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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문무왕릉의 “□牧哥其上狐兔穴其傍” vs 삼국사기의 “樵牧歌其上狐兔穴其旁”

by 문무대왕 2025. 4. 23.

8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비판

 

문무왕릉의 “□牧其上狐穴其vs 삼국사기의 其上狐穴其

문무왕릉 비문과 삼국사기가 기술한 문무왕 유조문 이 둘 사이에 직접적으로 그 내용이 일치하는 문장 표현은 其上狐兎穴其구절밖에 없다. 문무왕릉 비문 파편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이상 영영 확인할 길이 없을지 모른다. 문무왕릉 비문과 삼국사기의 기록 사이에 일치하는 문장이 이 한 구절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 구절에서조차 삼국사기의 기록과 문무왕릉 비문의 한문 원문 글자는 달리 쓰여 있다. 문무왕릉 비문의 其上狐兎穴其이 초목가기상호토혈기방의 구절을 삼국사기는 樵牧歌其上狐穴其旁이라고 기술했다. 여기의 는 문무왕릉의 , “은 문무왕릉의 의 글자를 바꾸어 쓴 것이다. 물론 는 哥, 旁은 傍과 서로 의미가 같고 글자의 쓰임새가 서로 통하는 같은 뜻의 글자이기에 서로 바꾸어 써도 전혀 의미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글자는 문무왕릉의 비문의 글자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문무왕릉의 원문 한문이 아니라 다른 글자로 옮겨썼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안타깝게도 “□牧哥其上狐穴其傍” 구절의 결자부분을 지금까지는 국편위의 번역대로 樵牧歌其上狐穴其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치 화석처럼 정설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보다 깊은 천착과 분석을 필요로 한다. 삼국사기에서樵牧歌其上狐穴其旁”으로 기록한 이 구절을 제외한 다른 구절은 어떠할까? 삼국사기는 문무왕릉비문 원래의 문장 그대로를 전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의 진실을 그대로 담지 않고 조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가 기록하고 있는 기사 문장 가운데서 어떻게 진실과 조작의 차이점을 가려낼 수 있을까?

 

삼국사기와 문무왕릉의 비문과의 비교에서 유일하게 같은 구절로 확인되는 문장은 “□牧哥其上狐穴其傍” 이 구절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앞장의 장재의 칠애시와의 관련성을 설명한 부분에서 자세하게 논했다. 그것을 참조하라.

 

삼국사기의 樵牧歌其上狐兎穴其旁초목가기상호토혈기방 구절은 문무왕릉 비문의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무왕릉비문의 파편에서 樵글자 부분은 떨어져 나가서 “□牧哥其上상태인 바, 이 결자 부분의 글자가 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들은 현재까지 삼국사기가 기록한 樵牧歌其上狐兎穴其旁의 기록에만 의존해 온 결과 삼국사기의 기록의 조작성을 의문하거나 그 해법을 풀어내지 못해왔다. 나는 “□牧哥其上狐穴其傍구절의 결자 부분을 위진남북조 시대에 나타난 표현인 牧兒목아, 牧童목동, 童牧으로 이해하여 童牧哥其上狐穴其傍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문무왕릉의 비문은 삼국사기의 樵牧歌其上狐兎穴其旁이 아니라, 그 진실적 표현 구문은 童牧哥其上狐穴其傍으로 추측된다.

 

문무왕릉 비문의 東征西동정서벌과 삼국사기의 西征北討서정북토

 

문무왕릉 비문의 뒷면 2행에 나오는 東征西  표현을 보자. 東征西결자부분은 상식적으로 東征西伐”(동정서벌)이라는 표현으로 쉽게 추측된다. 그런데 이런 문무왕릉 비문 표현을 삼국사기에서는 문무왕 유조라고 기술하면서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삼국사기는 西征北討라고 쓰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라.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비문 앞면 해석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비문에서 동거” “남린” “서승” “북접등으로 표현하면서 동서남북을 엄격히 구분하고 이렇게 분명한 방향감각으로써 국경을 기술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우리나라를 괴롭힌 적은 서쪽과 북쪽의 흉노족속이었다.  삼국사기가 이렇게 가장 중요한 국경 표시에서 원문과 전쟁사를 조작하거나, 진흥왕 순수비에서 분명하게 명시해 놓은 국경선과 그 범위를 깡그리 무시하고 빠트려 놓은 저의가 무엇이겠는가? 사마천의 史記와 비교해 보라.

 

한자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언어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Chinese written characters have remained essentially unchanged for more than 2,000 years”, (National Geographic, December 1999, Forum). 사마천 시대나 2천년이 지난 지금이나 똑같은 한자로 소통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시대도 원문을 쓰는데 1천년 전 삼국사기를 편찬할 그 당시에 왜 한문 원문을 빠트린단 말인가? 삼국사기가 흉노족의 입맛에 맞게끔 조작되었고 그런 망작임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고 여기며 나는 그것을 강하게 성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