는 말입니까?

□詩禮之訓 姬室拜槗梓之□

비문의 이 구절은 경제적 기초 관계를 형성하는 嫡親(적친)과 姬室(희실) 사이의 집안 가정 교육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이다.  당태종의 제범 서문에 나오는汝以幼年 偏鍾慈愛 義方多闕 庭訓有乖구절에서의 庭訓(정훈) 즉 가정교육에 대해서 그 의미를 기술하고 있다.  詩禮之訓(시례지훈), 槗梓之敎(교재지교) 이 구절에 의거하여 앞뒤 문맥상 의미를 연결해 본다면, 이 부분은 교육에 대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추가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君臣守義序之德

嫡親振詩禮之訓

姬室拜橋梓之敎

인간 사회는 육친화목하고 이사엄부의 교육을 통해서 후세를 이끄는데, 신라의 교육 국정 철학이 시례지훈과 교재지교의 불언지교의 교육 철학을 택하고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상서대전에 나오는 교재지도의 의미를 보자.  숲 속에 가면 큰 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나무도 함께 자라난다.  숲 속에는 교목이 있는가 하면 재목도 있는 것처럼 사람은 능력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쓸모가 있는 존재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하는 것을 쳐다보고 배우며, 윗사람은 올라오는 아랫사람을 굽어 보며 가르치고 배우며 지도하고 학습하는 교육 방법, 중세 시대로 말하면 도제 교육 방법론인 것이다. 

 

不言之敎

현대 경제학의 태두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의 자본주의 사상, 실용주의의 사상을 스미스보다 2천년 전 이전에 국정에 반영하고 실천해서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던 관자의 교육철학과 정책이 불언지교 즉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몸소 모범을 보여서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차려서 변화시키는 교화의 교육실천철학이다.

도교의 중심철학자 한 사람인 관자의 교육 철학과 교육정책의 근저가 불언지교이다.  불언지교의 교육이념은 노자 도덕경 제2장과 제43장에도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 개념이다. 

노자도덕경 제2장의 말씀 중 불언지교의 구절을 보자.  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성인은 의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몸소 모범을 보임으로써 가르친다.  영어로 리드바이이그잼플(lead by example)의 교육방법론이다.  사람은 모방의 귀재이기에 남이 따라하기 쉽도록 자신이 직접 나서서 쉽게 가르칠 때 학생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과 우주만물은 말없이 잘 돌아가고 발전한다.[12]

노자도덕경 제43장 중의 구절不言之敎天下希及之” (불언지교 천하희급지).  말 대신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고 가르치는 불언지교로써 세상사람들 모두가 바라고 소망하고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불언지교를 영어로 번역하면, the benefit of leading by example instead of preaching by speech이 되겠다. 

또 노자도덕경 제10장의 구절로 반복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자.  生之畜之 生而不有 長而不宰”.  아무리 자신은 연장자이고 어른이고 지위가 높고 반면 상대방이 하인이나 첩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은 말로 타일러서 스스로 깨닫게 해야지, 결코 윽박지르거나 지배하려거나 군림하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상대방을 잘 되도록 도와주고 길러주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연장자라고 해도 지배군림하지 않는다.

분명히 부모가 자식을 낳지만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부유별이라고 하는데 부부관계는 평등한 계약관계이지, 힘 센 장부라고 해서 또 연약한 아녀자라고 해서 힘으로 제압하려거나 지배하고 복종시키려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다.  짠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고, 군신간에는 의리가 개입되는 윤리와 질서의 관계가 작동된다.

이와 같이 不言之敎(불언지교)는 교육자가 피교육자 학생들에게 직접 모범을 보임으로써 교육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교육철학을 함의한다.  시례지훈, 교재지교, 의방지덕 이런 말들은 불언지교의 교육방법론에 속한다.  건릉 술성기에 나오는刑不怒而威 不言而信의 표현 또한 불언지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언지교를 정치에 적용하면,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국정 철학을 의미한다.  노자 도덕경 제73장 구절의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姗然而善謀” (천지도 부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불소이자래 산연이선모) 구절의 의미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하늘의 도는 발버둥치거나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반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유유자적 만만(漫漫)한 것 같지만 계획대로 잘 돌아간다.[13]  사람의 하나님의 이미지로 창조된 인간이고 또 그러기에 선하고 착한 본성을 갖고 있다.  사람의 자율성의 가치를 믿는다면, 사람의 선한 본성을 발현하게끔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모른다고 해서 또 자기보다 못한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윽박지른다거나 강요하려 들지 않고 대신 윗사람이 행동으로 직접 모범을 보이면 아랫사람들은 스스로 알아 깨우친다.  그러니 굳이 무엇을 다툴 필요가 있겠는가?  이와같이 사람은 타율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 주고 끌어주는 방법론이 더욱 효과적이다.  노자 도덕경 제48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구절이 그 이치를 말해준다.  새로운 지식을 배울수록 매일 할 일이 많아지는 반면, 도를 행하면 날마다 할 일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마침내 더 이상 시도할 일이 없게 된다, 여기에 이르면 일부러 하는 일도 없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자체가 없게 된다, 천하를 차지할 때도 억지로 해야 될 일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억지로 시켜서 일을 하게 되면 천하를 얻기에는 부족하다.[14] 결론을 따오면, 정치의 장에서도以德政感化人民”(덕정감화인민) 즉 상대방을 덕으로써 감화시켜 변화시키는 방법이 보다 옳다.

 

橋梓之敎 교재지교

교육방법론으로써 아이들에게 매질을 해도 좋다는 엄한 체벌 허용론이 근자까지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부자지간 골육지간에도 교육은 자승부교(子承父教)라고 하여, 부모는 자식에게 자애와 사랑으로써 가르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가르침을 이어 받는 것을 교육론의 기초로 삼았다.  매질은 타율적인 방법인데, 한 순간 반짝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계속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근본적인 처방으로써 기능하기 어렵다.  도교의 교육철학을 국정에 반영하고 실천했던 사람이 관자인데 관자는 우리들에게 관포지교의 고사성어로 유명한 관중을 지칭한다.  관중은 교육방법론으로 德刑相補(덕형상보)의 가치를 내세웠는데, 그 근본은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며 사랑으로 가르치고 아랫사람은 스스로 깨우치고 배우는 자율의 교육철학을 우선적으로 강조하였다.  덕화를 기본으로 삼지만 법을 어긴 자는 엄격히 처벌하여 그 죄를 경계하였다.  사람은 공과가 함께 하는 부족한 인간이므로 功過相補(공과상보)의 이치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  잘못에 눈감기보다 잘못을 깨우치고 새로운 발전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발전하는 존재이므로 풍상을 겪으며 큰 인물로 자라난다.  모든 초목은 바람을 맞고 찬이슬을 맞으며 자라나지 않는가? 자연의 이치이지 않는가?  南齊書(남제서) 최조사전에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15]  論儒者以德化爲本 談法者以刻削為體 道教治世之粱肉 刑憲亂世之藥石 故以教化比雨露 名法方風霜”.

 

 

嫡親(적친)과 희실(姬室), 종실과 종친(宗親)의 의미

姬室(희실)의 의미를 말할 때, () 글자가 첩을 이르는 뜻이 있다고 해서 첩 관계를 지칭하는 비칭으로 쓰인 말이 아니다.  ()는 여자를 좋게 부르는 미칭이다. 강희자전 옥편에 姬자를 찾아보면 고문은 㚦()의 글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희실(姬室)이란 단어는 고대 모계 사회의 남녀상배 여와 전통이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는 偏房(편방), ()의 뜻을 갖는 말로써 첩실(妾室), 소실(小室), 측실(側室), 방실(房室), 별가(別家)와 비슷한 말이다.  우리말로작은집즉 방계혈족에 해당한다.  측실이란四方是則즉 횡적으로 동등하게 퍼져나가는 관계를 갖고 있다. 첩의 제도가 일본에서 법적으로 폐지된 시기는 1912년에 이르서였다.  한국은 보릿고개 지배당하던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 1960년대까지 비공식적으로 성행했었다.  하지만 직계와 방계의 법적 경제적 이유를 정확하고 심도있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嫡親(적친)과 姬室(희실) 이 두 글자는 모두 여자 女변이 있는데 그 뜻을 보라.  고대는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여자가 집안 살림을 담당했고, 여자가 후사를 이었고, 여자가 광의 키를 쥐고 일가를 이끌며 중요한 집안 역할을 담당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혼자서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이 큰 일을 이룩하고자 할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남녀상배와 여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와같이 희실(姬室)이란 단어는 親屬(친속)의 개념을 말해준다.  같은 일가, 같은 겨레를 일컫는 親屬(친속) 또는 친족(親族)이란 개념은 嫡親(적친)과 姬室(희실)로 나눠지는데 적친은 직접적닌 친자(親子)관계에 있는 직계(嫡親血脉), 희실은 방계혈족(傍系血族)의 의미를 갖는다.  직계 가족은 종적인 의미, 방계는 횡적인 개념이다.  동엽봉제(桐葉封弟)의 고사성어가 말해주는대로 진나라의 통치질서가 그러했듯이, 당태종이 종실에게 분봉하고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듯이, 직계(直系) 방계(傍系)는 돈독한 우애 관계를 기초로 함께 번창하는 인간사회의 발전의 기초관계를 말해준다.  직계와 방계의 구분은 호적법에 따르면 그 실익이 존재한다. 

일가친족의 경제적 이유

親屬(친속)을 뜻하는 嫡親(적친)은 핏줄 혈연으로 연결된 혈연적 기초를 필요로 하는 부자지간을 이른다.  하지만 꼭 핏줄과 혈연에 한정된 부자지간의 관계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고대사회에서 일가친척은 경제적 단위로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적친은 종실이요, 희실은 방계 종실 일가에 해당된다.  희실(姬室)은 핏줄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라 부부관계처럼 계약으로 연결된 사람 사이를 포함한다.  세상 만물은 베틀로 직물 찌듯이 경위-가로와 세로-로 연결되어 만들어 진다.  지구가 경도와 위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천구와 천망 또한 그러하고, 인간 사회의 질서 또한 그런 규칙이 작동한다. 

고대에는 집안 즉 일가의 구성 범위는 혈연적 기초에서만 성립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기초와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도 성립되었다.  황족의 종실(宗室) 개념을 보라.  ()집안을 말하는데 室은 주로 경제적 의미에서 정치 경제적 단위를 구성하는 개념이었다.

주나라 주왕조를 周室(주실)이라고 표현하는데, 좌전에서도 周室로 적었고, 당 두보의 싯구절에도 周室(주실)로 표현했다.  五侯九伯 女實征之 以夾輔 周室 (左傳); 身退卑 周室 經傳拱 漢皇 (杜甫, 冬日洛城謁玄元皇帝廟).  왕연수의 영광전부에서 한나라 왕실을 漢室(한실)로 표현했다: 瑞我漢室 永不朽兮(서아한실 영불후혜), ‘상서로운 우리 한나라 황실이여, 영원무궁토록 존속하리라’.

요즈음은 宗家(종가)의 개념이 장자 큰 아들에게만으로 한정되는 개념이지만 고대에는 동족(同族)의 개념으로 쓰였다.  종친(宗親)의 개념도 지금은 범위가 협소해졌지만 과거에는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는 모두 종친에 속했다.  고대사회는 모계사회가 그 바탕이었음을 상기하라.  유태인은 지금까지도 모계사회의 동족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권자가 되려면 어머니가 유태인의 혈통임을 증명해야 한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유태인의 혈통을 입증해준다.  사실 씨를 검사하는 유전자검사 방법이 쓰여지는 때는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서야 적용되는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씨를 기준으로 하면 조선후기 들어 청나라 식민지배로 전락하면서 청나라 지배층에 연계된 김씨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사례가 보여주듯이 남의 자식이라도 호적에만 올리면 자기자식이 되어 경제적 기초가 무너질 위험성이 크므로 (분배할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자식이 불순간 급증하게 되면 잘게 쪼개기를 해야 되고 그리하여 한계효용의 경제학 법칙에 의해서 산업생산력이 저하된다), 유태인 여부를 어머니의 혈통에 따르는 유태인 방법이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동족이라는 개념이 고대사회에선 꼭 혈연적 기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방에게 패해 자살한 서초패왕 항우가 자살하였지만 유방은 항우의 집안을 유방의 유씨 황족으로 편입하고 예우하였다.  항우 본인은 비극적 최후를 마쳤지만 항우는 죽어서 그의 집안을 황족으로 살린 자기 희생이 아니었던가? 

‘꼭 자식에게만 의존하지 말라는 노자의 가르침이 있었고, 요순우 시대의 황금시대에는 왕위를 자신의 핏줄인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신 선양의 제도를 통해서 왕위를 물려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을 골라서 미리 시험을 해보고 그런 연후에야 왕위를 그에게 물려 주었다.  왕의 자격이 되는지 여부를 사전에 테스트해 보고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왕위를 물려 받았으니 황금시대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천도무친 상여선인이라는 노자의 말씀을 사마천의 웅변으로 다시 한번 상기해 보라.

노자의 사고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온지구상에 퍼져나갔듯이, 횡적 팽창 개념이지, 협소한 종적 구속의 개념이 아니다. 

 

계약 사회

한국 사회의 기초는 계에 있다.  각종의 계모임을 보라.  문중계는 물론이요 저축하고 적금들고 하는 계모임, 동기동창 계모임뿐만 아니라 봄가을 상춘과 만추를 만끽하고자 놀러가는 계모임까지 실로 각종 다양한 계모임이 있다.  신라 사회의 기초는 계약에 있었다.  라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백이 강을 건널 때의 개구리 신화 그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는 아담 스미스가 인간사회를 서로 바게인(bargain)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서로 타협하는 계약 관계로 규정한 것의 정치 도덕 철학의 기초를 말해 준다.  민의를 존중하고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치철학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던 관중의 정치 사상이 바로 계약관계에 기초한 인간 사회의 건설이었다.  이런 계약 관계에 기초한 나라가 바로 商상나라가 아니던가?   상나라가 바로 조선이요 신라이요 바로 한반도를 지상낙원으로 건설했던 우리의 선조들이다.  공자가 극구 칭찬했던 기자, 유가들이 받드는 기자 조선의 실체 또한 기자는 상나라가 망할 때 상나라의 반체제 인사로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설 때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으니 기자 자신은 상나라 사람이었다.  조선은 동이족 상나라가 해외 진출했던 역사를 보여준다.

세상 만물은 베틀로 직물 찌듯이 경위-가로와 세로로 연결되어 만들어 진다.  지구가 경도와 위도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천구 천망 또한 그러하고, 인간 사회의 질서 또한 그런 규칙이 작동한다.  사회계약의 기초를 서양의 존 로크 등의 서양 사상가들이 기초한 것으로 한정하는 정치경제학의 이론은 한쪽만 보고 다룬 것에 불과하다.  관중의 民富論(민부론)과 國富論(국부론)의 정치경제 철학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