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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당태종의 哀死之道(애사지도)

by 문무대왕 2025. 4. 22.

應鴻社-秋鴻社()

 

應鴻社 다음의 글자들은 떨어져 나가서 정확히 그 글자를 알 수 없으나, “應鴻社▨”라는 구절에서 秋鴻社燕(추홍사연)이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가을 기러기와 봄 제비는 서로 계절을 엇갈려 오고 가는 철새의 대명사이다. 이들은 봄 가을의 계절이 그렇듯이 서로 함께 하지 못하고 엇갈리는 철새이므로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는 우리 삶과 죽음의 엇갈림을 뜻하는 말이다. 죽도록 고생해서 이제 편히 살만하니 세상을 떠나다니!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경우가 흔하다. 비껴가는 우리들의 운명! 예고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느끼는 슬픔, 그 사람의 죽음이 허무하다는 인생무상의 아픔이 들어 있다. 철새인 제비와 기러기는 계절을 달리하여 서로 엇갈려 날라 가듯이,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가? 응홍應鴻 기러기를 맞이한다 즉 가을 기러기의 추홍(秋鴻)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홍안(鴻雁), 鴻鵠(홍곡), 大雁(대안)의 기러기와 같은 뜻이다. 應鴻社燕(응홍사연)가을 기러기 맞이하니 봄 제비 날라간다는 뜻의 성어적 표현이다.

문무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은應鴻社燕’(응홍사연)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이 말은 우리 인간 세상에서생사화복이 함께 어울려 있다는 인생사의 진리를 말해주는데, 그의 죽음은, 태종무열왕의 갑작스런 서거와 같이, 당태종이 졸지에 종남산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던 예기치 못한 사건과 같이, 인생무상의 슬픔을 안겨준다.

‘응홍사연’의 의미는 삼국을 통일하고 일본까지 평정해서 이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달성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할 판인데, 그런 새세상을 열자마자 졸지에 문무대왕의 죽음을 맞고 말았다는 인생사 비껴가는 운명관에 부합한다. 인간사의 화복길흉이 함께 어울려 있다는 인생관과 세계관은 사마천이 정확하게 파악했듯이 굴원의복조부에서 절실하게 묘사한 세상사 이치가 아닌가? 문무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생사화복이 같이 어울려 있다는 우리 인생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또 그것은 덕망 높았고 출중했던 당태종이 졸지에 종남산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던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 구절은 문무대왕의 죽음을 당태종의 그것에 빗대어 시적표현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당태종은 645년 고구려 원정군을 철수시키고 귀국했는데 그 후 4년 뒤에 졸지에 운명했다. 그 후 당나라의 원정군이 철수한 때가 676년인데 이 후 5년 뒤에 문무대왕이 갑자기 운명했다. 두 사람의 죽음의 시기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없을까? 성군 순임금이 남방원정길에 전사한 것, 성웅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과 같이 영웅들의 생사의 운명은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추홍사연(秋鴻社燕)의 의미를 연결해 보면, 아버지 김춘추 태종무열왕이 649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하였는데 귀국하자마자 당태종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고, 이것을 엇갈린 영웅의 운명 과정을 대비시키고 있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반대로 좋지 못한 일이 함께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인간 세상의 돌고 도는 인생무상 소용돌이 운명이지 않는가?

 

應鴻社事-哀死之道

 

應鴻社▨” 결자 부분을應鴻社事로 메꾸어 보면 唐太宗   宮車晏駕 조제애곡과 宮車(궁거만가)의 표현이 전후 문맥상 서로 연결고리가 찾아진다. “社事는 토지신(土地神)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여러 활동을 말하는 단어이다. 應鴻社事 떨어진 기러기를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준다는 말이 된다. 도교 종교적인 의미로는 천수를 누리지 못한 사람 즉 왕사를 당한 사람을 대신 제사 지내주며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안식할 수 있도록 위로해주고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어떤 해를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르킨다. 또 정치적인 의미로는 전사자들에 대한 장례를 국가가 대신 치뤄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러기는 제비처럼 멀고 먼 남쪽에까지 원정을 나간 자식들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 기러기들이 전장의 전투 속에 희생되고 말았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텐가? 새들이 벽 앞에 헤딩하여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라. 전장에 나간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이 묻어 주지 않던가? 자식 생각에 말이다. 봄날 돌아와 지저귀는 제비 새끼들의 노란 입을 쳐다보라. 누군들 자식 생각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떨어져 죽은 새를 묻어 주며 죽음에 대한 경건함을 다시금 깨우치는 것과 당태종의 일화를 연결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태종의 역사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당태종과 고구려의 천리장성

 

삼국사기에서는 645년 당태종의 애사지도를 기재하고 있지않다. 그 대신 631년 고구려 영류왕 14년 조기사에 다음과 같이 기재하였다: “十四年 唐遣廣州司馬長孫師 隋戰士骸骨 祭之 毁當時所立京觀 春二月 王動衆築長城 東北自扶餘城 東南至海 千有餘里 凡一十六年畢功

“당나라가 광주사마(廣州司馬) 장손사(長孫師)를 보내 수나라 전사자들의 해골을 묻은 곳에 와서 제사지내고, 당시에 세운 경관(京觀)을 허물었다. 2월에 영류왕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동북쪽으로 부여성(夫餘城)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천여리나 되었다. 무릇 16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

삼국사기의 이 기사는 구당서와 신당서의 기록을 살짝 비틀어 적은 것에 불과하다. 구당서: “(貞觀)五年 詔遣廣州都督府司馬長孫師 往收 隋時戰亡骸骨 高麗所立京觀 建武懼伐其國 乃築長城 東北自扶餘城 西南至海 千有餘里

신당서 (동이고려): “帝詔廣州司馬長孫師臨隋士戰 高麗所立京觀 建武懼 乃築長城千里東北首扶餘 西南屬之海”.

삼국사기의 이 기사는 구당서와 신당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대로의西南至海 千有餘里을 여기서 글자 하나를 살짝 바꾸어서 즉 西南(서남)을 동남(東南)이라고 방향감각을 정반대로 바꾸어서 역사를 조작해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삼국사기의 조작을 모른채,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사학자 연구자들이 이 삼국사기의 글자조작을 규명해내지 못하고, 고구려의 천리장성이 존재했느냐 마느냐 그 실재 여부와 성격을 놓고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고 있다. “築長城”(축장성)이란 말을 두고서長城”(장성)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천리장성의 담벼락을 두고서, 고고학적 발굴로써 입증되지 못한 천리長城(장성)을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은 실재적 성벽 walls이 존재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와같이 억지로 끼워맞추기식으로 가소로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가 기재하고 있는 築長城(축장성)의 장성의 의미는 중국의 만리장성(The Great Wall)과 같은 실재적 성벽 담벼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벽의 보루를 견고하게 쌓아서 적이 쉽사리 침투하기 힘들 정도로 요새화했다는 의미 즉 영어로 “impregnable bulwark”을 뜻한다. 따라서 천리 사이를 쭉 이어짓는 하나의 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에 걸쳐 있는 주요 도로를 잇는 주요 성채를 견고하게 개축하고 보루를 쌓고 요새화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오늘날 고고학적으로 만주 철령 하얼삔 길림성 심양을 거쳐 대련반도까지 천리 전체를 따라 쭉 걸쳐서 쌓은 성벽의 흔적을 쌓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축장성이라고 해서 만리장성과 같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뜻이 아니라 천리길에 이르는 주요 도시와 중요적 군사적 요새를 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다시 견고하게 쌓아 올리고 요새화했다는 의미이기에 주요 성채의 부분적인 곳에서 오늘날 성벽의 흔적이 찾아지는 것이다.

 

당태종의 哀死之道(애사지도)

 

645년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에서 철수하며 귀환하는 도중에 요녕성 용성(龍城, 지금의 조양)에 다다를 때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때 희생되었던 무명용사들의 해골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뤄 주었는데, 그렇게 황제가 오자병법에서 말하는 哀死之道(애사지도) (有死事之家 歲遣使者勞賜其父母 著不忘于心)를 실천하면 자식을 둔 보통사람들은 희생된 자기 자식에게 그렇게 애틋하게 장사까지 지내주는 모습을 보고서 死而天子哭之 死何所恨”(아 황제가 내 자식에까지 제사를 지내주니 이제 더 이상 원통함은 없겠구나) 그런 위로를 받을 것이다. 

 

당태종이 조문을 직접 지어 대성통곡을 하며 명복을 빌어 주었다는 기사는詔遼東戰亡士卒骸骨 集柳城東南 有司設太牢 上自作文以祭之 臨哭盡哀 其父母聞之曰 吾死而天子哭之 死何所恨” (자치통감, 당기십사);“詔集戰骸骨 葬柳城 祭以太牢 帝臨哭臣皆流涕” (신당서, 동이전).  당태종의 死者哀而葬之(사자애이장지) 때 지은 吊祭哀哭(조제애곡) 傷遼東戰亡(상요동전망)[1]이 전해 내려온다.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鑿門初奉律 仗戰始臨戎
振鱗方躍浪 騁翼正凌風
未展六奇術 先虧一
防身豈乏智 殉命有餘忠
착문초보율 장전시임융
진린방약랑 빙익정릉풍
미전육기술 선휴일궤공
방신기핍지 순명유여충


이 당태종의 조의문을 문무왕릉의 비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해석해 보자.

당태종은 전투를 마치고 귀환도중에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장렬히 쓰러진 군인들을 위해서 떨어진 기러기를 보듬어 주듯이 해골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주면서 조문을 직접 지어 대성통곡을 하며 명복을 빌어 주었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未展六奇術 先虧一 防身乏智 殉命有” (미전육기술 선휴일궤공 방신기핍지 순명유여충). 육기술은 유방이 승리했던 전술이었는데 그 육기술을 아직 펼치기도 전인데, 높은 산의 공적을 쌓는데 먼저 한 줌의 흙이 되어 보태겠다는 생각이었다는 말인가요! (그토록 병법에 뛰어난 사람이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간수할 지혜는 부족했나요? 그러면서 (자기 몸은 살피지 못했으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힘은 남아 있었다는 건가요! 

未展(미전)의 의미에 대해서, 진자앙이 쓴 묘지명 가운데雄圖未展 大運陵”의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의 雄圖(웅도)는 큰 포부 큰 계획을 말하고, 未展(미전)은 아직 펼쳐지지 않다의 뜻, 大運(대운) 운수대통의 明德(명덕), 美德(미덕)이 펼쳐지다의 뜻, (릉퇴)는 쇠락(衰落)해서 무너지다(壞괴)의 뜻이다

육친은 노자도덕경에 六親不和有孝慈가 나오는데 왕필은 六親 父 子 兄 弟 夫 婦” (부자형제부부)로 주해했고 관자 牧民(목민)則六親固구절의 육친은 부모형제처자(父母兄弟妻子)를 이른다고 하고, 가의의 新書(신서) 六術(육술)에 나오는 六親(육친)[2]의 의미는 부모형제간의 육친을 이른다. 이렇게 六親간을 말할 때 사람마다 또는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니, 육친이라고 말하면, 부모형제를 통칭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이해되고, 따라서 未展六奇術(미전육기술)이라고 표현에는 부모형제 다 살아 있는데, ‘부모형제들 다 놔두고 그렇게 빨리 가실 수가 있었나요이런 통곡의 느낌이 들어있다. 

 

先虧一

先虧一(선휴일궤공)-fall short of success for lack of a final effort-의 해석에 대해서는 유가와 도가의 해석이 전연 상반대로 해석을 달리한다. 같은 컵의 반쯤 차 있는 물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컵에 물이 반쯤 찼다고 보는 반면 어떤 이는 물이 반쯤 비어있다고 바라보는 그런 관점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자와 노자의 관점은 서로 정반대로 바라본다. 공자는 아홉길 높이의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 흙이 모자라서 쌓지 못하다 즉성공을 눈앞에 두고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막판의 실수를 경계하는 입장이고, 반면 지극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대업을 성취해낸다는 노자의 입장에선 화룡정점 즉 마지막 한 순간까지 한 줌의 흙이 모여서 태산을 쌓는다는 우공이산의 지혜가 성공의 법칙임을 말해준다.[3]

성공과 실패는 종이한장 차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패냐 성공이냐[4]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타율적 입장의 공자의 시각과 자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난 해낼 수 있다’(can-do-spirit)고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개척 정신, 긍정적 입장의 노자의 시각과는 실제적으로 차이가 난다. 긍정심리학의 측면에서 노자의 시각에 찬성한다. 성공이 성공을 낳은 거고, 실패는 실패를 낳기 마련이지 않는가? 시험치기 전날 밤 내일 시험에서 실패할지 모른다고 조바심 내고 두려워하면 될 일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도 백번 실패하더라도 한 번 성공하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성공을 위해서 도와주는 격려가 필요한 것이지, 실패했다고 야단치고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면 도전 정신은 쇠퇴할 것이다. 오자서같은 충신이 죽으면 무능한 관료들은 속으로 춤추게 마련이다. ? 한편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은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유용하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는 관리자의 입장이 아니라 기존에 없는 전혀 새로운 창의적인 일을 할 때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경우 말이다. 창의적인 일이나 새로운 일에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을 사서삼경의 공자가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볼 때는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측면에서 도전과 긍정의 사고방식이 인류 발전에 더욱 기여한 것 같다.

 

12행 문장 내용 요약

(신하들은 항상 바른 길을 걷고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진실대로 간언하여야 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제후는 믿음의 원칙을 지키고 결코 패역을 저지르거나 교만하면 아니된다. 당태종 이세민은 (전쟁에서 희생된 군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국가가 나서서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12행 요약

□□□□□□□-
(君臣守義序之德)
(신하들은 항상 바른 길을 걷고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진실대로 간언하여야 하고)
□□□詩禮之訓-
(嫡親振)詩禮之訓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姬室拜梓之□-
姬室拜橋梓之()
(제후는 부자간의 믿음의 원칙을 지키고 결코 패역을 저지르거나 교만하면 아니된다.)
□□□□□□□  
大唐太宗文武聖皇帝 당 태종 이세민
應鴻社□-
應鴻社()
당태종은 전쟁에서 희생된 軍事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위령제를 지내면서 깊은 애도를 표하였다.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 귀환길에서) 전쟁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위령제를 지내주면서 (애도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未展六奇術
先虧一
防身豈乏智
殉命有餘忠)
(오호애제라, 기러기와 제비는 서로 교차 지나간다하거늘 삶과 죽음도 교차하는 건가?
유방이 승리했던 육기술을 아직 펼치기도 전인데, 높은 산의 공적을 쌓는데 먼저 한 줌의 흙이 되어 보태었다는 건가요!  그토록 병법에 뛰어난 사람이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간수할 지혜는 부족했나요?  자기 몸은 살피지 못했으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힘은 남아 있었다는 건가요!)

 



[1] "傷遼東戰亡", 《全唐詩》卷1 (1705).

[2] 六親(육친)의 의미는 부모형제간의 육친 (以父, 昆弟, 從父昆弟, 從祖昆弟, 從曾祖昆弟, 族兄弟)을 이른다.

[3] “Most great people have achieved their greatest success just one step beyond their greatest failure.” (Napoleon Hill).

[4] 뛰어난 의사는 병든 사람의 죽음과 삶을 바로 알 수 있고, 훌륭한 임금은 계획한 일의 성공과 실패를 미리 알아낸다, “良醫知病人之死生 聖主明於成敗之事”(양의지병인지사생 성주명어성패지사),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