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 다툼
10.1. 서브 주디스 sub judice 권력 분립의 원칙
의원이 가진 최고의 특권 중 하나는 의회내에서 어떠한 발언을 하더라도 어떠한 형사상의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면책특권이다. 영국은 권리장전(1689년) 제9조에서 “의회에서의 언론의 자유와 토론 또는 의사 진행은 법원이나 의회 이외의 어떠한 곳에서도 탄핵되거나 심문을 받지 않는다. the Freedom of Speech and Debates or Proceedings in Parliament ought not to be impeached or questioned in any Court or Place out of Parliament.”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면책특권을 가진 입법부라고 해도 비판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의회가 법원이 심리중인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 즉 ‘법원 심리중인 사건’에 대해서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그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것을 서브 주디스 sub judice 원칙이라고 말한다. 서브 주디스는 재판 심리가 진행중에 있다는 뜻의 라틴어다. 흔히 언론에서 “현재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서 특검법을 발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서브 주디스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사법구조는 판례법 제도와 전통이 확립되지 않았고 또 법원이 법을 창출할 수 있는 권한을 완전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다. 특검법 발의와 같이 수사의 주체를 별개로 정하는 문제는 서브 주디스 원칙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같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동시에 사실심리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사이에 권한 다툼이 일어나긴 했어도 헌법재판소가 사실 심리를 담당한 것이 아니라 상급심으로서 관련 법률에 대한 법률 심리를 진행한 사건이었다.[1] 상고심은 법률심 question of law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가 있었다.
한편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에서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두 별개의 사법기관이 같은 증거를 갖고서 동시에 사실 심리를 진행하였다. 이로써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각각 사실 확정이 달라질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두 사법기관 사이에 사실확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괜히 시간만 낭비할 테고 또 반대로 대법원의 사실확인에 대한 확정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헌법재판소가 사실 심리를 통해서 고등법원의 결정과는 배치되는 사실 관계를 확정하였다. 이런 측면은 미국 호주 스페인의 경우하고 다른 점인데 이들 나라에서는 법원에서 먼저 사실심리가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대법원의 판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제 의원의 지위 회복에 대한 행정심판 등의 사안을 담당하고 있는 대법원에게 공이 넘어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간의 “힘겨루기”사건으로써 “헌법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이유는 이와같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 공포된 의견은 아니지만-행정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에 해당된다) 대법원의 입장은 국회의원 지위 상실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대법원이 갖고 있음으로 국회의원 지위 회복에 관한 판단도 대법원이 결정할 사안의 성격으로 이해할지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최종적인 결정권은 대법원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에서 의원 지위 상실을 최종 선고하였고 선관위가 형식적으로 통고의 행정행위를 하였지만 결국은 대법원이 다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물론 대법원이 계획하고 있는 “상고법원” 설치의 법률도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사의 대상에 해당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경우 해당 법률이 통과되어 이제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게된 어떤 소송당사자가 국민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조항을 근거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사를 제기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최후의 심판자인가?
10.2. 헌법 위기 constitutional crisis의 소재
법원은 위법성의 여부를 심리하는 사법 기관이다. 사법부가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고의 행위에 대한 ‘사실 Fact’ 확정을 필요로 한다. “진실은 하나”라는 말처럼 사실은 하나로 확정되어야,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재판상의 사실확정의 문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무 것도 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사실 확정은 흑백의 문제 즉 either or, 예 아니면 아니오의 문제에 해당한다. 그런데 만약 사실확정을 다른 두 개의 기관에서 동시에 함께 다룬다면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을 피할 수가 없다. 행정부(검사)가 사실 확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그러한 사실 확정의 문제까지 법정 공판을 통하여 다시 심리할 수 있다는 ‘사법 심사 judicial review’ 제도는 헌법의 3권 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서 파생된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사법부와 행정부간의 헌법상 권한 배분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분명하게 규정한 헌법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적 규정의 미비에서 헌법상 최고 기관간의 권한 다툼이 발생하여 정치적 법적 혼란 사태가 야기되는 상황을 ‘헌법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정당해산 심판은 피고의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 다른 두 헌법 기관인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동시에 ‘사실 심리’를 진행하게 됨으로써 법원과 헌법재판소간의 정면 충돌(상반된 사실 판단 또는 상반된 법률 판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존재한다.
위헌법률심사를 대법원이 담당하는 영미법의 사법부 1원 one supreme court 제도(대륙법 계통 국가 중 일본 헌법은 여기에 해당)에서는 이런 문제점의 소지가 생기지 않을 것이나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 원천적인 사법기관이 아니고, 헌법상 명문규정에 따라 제한적인 권한을 분배받은 사법기관이므로, 이에 대법원과의 사이에서 권한 다툼의 여지가 존재한다.
10.3. 헌재 명령의 실효성과 공직선거법 해석권한의 주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재판부는 전 통진당 의원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청구 소송(2015구합50320)에 대해 “법원이 심리•판단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하여 제기된 소송에 해당돼 원고들의 소는 부적법하다”고 소를 각하했다.
판결문에서 “이 사건 의원직 상실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정당의 해산 심판’을 관장하는 범위에서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직접 적용해 이끌어낸 결론”이라며 “헌재에 맡겨져 있는 헌법 해석•적용에 근거해 이뤄진 결정인 이상 법원 등 다른 국가 기관은 이를 다툴 수 없고,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통진당 의원들은 형식적으로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소송의 실질적 내용은 헌재 결정에 대한 것이고 … 원고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재가 헌법 해석•적용에 대한 최종 권한으로 내린 결정이므로 이를 다투거나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어 김 전 의원 등이 제기한 소송은 부적법하다. … 헌법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개방적일 수 밖에 없다. … 정당해산심판의 범위와 소속 의원의 의원직 박탈 등 정당해산결정의 효력에 관한 본질적 내용은 헌법의 해석을 통해 구체화돼야 하며 그 최종적인 권한은 헌재에 있다. …
헌재는 정당해산 결정이 헌법에 위배된 정당뿐만 아니라 정당에 소속돼 위헌적 정치활동을 한 국회의원에게까지 효력을 미친다는 점을 밝혀 해석을 통해 방어적 민주주의를 구체화[하였다.]”
지방법원 행정부 판결
한편 전주지법 제2행정부는 2015.11.25. 강제해산된 통진당의 비례대표 이현숙 전 전북도의회 의원이 전북선관위 등을 상대로 낸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퇴직처분 취소 등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헌재와 고등행정법원의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내용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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