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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五蘊오온 개념과 반야심경 색증시공에 대한 설명-

by 문무대왕 2025. 4. 23.

五蘊오온 개념과 반야심경 색증시공에 대한 설명- 색色이 섹스의 의미로 쓰이게 된 연유에 대한 설명

 

색즉시공은 무슨 뜻인가? - 눈깔 솔깔 고깔 맛깔 숨깔의 오음성고와 8고의 개념적 이해

 

색의 의미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괴로움이 무엇인지 그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의 설명을 읽고 난 후에도 경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8는 인간으로서 태어난 기본적으로 갖는 생로병사의 4가지 괴로움에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본래적 성질에 의해서 4가지 괴로움이 더해진다는 8고의 고통을 가짐을 지칭하는 종교적 용어이다. 생로병사의 4고에다 추가되는 4가지 괴로움을 불가에서 말하기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이별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애별리고愛別離苦, 원수같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겪는 괴로움-원증회고怨憎會苦,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은데 그것을 성취하지 못해서 생기는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인간은 육체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육체적 감각 기관인 눈, , , , (色、聲、香、味、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별이 되는 앎의 체계인 색 수 상 행 식 色, 受、想、行、識 matter, sensation, perception, mental formations, consciousness 개성, 감수성, 연상, 정신 발달, 양심이란 것이 있어서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각의 맛을 탐하지만 그것을 취하지 못해서 생기는 고뇌(마음의 쓰라림)인 오음성고五陰盛苦 이렇게 여덟 가지 고통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음성고의 개념 설명을 좀더 부연해 본다.

오진의 色、聲、香、味、觸은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목구멍의 감각기관을 말한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이들을 눈깔(색깔), 솔깔(성깔), 고깔, 맛깔, 숨깔이라고 순수 우리말로 달리 말할 수 있다. 이를 좀더 설명해 보겠다.

色은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보기만 해도 탐욕이 일어날 정도 즉파블로프의 개처럼 사람의 눈을 자극하게 하며 군침이 저절로 도는 정도의 좋게 보이는 것을 말하며, 이는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처럼 눈에 보이는 모양이니눈깔또는색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색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삭신이 쑤신다의 표현이 있는데 여기의 삭신은 한자어색신 色身에서 변음 현상으로 생긴 말이고 따라서 그 뜻은온 몸이 쑤신다는 뜻이니 색은 그와 같이 물질적 육체를 뜻하는 말이다. 색의 개념을 영어로 육체적 물질적 자극 physical stimulus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맛있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자극이 먼저 진행되므로 영어 표현으로 delicious로 쓸 수 있다.

聲은 소리는 귀를 진동시켜서 분별하는 감각인데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벌써 군침이 도는표현과 같이 귀로 들어서 알게 되는 느낌인 오싹하거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정도를 말하며 영어로는 센세이션 sensation으로 표현되고, 香은 풍기는 냄새가 좋아 숨쉬는 코를 자극하여 입맛을 돋구는 정도를 말하며, 味는 혀의 감각으로 느끼게 되는 시고 짜고 쓰고 단 맛을 구별하는 정도를 의미하며, 觸은 목구멍을 넘어와 가슴과 온 몸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따스하거나 냉정한 정도의 자극적인 감정을 말하고 영어로는 touch라고 표현된다.

성깔은 어떤 사람을 두고한 성질한다고 말할 때 이는 그가 냄비를 내팽개칠 정도로 꽝하는 소리를 내며 괴팍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묘사하는 말이다. 한편, ‘솔잎새로 솔바람 소리 솔솔솔 들린다’, ‘바람 소리 솔 소리라는 우리말의 표현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소리로 줄여서 쓰인다. 따라서 소리모양을 나타내는성깔을 다른 말로솔깔이라고 쓸 수 있다.

 

고깔은 농악이나 승무 춤을 출 때 쓰는 고깔모자를 지칭할 때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삼각형 모양을 지칭한다. 삼각형은 콧모양 그대로이다. 따라서고깔은 풍기는 냄새를 맡는 후각기관인 코의 성질을 나타내는 말로 쓰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 참고로향을 피우다할 때 향香을 일본어로こう-로 발음한다. 향의 영어 표현은 aroma, fragrance, scent, smell, odor 등의 낱말들로 쓸 수 있다.

 

맛깔고소한 맛의 표현에서 알다시피, 입끝에 붙어 있는 혀끝으로 다져 보아입맛을 다시는정도의 차이를 말하며, 혀끝으로 신맛, 짠맛, 쓴맛, 단맛 등의 맛 taste을 구별할 수 있다. 영어 표현으로는 sapor가 쓰인다. 영어의 flavor풍기는 맛의 의미로써 코로 맡는 냄새와 혀로 맡는 맛의 두 성질이 결합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숨깔은 목구멍으로숨이 넘어간다는 표현에서 알다시피, 숨은 입김을 말하는데 입김은목구멍을 통해서 나오고 들이마신다. 숨깔은보드라운 숨결소리라는 표현에서 알다시피, 목구멍 속으로 접촉해 들어올 때 느끼는 감각의 모습이다. 부드럽고 차가운 것의 차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은 목구멍으로 삼켜봐서 느껴지는 것이므로 이를 숨깔이라고 말할 수 있다.

 

色、聲、香、味、觸 즉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목구멍의 감각기관은 그 발달 정도가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 또제눈에 안경’,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등의 여러 개념적 말이 등장하듯이, 눈깔 솔깔 고깔 맛깔 숨깔은 제한적인 것이어서 사람이나 물질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런 자기 감각의 제한적인 장애물을 벗어나야 진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색의 개념에 대해서는 불교의 논리의 하나인 색즉시공이 유명하다. 여기의 色의 의미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을 뜻한다. 어떤 물질은, 무지개 색깔처럼 쉽게 눈에 보이고 확인되는 것처럼, 그 형상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물질이 손에 잡히는 것처럼 쉽게 눈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파란 하늘은 누구나의 눈에 바로 보이듯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하늘은 하늘 가운데 존재하는 공기와 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우주는 무한하고 텅 비어 있는 여러 갤럭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무한 광활하지 않는가? 별빛이나 햇빛은 전기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다. 색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한 것이다. 사람의 육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몸이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지 않을까? 다만 보이지 않을 뿐!

 

오늘날 색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색향色鄕, 색골이라는 단어들처럼 섹스라는 의미로 자주 쓰여서 낱말의 의미의 전환과 쓰임새의 사용 빈도가 변했는데, 색을 섹스의 의미로 쓰는 것은 그 원래적 개념이 같기 때문이다.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기에 일단 보게 되면 더 빠져들게 되는 경향이나 성질이 있다. 서로 눈빛이 맞아 정욕이 생기고, 보고 나면 만지고 싶고, 하고 나면 더 하고 싶어지는, 한번 빠지면 더욱 빠져드는 탐욕의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색이라는 단어를 섹스의 의미로 자주 쓰게 된 것이다.

 

또 섹스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공허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 죽으면 그 인생이 허무한 것과 같이 탐욕 또한 그러한 것이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져서 아는 그것은 즉 눈깔(색깔), 솔깔(성깔), 고깔, 맛깔, 숨깔이 있는데, 이것들은 일단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성질 탐욕의 성질을 갖고 있다. 물질은 대개 성장 확대 팽창 증식되려는 속성을 갖는다. 나무가 자라듯, 피가 퍼지듯, 우주팽창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장 탐욕의 성질은 사람과 우주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된다.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진리가 찾아진다고 종교적으로 설명하지 않는가?

 

모든 물질이 갖고 있는 본성 그 내재적 진실은 본래부터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소리와도 같이 그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이라는 개념에 나는 동의한다. 색이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르키는 것이라면 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니 색과 공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색이 유형의 물질이라면 공은 무형의 그 어떤 것으로써 색과 공의 개념은 음과 양의 개념과 같다. 그런데 서로 대립되는 것인 음과 양이 서로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받으면 유전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공과 색은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다.  대립이 아니라 새로운 제3의 물질을 탄생하는 조화의 개념에 가깝지 않는가?  대칭적 조화라고나 할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색이 공이 되고 공이 색이 되는 이 법칙을 色法색법이라고 말한다. 하늘-空의 뜬구름은 땅-地의 얼음이 불-火에 녹아 흘러내린 물-水이 불에 의해 수증기로 증발하고 바람-風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서 생겨난 것이고, 이 구름은 비가 되어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 들어 있는 그 법칙들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유형의 물체가 아니다. 이와 같이 물이 무한히 반복하여 돌고 도는 과정처럼 우주만물 속의 움직이는 진리의 법칙이 존재할 터,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 육체-삭신 또한 영원히 무한 반복적으로 돌고 도는 상호 변화의 개념이 아니겠는가?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다시 부활하는 삶이지 아니한가? 섹스는 분명히 음양의 두 육체가 맞붙어서 하는 우리들 눈에 보이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서로 소유할 수가 없는 것이고, 또 그것은 귀에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통해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공空한 것이다. 또 섹스란 하고 나면 실체가 없는 허무한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인해서 아이가 생겨나고 인류가 존속되어 간다는 점에서 새로운 제3의 탄생을 가져오는 핵심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

 

이 우주 만물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 또한 보이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성질을 갖고 있다-이를 기독교에서의믿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히브리서의 11장 구절을 인용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믿음은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faith] is …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그리하여 서로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유전하고 변화 생성해 나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머리 속의 정신 세계에서의 작용도 눈 귀 코 입 목구멍을 통해서 느끼는 실체적 감각의 작동 현상과 같이 움직인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여기에 촛불이 있다. 촛불은 하나의 물체 즉 색 色이다. 우리들은 하얀 색깔의 물체-色인 촛불을 어떻게 촛불이라고 알게 되는가? 촛불이라는 물체를 먼저 눈으로 받아 본다-수 受. 그러면 눈은 이 감각을 뇌에다 전달하는데 뇌는 어떤 작동을 누를까? 그것과 비슷한 것을 연관시켜내는 상상적 생각의 회로를 거칠 것이다-상 想. 그런 후 여러 연상 작용 가운데 자기가 아는 대로 어느 하나를 선택해 실행할 것이다-행 行. 이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촛불을 촛불이라고 다른 것과 구별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식 識. 이와 같이, 사람의 지식 작용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식체계라는 것은 이같이 과거의 지식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것이므로, 조지 오웰처럼빅 브라더감시 억압적 통제 국가 체제에서전쟁을 평화라고 교육시키면, 사마천의 사기에 기술된 지록위마의 고사와 같이, 사람들의 생각까지를 수동적으로 조작해 내어 순탄한 지배 통치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조건반사를 가져오는 이 5개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은 천둥 번개와도 같이 재난과도 같은 것이어서 고통스러운 일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보자. 예쁜 그 여자를 만나게 된 그 자체가 괴로움을 잉태한 것이다. 롯데를 사랑했다 사랑의 번민과 고뇌 때문에 자살에 이르게 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말이다. 여자의 육체를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여자의 몸을 어찌 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맹인은 섹스 본능이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들 눈은 얼굴 가운데 두 눈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눈-심안心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실제로 그렇다. 꿈 속에 보는 꿈은 얼굴 속의 눈인가? 마음 속의 눈인가?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을 본 것이 죄를 낳게 된다. 이래서 오감육부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원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괴로움이 생기겠는가? 또 한편 만나도 고통이 수반된다. 왜냐면 만나면 하고 싶고 하고 나면 또 하고 싶은 탐욕의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나도 괴로움이요 못만나도 괴로움인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의 구조적 체계를 인식한다면 잘못된 앎이나 괴로움을 가져오는 구멍을 원천적으로 틀어 막고 그 욕망을 떨쳐 버려야만 해탈이 가능하다-즉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닌가? 색즉시공 色卽是空은 이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된다.

 

그러면 이제 색즉시공의 말이 유래하는 반야심경의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절을 보자.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空即是 色 受 想 行 識 亦復如是.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해 온 경향을 보여주곤 한다. 대개 이 구절에서건너다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여기의 度는 ‘~할 때마다의 의미이다.

 

오온이라고 부르는 눈귀코입목 이 오감의 감각기관이 눈에 보이는 물질-이를 색色이라는 단어로 부른다-이긴 하지만 그것을 자세하게 깊이 분석해 보면 소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를 공空이라는 낱말로 부른다-이 더욱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의 감각은 색이 아니라 공인 것이다. 눈요기감이 기쁨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기쁨이기 보다는 오히려 괴로움의 원천이 아닐까? 예쁜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기쁨인가? 아니면 괴로움인가? 탐욕의 성질이 본성인 이상 기쁨이라기보다는 괴로움인 경우가 더욱 많지 않을까? 따라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눈깔 솔깔 고깔 맛깔 숨깔은 깔이어서 물질적 형태-그러므로의 개념에 해당된다-이긴 하지만 보다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오히려 형체가 없는의 개념에 해당되고, 이러한 인식을 하게 될 때마다 천둥 번개가 치는 재난에 직면하는 것과 같고 괴로움을 가져온다. 핵심은 이것이다. 보이는 물체 즉 색은 보이지 않는 개념인 공과 다른 것이 아니고, 또 반대로 공이라는 개념은 색과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인 것이다. 어떤 물질적 형태를 인식하게 되는 사고의 과정은 수동적 접수, 연상, 판단 작용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데-이러한 지식과 인식 체계를 受想行識수상행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정신적 사고 체계 또한 오감의 감각 체계하고 거의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空即是色 受 想 行 識 亦復如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