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제3 김일제 충효순심 한조막급(金日磾忠孝淳深 漢朝莫及) 해석 10. 宋書와 南史의 두기(杜驥)전에 기록된 김일제 충효순심 한조막급(金日磾忠孝淳深 漢朝莫及) 해석 유유(劉裕, 363-422): 송무제(宋武帝) 405년 환현(桓玄)을 격파하고 420년 송(420-479년)나라를 건국하고, 권문세가를 누르고 강력한 중앙집권책을 추구했다. 전란으로 시대가 혼미하고 인구이동이 잦았던 남북조 시대에 막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주해온 두기 형제는 권문세족으로서 유명한 서진의 진남장군 두예(杜預, 222-285)의 후손이었고 군벌 유유(劉裕)의 정벌에 참여하였지만 전전하며 막차를 탄 바람에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지 못함을 탄식했다. 어느날 유송의 3대 황제 유의륭(宋文帝劉義隆, 407-453)과 김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다음과 같다. 《宋書》 沈約(441-513, 蕭梁),《.. 2025. 4. 15. 한서 김일제전 번역 6. 한서 김일제전 번역 김일제는 어떻게 투후가 되었는가?BC 121년 여름. 곽거병이 이끄는 한나라 군대는 기련산 일대를 공략하여 혼야왕과 휴도왕에게 큰 타격을 가했다. 3만 이상을 사살하고 수천명을 포로로 노획했다. 흉노의 선우가 패배에 대한 책임을 혼야왕과 휴도왕에게 묻자 이들은 한나라에 투항하기로 작정하였다. 투항하기 전에 휴도왕이 마음을 바꿔 동조하지 않자 혼야왕이 휴도왕을 살해하고 4만여명의 흉노족을 이끌고 곽거병군에게 투항하였다. 이때 휴도왕의 태자인 일제(日磾)와 그의 동생 윤(倫)이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로 잡혀왔다. 이들은 교외 밖에서 궁정용 말을 키우는 노예의 천한 일을 맡았다. 그러던 중 무제가 연회를 베풀며 달리는 말을 사열하는 과정에서 꼿꼿한 자세를 견지한 일제를 발견하고 그를 궁.. 2025. 4. 15.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1. 들어가기-말과 글과 문화-사전의 가치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문무대왕 왕릉비문 속에 등장하는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을 “투후 김일제”라고 해석하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탈-진실사회에서 활개치는 인터넷 가짜글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지난 30년간 식민사학자들이 진행시켜 온 특히 KBS 방송 역사 스페셜 등 각종의 신문 방송에서 문무대왕 왕릉비문의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하여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사 교육의 혼란스러움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지경이다.그렇게 떠들어댄 이유 중 하나는 공자도 칭찬해 마지 않았던 우수한 한반도 동이 민족을 침략자 서방 강족 흉노족으로 변신시켜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유구한 역사를 통.. 2025. 4.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