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문 서술 문장 내용 비판
삼국사기 원문 | 국편위 번역 | |
해설 | ||
1 | 寡人運屬紛紜 | 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
朕짐과 寡人과인의 표현 차이점. 辛巳年신사년 561년 건립된 진흥왕 순수비 창녕비 비문 가운데 “寡人幼年承基政委輔弼“ 구절에 寡人(과인)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과인이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아 정치위원이 보필을 했는데’라는 뜻이다. 戊子年무자년 568년에 건립된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비와 마운령비에는 “朕歷數當躬仰紹太祖之基纂承王位兢身自愼恐違乾道”의 표현이 쓰여있다. 이 구절의 뜻은, ‘나 진흥왕은 나라를 세운 태조가 기초를 다져놓은 주춧돌을 받들어 대대로 계승해 나갈 것으로 믿고서, 왕위를 물려받아, 하늘의 도를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으로 나 자신 스스로 조심하고 근신하며 신중하게 행동해 왔다.’ 황초령비와 마운령비에 분명하게 국왕이 자신을 호칭하는 단어로써 “朕”(짐)을 분명하게 쓰고 있다.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저자의 책 “진흥왕 순수비”을 참조하라. 진흥왕 순수비에서도 朕(짐)이란 표현을 썼고, 삼국사기가 표절한 당태종의 유조에도 朕(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국왕이 겸손하게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로 寡人(과인)이라는 말을 썼다. 문무대왕(626-681) 활동 시기보다 백여년 이전에 건립된 진흥왕 순수비에서도 왕이 자신을 “朕”(짐)이라고 호칭했는데, 왜 삼국사기의 문무왕 유조문에 “寡人”(과인)이라고 지칭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과인을 쓴 이유는 김부식 등 삼국사기를 쓴 사람들이 흉노 선비 읍루 거란 말갈 여진족 등 당시 처들어온 북방민족의 무력에 굴복하고 아첨해서 기득권을 연명한 식민지 지배 기생충 세력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된다. 실제로 김부식은 처들어온 북방민족의 요구에 맞추어 국경과 국토방위의 한민족의 역사를 조작하여 삼국사기를 쓰고 그것을 북방민족이 세웠던 신흥무력강대국 금나라에다 직접 갖다 바쳤고, 정통 남방민족의 국가인 송나라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다. 寡人과인의 원래적 의미는 寡德之人의 줄인 말로 자신은 덕이 부족해서 국왕의 자리를 차지할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여기며 그에 따라서 국정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겸손한 말이었다. 진시황제가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세우면서 朕짐이라는 표현을 쓰기 전까지 각지방의 제후국들이 발흥했던 춘추전국시대에 寡人과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산동지방의 제후국 제나라에서 역성혁명을 일으켜 전씨정권을 수립했던 맹산군 또한 과인의 표현을 썼다. 춘추좌전에 “諸侯備聞此言 斯是用痛心疾首暱就寡人”, 맹자에 “寡人有疾寡人好勇”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제후국의 국왕이 자신에 대한 겸칭으로 과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언어관습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짐과 과인이라는 단어 선택의 차이는 중앙의 황제국가와 번속국 제후국의 봉군이라는 신분 차이에 있었다. 조선시대 왕이 굳이 “과인”이라는 표현을 쓴 사실을 우리들은 안방드라마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유교를 국교로 신봉한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으로써 이씨왕조의 국왕들은 자신을 과인으로 지칭했다. 고씨왕조 고구려를 부활시켜서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고려왕조는 차례대로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의 식민지로 굴복하고 말았다. 신라의 국왕은 朕짐이란 표현을 사용했것만 북방민족의 식민지로 전락하고만 고려왕조의 왕씨들은 과인이라고 자칭했을 것이다. 비록 짐과 과인의 두 용어 선택에서 국왕이 자신을 지칭하는 같은 뜻이기에 두 단어간에 의미 차이가 없다고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통일국가 신라의 비문에서 국왕이 자신을 황제국과 동일한 지칭인 朕짐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자주독립정신을 천명한 사실을 재인식한다면, 삼국사기의 문무왕 유조문에서 과인寡人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배경에는 문무왕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들어있음이 간파된다. 천명론 삼국사기 경순왕 기사에 나오는 마의태자가 말한대로 “國之存亡 必有天命”(국지존망필유천명) 나라의 존망은 반드시 천명天命에 달려있다는 천명론은 삼국사기 문무왕 유조문 첫 구절 “寡人運屬紛紜 時當爭戰”에 들어있다. 자신이 태어나 살아간 시기가 전쟁의 시대였다고 하는 말에서도 천명론의 배경이 찾아진다. 이강의 운명론에서 “貴賤時也”-부유귀천은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장자 추수편의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 구절의 설명대로, 귀하고 천한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때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전도서가 노래하듯, 이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돌고 도는 천지의 이 세상 모든 살아 있는 만물은 모두 제철을 아는데, 그렇듯이 세상 만사는 다 그 때가 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이 차면 배가 뜨는 것이며, 썰물이면 고기들이 나간다. 이강의 時(시)의 개념이나 전도서의 때의 개념이나 상통한다. 크고 작은 것은 시간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때와 시기와 장소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광활한 우주천지에서 만물은 그렇다. 수많은 재벌이 탄생했다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갔고, 세계 최대 부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처음에는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세계를 제패한 대부호가 되었다. 무에서 왔다가 흙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들 인생무상 속에서, 이들의 재무제표 대차대조표를 어느 시점에서 평가해야 제대로 부와 가난을 평가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해서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였는데 에드워드 기본이나 폴 캐네디가 연구했듯이 어느 시점을 달리해서 평가를 하거나 관점을 달리해서 본다면 세계제국의 부도 달리 보이고, 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증거하듯이 부의 원천도 부의 평가도 전혀 달라진다. 천명무상이고 인생무상인데 터럭만큼도 못한 순식간의 삶을 살다 가는데 한 때의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지? 세상의 부귀영화도 한낱 화무십일홍일에 불과하는 것은 아닌지? 무측천이 승선태자비에서 한탄한 그 글귀를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천명론은 인생무상이라는 말처럼 "天命反側”천명반측 즉 천명은 반복되고 무상無常하다는 의미인데, 새로운 세상의 건설은 미래 예측의 영역에 속하므로 도참서인 河圖洛書하도낙서의 형태로 나타났다. 運운은 命運명운을 뜻한다. 명운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생사나 부귀영화 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자신이 콘트롤할 수 없는 제삼의 요인에 해당한다.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별도의 독립적인 요인이므로 스스로 변화 발전해 나가는 성격이 있다. 영어로는 fate에 해당한다. 한나라가 무너지고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던 삼국시대 이강李康은 운명론에서 “治亂 運也 窮達 命也 貴賤 時也”이라고 논했다. 세상이 평화로운 시대인지 난세인지는 운에 달려 있고,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명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좋은 세상과 어지로운 세상이 번갈아 나타나는 변혁의 시기에는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자신 혼자만의 노력이나 의지에 달려 있기 보다는 다른 외적 요소인 명命에 달려 있어서 함부로 나서지 않고 조심함이 필요하다는 요천지명樂天知命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자세를 강조하였다. 국가의 구성요소는 국민과 그 대표자 그리고 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눈에 보이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써 종묘사직 이 3가지를 들 수 있다. 당태종 유조문에서 天子之尊赤縣先其司牧[1]의 표현을 썼는데, 이 말은 ‘왕은 최고로 존중받는 존엄한 존재이긴 하지만 국가가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국민을 섬기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寡人運屬紛紜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국가의 3가지 구성요소와 그 관계에 대한 설명은 빠뜨려져 있다. 국편위는 이 구절을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번역하였다. 紛紜분운은 사정이 매우 어지롭고 혼란스럽고 亂雜난잡한 것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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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慰宗祧之遺顧 |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 |
반악의 秋興賦추흥부에 “龜祀骨於宗祧兮 思反身於綠水” 구절에 종조라는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 구절은 ‘선조 사당에 뼈를 묻으리니, 푸른 호수에 몸을 돌이켜 성찰한다’의 뜻이다. 遺顧유고는 遺詔유조와 같은 말로 제왕이 임종하면서 남기는 유언을 말한다. 제왕이 죽음의 병상에서 최후의 유언을 남기며 그에게 부탁을 받은 대신을 탁고지신託孤之臣 고명대신顧命大臣이라고 부른다. 遺顧유고를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로 번역한 국편위는 顧고를 주의注意 고려顧慮의 뜻으로 해석했다. 慰위는 죽은 사람의 가족들을 위문하다는 뜻의 慰唁위언의 뜻으로 쓰인다. 국편위의 해석대로 주의나 고려 염려로 해석하면 그것을 안심시켰다는 뜻으로 위慰의 의미를 해석하여야 한다. 遺顧유고는 유조遺詔와 같은 뜻이고, 宗祧(종조)는 종묘(宗廟)와 같은 뜻이니 上慰宗祧之遺顧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켜내라는 선조의 유언을 깊이 받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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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下報父子之宿寃 |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
원수를 덕으로 갚는 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가치이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주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올바른 가치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고 복수를 하게 되면 원한의 악순환이 반복되어 세상이 발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국어에 以怨報德不仁이라고 말했고, 예기에 以德報怨則寬身之仁也 以怨報德則刑戮之民也 구절이 나온다. 불의한 세상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以怨報德이원보덕의 사례가 없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나 우리 선조들 성인철현들은 설령 원한이 있을지라도 덕으로 갚으라는 以德報怨(이덕보원) 용서의 미학을 가르쳤다.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의 병상에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유교를 국교로 정한 조선 시대의 영향으로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으나 사실 천지군친사天地君親師이라고 군사부 앞에 하늘이 먼저 나오는 上報四恩상보사은의 도교적 개념이 존재했다. 위로부터 받은 은혜는 갚아야 하는 응보이고, 아래로부터 받은 삼유 즉 識, 情, 緣은 극복해야 할 것이다. 上報四重恩下濟三途苦상보사중은하제삼도고의 전통적 개념에 따라서 본다면 삼국사기의 下報父子之宿寃아래로는 부자의 오랜 원한을 갚았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감정, 지식, 인연의 끈으로 인해 얽히고 설킨 인간 세상의 부족함은 실타래 풀듯이 현실적으로 차분하게 풀어가야 하며, 원한마저 덕으로 갚아야 한다는 以德報怨이덕보원의 태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제범의 구절을 참조하라: “斯乃暗主庸君之所迷惑忠臣孝子之可泣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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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追賞遍於存亡 疏爵均於內外 |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을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사람의 목숨이 가장 귀중하기 때문에 전사자에게는 보다 큰 보상과 배려를 해야함이 배분적 정의에도 합당할 것이다. 삼국사기의 疏爵均於內外는 뒤에 나오는 域內無虞 구절의 域內역내의 의미를 참조한다면 내외는 ‘중앙과 지방”의 뜻이 아니라 “국내외” 즉 국내와 국외 다시 말하면 본국과 식민지국을 가르키는 말로 해석된다. 대내외적 지리 개념이지, 중앙과 지방으로 국내적 지리 개념에 따른 구분이 아니다. 일본서기의 웅락천황의 유조문에서 수고조 유조의 萬國만국을 內外내외로 옮겨 썼는데 삼국사기의 용어 또한 그와 같은 맥락으로 쓰였다고 여긴다. “내외”는 “중앙과 지방”의 의미가 아니라 ‘본국과 식민지국을 통틀어 함께 일컫는 萬國만국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 ||
5 | 驅黎元於仁壽 | 백성을 어질고 오래 살게 하였다 |
驅黎元於仁壽 구절에 대해 국편위는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러한 번역에는 약간의 잘못이 보인다. 왜냐하면 驅黎元於仁壽는 국왕이 어질고 또 인의예악의 예법으로 어질게 통치한 그 결과에 힘입어 백성들이 장수를 누리는 즉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黎元여원은 일반 백성을 뜻하는 단어이다. 驅구와 仁壽인수라는 단어의 결합에서 연상되는 말 하나는 壽域수역이다. 한서 王吉왕길전에 驅一世之民濟之仁壽之域구일세지민제지인수지역의 표현이 나타나는데, 仁壽域은 인의예악의 통치로 백성들이 왕의 은택을 입어 편하고 오래 산다 즉 태평성대를 구가하다의 뜻이다. | ||
6 | 可謂無愧於幽顯無負於士人 |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
삼국사기의 可謂無愧於幽顯無負於士人은 비록 문장 구조 서술의 순서가 앞 뒤 서로 섞이고 또 불교적인 용어인 幽顯유현이 삽입되어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태종 유조의 朕於天下士大夫可謂無負矣 구절을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가 도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당태종 유조문에서 사대부와 일반평민 노인노백성을 대칭적인 표현으로 쓴 것을 감안하면 그 삼국사기의 유현의 뜻이 일반노인백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현이 당태종의 창생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라는 해석은 그 문구 뒤에 대칭적인 개념인 士人사인이 뒤따라옴을 볼 때 더욱 타당하다. 당태종 유조문에서의 蒼生창생이란 말은 일반 평민 노인 노백성을 뜻한다. 당태종유조문에서 士大夫사대부와 蒼生창생이라는 단어를 썼고, 그와 같은 의미로써 삼국사기는 士人사인과 幽顯유현을 써서 서로 댓구적인 표현으로 쓴 것으로 이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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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運往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 |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
삼국사기는 당태종유조문 道存物往 人理同歸 掩乎元泉 夫亦何恨矣 구절을 運往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으로 번역한 표현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人理인리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규율하는 도덕규범을 뜻한다. 莊子장자의 어부편에 其用于人理也 事親則慈孝 事君則忠貞의 설명이 나온다. 同歸동귀는 그 목표가 서로 같다, 같은 목적지에 이르다는 뜻이다. 掩乎엄호는 사람 얼굴을 가리다의 뜻이다. 掩엄은 覆, 蔽, 蓋, 엄호 엄폐掩蔽의 뜻이다. 사람이 죽음의 침상에서 죽으면 하얀 천으로 얼굴까지를 가린다. 元泉원천은 하늘나라 즉 碧落黃泉벽락황천을 뜻한다. 碧落벽락은 도교에서 만물의 기원인 하늘의 제일천, 碧霞滿空벽하만공을 지칭한다. 元泉의 동의어로는 淵泉연천, 深泉심천이 있다. 삼국사기의 運往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 구절을 번역하면, 이 문장은 당태종 유조의 道存物往 人理同歸 掩乎元泉 夫亦何恨矣의 구절을 그대로 도용하여 불교적 용어로 바꾸어 표현한 것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다. 道存物往도존물왕은 ‘세상의 보이는 것 모든 사물들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진리의 도는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一揆는 맹자에 나오는 말로 서로 같다 完全相同, 한 모양, 같은 원리 同一道理의 의미이다. 삼국사기의 古今一揆고금일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는 뜻이니, 당태종의 人理同歸인리동귀 구절을 바꾸어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다. 人理同歸라는 말은 ‘인간세상의 도리와 법칙 또한 우주만물의 법칙과 같이 움직인다’ 즉 ‘사람이나 자연이나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 태어난 모든 만물은 결국 죽는다는 엄연한 생사의 자연법칙에 따른다는 뜻이다. 삼국사기 문무왕유조문 이 運往名存 구절에서 名명은 名位명위를 뜻할테니 명위는 명성名聲과 지위地位, 또는 관리의 등급官等를 말한다. 유독 한국에서 官等관등성명을 먼저 대는 status사회 계급사회의 관습풍토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2] 이름이라고 하면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명론에 따르지 않더라도 명성과 실리가 부합하는지 여부가 중요할텐데, 언어를 개념적 사고틀이나 범주화에 넣게 되면 백마비마론 제논의 역설 등 소피스트들의 논리학적 반박을 불러와 의미없는 말싸움 논쟁으로 치닫거나 또 말로써 제압해 본들 끝내 승복없는 파국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노자도덕경 제9장의 말씀 功成身退 天之道, 공성신퇴가 우리들의 전통적 관념이었다. 공성신퇴를 功成名遂身退(공성명수신퇴)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태종 유조의 道存物往 人理同歸와 삼국사기의 運往名存 古今一揆 이 두 표현은 종교적으로 믿는 바가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비슷한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3] 삼국사기의 何有恨焉하유한언은 당태종의 夫亦何恨矣을 그대로 차용한 표현으로 보인다. 당태종의 掩乎元泉엄호원천을 삼국사기는 奄歸大夜엄귀대야라고 바꾸어 놓았다. 불교의 대야의 표현은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국편위는 大夜대야를 “긴 밤”으로만 번역해 놓고, 대야大夜가 불교적 의미임을 밝혀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大夜는 불교 용어에 해당한다. 천주교에서 지옥과 천국에 들어가기 전 연옥이 있다는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불교에서 사람이 죽을 때 대야로 들어간다고 여긴다. 大夜대야는 칠흙 같은 한 밤중이라는 뜻 이외에 긴 밤 長夜장야의 뜻으로 쓰이면 사람이 죽고 난 후 잠든 지하 세계를 뜻한다. 당태종 유조의 元泉원천은 죽음은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에 해당한다. 貴道賤身 貴道賤身귀도천신은 문무왕릉 비문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貴道-도를 중시해서 賤身-몸까지를 바쳤다고 표현했는데, 도道란 무엇을 말하는가? 貴귀는 귀하게 여기다 즉 중시重視하다의 뜻이고, 道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도교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道 도리道理를 말하니, 重道중도, 敬道경도와 같은 말이다. 貴道귀도는 중도, 경도의 의미 따라서 그가 배운 바를 尊重존중해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뜻이 된다. 천신賤身은 자기 몸을 지칭하는 겸양의 표현이다. 따라서 천신은 獻身헌신하다 희생하다는 뜻이 포함된다. 따라서 貴道賤身귀도천신은 도리를 중시하고-重道, 그 가르침을 높게 받들고자-경도敬道,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구나!-賤身 이와 같이 해석된다. 좀더 부연하면, 사람의 목숨에도 귀천이 있는가? 命有貴賤 명유귀천. 만약 있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까? 貴賤相懸 귀천상현. 그래서인가, 선왕인 부모님의 엄명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도리를 다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몸까지 기꺼이 던져 바쳤던 말인가? 사기 진세가에 나오는 “天子無戲言 言則史書之”을 상기해 보자. 성인은 말이 곧 법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 곧 생명이니 자기가 한 말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것, 그것이 언행일치의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貴道귀도는 도교의 종교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태종 이세민의 유조에 들어 있는 구절인 道存物往도존물왕에서의 도道의 의미와 같은 맥락의 뜻을 갖고 있다. 625년 당나라 건국 시조 고조는 유불도 이 3교간에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고 도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고조는 당나라를 건국하면서 三教之首 道居首 도교를 으뜸 순서로 올려 놓고, 노자를 시조로 모시고 숭상하며 노자 사당을 건립하였다. “道先 儒次 佛末” 즉 ‘도교 제일, 유교 차선, 불교 말석’으로 말하며 도유불 종교간 지위와 순서를 명확하게 정한 당고조 이연의 종교 정책은, 도교파의 지원으로 현무지변에서 승리하고 후계자로 올라선 당태종의 국정철학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天子下詔曰 老教孔教 此土元基 釋教後興 宜崇客禮 今可 老先 次孔 末後釋宗 이 구절의 내용과 같이, “老先 次孔 末釋”(노선차공말석)으로 정하며 도유불의 종교적 지위 순서를 명확히 정한 당고조의 하조문 내용은 당 서명사 승 도의가 편찬한 “集古今佛道論衡”(집고금불도논형) 高祖幸國學當集三教問僧道是佛師事에 실려 있다. 주성명의 책(周誠明, “唐人生命思想之多元探討”, 元華文創股份有限公司, 2017, 399쪽)에서는 이 이외의 다른 소스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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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太子早蘊離輝 久居震位 |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동궁의 태자의 자리에 있어서 |
삼국사기의 太子早蘊離輝久居震位上從群宰下至庶寮送往之義勿違事居之禮莫闕 구절은 당태종 유조의 皇太子治大孝通神自天生德累經監撫熟達機務凡厥百僚群公卿士送往事居無違朕意 부분을 도용한 표현임을 확인하게 된다. 삼국사기의 送往之義勿違事居之禮莫闕은 당태종 유조문의 送往事居無違朕意을 다시 풀어 쓴 표현이고, 또 삼국사기의 上從群宰下至庶寮는 당태종 유조문의 凡厥百僚群公卿士의 문장을 풀어 쓴 말이다. 당태종 유조문의 皇太子治大孝通神自天生德累經監撫熟達機務의 뜻은, “왕위를 이어받을 황태자는 막내 아들 이치이다. 이치는 효성이 지극하고, 마음과 정신이 깨끗하며, 천성적으로 덕을 닦고 쌓아 올렸다. 태자의 임무인 국가 감찰과 군 격려의 업무에 오랜 경력을 쌓았고, 군대통솔과 국정의 주요 업무에 숙달하였다.” 凡厥百僚群公卿士送往事居無違朕意의 뜻은, ‘일반 공직자 관료들,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고관들과 사대부들은 죽은 사람을 고이 보내는 상장례 풍속을 잘 지키고, 또 산 사람을 진실로 섬기는 아름다운 풍속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의 간곡한 뜻을 잊지 말고 실천해 주길 바란다.’ 삼국사기는 大孝通神과 熟達機務라는 말을 덜어내고, 이와 비슷한 의미로써 太子早蘊離輝久居震位라고 표현했다. 久居震位는 累經監撫熟達機務의 의미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는데, 보다 더 직접적인 관련은 수고조의 유조와 그것이 실려 있는 고조본기에 나오는 표현인 地居上嗣로 보인다. 久居震位구거진위나 地居上嗣지거상사는 ‘태자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다’는 뜻으로 서로 같은 의미이다. 早蘊離輝 구절을 보자. 離리는 離開,分開, 相距즉 떠나다의 뜻을 갖고 있는 낱말이고, 또 역의 팔괘 중 하나로써 건곤감리 태극기 네 모서리 중 서남쪽에 위치한 부호 ☲인데, 이것은 불火을 뜻한다. 離리를 불로 해석하면 뒤따르는 글자 빛날 輝휘와 연결되고, 離輝는 불같이 빛나다의 뜻이 된다. 국편위는 “밝은 덕”으로 번역 해석했다. 그런데 離德와 離輝는 서로 뜻이 다르다. 離德리덕은 마음과 뜻이 불일치한다는 뜻의 단어이다. 離輝는 光輝광휘, 광채의 뜻과 같다. 맹자에서 충실함이 가득 차서 밖으로 광채가 드러나는 사람 대인大人이라 이른다는 뜻의 充實而有光輝之謂大 문장이 나온다. 따라서 早蘊離輝은 ‘일찍이 밝게 빛나는 광채를 쌓았다’는 뜻이다. 蘊온은 축적하다의 뜻이다. 좌사의 魏都賦위도부에 “雖踰千祀而懷舊蘊於遐年”의 구절이 나오는데 이 뜻은 ‘비록 천년이 지나가더라도 아주 먼 예전에 쌓은 공적을 생각하리라’. 蘊은 五蘊盛苦오온성고라는 불교적 개념으로 잘 알려진 단어이다. 五蘊오온은 五陰오음과 같은 말이다. 蘊온의 불교적 용어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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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宗廟之主不可暫空, 太子卽於柩前 嗣立王位 |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
삼국사기의 宗廟之主不可暫空太子卽於柩前嗣立王位은 국편위의 번역대로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의 뜻이고, 당태종 유조의 宗社存焉不可無主皇太子即於柩前即皇帝位는 “종묘사직을 지켜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바, 그것을 지키는 임금의 자리가 비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황태자는 입관 즉시 황제의 자리를 잇는 황제 즉위식을 갖도록 하라”의 뜻이다. | ||
10 | 且山谷遷貿 人代推移 吳王北山之墳 讵見金鳧之彩 魏主西陵之望 唯聞銅雀之名 昔日萬機之英 終成一封之土 樵牧歌其上 狐兎穴其旁 |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오왕 북산의 무덤은 도굴되어 부장품을 남아 있지 않네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죽음만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통함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떠나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오호애제 嗚呼哀哉라 그 때 하늘이 꺼지고 산이 무너지는 듯한 격한 슬픔의 감정과 애통함을! 산천도 놀라 목이 메이고, 내리던 눈발도 멈추어 선 그 때의 아픔을 기억하는가? 이 애도시 만가 해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장재의 칠애시 해석 부분을 참조하라. | ||
11 | 徒費資財 貽譏簡牘 空勞人力 莫濟幽魂 靜而思之 傷痛無已 如此之類 非所樂焉 |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
삼국사기의 靜而思之 傷痛無已의 표현에 대해 잠깐 살펴 보자. 삼국사기의 표현은 노자가 말한 도교의 핵심적 내용인 靜思-자세를 정결하게 가지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개념을 공격하고 있음이 파악된다. 靜思정사는 침잠하여 자기 성찰하다의 말인데, 이는 노자가 가르치는 핵심적인 수양의 방법과 태도이다. 그리고 이런 정사의 수양 태도는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별반 차이가 없이 장려하는 수행의 방법에 속한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애통해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느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장례식에서 참가자들이 흐느끼는데,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낼 때는 누구든지 슬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 것이다. 그 때의 심정 묘사를 哀而送之傷心無已(애이송지상심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텐데, 삼국사기의 구절은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사마천은 悲莫痛於傷心비막통어상심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슬픔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픈 마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을 것’이다. 안씨가훈에서 말하듯이, 상을 당해 bereavement 원통해 하고 애통해 하며 슬픔을 나누고 애도심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해당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죽음만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통함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C S 루이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애도와 격한 슬픔에 잠긴 심정을 고백한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떠나보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오호애제! 嗚呼哀哉! 성경은 말한다.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위로를 영어로 comfort라고 말하는데 캄포트는 com-fort로 구성된 말이니-com은 with, fort는 strength힘의 어원적 뜻이니-따라서 위로는 ‘함께 힘을 받는다’는 뜻이다. 위로는 함께 힘을 얻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서도 애통해 하는 자는 복 받는다고 말했으므로 상실에 대하여 애통함을 표현하는 것 그것을 나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종교의 목적은 자기 구원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구제에 있다. 한 마디만 생각해 보자.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에 꾸짖음만 남길 뿐”인가? 그게 아니라 누구든지 말뿐만 아니라 당장 그런 낭비를 금하게 할 것 아닌가? 헛되이 재물을 쓰면서 낭비하는 습성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우리들은 근검절약하는 것을 올바른 생활자세로 알고 있다.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은 하늘의 이치이다. 어렵고 가난한 이웃에게 자기 가진 것을 베풀어 구제하는 것은 하늘도 고맙게 여길 선하고 착한 일이다. 부족한 사람들이 잘못을 일으켜 행복한 삶을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과 세상을 살피는 일은 분명코 필요하다. 영적 존재인 사람들은 영혼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의 전통적인 인생관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가만이 생각에 잠겨 성찰하는 태도는 성현철인들이 가르쳐 온 올바른 수양의 자세이다. 죽은 자를 애통해하고 고이 보내는 것은 선한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우리들은 진리를 탐구해야 하고, 올바른 생각을 견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반면 오매불망 전전반측 상념에 잠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각은 유교적 사고가 기저에 있다. 남녀의 애정관계에서 상대방을 향해 생각을 하는 것을 사념思念, 상념에 잠긴다고 말하는데, 현실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유가의 입장에서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경계하였다. 시경의 관저에 나오는 싯구, 寤寐思服 輾轉反側의 표현이 그것이다. 오매불망 전전반측은, 자나깨나 생각에 잠겨 잠못들고 몸을 뒤척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으로 朝思夜想조사야상, 朝思暮想조사모상의 표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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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屬纊之後十日 便於庫門外庭 依西國之式 以火燒葬 |
내가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
국편위는 外庭외정을 “바깥의 뜰에서”로 장소로 번역했는데, 여기에서 外庭외정을 주어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廷정은 왕이 조문朝問政을 받는 곳을 말한다. 后廷후정은 后宮후궁의 말과 같은 의미이다. 外廷외정은 內廷내정에 대한 말이고, 왕이 조문을 듣는 곳 聽政(청정)을 말한다. 外廷외정은 外庭외정으로 쓰기도 하는데 朝臣 즉 朝廷大臣조정대신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유명한 사마천의 임소경에게 보내는 답신 報任少卿書에 鄉者仆嘗廁下大夫之列 陪奉外廷末議의 구절에서 外廷외정의 뜻이 그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便於庫門外庭依西國之式以火燒葬은 “고문 바깥의 뜰에서 서국의 의식에 따라 화장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고문에서 조정대신들이 서국의 의식에 따라 화장식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삼국사기는 羣臣以遺言 葬東海口大石上 기록하고 있는데 “여러 신하들이 유언으로 동해 입구의 큰 바위 위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이 기록은 문무왕릉 비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거국적으로 장례식을 치렀다는 사실과는 배치된다. 전국적 애도 속에서 장례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대신 여러 신하들만으로 동해 입구의 큰 바위위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삼국사기 기사는 조작임이 분명하게 도출된다. 삼국사기가 문무왕을 폄하하는 의도에서 문무왕의 유조를 조작하였다는 결론에 따르면 삼국사기의 이 구절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폄하한 내용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요즈음에 와서는 화장식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대표적인 불교적 예식으로 굳어졌는데 사실 화장식을 금한 것은 도교에 대립된 유교적 교의이었고,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왕실에서 궁정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는 고고학적 발견이 나타난 사실을 참고하라. 2019년 10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백제 고분군 발굴조사단이 적석묘 사이에서 화장된 사람뼈가 발견된 학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단은 백제왕실에서 본격적으로 화장을 장례의식으로 채택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고대에서는 도교 의식으로 화장식 장례가 이뤄졌다. 불교사탑이 크게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에서의 불교탑을 수용할 모든 상황과 조건을 이미 갖고 있었다는 환경이 있다. 환담桓譚의 신불멸론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한나라 때의 환담의 저서는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에 나타난 책이다. 화장식은 불교 전래 이전에 형성된 도교적 관습이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화장을 서국의식이라고 단정짓고서 한중일의 고대사를 결론낸다면 그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오늘날 국민의 95% 이상 대다수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화소장의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인데, 고대로 거슬어 올라가면 화장식은 서국 인도에서 유래한 종교의식만이 아니라 중국의 토착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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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服輕重 自有常科 |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
삼국사기는 服輕重自有常科라고 상복 규정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또한 당태종 유조의 其服紀輕重 宜依漢制 以日易月 구절을 차용한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삼국사기에서는 당태종 유조에서 논거로 제시하는 한나라 전통 법제 부분인 宜依漢制 以日易月 구절은 무시하고 服輕重自有常科으로만 표현했다. 服輕重自有常科를 국편위는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여기서 服輕重-복의 경중輕重은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의 중량 대소를 나타내는 뜻이 아니라, 상복을 언제까지 입어야 하는 탈상 기간의 적당한 정도를 말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부모상은 3년상三年之喪으로 굳어져 왔는데, 국왕이 3년간 복상을 한다면 국정 수행에 애로가 크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문제부터 3년상이 아니라 36일 단축적 탈상 제도를 실시하였다. 조선시대나 최근까지도 비싼 예단으로써 상복을 정하는 듯 폐단이 심했는데, 상복의 경중은 상복을 입고 근신하는 기간의 정도를 말한 것이지 상복의 중량대소 크기를 말한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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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喪制度 務從儉約 |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
삼국사기의 喪制度務從儉約 구절은 당태종 유조의 園陵制度務從儉約 구절을 그대로 도용한 표현으로 보인다. 園陵制度 務從儉約은 “왕릉의 조성에 관해서도 검소하고 간략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힘써 실천하라”는 뜻이고, 삼국사기는 이 구절에서 園陵 대신 喪 글자 한 자만 바꾸어서 “상례를 검소하고 간략하게 치르라”는 喪制度務從儉約으로 표현했다. 상喪제도는 영어로 funeral이고 喪禮상례와 藏禮장례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고, 애도를 표하고 문상을 말하는 상례와 봉분을 쓰는 일의 장례를 구별할 수 있다. 장례가 간단화된 요즈음은 애도를 표하는 문상의 상례가 주된 일로 여겨지지만 예전에는 장례가 더 큰 일에 속했다. 따라서 상喪보다 장례의 간소화가 더 요구되는 부분이었다. 진시황제에서 명청시대까지 거대봉분의 왕릉 조성에 수많은 군사와 인력을 동원한 봉건시대의 역사를 보라. 진시황의 병마용갱이 보여주듯, 금관이 출토된 신라시대의 왕릉이 말해주듯, 사자가 평소에 쓰던 기물을 무덤 속에 부장품으로 묻었다. 춘추좌전에 실린 공자의 말 信以守器 器以藏禮 禮以行義이 있다. 器物은 예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만약 진시황제의 왕릉에 그 병마용兵馬俑이 묻혀 있지 않았다면 어찌 찬란한 역사가 입증될 수 있을텐가? 애도를 표하는 상례보다 봉분조성의 장례가 가장 부담이 컸으므로 원릉제도의 간소화가 필요하였다. 한문제나 당태종이 왕릉조성에 들어가는 국고와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장례식을 검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園陵원릉은 왕의 무덤 왕릉을 일겉는다. 왕릉 조성은 상장례의 마지막 의식 부분이지만 진시황의 아방궁이 증거하듯이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한나라 문제는 봉분을 별도로 크게 조성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 ||
15 | 其邊城鎭遏及州縣課稅 於事非要者 并宜量廢 |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
삼국사기의 其邊城鎭遏(기변성진알)은 당태종 유조의 其方鎮嶽牧(기방진악목)의 구절과 그 의미가 비슷한 표현이다. 당태종 유조문은 국방을 튼튼히 하라는 분명한 당부를 남기고 있다. 국방과 군대 통솔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따라서 이는 한시도 소홀히 비워둘 수 없으며, 비록 평상시에는 한가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꼭 담당 관료를 임명하여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이렇게 국토방위의 중요성을 신신 당부하면서 변경 요새를 지키는 일이 “비록 평상시에는 한가할 지라도 담당 관리를 꼭 임명하여 소홀히 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라”는 軍國大事不可停闕尋常閑務任之有司라는 말로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는 그런 당부하고는 달리 其邊城鎭遏 … 於事非要者并宜量廢 변경 요새들은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라고 유조문의 의미를 거꾸로 퇴색시키고 있다. 당태종 유조는 尋常閑務任之有司심상한무임지유사라고 말하고 있다. 변경 요새를 지키는 일이 “비록 평상시에는 한가할 지라도 담당 관리를 꼭 임명하여 소홀히 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라”고 나라를 지키는 국방을 신신당부하고 있다. 누가 변경 요새를 없애라고 하는가? 그것은 적들이 바라는 일이 아닌가? 변경 요새는 평화시 평상시에는 한가하게 보인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전쟁은 예고없이 불시에 일어난다. 삼국사기의 표현인 “변경의 성과 진을 지키는 일과 주현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라는 당부는 유조문의 내용과는 어긋나는 말이다. 국방과 세금으로 나라가 존재하는데 국방과 세금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세금징수와 국토방위 없이 어찌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국경요새와 세금징수가 긴요하지 않으면 마땅히 모두 폐지하라니 그게 무슨 국가 지도자의 말일 수가 있단 말인가? 조선이 망해 식민지로 전락한 것 오늘날 헬조선의 지옥을 가져다준 원인이 지도층의 비리 부정부패에 있다. 소수 귀족 지도층의 자제들은 군대 징집을 기피하고 또 그들은 탈세하면서 부를 독점하고 망국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적폐들이 아닌가? 삼국사기같은 식민지 기생충 세력 망국세력이 오늘날까지 끈질기에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삼국사기의 유조문은 진심에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남의 글을 도용한 결과이기에 그 내용이 가짜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도용과 표절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극명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삼국사기의 당태종 유조문 도용과 표절이 가져다 준 심각하고 중대한 결과를 직시하고 그것을 즉각 바로잡아야 함이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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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律令格式 有不便者 即便改張 |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
삼국사기의 “律令格式有不便者即便改張”은 수나라 고조 유조문에 나오는 “律令格式或有不便於事者宜依前敕修改務當政要”을 그대로 도용한 표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삼국사기는 법 규정을 즉시 바꾸라는 말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것은 악의적인 변형이다. 왜냐하면 일단 법규정이 시행되면 조금 불편해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조 유조문에는 율령격식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법률의 수정개편 절차 규정에 따라서 바꾸라고 분명하게 말했음을 참조하라. 그런데 삼국사기는 그것을 도용하고 표절한 의도가 쉽게 노출되듯이 율령격식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즉시 바꾸어라고 말했다. 律令格式有不便者即便改張의 국편위 번역은, “율령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律令格式은 新唐書신당서 刑法志형법지에 따르면, 律률은 법률, 令령은 국왕의 명령命令, 格격은 부서의 規則규칙, 式식은 부서의 관행적 공문程式정식을 뜻한다. |
[1] ‘왕은 최고로 존중받는 존엄한 존재이긴 하지만 왕보다 국가가 먼저다. 赤縣적현은 中國중국을 지칭하니 국가國家를 의미한다. 司牧사목은 관리, 통치統治, 군주君主, 양이나 소를 키우는 목장을 관리하는 관원을 뜻하는 말이므로 여기서 司牧을 군주君主로 해석하여 ‘그 군주보다 국가가 우선’이다는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2]이름 대신 관등성명을 먼저 대는 봉건 사회의 지위 문화 유습이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이에 대한 법문화 측면에선 “전관예우”라는 미개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3]道存物往人理同歸掩乎元泉夫亦何恨矣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의 보이는 것 모든 사물들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진리의 도-자연법칙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인간 세상의 법칙과 인간의 도리는 그 근본이 우주만물의 법칙과 같이 돌아간다. 아 하늘이 닫히는구나! (나는 이제 하늘나라로 떠난다!) 죽음은 하늘나라-본래의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엄연한 진리이거늘! 내 어찌 무슨 여한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텐가! 한편 삼국사기의 運往名存 古今一揆 奄歸大夜 何有恨焉 구절에 대한 국편위의 번역은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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