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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3권-투후는 누구인가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秺侯之忠孝淳深) 단락 해설

by 문무대왕 2025. 4. 14.

8.

 반악의 서정부 투후 충효순심(侯之忠孝淳深) 단락 해설

 

반악의 서정부에 투후에 관련된 구절이 등장하는데 그 문단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반악의 서정부에서의 侯之忠孝淳深”(투후지충효순심) 단락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당나라 이선의 주해가 틀렸음을 입증해 내는 과정과 그 근거를 정확하게 반박하고 서정부의 원문의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고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1.    서정부 투후 부분 한문 원문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원문
懷夫蕭曹魏之相辛李衛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望敷而倫序兵而皇威暢臨危而致勇奮投命而高節亮侯之忠孝淳深陸賈之優游宴喜長卿淵雲之文子長政駿之史趙張三王之尹京定國釋之之聽理汲長儒之正直鄭當時之推士終童山東之英妙賈生洛陽之才子飛翠緌拖鳴玉以出入禁門者眾矣或披髮左衽奮迅泥滓或從容博會望表之裏或著顯績而應嬰時戮或有大才而無貴仕皆揚風於上列垂令聞而不已想佩聲之遺若鏗鏘之在耳當音鳳恭顯之任勢也乃熏灼四方震耀都鄙而死之日曾不得與夫十餘公之徒隸齒名才難不其然乎

 

2.    한자 독음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뛰어쓰기 한자 독음
懷夫
蕭 曹 魏 之相
辛 李 衛 霍 之將
銜使 則 蘇 屬國
震遠 則 張 博望
敷而彝倫
而皇威暢
 
臨危而智勇奮
投命而高節亮

之忠孝淳深
陸賈 之優游宴喜
 
長卿 淵 雲 之文
子長 政 駿 之史
趙 張 三王 之尹京
定國 釋之 之聽理
汲長孺 之正直
鄭當時 之推士
終童 山東 之英妙
賈生 洛陽 之才子
 
飛翠緌 拖鳴玉
以出入禁門者 眾矣


或 被髮左 奮迅泥滓
或 從容傅會 望表知里

或 著顯績 而嬰時戮
或 有大才 而無貴仕


于上列
垂令聞 而不已
想珮聲 之遺響
若鏗鏘 之在耳
 

音 鳳 恭 顯 之任勢也

熏灼四方 震耀都鄙

而死之日
曾不得與 夫十余公 之徒隸齒


才難 不其然乎
회부
소 조 위 병 지상
신 이 위 곽 지장
함사 즉 소 속국
진원 즉 장 박망
교부이 이륜서
병거이 황위창
 
임위이 지용분
투명이 고절양
기호
투후 지충효순심
육가 지우유연희
 
장경 연 운 지문
자장 정 준 지사
조 장 삼왕 지윤경
정국 석지 지청리
급장유 지정직
정당시 지추사
종동 산동 지영묘
가생 낙양 지재자
 
비취유 타명옥
이출입금문자 중의


혹 피발좌임 분신니재

혹 종용부회 표망지리
혹 저현적 이영시륙
혹 유대재 이무귀사


양청풍 우상렬
수령문 이불이
상패성 지유향
약갱장 지재이


음 봉 공 현 지임세야


훈작사방 진요도비

이사지일
증부득여 부십여공 지도례치


명재난 불기연호

 

3.     

서정부 단락 한글 번역

 

역사를 회고해 보면.

소하, 조참, 위상, 병길

① 명 재상들

 

신경기, 이광, 위청, 곽거병 

② 명 장군들

 

③ 소무-황제의 명을 받아 흉노 원정을 나갔다고 적국에 사로잡혔으나 20년동안이나 전향을 거부하며 버텨오다 끝내 살아서 돌아온 소무,

③ 장건-먼 타국까지 진출해서 도로를 건설하고 해외 원정의 위세를 떨친 장건,

 

이들은 문화와 교화를 통해서 백성들의 윤리와 세상 질서를 바로잡았는가 하면

무력원정을 통해서 황제의 위엄을 선양했던 사람들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의 큰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지혜와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있고, 아까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곧은 절개를 드러낸 충신이 있다. 이러한 사람 가운데

④ 투후-충성과 효성의 마음이 돈독했던 투후가 있고

④ 육가-물러날 때를 알고서 조용히 낙향하여 말년까지 유유자적 은일의 삶을 누렸던 육가가 있다.

사마상여, 왕포, 양웅

⑤ 명 문장가

 

사마천, 유향, 유흠

⑥ 역사학계의 대가들

 

조광한, 장창, 왕준(王遵), 왕준(王駿), 왕장(王章)

수도 왕경의 최고위 관리를 지내며 명망을 쌓아 올린 

⑦ 유능한 행정가들

 

우정국, 장석지

⑧ 명 재판관

 

정직함으로 이름 높은 급암, 인재추천 시 직언을 하며 인재를 중시한 정당시

⑨ 신뢰받는 명망가

 

⑩ 종동-전쟁이 터지자 군에 투신했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종동 같은 산동 출신의 젊은 인재들,

⑩ 가의-재주를 타고 났으나 아까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생 같은 낙양의 젊은 천재들

 

이들은 번쩍번쩍 빛나는 비단옷 휘날리며 구슬옥을 단 신발 걸음소리 쩌렁쩌렁 울려가며 궁정을 드나든 고관들이 다수이다.

이 가운데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옷을 옆으로 접혀 입고 다니는 풍습이 있는 이적 외국 땅에 잡혀 들어가 치욕을 딛고 일어선 사람도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교분을 쌓고 의기투합하거나 돌아가는 판세를 미리 꿰뚫어 보고 기회를 포착하여 처세에 능한 사람도 있다.

또 한편으론 현저하게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일찍 꺾여버린 이도 있고, 재주와 능력이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게 높은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고관 모두는 맑고 신선한 바람을 위에서부터 먼저 일으키고 불러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평판이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인물들이다. 바람이 불면 허리에 찬 옥구슬 소리가 절조있고 품격 높음을 은은히 울려주듯이, 아름답고 고운 악기 소리가 귓가에 명쾌하게 들려오듯이 말이다. 

 

그런데 보라.

왕음, 왕봉, 공현, 석현

이들같은 외척 환관 세력들이 득세하던 시절에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사방팔방으로 서울과 시골은 물론 온 땅이 꺼질 듯 기세등등했던 사람들 가운데 죽은 뒤 앞서 열거한 10여명의 이름난 인물들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는가를!

 

(사람이 죽고나서도) 훌륭한 인물로 추앙받고 좋은 명성을 얻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는가?

 

4.    서정부 거명 인물 풀이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해당인물 풀이
懷夫
 
蕭 曹 魏 之相
辛 李 衛 霍 之將
銜使 則 蘇 屬國
震遠 則 張 博望
 
敷而彝倫
而皇威暢
 
臨危而智勇奮
投命而高節亮

之忠孝淳深
陸賈 之優游宴喜
 
長卿 淵 雲 之文
子長 政 駿 之史
趙 張 三王 之尹京
定國 釋之 之聽理
汲長孺 之正直
鄭當時 之推士
終童 山東 之英妙
賈生 洛陽 之才子
 
飛翠緌 拖鳴玉
以出入禁門者 眾矣


或 被髮左 奮迅泥滓
或 從容傅會 望表知里

或 著顯績而嬰時戮
或 有大才而無貴仕


風于上列
令聞而不已
想珮聲之遺響
若鏗鏘之在耳
 

音 鳳 恭 顯 之任勢也

熏灼四方 震耀都鄙

 
而死之日 曾不得與夫十余公之徒隸齒


才難 不其然乎
楚義帝 楚懷王
 
蕭何,曹參,魏相,= 승상,
辛慶忌,李廣,衛,霍去病= 장군
蘇武
張騫 博望侯
 
 
 
 

=商丘成
陸賈
 
司馬相如,玉褒, 揚雄
司馬遷,劉向,劉歆
趙廣漢,張敞,王遵,王駿,王章
于定國,張釋之
汲黯
鄭當時
終軍
賈誼
 
 
 
 
 
 
 
 
 
 
 
 
 
 
王音,王鳳,弘恭,石顯

 

5.    한서와 서정부에서 겹친 인물

 

漢書, 公孫弘卜式兒寬傳 찬() 서정부 투후 단락 한서와 서정부 두곳에 겹친 인물
公孫弘、卜式、兒寬皆以鴻漸之翼困於燕爵,遠跡羊豕之間,非遇其時,焉能致此位乎?是時,漢興六十餘載,海內艾安,府庫充實,而四夷未賓,制度多闕 上方欲用文武,求之如弗及,始以蒲輪迎枚生,見主父而歎息 群士慕嚮,異人並出 卜式拔於芻牧,弘羊擢於賈豎,衛奮於奴僕,日出於降虜,斯亦曩時版築飯牛之明已 漢之得人,於茲,儒雅則公孫弘、董仲舒、兒寬,篤行則石建、石慶,質直則汲黯、卜式,推賢則韓安國、鄭當時,定令則趙禹、張湯,文章則司馬遷、相如,滑稽則東方朔、枚皋,應對則嚴助、朱買臣,曆數則唐都、洛下閎,協律則李延年,運籌則桑弘羊,奉使則張騫、蘇武將率則衛霍去病受遺則霍光金日其餘不可勝紀是以興造功業制度遺文後世莫及孝宣承統纂修洪業亦講論六藝招選茂異而蕭望之梁丘賀夏侯勝韋玄成嚴彭祖尹更始以儒術進劉向王褒以文章顯將相則張安世趙充國魏相丙吉于定國杜延年治民則黃霸王成龔遂鄭弘召信臣韓延壽尹翁歸趙廣漢嚴延年張敞之屬皆有功跡見述於世 參其名臣亦其次也 懷乎
之相,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望敷而彝倫而皇威暢臨危而智勇奮投命而高節亮 侯之忠孝淳深,陸賈之優游宴喜長卿之文子長駿之史三王之尹京定國釋之之聽理汲長孺之正直鄭當時之推士終童山東之英妙賈生洛陽之才子 飛翠緌拖鳴玉以出入禁門者眾矣 或被髮左奮迅泥滓或從容傅會望表知里或著顯績而嬰時戮或有大才而無貴仕 皆揚風于上列,垂令聞而不已 想珮聲之遺響若鏗鏘之在耳
當音顯之任勢也乃熏灼四方震耀都鄙 而死之日曾不得與夫十余公之徒隸齒 才難不其然乎
魏相
丙吉
蘇武
張騫

霍去病
司馬遷
司馬相如
趙廣漢
劉向
王褒
于定國
汲黯
鄭當時
張敞
 

 

6.    반악 서정부 단락 인물 리스트

 

반악 서정부 구절 인물 리스트 인물의 성명
懷乎蕭之相,霍之將銜使則蘇屬國震遠則張博望敷而彝倫而皇威暢;臨危而智勇奮投命而高節亮侯之忠孝淳深,陸賈之優游宴喜長卿之文子長駿之史三王之尹京定國釋之之聽理汲長孺之正直鄭當時之推士終童山東之英妙賈生洛陽之才子飛翠緌拖鳴玉以出入禁門者眾矣或被髮左奮迅泥滓或從容傅會望表知里或著顯績而嬰時戮或有大才而無貴仕皆揚風于上列,垂令聞而不已想珮聲之遺響若鏗鏘之在耳當音顯之任勢也乃熏灼四方震耀都鄙而死之日曾不得與夫十余公之徒隸齒才難不其然乎 (초회왕)
蕭何曹參魏相
辛慶忌李廣霍去病
蘇武張騫
()

陸賈
司馬相如玉褒揚雄
司馬遷劉向劉歆
趙廣漢張敞王遵王駿王章
于定國張釋之
汲黯, 鄭當時
終軍, 賈誼
 
王音王鳳弘恭石顯

 

서정부 투후 단락 인물명




 




 


 

陸賈
 
長卿


 
子長

駿
 


三王
 
定國
釋之
 
汲長孺
鄭當時
 
終童
賈生
 



蕭何
曹參
魏相

 
辛慶忌
李廣

霍去病
 
蘇武
張騫
 
(상구성)
陸賈
 
司馬相如
王褒
揚雄
 
司馬遷
劉向
劉歆
 
趙廣漢
張敞
王遵, 王駿王章
 
于定國
張釋之
 
汲黯
鄭當時
 
終軍
賈誼
 
王音
王鳳
弘恭
石顯

 

7.    반악의 서정부에서 언급한 인물 리스트와 한서 인물 리스트 비교

한서(漢書) 公孫弘卜式兒寬傳 서정부 투후 단락 한서와 서정부에서 겹친 인물 리스트
公孫弘
卜式
兒寬
枚生
主父(主父)
桑弘羊

董仲舒
石建
石慶
汲黯
韓安國
鄭當時
趙禹
張湯
司馬遷
司馬相如
東方朔
枚皋
嚴助
朱買臣
唐都
洛下閎
李延年
桑弘羊
張騫
蘇武
霍去病
霍光
金日
孝宣(선제)
蕭望之
梁丘賀
夏侯勝
韋玄成
嚴彭祖
尹更始
劉向
王褒
張安世
趙充國
魏相
丙吉
于定國
杜延年
黃霸
王成
龔遂
鄭弘
韓延壽
尹翁歸
趙廣漢
嚴延年
張敞










 

陸賈
 
長卿


子長

駿


三王
定國
釋之
汲長孺
鄭當時
終童
賈生
 




 
 
魏相
丙吉
張騫
蘇武

霍去病
司馬遷
司馬相如
趙廣漢
劉向
王褒
于定國
汲黯
鄭當時
張敞
 
54 33 15

 

8.    서정부 거론 인물군 부류

반악의 서정부 투후지충효순심 단락 인물 유형
懷乎  
之相
之將
銜使 屬國
震遠 博望
조정의 승상=> 어질고 유능한 명 재상,
군대 장군=> 혁혁한 공을 세운 명 장군들
蘇武=>포로 억류 후 금의환향
張騫=>포로 억류 후 금의환향
敷而彝倫
而皇威暢
 
   
臨危而智勇奮
投命而高節亮
 

之忠孝淳深
陸賈 之優游宴喜
=商丘成
之忠孝淳深
陸賈 之優游宴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의 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와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있고, 아까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곧은 절개를 드러낸 충신이 있다. 이러한 사람 가운데
충성과 효성의 마음이 돈독했던 투후가 있고,
물러날 때를 알고서 조용히 낙향하여 말년까지 유유자적 은일의 삶을 누렸던 육가가 있다. 육가와 투후는 용분(勇奮)과 고절(高節)이라는 뜻을 공유하는 인물이다.
한편 육가는 정권이 바뀜에 따라 물러나 수명을 다해 수종을 했고 투후는 자결을 했다는 점에서 서로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투후 김일제는 병들어 세상을 떳던 인물로서 자결을 택한 상구성과는 그 삶의 궤적이 구별된다.
長卿 之文 司馬相如玉褒, 揚雄 => 문학가
子長 駿 之史 司馬遷劉向劉歆 => 역사학자
三王 之尹京 趙廣漢張敞王遵王駿王章 => 경조윤 행정가
定國 釋之 之聽理 于定國張釋之 => 명 재판관
汲長孺 之正直 汲黯 => 강직한 선비
鄭當時 之推士 鄭當時 => 인재 중시 추천
終童 山東 之英妙
賈生 洛陽 之才子
終軍 => 전쟁에 참가해서 요절한 젊은 인재
賈誼 => 요절한 젊은 인재
飛翠緌 拖鳴玉
以出入禁門者 衆矣
번쩍번쩍 빛나는 비단옷 휘날리며 구슬옥을 단 신발 걸음소리 쩌렁쩌렁 울려가며 궁정을 드나든 조정 고관대신들이 다수이다.
被髮左 奮迅泥滓 이들 가운데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즉 상투를 쓰지 않고) 옷깃을 왼쪽 옆으로 접혀 입고 다니는 풍습의 이적의 나라에 들어갔다 치욕을 견디고 일어선 사람도 있고,
(소무와 장건이 이에 해당한다.)
 
 被髮左 奮迅泥滓(피발좌임 분신니재)-이 구절에 대한 추홍희 번역해석이 이선의 주해와는 가장 크게 대비된다. 추홍희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정부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는 당나라 때의 이선의 주해가 이 부분에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대신 추홍희의 해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내기 위해서이다.
從容傅會 望表知里 또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교분을 쌓고 의기투합하거나 돌아가는 판세를 미리 꿰뚫어 보고 기회를 포착해서 처세에 능통한 사람도 있다.
 
(육가)
著顯績而嬰時戮 또 한편으론 현저하게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일찍 꺾여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광한, 종동)
有大才而無貴仕 재주와 능력이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게 높은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가의)

風于上列
令聞而不已
想珮聲之遺響
若鏗鏘之在耳
하지만 앞서 열거한 고관들 모두는 맑고 신선한 바람을 위에서부터 먼저 일으키고 불러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평판이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인물들이다. 바람이 불면 허리에 찬 옥구슬 소리가 절조있고 품격 높음을 은은히 울려주듯이, 아름답고 고운 악기 소리가 귓가에 명쾌하게 들려오듯이 말이다. 

之任勢也

熏灼四方 震耀都鄙

 
而死之日 曾不得與夫十余公之徒隸齒

王音王鳳弘恭石顯
그런데 보라.
왕음, 왕봉, 공현, 석현 등 이런 외척 환관세력들이 득세하던 시절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방팔방으로 서울과 시골은 물론 전국의 방방곡곡 온천지를 울릴 듯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이 죽고난 후에는 앞서 열거한 십여명의 이름난 명망가 반열에 한 명도 끼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을!
()才難 不其然乎 (사람이 죽고 나서) 훌륭한 명성을 얻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