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문무왕릉비 비문 앞면 1행-28행 국편 번역[1]
(前面)
(1행) … 국 신라 문무왕릉의 비이다. 及飱인 國學少卿註001金□□가 敎를 받들어 찬하다.
(2행) … 하늘을 짝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고, 땅의 경계를 구분하며, 덕을 쌓아 …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하고, 신에 응하여 …
(3행) … 鯨津氏註002를 파견하여, 三山註003의 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朱蒙을 태우고,註004… 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4행) … 그 능한 바를 다 잘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지니, 땅은 八方註 005 먼 곳까지 걸쳐 있고, 그 훈공은 三(韓)에 뛰어나, 그 높고 넓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5행)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火官之后註006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秺侯註 007 祭天之胤이 7대註 008를 전하여 … 하였다.
(6행) … 15대조 星漢王註 009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靈이 仙岳에서 나와, □□을 개창하여 玉欄을 대하니,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註 010처럼 많아 石紐註 011를 보고 金輿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
(7행) … 대왕註 012은 생각하심이 깊고 멀었으며, 풍채가 뛰어났고, 도량은 하해와 같았으며 위엄은 우뢰와 같았다. … □은 바야흐로 자취를 거두고 봉화는 멎고 척후는 파해지니, 만리의 맑은 기운은 부지런히 … 를 열었다. …
(8행) … 簡□의 덕에 내외가 평화로워지고, 광대한 기풍에 원근이 편안하고 깨끗해지니, □功 盛□은 장래에 … 하고, 쌓이고 뭉친 순수함과 곧음은 후예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워 주었다. …
(9행) … □□舍誨는 곧 聖哲의 뛰어난 모습이라, 은혜로써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너그러움으로써 사물을 다스리니, … 한 자는 그 시기를 알고, 덕을 이어받은 사람은 모두 그 이웃을 알아보니, 그 명성이 閒河에까지 넘쳤다. …
(10행) … □峯을 □하여 □幹하고, 5백년을 기약하여 큰 명을 내려주니, 거하면 모두 … 함을 얻었고, … 비춤은 丹府에 거의 가까웠다. 義는 性에 부합하여 일어나고, 깊은 정은 … 을 살펴 …
(11행) … 바탕을 돕고, 情의 근원은 맑디맑아, 삼키어 받아들임은 襟□에 □하였다. … 하시는 말씀은 규범을 이루고, 용모와 행동은 가히 볼 만하였으며, 학문은 고(금)을 두루 통하였다. …
(12행) … 詩와 禮의 가르침에 … (하고), 주나라는 橋梓註 013의 □에 경의를 표하였다. … 당나라 太宗文武聖皇帝註 014가 사직의 □에 응하여 …
(13행) … 임금이 돌아가시고註 015 풍악은 멎었다. 무진 이후에 …
(14행) … 舜임금은 바다와 같이 덕을 내려도 截懸이 있었고, 堯임금은 해와 같이 밝게 비추어도 垠□이 없었다. …
(15행) … 빛나고, 九列은 天府를 관장하여 …
(16행) … 天使도 감통시켜 그 재앙을 그치게 하니, 편안하고 쉽게 건너 …
(17행) … 이웃나라와의 우호를 어기고註 016 자주 이쪽 저쪽으로 붙으려 하면서,註 017 겉으로는 …을 믿는 척하니 …
(18행) … (소정방을) 熊津道 行軍大總管註 018으로 삼고, 君王註 019을 …
(19행) … 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註 020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 …
(20행) … 적의 首都에 이르자註 021 그 우두머리가 군문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고, 그 佐吏들도 …
(21행) … 삼년이었다. 龍朔 元年註 022에 이르러 …
(22행) … 보배로 여기는 바는 오직 어진 사람이니, 善을 행함을 가장 즐거워하고, 仁을 □함을 …
(23행) … 朝野가 모두 즐거워하니, 굳이 애써 행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
(24행) … 秦伯의 터전를 다시 일으켰다. …
(25행) … 교화가 북으로 挹婁註 023에까지 접하니, 벌떼처럼 …
(26행) … 군왕에게 조서를 내려, 使持節 … 으로 봉하였다. …
(27행) … 軍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깃발이 …
(28행) … 꾀는 손을 뒤집는 일처럼 쉽게 나왔는데, 절묘하기가 …
註 001
國學少卿 : 國學에 대해 『三國史記』新羅本紀와 職官志上에 장관으로 ‘卿’ 1인을 두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少卿’으로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이 비문은 국학의 장관이 찬술하여 중국의 고사성어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註 002
鯨津氏 : 본 비 말미의 銘 부분에도 ‘粉骨鯨津’이라 하여 ‘鯨津’이 보인다. 이 때의 鯨津은 고래가 살 만한 깊은 바다, 즉 동해바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 ‘鯨津氏 … ’의 鯨津도 같은 뜻인지는 알 수 없다. 鯨津氏를 箕子나 그 후예로 일컫는 鮮于氏 등과 관계 있지 않을까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註 003
三山 : 『三國史記』祭祀志에 大祀로 나오는 奈歷, 骨火, 穴禮의 三山을 가리키는 듯하다.
註 004
接黃龍駕朱蒙 : 「廣開土王陵碑」와 『東國李相國集』所引 『舊三國史』 등에는 鄒牟王(東明王), 즉 朱蒙이 황룡에 업혀 승천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본 비의 이 부분은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註 005
八夤 : 八埏 즉 八方의 끝을 뜻한다.
註 006
火官 : 중국 신화상의 炎帝神農氏로서 그에 뒤이어 黃帝軒轅氏가 일어났다고 한다. 본 비에서 신라의 유래를 三皇五帝傳說과 결부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註 007
秺侯 : 漢武帝의 총애를 받았던 金日磾(B.C. 134~86). 匈奴 休屠王의 태자로서 霍去病의 흉노 토벌시 포로가 되었다. 그 뒤 馬監, 侍中駙馬都尉光祿大夫 등을 거치고, 莽何羅의 亂 때 武帝를 구한 공으로 秺侯에 봉해졌다.
註 008
祭天之胤傳七葉 : 金日磾는 休屠王이 金人을 만들어 祭天했다는 고사에 따라 漢武帝로부터 ‘金’ 姓 하사받았고, 그 자손 7대가 內侍로 혁혁한 번영을 전승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文武王 先代의 7대 전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009
星漢王 : 星漢王에 대해서는 金閼智로 보는 견해, 알지의 아들인 勢(熱)漢으로 보는 견해, 알지의 7세손으로 김씨 중 최초로 왕위에 오른 味鄒王으로 보는 견해, 昔脫解로 보는 견해 등 각인각설이 제시되어 있다.
註 010
祥林 : 혹시 신라 국도의 명칭인 鷄林, 新羅, 斯盧 등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한다.
註 011
石紐 : 石紐는 중국 사천성 문천현 서북쪽에 있는 夏나라 禹王의 탄생지이나, 여기서의 의미는 미상이다.
註 012
大王 : 이 대왕이 太宗武烈王인지 文武王인지 또는 다른 임금인지 확실하지 않다.
註 013
橋梓 : 父道 및 子道 또는 父子를 의미한다.
註 014
大唐太宗文武聖皇帝 : 그의 시호가 674년에서 749년까지 사용된 것을 볼 때 당 태종 李世民을 말한다.
註 015
宮車晏駕 : 天子의 崩御를 의미한다. 당 태종이 승하하여 나라에 音曲이 정지되었음을 말하는 듯하다.
註 016
□違隣好 : 백제 義慈王이 즉위 초반 신라를 자주 침공한 사실을 말하는 듯하다.
註 017
頻行首鼠之謀 : 首鼠는 어느 쪽으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의심하여 주저하는 것을 말하는데, 백제가 당에 붙었다 떨어졌다 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註 018
熊津道行軍大總管 : 그 직명으로 볼 때 당시 唐軍의 총사령관이었던 蘇定方이다.
註 019
君王 : 본 비문의 주인공인 文武王을 가리킨다.
註 020
列陣黃山 蝟聚鴟張 : 黃山에서의 신라군과 백제군의 전투 모습을 그리고 있다.
註 021
元惡泥首轅門 : 轅門은 軍門, 陣營의 門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적의 우두머리가 군문에서 머리를 더럽혔다는 뜻으로, 백제의 의자왕이 항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註 022
龍朔 元年 : 661년. 태종무열왕이 승하하고 문무왕이 즉위한 해이다.
註 023
挹婁 : 뒷날의 女眞으로 漢魏대에 사용되던 명칭이다. 秦漢代에는 肅愼, 後魏代에는 勿吉, 隋唐代에는 ‘靺鞨’이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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