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릉비 연구-제1권-비문 앞면 해석

비문 앞면 26행 해석-자기비판의 역사

문무대왕 2025. 3. 31. 10:34

26행 罪己詔(죄기조)-자아비판

 

▨▨▨▨▨▨▨▨▨▨▨▨▨▨▨▨▨詔君王使持節▨」

 

국편위 번역: 군왕에게 조서를 내려, 사지절(使持節) … 으로 봉하였다. …

 

추홍희 해석: 군왕급과 사지절들을 초치하여 (唯疑請以 上代之政) (역사 공부를 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게 했다).

 

()의 의미 쓰임새

()는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마땅히 스스로 헤아리시어 옳고 바른 방도를 취하시고, 신하들의 바른 말을 잘 살펴 들으시어 유비 선제께서 남기신 명령을 끝내 완수하옵소서) 구절처럼, 황제의 명령을 의미하는 명사로 쓰인다.  또 詔()는 굴원의 이소경에 나오는麾蛟龍使梁津合 詔西皇使涉予”(휘교룡사량진합 조서황사섭여), ‘교룡을 부려 나루터에 다리를 놓고, 소호금천씨에게 빌어 날 건너 주게 하리라의 쓰임새에서와 같은 동사로 쓰여서 고계(告誡)하다, 교도(教導)하다의 뜻이 있다. 

사람은 잘못을 했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핵심은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고 그리하여 변화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교도와 처벌의 본뜻 아닌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처벌보다 교도하는 것이 사람의 변화를 이끄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다.

君王 使持節

▨▨▨詔君王使持節의 결자 부분의 글자들의 내용을 정확히 복원하기는 힘드나 전후 문맥상 의미를 연결하여 추적해 보자.  ()는 가르쳐 계도하다는 뜻이니 군왕사지절들을 초치하여 역사 공부를 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게 했다-唯疑請以 上代之政 詔於君王-(유의청이 상대지정 조어군왕)- 의미로 해석된다.

使持節(사지절)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지방의 행정관인데 군대를 함께 지휘한다는 측면에서 사지절(使持節)이라고도 불렀다.  지방관은 중앙 행정부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고해도 군대 통솔에 관해서는 일사분란하게 왕의 직접적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에 국왕이 직접 보낸 파견관의 신분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군지휘관이라는 신분은 예하 소속된 부하를 즉시 처결할 수 있는 절대 권한을 가진 무장이었다.  假節(가절), 持節(지절), 使持節(사시절)의 계급 구분이 있었고, 당나라 시대엔 자사(刺史)라고 불렀는데, 당고종 집권 시기 650년 부터는 都督(도독)이 사지절을 겸하면서 節度使(절도사)로 호칭하였다. 

무사(武士)가 행정을 함께 담당하는 일본과는 다르게, 문사(文士)가 군대를 지휘하는 문사의 나라 체제가 한국과 중국의 근간이었다.  신라엔 지방 군정을 책임진 당주(幢主)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君王使持節다음의 결자 부분에 당주 등의 관명이 열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왜 사지절이라는 관명을 사용하고 있을까?  절도사라는 호칭이 나타난 당나라 시절이라면 말이다.  그것은 세계화 추세 시대에 뒤떨어졌던 의미가 아니다.  이 역시 중국에선 한나라 때에 사용하던 읍루라는 명칭을 문무왕의 통일신라 시기까지 여지껏 사용하고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대중국에 대한 독자성과 자주독립 전통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흥왕 순수비의 내용을 상기하라.  삼국사기가 김춘추의 시호 태종 무열왕에 대해서 중국과 시비를 다툰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와 동렬선상으로 신라의 자주 독립 정신이 배어 있다.   

 

罪己詔(죄기조)-자아비판

자기 스스로 책망하는 罪己詔(죄기조)를 묘사하는 내용이 이 행 문장을 구성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죄기는 자책하는 것을 이른다.  罪己詔(죄기조)는 죄를 자신에게 돌리고 자기를 책망하는 것 임금이 스스로를 꾸짖는 조서 즉 공개적 자아비판이다.[1]  구당서 대종기에朕所以馭朽懸旌 坐而待曙 勞懷罪己之念 延想安人之策구절이 보인다.

좌전(左傳), 장공편에禹 湯 罪己 其興也悖焉 桀紂罪人 其亡也忽焉이라고 기록하였다.  이 구절의 뜻을 대강 살펴보자.  하나라 우임금 상나라 탕왕은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잘못을 자가검토하였는바, 그랬으니 당연히 나라가 융성하였다.  반면 하나라 걸왕과 상나라 주왕은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켰다.  그랬으니 국가가 멸망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신당서의天子下罪己詔 并赦群盜”, 그리고 백거이 하우(賀雨)라는 제목의 한시에上心念下民 懼歲成災兇 遂下罪己詔 殷勤告萬邦구절이 보이므로, 고대사회에서만 자아비평의 행위가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당나라 덕종(德宗)罪己大赦詔를 참조해 보자: “天譴於上而朕不悟 人怨於下而朕不知”, “上累於祖宗 下負於黎庶”. 

上梁不正下梁歪 (상량부정하량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상나라 후예이자 한나라 천자의 후손인 신라의 지도층은 솔선수범하고 근검의 미덕을 실천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윤리를 실천하고 견지한 신라이었으니, 통일왕국 건설의 주인은 마땅히 누구이었겠는가?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의 윤리도덕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신라 사회에서, 만약 그 사회내에서 누군가가 잘못을 할 때 남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아비평으로써 자신이 먼저 뉘우치고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죄기조의 개념을 실천했을 것이라고 보는 생각은 합리적인 도출이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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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唯疑請以 上代之政) (군왕급과 사지절들을 초치하여 역사 공부를 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게 했다.)
詔君王使持節  군왕급과 사지절들을 초치하여

 



[1] 가의 신서 수정어 하 참고. 周成王曰 寡人聞之 有上人者 有下人者 有賢人者 有不肖人者 有智人者 有愚人者 敢問上下之人何以為異 粥子對曰 唯,疑,請以上世之政詔於君王 政曰 凡人者 若賤若貴 若幼若老 聞道志而藏之 知道善而行之 上人矣 聞道而弗取藏也 知道而弗取行也 則謂之下人也 故夫行者善 則謂之賢人矣 行者惡 則謂之不肖矣 故夫言者善 則謂之智矣 言者不善 則謂之愚矣 故智愚之人有其辭矣 賢不肖之人別其行矣 上下之人等其志矣周成王曰 受命矣  (賈誼, 《新書》, 修政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