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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주해서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슨 뜻인가

by 문무대왕 2025. 5. 23.

3.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슨 뜻인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상대방을 해치고 싶은 범죄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신약 성경의 황금률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구약의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인간의 원초적인 분노 감정이 내게도 치밀어 올라 바틀비를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원초적 분노라는 놈과 맞서 싸우고 그 놈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글쎄다.  나는 그저 신성한 강제명령-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는 신약의 말씀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담의 자손인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이었다.”“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은 예수의 산상수훈의 설교에서 가르친 신의 명령(divine injunction)”을 말한다.  이를 보통사람들은 대개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부른다.”

 

황금률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 7:12).[1]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요한 13:34).[2]

 

이 실천계명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계명이기도 하다: “원수를 갚겠다고 분을 품지 말고, 동포 누구에게라도 앙심을 품지 말고, 대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내가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니라.”[3] (레위기 19:18).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하기의 범위가 같은 동포에 한정되었지만 이제는 이방인을 포함하여 인류 전체로 확대되었고, 인류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의 측면에서 예수의 새로운 실천윤리 지침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작은 범위내에서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실천윤리는 남들이 싫어할 일은 남들에게 행하지 말라 (예컨대 침묵) 소극적 의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신 적극적으로 나설 의무의 실천윤리를 강조하였다는 측면에서 새롭고도 혁명적인 법률해석론에 해당하였다.  혁명적이라는 말은 과거에 없는 새로운 질서를 낳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예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황금률이라고 일컫게 된 시기는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부터라고 한다.  종교 개혁은 새로운 성경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이는 네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지? (if we imagine ourselves in someone else's shoes)” 재차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Treat others only as you consent to being treated in the same situation."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황금률과 동일한 뜻은 아니지만, “자신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자신도 남을 대접하라(Treat others as you want to be treated)"는 황금률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따라서 남을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타당한 원칙이 된다.

 

Wattles황금률의 구체적 단계를 다음과 같이 6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재음미해 보자.

 

① 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하는 대로 네가 남에게 먼저 행하라

② 남이 나의 감정을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남의 감정을 배려해 주라.

③ 너는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네 자신과 똑같은 이성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대하라.

④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길 원하는 대로 네가 형제애를 남에게 행하라

⑤ 남이 나에게 대우해주기 원하는 대로 네가 도덕 명령 원칙에 입각하여 남을 대하라.

⑥ 나에게 객관적인 양심의 원칙이 적용되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그 원칙을 적용하라.”[4]

 

 

황금률(Golden Rule), 상호주의(reciprocity), 일관성 원칙(consistency principle)

 

새로운실천계명(new commandment)나 자신만이 아니라상대방과의관계(relationship)’를 깨닫는 것을 필요로 한다.  상호주의서로 주고 받는(reciprocal) 관계또는 오고 가는쌍방형(two-way)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주고 받는(give-and-take)’ 말로 쉽게 표현되는데 여기서 나와 네가 똑같이 동일하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사람은양쪽 다 똑같이(both sides equally)’ 중요한 존재라는 것 즉 사람은 모두가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JS Mill)은 그의공리주의(Utilitarianism)”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의 관계에 대해, 공리주의는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고 악의 없는 제3자가 갖고 있는 공정성을 엄격하게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공리주의 실천윤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나사렛 예수가 말한황금률로써 온전히 설명된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먼저 행하라그리고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의무 원칙은 공리주의 실천윤리원칙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다.”[5]

 

“나와 너(I and you)”는 나는 너가 될 수 있고 너는 내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는 서로 상호 교환 도치될 수 있는 관계이므로 나는 너와 똑같은 가치를 갖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서로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be treated equally)”.  황금률은 평등적인 관계가 분명하게 강조된다.

 

또 황금률은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일관성의 원칙과 같은 개념이다.  무게나 길이를 재는 저울과 잣대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현령비현령 또는 고무줄 잣대같이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잣대로써의 기능은 상실되고 만다. 

 

공정성은 한 번의 판단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인간의 약점은 사람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초지일관의 마음을 지속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에 있다.  이런 일관성의 가치는 인간의 본성은 장년이 되기 전까지는 경험칙으로써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한 순간은 미덕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서 일관성(consistency)’을 갖추어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공정성의 평가는 일관성을 요구한다.  만리장성이나 로마의 성벽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와 같이 사람의 도덕성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은 판단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에서 얻어지는(earned)’ 개념이기 때문에 공정한 행위가 오래 지속되고 나서야 확보된다.[6]

 

황금률에 대한 오해 3가지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

 

우리나라에서는황금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달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황금률을 이해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옳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윤리 도덕의 기초가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적인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자신의 내적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7]  하지만 이런 해석은 궁극적으로의도나 목적이 선하기만 하면 설령 결과가 잘못되어도 책임이 면해진다는 결론을 가져오기 쉽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기는 행위를 낳는 요인이지만, 인간의 삶은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원래 설계하고 의도하고 계획한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아담 스미스의 통찰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룬 결과로써 판단되지, 의도한 계획으로써 판단되지 않는다는 이런 사실은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서 존재해온 불평거리였으며 또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덕목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8]

 

분명하게 황금률의 실천윤리는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에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행동 윤리 원칙이다.  유명한 칸트의 말을 다시 보자.  “Act so that you treat humanity, whether in your own person or in that of another, always as an end and never as a means only. (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너 자신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지 간에 구분함이 없이, 항상 목적으로 여겨야 하고 결코 수단으로는 여기지 말아야 된다).”[9]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개의 번역은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을 뜻하는 ‘humanity’인간성’, ‘인격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원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거나 개념에 대해 잘못 오해를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은 제3자적 객관적인 양심인 신의 이성에 의존하는 개념이지, 사람들 각자 편할 대로의 자신의 내적 명령(private consciences)”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실천명령을 자신의 내적 명령이라고 이해한다면 황금률이 의미하는 너와 내가 똑같이 취급된다평등(equality)’의 개념이 그만 사라지고 마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판정자는 자기자신인가?

 

도덕적 실천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심판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판정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는 객관적이고 제3자적 입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이지, 판정자가 자신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들이 흔히 법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양심과는 어긋난다는 점을 드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런 생각은 국법과는 다르게 별도의 법체계가 있는 듯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홉스의 설명을 잠시 살펴 보자.  법은 국민이 세운 국가가 정한다.  선악의 척도를 판정하는 사람은 법을 만드는 입법부 의원이고 그 법을 해석하는 법관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공무원이다.  법은 개인 자신의 내적 명령에 따라 판단되는 개념이 아니다.  만약 법의 명령에 대해 복종하거나 거부하는 기준이 자신의 내적 명령에 따른다고 여기면 그건 잘못이고, 자기의 내적 명령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그 법을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양심과 판단은 각각 다른 개념인가?

 

자기 자신이 선악의 판정자라는 사고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모두 죄악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존재하고, 또 양심과 판단은 서로 다르다는 말인가?  양심과 판단은 다른 것이 아니다. 또 사람의 판단은 실수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양심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행태 (진화) 심리학이 밝혀내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마저 속이는 경우도 발견된다.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양심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섹스 행위를 자기 양심상 허용되지 않는 죄악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양심에 반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성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금하는 국법이 있다면 어느 것이 양심인가?  이 경우 자기 자신의 내적 양심에 반하는 모든 행위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국가에서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은 사람의 동의(consent)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각자 개인 의견(private opinions)과 각자의 양심(private consciences)은 실로 다양하다.  그래서 서로의 동의가 중요하고 합의는 국가 사회의 기초가 된다.  양심은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제3자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황금률이라고 말하는가? 

 

전체적으로 as a whole, 총체적 입장을 고려

 

황금률이란 첫 번째 그냥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결과에 미칠영향까지 ‘gauge their actions’ 다시 한번 재고하고 재차(secondary)’ ‘따져보는것을 말한다.  한 문장안에서는 해석을 하는데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체 문장을 통틀어 보면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런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in order to not reach an absurd decision) ‘개별적인의미는 전체적이고 총체적인(as a whole)’ 의미에 양보해야 한다.  판례를 인용하여 재정리하면, 개별적으로 보면 틀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터무니없는(absurdity)’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므로 개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황금률이라고 불렀다.[10] [11]

 

2차적 대안을 제시하는 해석 원칙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 22:36-40).[12]

 

황금률은 제1의 원칙을 거부하고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 글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단어가 나타내는 일상적인 의미를 따라서 해석하는 문언주의(the literal rule)” 해석 원칙을 따르고, 거기에서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13]  나중에 생긴 형평법은 보통법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법원으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하는 마치 경제학의 보완재의 성격을 갖는다.  문언주의 해석 원칙이 확인된 때는 1584년의 헤이돈[14] 케이스에서였다.

 

황금률은 일관성의 유지가 관건

 

황금률은 수학의황금비율” (세로와 가로 비율 1:1.618을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의 존재와도 같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적용되는(always act in such a way)” “보편성을 갖는 법(universal law)”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황금률원래의(original)’ 것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등장한 2(secondary)’ 원칙이고, 기존의 주류에서 파생된(derivative)’ 원칙이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의 이론에 대항해서새로운 대안(alternative)’을 제시하는 원칙이다.  황금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2]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3]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anyone among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4] "Do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gratify you."

"Be considerate of others feelings as you want them to be considerate of your feelings."
"Treat others as persons of rational dignity like yourself."

"Extend brotherly or sisterly love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do to you."
"Treat others according to moral insight, as you would have others treat you."

"Do to others as God want you to do to them."
Wattles, “Levels of Meaning in the Golden Rule”, The Journal of Religious Ethics, Vol. 15, No. 1 (Spring, 1987), pp. 106-129.

[5] “As between his own happiness and that of others, utilitarianism requires him to be as strictly impartial as a disinterested and benevolent spectator. In the Golden Rule of Jesus of Nazareth, we read the complete spirit of the ethics of utility. ‘To do as you would be done by’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constitute the ideal perfection of the utilitarian morality".

[6] “The golden rule is best seen as a consistency principle. It doesn't replace regular moral norms. It isn't an infallible guide on which actions are right or wrong; it doesn't give all the answers. It only prescribes consistency -- that we not have our actions (toward another) be out of harmony with our desires (toward a reversed situation action). It tests our moral coherence. If we violate the golden rule, then we're violating the spirit of fairness and concern that lie at the heart of morality.”

[7] 도덕적 실천 명령.

[8] Everyone judges by the outcome, and not by the design—that has been the complaint down through the ages, and is the great discouragement of virtue.” (TMS II.3.1.)

[9] Kant, “Grounding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translated by James Ellington [1785] (1993). 3 ed. Hackett.p. 30.

[10] “the golden rule is right, vis, that we are to take the whole statute together, and construe it all together, giving the words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unless when so applied they produce an inconsistency, or an absurdity or inconvenience so great as to convince the Court that the intention could not have been to use them in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which though less proper, is one which the Court thinks the words will bear." River Wear Commissioners v Adamson.

[11]Grey v. Pearson (1857), 6 H.L. Cas. 61.

[12]“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13]“The literal rule should be used first, but if it results in absurdity, the grammatical and ordinary sense of the words may be modified, so as to avoid absurdity and inconsistency, but no further.” Grey v Pealson (1857)..

[14]Heydon's Case [1584] EWHC Exch J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