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공자의 春秋(춘추)와 西狩獲麟(서수획린)
공자는 춘추로써 공자가 되었다. 춘추가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어찌 공자가 있을 수 있었을까? 춘추하면 공자요 공자하면 춘추다. 사마천의 공자세가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孔子曰 後世知丘者以春秋 而罪丘者亦以春秋: “후세에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또한 춘추 때문일 것이다.”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나는 하늘도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자는 아마도 하늘이 아니겠느냐.
춘추의 마지막 구절은 “西狩獲麟”(서수획린)이다. 서수획린은 공자의 절필지운이기에 더 이상 공자에게 그 의미를 직접 물어볼 수 없다. 그런데 이 마지막 춘추의 구절을 두고서 2천년이 넘도록 오늘날까지 부지기수의 학자들이 그에 대한 해설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완전하게 해석해내는 이가 없다.
공자가 타계하기 전 3년부터 춘추의 역사서를 쓰기 시작하다 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나라 왕이 서산에 사냥을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는 그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을 보고서 공자는 슬퍼하면서 “吾道窮矣”(오도궁의)라는 말을 남기고, 2년 후 죽을 때까지 더 이상 글을 쓰질 못했다. 서수획린은 공자의 절필지운이 된다. 대개 “내 도가 다했다”라는 공자의 마지막 글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설서를 시도해 왔는데 쟁쟁한 유학자들 가운데도 시대에 따라서 각기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주역에서 말하길, “積善餘慶”(적선여경)-착한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는 경사스런 일이 생기고, “泣麟傷鳳”(읍린상봉)-기린을 보고 울고 봉황을 보고 슬퍼한다. 사람은 각기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각자 사정에 따라서 해석이 달리 하거나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춘추좌씨전의 “古之遺愛也”(고지유애야)의 해석대로,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그것을 말해준다. 니이체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적은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영원하다”.
절필지운
서수획린의 의미를 나의 문무왕릉 비문의 해석에 적용해 보자. 서수획린에 대한 해석에서 각자의 경험과 각자의 지식과 각자의 믿음에 따라 자신들의 각주와 해설을 달을 뿐이고, 공자는 언제까지나 침묵한다. 죽은 이의 유언의 진실은 그가 불완전하게 남겼다고 해서 그 의미를 결코 온전하게 해석해 내지 못한단 말인가? 모두는 청개구리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비가 오면 울어 제치기나 하는 청개구리의 해석을 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공자가 서산에 지고 사라졌다고 해서 그의 글들은 봉해져야할 만큼 올바른 해석이 영영 불가능하다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공자가 비록 다 쓰지 못하고,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가 이미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이 살아 있고 또 그와같이 춘추의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자가 전달하려고 한 그의 참뜻을 해석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문무왕릉비 비문 중에 현재 남아 있는 파편은 전체 비문 가운데 매우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해석할 수 없는 절필지운이라고 여기고 그에 대한 해석 작업을 더 이상 해내지 못한다고 여기고 그저 손을 놓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비록 적은 부분일지라도 아직도 남아 있는 부분이 존재하고 또 그러하기에 다른 수많은 역사서들을 참조하고 동원하여 어느 정도 정확한 복원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손인 우리들의 의무이고 몫이다. 문무왕의 선조가 남겼던 공자의 춘추 해석은 추연이 남겼던 공자의 춘추 해설서처럼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공자의 춘추는 좌씨춘추전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등 이 3가지 춘추가 남아 있기 때문에 비록 100%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가진 지식과 추리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복원 작업이 가능하다.
나는 문무왕릉비 비문 연구와 첨성대 연구로써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 것이다. 세잔느가 자신의 사과 그림 하나로 전 유럽을 강타할 것이라는 대담한 선언처럼. 그리하여 천지개벽의 새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진실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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