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무대왕릉비 연구-제2권-비문 뒷면 해석

비문뒷면 10행-총명현군의 요건

by 문무대왕 2025. 4. 2.

비문뒷면 제10

 

10不假三言-불과 세마디만 말해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다

□□□□淸徽如士不假三言識駿□□

 

문무왕이 백대의 현왕이요 천년의 영도자이고 길이길이 빛날 민족의 사표라면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길이길이 빛나게 그 무엇을 해야 될 의무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 하나가 문무왕릉을 세워 불멸의 천고의 영웅인물을 후세에 전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길이길이 빛나게 할 어떤 상징성 문무왕릉 충혼탑을 새기는 것이 어떻겠는가? 장례식도 그 때까지 내려온 전통에도 없는 새로운 방식인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한 문무왕이었으니 우리들 또한 어떤 새로운 형태로 그의 고귀하고 높은 숭고한 불멸의 그 영웅에 대한 어떤 상징적인 건물을 남기고 길이길이 간직해 나가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당시 지도층은 물론이고 거국적인 여론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결론이 바로 문무왕릉을 상징적으로 건립한 배경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淸徽如士

()은 맑고 깨끗하다 담담하다 즉 맑은 물이 흘러내리듯 투명하고 막힘이 없다, ()는 아름답다 찬란하다 ()의 뜻이다. (청휘)는 청미한 음성이란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청조() 즉 고상한 절개 節操 뜻한다. 사대부란 월왕 구천을 섬겼던 도공의 신 범려가 말하듯이, 유신이 애강남부에서 통탄하듯이, 주군이 욕을 당하면 자결하거나 깨끗이 물러나는君辱臣死”(군욕신사)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신하의 윤리 원칙이었다.

()는 문사 무사 변사 장사 (文士 武士 辯士 壯士)를 다 포함하는 사대부(士大夫) 계층 즉 최고 지도자하고는 구별되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관리자 계급을 말하고 국왕을 보좌하는 신분을 말한다. 국왕은 전체를 아우르는 일을 하므로 아무래도 학문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대부에는 지식과 학식이 못 미칠 수 있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국왕은 때때로 신하들로부터 머리를 빌리지 않던가? 

문무대왕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머리가 명석하고 비상해서 少有好學 明晰秘象(소유호학명석비상) 준골천리 걸출한 준재였다. 학문을 숭상하고 배움 연마에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절차탁마한 그답게 항상 지식인층을 우대하고 존경하였고, 그의 학식은 지식인층 학문하는 사대부만큼 막힘이 없이 깊고 뛰어났다-淸徽輝如士大夫, 한 마디를 말하면 세 마디를 질문할 정도로 이해력과 통찰력이 높았으며, 불과 세 마디만 말해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不假三言.

 

不假三言

三言(삼언)은 세 문장으로 끝내는 핵심 대화, 요즈음의 삼행시처럼 짧은 핵심구, 세 마디 촌평 등의 뜻이다. 전국책의 예문 구절을 보자. 人有請者曰 臣請三言而已矣 益一言 臣請烹 郭靖君 因見之 客趨而進曰 海大魚 因反走”.

대왕은 세 마디만 나눠봐도-不假三言(불가삼언)- 핵심을 훤히 꿰뚫어 볼 줄 아는 학식과 지식과 통찰력이 매우 뛰어난 출중한 인재였다. 

 

識駿嘗問(식준상문)

駿()은 신속하다는 뜻이다. 신속하다는 뜻의 준골은 머리 두뇌 회전이 빠르다 그런 준재를 말한다. 준골(駿骨)은 양마(良馬) 천리마라는 뜻이 있지만 戰國策(전국책)에서 소개되는 고사성어로 인해서 걸출한 인재를 뜻하는 말로 굳혀진 말이다. 

 

불치하문

시경에 先民有言 詢于芻蕘”(선민유언 순우추요), ‘예전의 높고 어진 사람이라면 꼴베는 사람이나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태도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에게는 필요하다는 현자의 말씀이다.  

 

識駿骨”(화류식준골)라는 말이 있다. 즉 준마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재가 수재를 알아 본다. 노자도덕경 제41장의 상사 중사 하사의 개념에 상통한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듣고 나면 신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중간치기는 진리를 듣고 나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긴가민가한다, 하삘이는 진리를 듣고 나면 어이없게도 크게 비웃는다, 만약 하빨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진리가 어떻게 나오던가? 갈릴레오에게 그랬듯이 뉴튼에게 그랬듯이 아인슈타인에게 그랬듯이. 처음엔 다들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샀지 않는가? 제눈에 안경이고, 여행도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이며, 안목은 사람 따라 다르고, 사람은 제능력껏 알아보는 것이다.

折節下士(절절하사)는 삼국지 위지 원소전에 나오는 구절인데, 비록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유능한 현인에게는 자기 몸을 낮추고 굽혀서 절을 하며 예를 갖추고 모신다는 敬賢下士(경현하사)의 뜻인데, 이와 비슷한 말로는 求賢下士(구현하사) 禮賢下士(예현하사) 謙恭下士(겸공하사) 등의 표현이 있다.

총명현군이 어떻게 능력있는 사람을 쓰는 지에 대해서, 사마천의 史記 원앙황착열전에 나오는 구절과 자치통감 당태종조의 기사에 나오는 구절을 참조하여, 駿骨千里(준골천리)의 개념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결자부분의 내용을 駿骨千里 兼聽則明 偏聽則暗 從善如流 從諫如川 上日聞所不聞 明所不知 日益聖智-이런 내용으로 제시한다. 

 

廳訟(청송), 경청의 지혜

총명현군의 첫 번째 요건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고 도교 신앙 특히 부작신앙의 제1원칙 또한 경청하는 것에 있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열려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성인군자들은 공자처럼 어눌하게 말을 할지는 몰라도 듣기를 잘하는 훈련된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불소불통의 소통능력이 뛰어나려면 일단 먼저 듣기 훈련이 중요하다. 무소불통할 정도면 얼마나 총명하고 현명해야 할까? 묻고 답하기를 잘해야 한다. 즉문즉답할 수 있으려면 머리가 뛰어나야 한다. 이러한 뜻을 배경 지식으로 삼아서不假三言識駿▨▨부분의 결자를 추측해 메꾸어 본다면, “不假三言 識駿嘗問으로 하여不假三言 識駿嘗問 聞所不聞 明所不知 日益聖智”, 또는不假三言 識駿嘗問 兼聽則明 偏聽則暗 從善如流 從諫如川이런 내용의 문장이 문맥상 연결된다고 보인다. 여기서 ()은 맛을 보다 辨別滋味(변별자미)의 뜻이고, 상대방의 마음을 떠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駿嘗問言”(준상문언)의 표현은 조조의 아들 조식의 辯道論”(변도론)劉子駿嘗問言의 구절이 나온다.

 

왜 총명현군은 묻고 답하기를 즐겨 하는가?

그것은 능력있는 사람을 쓰려고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聰明賢君 欲求取賢 能有九德. 능력있는 지도자는 부하도 뛰어난 사람을 고르려고 한다. 반면 지도자감이 못되는 하사들은 혹시나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는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쓰지 않으려는 천박함을 보이기 쉽다. 제왕이 토론하기를 그치고 주지육림에 빠져들면 나라가 망할 징조이기에 공자도 그 곁을 바로 떠났다.

사마천은 굴원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人君無愚智賢不肖 莫不欲求忠以自爲 擧賢以自佐”: 군주는 자신이 지혜롭든 어리석든 현명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충신을 기용하여 자기에게 도움이 되게 하고,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찾아서 자신을 보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현왕이 나타나지 못하고 나라가 어지러운가?  사마천은 그것은 군주가 충신과 불충을 구별하지 못하고 현명함이 무엇인지 판단을 제대로 못한 군주에게 있다는 것으로 그에 대한 답을 했다. 근세 조선사나 가까운 현대사를 살펴보면 사마천의 평가는 옳다는 생각이 든다. 

10행 번역 요약

淸徽如士 (그의 학식은) 학문하는 사대부 학자만큼 막힘이 없이 깊고 뛰어났다.
不假三言 한 마디를 말하면 세 마디를 질문할 정도로 이해력과 통찰력이 높았으며, 불과 세 마디만 말해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
識駿(嘗問) 준마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재가 수재를 알아 보듯, 문무왕은 판단력이 뛰어났고, 막힘없는 즉문즉답으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질문능력 또한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