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뒷면 제14행 인각사와 운대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丹靑 단청
회남자에 丹靑膠漆(단청교칠)의 표현이 나오고 사마상여의 자허부에 丹靑(단청)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다시피, 단(丹)은 丹沙, 丹砂, 朱砂라는 말에 표현되듯이 붉은 색칠을 하는 단사를 뜻하고 청(靑)은 青雘(청확)의 줄임말 푸른 청색의 염료를 말한다. 說文(설문)에 푸른 청색은 동방색, 붉은 적색은 남방색이다. 청색과 적색의 색깔 color의 배분 배치 효과를 이용하여 건물 장식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단청이라 말한다.
왕연수의 魯靈光殿賦(노영광전부)에서 "圖畫天地 品類群生 雜物奇怪 山神海靈 寫載其狀 托之丹青”으로 표현했는데,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인간 세상의 활동을 그려 놓고, 온갖 종류의 사물, 평범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각종각양의 것들, 산신과 바다신령의 형상들을 그림으로 묘사하여 놓았는데 이러한 그림들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단청으로 단장하니 더욱 돋보인다.
육사형(261-303)이 말하길, “丹青之興 比雅頌之述作 美大業之馨香 宣物莫大于言 存形莫善于画”. 이 구절은, “단청의 묘미는 음악으로 치면 아악-음악 연주에 가락을 넣는 것, 송(頌)-연주에 춤을 곁들이는 것-의 작품, 큰 일을 아름답게 해주는 향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물을 설명하려고 할 때 말보다 더 대단한 것은 없고, 실체 표현을 남기려 할 때 그림 도화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이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단청은 곧 그림 도화를 말한다.
송(頌)은 원조 시경을 거슬려 올라가면 원래 선조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노래로 부를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아(雅)는 사방의 풍속을 교정하고자 하는 의미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육사형이 단청을 음악에 비유하고 있는데, 푸른 색과 붉은 색은 이와 같이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청색조와 적조의 의미 차이를 상기하라.
사람들이 지식의 체계를 완성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써 왕조의 교체 시기에 따라 달라졌는데, 하우시대엔 서경을 반복해서 읽는 것-誦, 은나라 상나라 시대엔 찬송하는 것-頌, 주나라 시대엔 시경(詩經)을 입안에서 흥얼거리며 암송하는 것-詠을 우위로 치고 강조했던 반면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리듬을 따라 직접 짓는 것-韻을 보다 숭상했다.
麟閣 인각사
麟閣(인각)은 한나라 때 미앙궁 궁전내에 세워졌던 국가 유공 최고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제사를 기리는 麒麟閣(기린각)이라는 전각에서 유래했다. 麒麟閣은 한나라 선제가 BC 51년 두연년 소무 장안세 한증 조충국 위상 병길 유덕 양구하 소망지 곽광 11명의 공신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그 사당 이름이다. 이 중 곽광은 그 후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고 3족이 멸족되었는데, 이를 반영하여 “자치통감”에서는 곽광의 이름마저 지워지게 된다. 기린각에 11명의 공신들이 모셔졌다면, 후한 광무제는 28명의 장군들의 초상화를 걸어둔 전각 운대(雲臺)를 건립하였다.
이백의 새하곡(塞下曲)에 “功成畵麟閣”이라는 표현에서 인각이 등장하는데, 신라에서도 기린각 공신전과 같은 성격으로 국가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제사를 지낸 인각사가 존재했음은 거의 분명하다. 다만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나는 일연 승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는 곳인 경북 군위의 인각사지는 틀림없이 인각사(麟閣祠)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洽於麟閣 흡어인각
흡(洽)은 잘 어울린다는 뜻의 낱말이니, 洽於麟閣(흡어린각) 즉 단청으로 그린 그의 초상화는 국가 최고 공신 사당-인각사-에 걸려 있을 만하다 즉 그의 초상화는 인각사에 마땅히 걸려 있어야 하고 그만큼 국가 최고 공신 영웅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麟角(인각)
麟角(인각)은 기린의 뿔-麒麟之角을 지칭한다. 조선 초기 유명한 정인지라는 이름의 재상이 있었는데, 시경에 “麟之趾” 싯구에 “麟之角 振振公族” 구절이 나온다. 이 시경의 의미를 따라서, 麟角(인각)은 종실제후 귀족의 번창번성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꼭 종실번족이 아니라도 훌륭한 인재나 귀한 명품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공자의 서수획린의 의미처럼 “獲麟角” 기린의 뿔을 획득한 자는 불사의 명약을 얻은 것이 아닐까? 기린뿔은 상아이빨처럼 고래이빨만큼 오래가서일까? 아니면 분가루로 만들어서 또는 녹용처럼 잘게 잘라서 불사약으로 쓰여서일까? 인각(麟角)의 비유적인 의미에 문무왕의 이름이 적합하다.
竹帛(죽백)
죽백(竹帛)의 죽(竹)은 죽간(竹簡)을 의미한다. 죽간은 대나무를 쪼개어 대나무 막대기 거기에다 글을 새겨넣고 이를 실로 묶고 말아서 마치 책처럼 썼다. 대나무 막대기에다 글을 새겼기에 竹簡(죽간)이라고 말했다. 죽백(竹帛)의 백(帛)은 포백 즉 비단을 뜻한다. 비단 견(絹) 견사라는 말과 같다. 비단에 먹으로 글자를 썼다.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종이서적이 죽백을 대체하게 되었는 바 죽백(竹帛)은 종이책 서적을 가르키는 말이다. 삼국지 유비선주전에 “上可以匡主濟民 成五霸之業 下可以割地守境 書功於竹帛”(상가이광주제민 성오패지업 하가이할지수경 서공어죽백)의 표현이 나온다.
누에고치 실로 만드는 비단은 매우 귀하고 비싸서 함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비단은 사자의 무덤 속에 넣는 명정으로 쓰였고, 그만큼 귀하게 여겼다. 대나무도 오래 가는 재료이지만 글을 새기는 공간이 협소하기에 많은 글자를 쓰기에는 불편함이 따랐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죽간과 비단에다 글을 썼는데 종이 또한 양초처럼 매우 비쌌기에 글을 쓰는데 오늘날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글을 배울 때는 땅이나 모래사장에 글을 쓰고 또 지우는 식으로 이용했는데 이런 인류의 글의 배경으로 인해서 강가나 해안가 모래사장에 쓰는 글은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여겼다. 대나무와 비단에 쓰는 글은 함부로 쓸 수 없고 그만큼 값진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므로 竹帛(죽백)이라 말하면 “역사”를 비유적으로 의미한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통일영웅이 문무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毀於芸臺 훼어운대
毀(훼)는 훼손되다, 닳다, 대미지(damage)를 입다의 뜻이니, 毀於芸臺(훼어운대)는 책-죽백은 ‘운대에서 닳고 헐었다’의 뜻이다. 왜 책이 운대에서 닳고 헐게 되는가? 운대는 왕립도서관을 뜻하는 말이니 도서관에서 책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 책이 도서관에서 닳고 헐게 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요사이는 인쇄기술이 크게 발전해서 왠만큼 책을 많이 빌려 본다 하더라도 책이 닳고 헐 정도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지 몰라도 예전의 인쇄 기술을 고려할 때 도서관에 있는 책이 닳고 허는 경우는 흔히 일어났다. 문무대왕에 관한 영웅전이 도서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빌려 보는 최고 인기를 끌어서 책이 훼손될 정도가 되었다는 최고의 영웅 칭송의 표현인 것이다.
芸臺 운대
중앙행정집행기구 중 尚書省(상서성)을 당나라 때에 文昌臺(문창대), 都臺(도대), 中臺(중대)로 개칭하였고, 秘書省(비서성)을 蘭臺(란대), 麟臺(린대)로 개칭하였다. 芸臺(운대)는 서적을 장서 보관하는 곳 조선시대 같으면 실록을 보관한 4대산 서고와 같은 장서 기능을 맡은 기관을 말하는데 당나라 시대엔 비서성에서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정부 문서를 다루는 기관이 비서성이었으니 당연한 역할이다. 국학소경이 비문첫행에 등장하기 때문에, 신라시대에 운대-왕립 도서관이 존재했음은 불문가지이다.
왜 사람들은 노란 유채꽃을 보면 열광하고 사진을 찍으려들까? 유채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봄의 전령사는 핑크빛 살구꽃인가? 노란 유채꽃인가? 유채꽃의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어원을 보면 이해하다시피,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접할 때는 머리가 쾅!하고 부딪히는 빅뱅!의 경험을 하지 않든가? 그 같은 충격적 세계가 새롭게 펼쳐지는 지적 전율을 이 책의 독자들이 느꼈으면 싶다.
왜 문서와 서적을 보관하고 다루는 기관을 蕓臺(운대)라고 지칭하였을까? 초학기(初學記)에 “蕓臺香辟紙魚蠹 故藏書臺稱蕓臺”(운대향피지어두 고장서대칭운대)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무에 기름칠을 하는 까닭은 썩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 있다. 나무를 갉아 파먹는 좀벌레를 막기 위해서여다. 유채(油菜)를 蕓薹(운대)라고 불렀기 때문인데, 서적 보관을 하는 도서관에서 최대의 적은 책-종이 재질은 나무이니까-을 갉아 먹는 좀벌레이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향수 같은 냄새가 나는데 그 이유는 책을 갉아먹는 좀벌레를 막기 위해서 유채를 뿌려놓기 때문이다. 책에 기름칠을 하면 책의 보존 수명이 연장된다. 또 蕓(운) 글자가 고대에선 耘(운) 글자 즉 除草(제초), 김매다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마치 풀베기와도 같다. 그와 같이 사람의 머릿속이 녹슬고 황폐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풀을 베지 않으면 황무지가 되고 만다. 따라서 책읽기를 중단하는 순간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이 구절의 뜻은, 문무왕의 초상화는 마땅히 인각사에 걸려 있고 그렇게 추앙받을 것이며, 또 문무왕 영웅전기는 왕실 도서관에서 열람이 자주 되어서 책이 닳고 헤어질 정도로 유명해 질 것이라는 미래 예측 선언이다. 당 장언원의 “歷代名畫記”(역대명화기) 敘畫之源流(서화지원류) 글에 이와 같은 의미의 구절이 나온다: “以忠以孝 盡在於雲台 有烈有勛 皆登於麟閣”.
제14행 요약
丹靑洽於麟閣 | 문무왕의 초상화는 마땅히 인각사에 걸려 있고 |
竹帛毀於芸臺 | 문무왕 영웅전기는 왕실 도서관에서 열람이 자주 되어서 책이 닳고 헤어질 정도로 유명해 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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