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철론1 투후 상구성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이유 투후 김일제는 잘 알려진 반면 투후 상구성은 잘 알려지지 못한 이유 투후 상구성은 대불경죄로 자결한 사람이다. 상구성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측이었으므로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서에 그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무고지화 여태자 반란을 진압했던 승상 유굴리는 삼족이 멸문당하고, 소문은 광교 다리에서 화형당하고, 투후 상구성은 대불경죄로 자결하고, 망통, 망하라, 경건 등은 BC 89년 반란을 공모한 죄로 요참형으로 처형되었다. 한무제가 죽은 뒤, 조정권력은 곽광 김일제 상홍양 상관걸의 탁고대신 사인방이 차지하고 득세하게 되었다. 투후 상구성은 사서에 단독적 전기가 실려 있지 않고, 반란죄로 삼족이 멸한 유굴리 전기 속에 몇 개 사실이 간단히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투후 김일제의 전기는 곽광과 함께 한서.. 2025. 4.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