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이론의 등장
규율과 통제 사회 파놉티콘 모형
“파놉티콘(Panopticon)”(pan모두+opticon보다)은 벤담(1748-1832)이 제안한 (1791년 출판) 원형 감옥의 건축 구조 양식이었다.
<옆 사진: 벤담의 원형 감옥 설계도>1832년 사망한 제러미 벤담은 그의 유언[1]에 따라 두상은 방부제로 처리되어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져 유리 상자 속에 넣어 영구 보전되고 있다. (옆 사진). 1850년에 런던대학(UCL)으로 옮겨져 영구 보존되어 오고 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매년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2] |
파놉티콘은 수용자 각자는 각자의 독방에 수용되어 서로 격리되어 있는데 감시자는 언제든지 이들을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중앙의 통제자가 항상 각 개인들을 감시할 수 있다. 감옥의 죄수들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반면 중앙의 감시를 볼 수는 없는 구조다. 벤담이 파놉티콘 구조를 제안한 이유는 죄수들이 전권을 가진 중앙의 감시자가 자신들을 항상 예의 주시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자신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통제에 잘 따를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였다. 감시자가 인간인 이상 전지전능하게 모든 것을 감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신 감시자는 그의 편재성(omnipresence)을 죄수들이 끊임없이 확인하게끔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수용자에게 감사자가 항상 지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주지시키는 도구 하나는 감시탑의 조명시설 즉 역광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벤담은 설명했다. 죄수를 바라보는 중앙의 감시자는모든 죄수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visible) 관계에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를 알 수 없게끔 놓여 있는 (unverifiable) 관계에서는 스스로의 규율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의 불균형은 권력 장치가 된다. 소수의 감시자와 다수의 수용자 사이에 비대칭적인 시선의 힘을 통해서 효율적인 감시를 달성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 수용자의 변화된 태도를 이끌어내는 훈육의 결과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파놉티콘이 뛰어난 기능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파놉테스(panoptes)와 같이, 소수의 통제자로써 그 많은 감옥의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중앙 감시 장치(central inspection principle)”의 효율성에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견한 “빅 브러더” 감시 체제 사회에 연결된다.
파놉티콘은 공리주의 철학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수감자의 태도와 그 결과를 더욱 중시하는 사고에 기반한다. 이것은 일방적인 명령으로 통제하려는 대륙법의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법은 쌍방형으로 움직인다는 사고에 기초하는 것이다. 벤담은 죄수가 스스로 노동을 자발적 결심하고 참여할 것이라는 자발적 노동을 기대했고, 독방에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덜 고독감을 느끼고 또 감옥의 번잡함이나 탈주의 우려를 덜해주는 등 당대의 죄수와 징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개선책의 측면에서 타놉티콘 구조를 적극 주장했다. 푸코는 대륙국가의 잔혹한 징벌 체계를 자세히 설명했는데, 사실 벤담의 파놉티콘은 수감자에게 잔혹한 체벌을 피하고 대신 수감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파놉티콘 구조를 고안해냈다.
푸코는 권력은 강제력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권력에서뿐만 아니라 형성된 관계(network)에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권력의 불균형 관계에 놓여 있는 예컨대 학교에서의 교사-학생, 군대에서의 장교-병사, 병원에서 의사-환자 등 사회 전반에 적용하여 감시와 통제의 일반적인 권력 이론을 도출해냈다.[3] “파놉티콘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든지 간에, 일률적인 권력 효과를 생성해 내는 아주 훌륭한 장치이다”[4]고 푸코는 파악하고, 비인격화된 보이지 않는 규율 권력 이론을 제시했다.[5]
시대 변화, 신사고, 새로운 방법론
프리스틀리는 산업 혁명을 리드한 기라성 같은 특출한 인물 가운데 프리스틀리는 정치 종교 역사 교육 기술 화학 많은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대인물이었다. 프리스틀리는 성경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혁신적인 사회를 열어갈 기초를 쌓게 되었다. 그는 성경의 언어는 비유법을 많이 쓰고 있으므로 성경을 축자적 문자해석에 머무르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투키디데스가 파악한 것과 같이, 인간 세상은 다툼과 분쟁이 끊임없이 전개된다는 것 즉 인간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노력했다. 에드워즈는 성경을 그 의미하는 바대로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제적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말씀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청교도 목사이었다. 에드워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신약성경 말씀도 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을 사랑해야 함(self-love)을 가르쳐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즉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Self-Love)줄 알아야 되는데 이 원리는 이기심의 본질(selfishness)과 통한다.
에드워즈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킹제임스성경 번역에서와 같이 “자선 Charity”이 가장 중요한 기독교인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6] 에드워즈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자선의 의무”에서 인간의 자선에 대한 ‘경향성(tendency, habit)’을 주장했다. 경향성은 성향(disposition) 원리(principle) 기질(temper) 마음의 틀(frame of mind)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단어들은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에서 모두 나타난다. 경향성이 있다는 말은 오늘날의 용어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와 같이 인간의 길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예정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의지는 자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의지는 인간이 ‘바라는 대로(will)’‘자유로운 것이 아니라(not free to will)’, ‘비자발적인(involuntary)’것으로 파악했다.
다윈의 비글호 탐사 항해와 “바틀비 스토리”에 미친 영향–하나님의 사명과 자연 법칙
<“비글호 탐사 항해”에 실린 삽화> |
진화론의 대명사 찰스 다원은 영국의 항로 개척을 위한 해안 측량 임무를 맡은 탐사선 비글(Beagle)호에 승선하여 1831년부터 1836년 항해기간 동안 많은 기록을 남겼다. 비글호 선장은 이전에 아프리카 원주민을 영국으로 강제로 데려다가 2-3년간의 적절한 시킨 후 다시 고국으로 돌려 보내 정착시켜 선교 임무를 완성하려고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당시 잡혀 온 원주민 4명에게 각각 보트 메모리(Boat Memory), 요크 민스터(York Minster), 푸에고 바스켓(Fuegia Basket), 지미 버튼(Jemmy Button) 이렇게 영국식 새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들은 영국에서 영어, 기독교 교리, 농사법을 배운 후 병으로 사망한 메모리를 제외한 3명은 이번 항해에 비글호에 승선하여 선교사와 함께 고국으로 귀향하였다. |
다윈이 비글호에서 처음으로 본 원주민에 대한 관찰 기록들은 간결한 문체이지만 문학적 표현으로 봐도 훌륭한 수준이었다. 다윈은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빈곤한 원주민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동정을 느끼기도 했다. 다윈은 1833년 다음은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내가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었던 목불인견의 정말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 그 가엾은 사람들은 발육이 정체된 상태에 있었고, 흉측한 얼굴은 하얀 회칠로 장식하고 있었고, 피부는 더러웠고 기름때가 흘렀으며,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뒤엉켜져 있었으며, 목소리는 귀에 거슬렸고, 몸짓은 거칠었다.”
”원주민들을 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여 정착시키려는 (To settle these natives in their own country)” 생각이 비글호 함장의 항해에 나서게 된 동기였다고 말했는데,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고국으로 돌아가 재정착하기를 권하는 내용 즉“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렇게 하겠으며, 특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거기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그의 여비를 내가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고향 집에 돌아간 후 언제라도 무슨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편지 한 통 보내주고 그러면 틀림없이 내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런 충고도 같은 맥락이다.
주인과 하인 관계 Master-Servant
영미인의 전통적인 “주인과 하인(Master-Servant)”의 관계를 지배하는 기본적 의식 구조는 트러스트 법 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인은 하인의 서비스를 받는 대신 하인의 복지를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단순한 계약 관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고용관계는 “기본적인 상호 신뢰(mutual trust and confidence)”에 기초한 “묵시적 의무(implied obligation)”를 서로 부담하는 기본적 계약 관계 이상의 관계를 갖게 된다. 봉건적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동등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부모-자식의 관계와 같이 트러스트 관계에 가깝다. 트러스트 관계는 특수적 지위에서 생기는 법률적 관계이다. 오늘날의 고용관계는 단순한 계약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또는 구조조정시 자동 해고가 가능하다는 해고 유연성(doctrine of constructive dismissal)의 노동정책이 등장한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진화론의 탄생 과정
비글호의 항해와 다윈의 항해 일지 기록(이들 3명에 대한 관찰 기록을 포함한)은 당시 뉴스 기사로도 많이 알려졌다. 그 후 1839년에 함장 피츠로이 그리고 다윈은 “영국 해군 함정 비글호의 측량 항해에 관한 이야기 (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of His Majesty's Ships Adventure and Beagle between the years 1826 and 1836, describing their examination of the southern shores of South America, and the Beagle's circumnavigation of the globe)” (“비글호의 탐사 항해 (Voyages of the Adventure and Beagle)”으로 통칭)을 출간하였다.
비글호의 항해 주목적은 영국의 항로 개척을 위한 남미대륙 해안에 대한 해로 탐사와 행해도 작성에 있었다. 비글호는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까지 항해를 하였고 다윈의 갈라파고스 섬 탐사는 진화론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비글호에 동승한 선교사들의 사명은 해군의 임무와는 달리 선교가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윈의 동승과 그의 관찰 기록은 부수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부수적인 동반 임무와 관찰이 “진화론”이라는 천지개벽의 새로운 이론을 가져올 줄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 책의 출간 때도 해도 진화론은 확실한 체계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다만 암시되어 있었을 뿐이다. 세상을 뒤흔들게 된 다윈의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책 제목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은 1859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1853년이전에도 진화론의 핵심 사고를 이루는 사상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는 체임버스의 책 “창조가 자연 역사라는 증거 추적 (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은 1844년에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비글호의 탐사 항해”의 미국판은 1846년 Harper의 “New Miscellany”에도 실렸다.
[1]벤담은 자기 시신을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 해부 보존하여 사후 1백년후에 자기 모습 그대로의 “Auto Icon”을 전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벤담의 구체적 해부 지시를 명시한 벤담의 유언장의 내용은 영국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읽어볼 수 있다. http://discovery.nationalarchives.gov.uk/details/r/D7863973.
[2] 벤담의 두상이 방부처리되어 밀랍인형으로 영구 보존되어 있는 런던 대학 UCL의 벤담 자료집>http://www.ucl.ac.uk/Bentham-Project/who/panopticon; http://www.ucl.ac.uk/Bentham-Project/who/autoicon.
[3]교수와 학생과의 관계를 갑-을간의 권력관계로 표현하는 한겨레 신문 기사(2014.12.7)를 인터뷰기사를 인용한다. “지도교수는 대학원생 입장에서 중요한 권한을 다 갖고 있다. 졸업 권한을 갖고 있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얼마나 줄 것인지도 결정한다. 모든 결정이 지도교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어 '갑질'을 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 대학교수와 학생은 직장 상사와 부하보다도 더 철저한 갑을 관계이[다]. … 직장은 이직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대학은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취업에 반영되는 학점은 교수의 고유권한이며, 만약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교수의 손에 평생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The Panopticon is a marvelous machine which, whatever use one may wish to put it to, produces homogeneous effects of power.”
[5]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Prison”, 1977; “Postscript on the Societies of Control”, 1992.
[6] “In these words we observe that something is spoken of as of special importance, and as peculiarly essential in Christians, which the apostle calls charity. And this charity, we find, is abundantly insisted on in the New Testament by Christ and His apostles—more insisted on, indeed, than any other virtue.”, “Charity and Its Fruits”,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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