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뒷면 제11행
11행 髣髴濠梁(방불호량)
▨▨▨▨▨而開沼髣髴濠梁延錦石以▨▨▨
開沼
《廣雅》에서 “沼 池也”라고 주해하고 있다. 연못 沼(소)는 안압지처럼 연못 池(지)을 말한다. 咸池함지 龍池용지 神池신지 靈沼영소와 같은 말이다. 손자병법에서 비유를 들고 있는 金城湯池(금성탕지)의 말처럼 누구도 뚫고 들어 올 수 없는 견고한 철벽 철통 방어벽의 성채를 말한다. 금성탕지의 성어 뜻에 대해서 한지 괴통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邊地之城 必將嬰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이에 대해 안사고는 “金以喻堅 湯喻沸熱不可近”라고 주해했다. 이와 같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탕처럼 沸水(비수)가 콸콸 흘러서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견고한 성채를 말한다.
인-자애롭다는 것은 아이의 때묻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것이요, 의롭다하는 것은 맑은 것을 혼탁하게 만든 것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고 이에 맞서는 것을 말하며, 용기라는 것은 도저히 안될 것같이 힘에 부치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해 덤비는 것을 말하고, 부드러움이란 새털보다 더 사뿐하고 가볍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유신의 온탕비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仁則滌蕩埃氛 義則激揚清濁 勇則負山餘力 弱則鴻毛不勝”. 온천물은 만명을 치유하는 신수의 기능을 가진다. 그래서 왕포는 穀神不死라고 말했고, 당태종은 “偉哉靈穴 凝溫鏡澈 人世有終 芳流無竭”이라며 예찬했으며, 사람들은 건릉 술성기에 적혀있는 “姬沼弗營” 구절대로, 황제가 했던 것처럼 희수 강가에 우물을 파서 분수처럼 콸콸 솟아나는 물을 먹고 살아간다. 사람은 물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물은 생명수이다. 沼(소)는 靈台(영대), 靈囿(영유), 靈沼(영소)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沼(소)는 연못 沼澤(소택), 池塘(지당)을 말한다. 관자(管子)는 말했다, “君請遏原流 大夫立沼池 令以矩游為樂”. 사대부가 연못을 여는 까닭은 물고기처럼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 현실적으로 등용문의 의지라고 보더라도 그 근원에는 개인적 도약이 완성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일본의 어린이날 코이노보리 축제에서 연어가 물을 거슬려 오르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치는 의미와 생선의 지느러미는 거꾸로 달린 것처럼, 역린의 윤리를 지켜내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사대부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원을 여는 것으로 꽃을 피었는데, 그 이전의 신라 시대에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의 “開士林之學”(개사림지학)의 의미대로 은퇴해서 강단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유신과 위진남북조 동시대를 살았던 육기(陸機)의 “吊魏武帝文”(조위무제문) 가운데 나오는 “佇重淵以育鱗”(저중연이육린)의 표현 즉 ‘깊은 연못 속을 내려다보며 먼 안목으로 잠룡을 길러내는 것’ 그와 같이 후세에 대한 교육을 의미한다. 사람은 은퇴하면 소일하면서 잠룡을 길러내는 것 즉 공자처럼 교육을 통해서 후세의 성인들을 길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노동력이 왕성한 시기에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소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에 대한 교육을 책임졌다. 후세 교육에 대한 열성적인 민족의 으뜸은 유태인과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중국의 객가인과 한국인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인 “人亡政息”(인망정식)[1] 의미와 직결된다. 교육은 백년대계에 속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
연못을 만드는 일은 정원을 만드는 것과 같다. 회남자에서 천체는 기울어진 우산과 같다고 말했고 “혼천부”에서 지구는 유람하는 배-“天如倚蓋 地若浮舟”-와 같다고 비유했는데, 우리들 삶은 일엽편주로 강 위의 유람(矩游)을 하는 것은 정원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연못은 정원의 일부이니 연못을 여는 의미는 동일하다. 정원에 대한 묘사는 사마상여의 호방한 상림부 수렵부 글이 대표적인데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정도만 읽어봐도 충분한 상상을 하고도 남는다.
연못을 연다는 것을 정치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입국대사 대업을 달성한다는 의미가 된다. 노자가 태어난 향리에 아홉 개의 우물 구정이 있으며 당나라를 개국한 당고조 이연의 이름자 연이 연못 淵(연)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귀 기울이고, 강물의 흐름과 같이 교화되었던 向風而聽 隨流而化, 그 때의 사심없고 오로지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한 사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도량이 넓고 마음이 확 트이고 막힘이 없는 아름다운 그 사람과 그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문무왕릉 비문에서 비유한 개소, 정원의 모델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유신의 小園賦(소원부), 온탕비에서 나타나는 뜻으로 유추 상상해 볼 수 있다.
“若夫一枝之上 巢父得安巢之所 一壺之中 壺公有容身之地 況乎管寧藜床 雖穿而可坐 嵇康鍛灶 既煖而堪眠” (유신의 소원부 중).
은자의 최고수로 불리는 소부는 새처럼 나무 가지를 둥지로 삼고 살았고, 신선 호공은 겨우 몸 하나 펼 수 있는 화로 옆에 움집을 짓고 살았으며, 오로지 자기 일에만 묻혀 산 관령은 헤지고 구멍난 침대 위에서 무릎을 얹히고 직물을 짰으며, 죽림칠현의 영수 혜강은 부뚜막 화롯불을 달궈 가면서 쪽잠을 잤으니 뜨거운 열을 참고 견뎌야 했을 터.
문무왕은 어려서부터 호학 학문을 즐겨 하였고 또 두뇌가 명석해서 사대부와 토론하기를 즐겼으니 그의 살아 생전의 뜻을 존중하여 그 때와 같이 변함없이 학문과 대화를 하며 호상지락의 낙을 누리시라고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아름다운 돌로 연이어 쌓아서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마치 호수 위의 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던 문무왕을 위하여 천정을 마련하고 빈객으로 모시겠으니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기 바라는 청언이다.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기 때문에 연못을 열어 거기에 초대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인 “人亡政息”(인망정식)의 의미와 직결된다. 또 그 의미를 연장하면 태자 시절 경연하는 의미와 맞닿는다. 그러므로 개소는 開筵(개연)-연회 잔치를 열다, 강연자리를 마련하다는 뜻이니 빈객으로 초대한다는 말이다. 천정-뒷뜰 마당에서 빈객이 강연하는 자리를 마련해 놓으니 굴원 초사의 초혼의 의미에서와 같은 정황이 전개된다. 화복길흉이 같은 곳 동역에 있다고 보는 우리의 생사관처럼, 삶과 죽음은 같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망자는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인 “事死如生 事亡如存”(사사여생 사망여존)의 인생관에서 나온다. 순자가 말했다. “喪禮者 以生者飾死者也 大象其生以送其死也 故事死如生 事亡如存 終始一也” (荀子, 禮論). 상례란 산 사람의 예로써 죽은 사람을 장식하고, 되도록 삶을 모방하여 죽은 사람을 송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죽은 사람 모시기를 산 사람 모시듯 하고, 죽고 없는 사람 섬기기를 생존하는 듯이 하여, 시작과 마지막을 한 가지로 여기는 의식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 화신이 아니겠는가? 부활은 화신이다.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무덤을 집 근처에 마련하는 이유가 마치 무덤을 천정-뒷뜰 뒷마당으로 여긴다는 것, 그것은 유신이 말한대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척으로 가까이 함께 있다는 것, “人神咫尺”(인신지척)이라는 말 그것이다. 강남 지역-양자강 이남 지역- 사람들이 흔히 쓰는 “천정”-뒷마당의 의미를 북방민족 예컨대 청나라 만주족 등은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髣髴 방불
髣髴(방불)은 마치 무엇 무엇인 듯하다, 비슷하다, 어렴풋이 보이다의 뜻이다. 說文(설문)에는 “彷彿相似 視不諟也 諟與諦同”으로 설명하였다. 방불은 類似, 似乎, 好像의 뜻이니 仿像(방상)과 비슷한 말이 된다. 仿像, 방불, 隱約(은약)은 희미하다. 어렴풋하다, 분명하지 않다, 아련하다, 어슴푸레하다, 은은하다, 은근히 숨어 있다의 뜻이다.
비록 최근 1956년 정인보가 찬한 김유신신도비명에 나오는 구절이긴 하지만 방불의 뜻을 갖는 표현이 나타나는 곳을 찾아보면, “鉅觀史書所記 固不能萬一 然循而求之 猶有可以紬繹其髣髴者” 구절이 있는데 이는 ‘역사서의 기록들을 보면 단언컨대 진실로 만분의 일도 실려져 있질 못하다 하지만 차례차례 추구해 보면 그 髣髴(방불)한 것 즉 그와 비슷한 모양을 갖는 것의 단서를 찾아내 정교하게 술술 풀어낼 수 있다’.
조식의 “낙신부”에 어렴풋하고 희미하고 흐리멍텅한 몽롱한 그런 아리끼리한 방불의 상태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표현을 보자.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飄兮若流風之廻雪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
엷은 구름에 쌓인 달처럼 어렴풋이 보이고 흐르는 바람에 눈발이 날리는 듯 희미하네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노을 위로 떠오르는 해와 같이 눈부시더니, 가까이서 바라보니 맑은 물 위에 피어난 부평초 같이 선명하네. |
하안의 경복전부의 구절 “遠而望之 若摛朱霞而耀天文 迫而察之 若仰崇山而戴垂雲”은 조식의 이 구절과 그 의미가 같다.
뉴튼의 만유인력 중력의 법칙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든 모든 진리는 발견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진리는 원래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깨우칠 때는 긴가민가 아리까리한 경우가 많다. 처음에 접할 때 알쏭달쏭 이것인지 저것인지 반신반의하지 않는 진리가 어디에 있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나올 때를 보라. 과학은 차치하고, 모네의 수련 그림을 감상해 보는 것이 방불의 상태에 대해서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濠梁之上 호량지상
무지개 다리
“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내 마음은 설레었지!” 이런 구절로 시작되는 워즈워드의 영시를 외우고 다녔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레인보우는 무지개 다리, 한자로 홍교(虹橋)라고 쓴다. 무지개는 유신의 싯구 “跨虹連絕岸”(과홍연절안)의 구절의 의미에서와 같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어주는 다리의 이미지를 갖는다. 다리는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개념이고 스피링보드의 역할, 항구 부두의 이미지를 갖는다. 다리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가 된다.
호량지락
잘 알고 있는 장자의 “호량지변”의 대화를 잠깐 상기해 보자. 장자와 혜자가 물 위의 떠 있는 호수의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 보니 물고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이렇게 유유자적 노니는 것을 물고기의 즐거움이라고 말하자, 혜자는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그러자 장자가 당신은 내가 아니면서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단언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하며 되받았다. 이에 혜자가 대답했다: “내가 당신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당신의 마음 속의 생각을 내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물고기가 아니므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은 분명하지 않는가?” 이에 장자가 재차 답변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따져보자. 당신이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느냐?'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나서 내게 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여기 호수 위의 다리 난간에서 그것을 알게 되었을 뿐인데." 비록 장자의 마지막 결론은 명가의 논리 싸움은 아니지만 가설의 전제와 결론이 결부되는 논리와 깨달음의 인식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논하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같은 종교철학적인 이야기이니, 원문을 다시 살펴보고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자. “請循其本 子曰汝安知魚樂云者 既已知吾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濠上(호상)의 의미
여기의 濠上(호상)이란 단어 발음에서 숨겨져 있는 의미가 읽혀진다. 우리들이 부모 잃고 떠도는 처량한 아이의 신세를 두고서 기러기 인생이라고 말하는데, 기러기가 하늘을 날 때는 호숫 위에 비치는 반사되는 빛을 보고서 날아간다. 그런데 호수가 가뭄에 말라버렸으면 어떻게 기러기가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장자의 濠梁(호량)이란 말은 호수 위의 다리를 지칭하는데, 이 濠(호)는 참호 즉 성채 주위에 물이 흐르는 또랑을 파놓은 것을 말한다. 성 주위에 빙빙 돌아가면서 물이 흐르는 참호를 파 놓으면 적이 접근하기 힘들다. 접근로는 오로지 다리 하나 밖에 없으니까 호수 안의 성채는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방어막이 쳐있게 되어 세상과 절연된 평화와 안전을 누린다. 유럽의 캐슬 구조에서 잘 볼 수 있고, 또 인도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유명한 타지마할 궁전의 묘소, 캄보디아의 상징과 같은 앙코르 와트 왕릉의 유적에서 보다시피 호수 위의 묘소로 통하는 길을 호량이라고 말한다. 梁(양)은 다리를, 濠(호)는 壕(호) 글자와 같은 뜻이다. 호량은 호숫위의 다리를 뜻하는 말인데, 이는 곧 虛梁(허량)과 동의어가 된다. 虛梁(허량)은 임시로 가설한 다리를 뜻하는데 별자리 명칭에도 이 허량을 쓰고 있으므로, 진서 천문지의 설명을 보자. “蓋屋南四星曰虛梁 園陵寢廟之所也”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허량은 산소 묘소 옆에 임시로 처놓은 천막 묘옥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부모 묘소를 지키며 3년상을 치러내는 것 즉 산소 옆에 임시 묘옥을 가설하고 거기에 돌아가신 부모의 정을 되새기며 삶을 성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호량의 낱말 뜻을 알아차렸다면 장자의 호량지유의 의미에 대해서 보다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다.
호량지유
장자의 호량지락 비유에서 물고기는 곧 죽음이란 말과 동치되니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대치된다. 물고기를 죽은 사람과 치환하여 똑같이 장자와 혜자와의 대화를 이 단어만 바꾸어서 재구성하고 다시 읽어보라. 죽음이란 것은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고서 그저 관념적으로만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죽음이란 자신이 직접 죽어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 수 없는 법이고, 장자 같은 성인이라도 죽음에 임박해서 무덤 속에 곧 들어가는 그 순간에서나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 흔히 하는 말로,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지 않는가?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장자 같은 성인이야 죽기 전 묘소의 천막을 치고서 그렇게 도를 깨우치는 사람인거고.
이와 같이 호량에 대한 단어의 분석적 이해를 통해서 나는 장자가 말한 호량지유의 의미를 깨우쳤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11행에 나오는 “髣髴濠梁”(방불호량)의 구절에 대해서 올바른 번역 해석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문무왕릉비문에서의 “髣髴濠梁”(방불호량)의 의미
문무왕릉비 비문에서의 “髣髴濠梁”(방불호량)의 구절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이 구절에서 “星橋”(성교)의 결론을 도출해내며, 직녀가 수레에 타고, 견우가 물을 건널 때 바라보는 相望(상망)의 星橋(성교)의 의미를 설명해낸다.
그런데 보라, 국편위는 “髣髴濠梁”을 “호량(濠梁)을 방불하였고”-이렇게 번역 해석해 놓고 있다. 이러한 국편위의 번역해석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수준미달 또는 도저히 학자적 번역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국편위의 부족함과 오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문무왕릉비 비문에 대한 보다 올바르고 정확한 번역 해석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濠(호)는 도랑, 구덩이, 참호를 의미하는 壕(호)와 같은 뜻의 낱말이다. 濠梁(호량)이라고 하면 濠의 上(위) 즉 물 위의 梁(양)은 橋梁(교량) 즉 다리를 말하니 물 위의 다리 즉 강을 건너는 다리를 말한다. 이 호수 위의 다리를 뜻하는 일반명사 호량에 대해 장자가 물고기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느냐에 비유하고 있고, 그에 따라 호량지상(濠梁之上) 성어가 파생되었는 바, 장자의 비유적 의미에 따라서, ‘남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 장소’를 가르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濠上觀魚(호상관어), 濠梁之樂(호량지락) 등의 성어 또한 같은 의미이다.
다리의 의미[2]
무협지 만화나 영화를 보면 대개 남녀가 다리 위에서 만나거나 헤어진다. 다리는 만남과 헤어짐의 통로 받침대가 된다.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하듯이 발판 위에서 올라서야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먼 길 여행을 하려면 배가 닷는 다리 위에 나와서 배편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이미지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의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또 다리 위에 올라서야 세상이 보이며 거인의 어깨 위로 무등을 타고 올라서야 저 멀리 내다볼 수 있지 않던가? 뉴튼이 큰 명성을 얻은 것은 그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분에 있다고 고백했지 않았는가?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물고기와의 대화를 상기하라. 내가 상대방이 될 수 없는데 내가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노니는 즐거움을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지만 내가 네가 아니지만 내 마음을 네가 알 수도 있지 않는가? 텔레파시가 통하듯이, 기가 막히지 않고 흐른다면 우리들은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가 네가 아니지만 내가 네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던가? 장자의 비유 마지막 구절의 표현은 “我知之濠上也”인데, 이는 ‘내가 지금 여기-호수 위의 다리 난간에서 알았다’고 장자는 말한 것이다. 호상이라면 부모의 산소 옆에 묘옥을 쳐놓고 단식을 해가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근본적 이치를 깨우치게 되었다는 말이지 않는가?
호상지락
사람들은 어떻게 남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어찌하여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만 들어도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들꽃 중에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다고 해서 원추리 망우초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나는 초원의 풀 위를 뒹굴어도 근심이 가시지 않고, 장미만 쳐다봐도 영원한 기쁨을 얻는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나는 양귀비를 안아봐도 즐거움이 나지 않을까? 어찌하여 저 새들은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하여 산속을 마다하고 저 멀리 물 위를 날아가는가?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어찌하여 물 속의 고래도 춤을 추고 올라 왔으며, 가야금의 명인 호파가 줄을 켜면 어찌하여 육마가 말구유에서 일어났을까? 이들은 금수의 본성을 잃었단 말인가?
“草無忘憂之意 花無長樂之心 鳥何事而逐酒 魚何情而聽琴” (庾信, “小園賦”).
우리들은 ‘내 마음을 아실 이 누가 있을리요’ 하며 때때로 낙담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름다운 호수 위에서 유유자적 한담을 나누면서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낄 때 會心(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 때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하버마스의 공동체 교류 이론이 우리나라 고대사회 공동체를 지탱하는 미덕으로 작동하지 않았던가?
마음과 마음의 소통
천주교 성당이나 감리교 이런 성당 교회는 예배 볼 때 무척 엄숙하다. 그런데 요사이 시티교회나 순복음교회 힐송교회 등은 예배시에 밴드를 동원하고 소리 높여 찬송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그렇게 예배를 떠들게 본다. 예배당에 젓가락을 두들기고 소리치며 충만한 기쁨으로 예배를 보는 것은 어릴 적 경험에서는 익숙한 형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치며 밴드공연하며 예배를 보는 모습이 장자의 妻死章(처사장)에서 말한 동이 항아리 두드리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과 서로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북경원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인류의 두개골이 발견된 삼성퇴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 고고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삼성퇴 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인류의 문화와 종교와 진화 역사를 새로 쓰게 되어 흥분의 도가니를 열어 제킨 三星堆(삼성퇴) 유적이 발견되면서 장자가 말한 장례문화가 재확인된 것이 아닌가? 삼성퇴 유적이 발견된 때는 최근 1986년이었다. 그러므로 1990년대 이전에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삼성퇴의 유적 발굴과 그 진실의 파장을 아직 잘 알고 있질 못할지도 모른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또 학교 밖에서 배우기도 벅찬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파촉 문명이 우리 신라인 조선사람들의 원형에 가깝지 않는가? 삼성퇴 유물에서 발굴된 유명한 탈 그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갖으며 또 그와 같이 서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장자의 호량지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만약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장자가 말한대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죽음을 두고서 難免叩盆(난면고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고 싶지 않는 경향이 크다. 유언장이라는 것이 괜히 불길한 예감을 주기도 해서 유언장을 사전에 작성하는 것을 극구 꺼려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죽음은 누구에게나 회피하고 싶고 그래서 죽음에 대한 막연하고 현실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장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죽음에 대해서 용기 있는 극복이 필요하다고 말했을까?
우리 선조들의 죽음관에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는 “이처”관(이처의 발음은 불교를 공인받고자 순교한 이차돈의 발음과 그 한자 의미에서도 나타난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믿음은 객가인들의 핵심적인 인생관에 해당한다. 이것은 삼국유사에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죽음관이다. 기독교 성경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원래의 본향으로 되돌아가고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자기 아내가 죽어서 고통스런 이승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 제끼고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유유히 우주 여행을 즐기는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오히려 담대하게 대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장자의 장례 모습은 젓가락으로 북을 두드리며 밴드공연을 하며 예배를 보는 오늘날의 성령 충만한 교회들의 예배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조상들의 죽음관을 보면, 죽음을 배에 승선하여 항해를 마치고 정박하는 항구(-테니슨이 읊은 Spit(모랫톱)이다)에 닿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런 죽음관은 유신이 절실하게 기록해 두었기에 생생하게 다시 재연 복원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턱(독일어로 Schwelle)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죽음의 문턱을 생각해 보라.
“충신장”의 핵심적인 무대 장면에서 해석하듯이, ‘죽음은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 부활하고 하늘나라로 승천하는 것’ 그 이미지와 같다.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설”을 읽었는데, 인간의 삶은 육신적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졸업이나 마침정같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모랫톱을 건너며 -테니슨-
해는 지고 저녁 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나 먼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랫톱아, 구슬피 울지 말아라.
끝없는 바다로부터 왔던 이 몸이
다시금 고향을 향해 돌아갈 때에
움직여도 잔잔해서 거품이 없는
잠든 듯 조용한 밀물이 되어다오.
황혼에 울리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찾아 드는 어두움이여!
내가 배에 올라탈 때
이별의 슬픔이 없게 해다오.
이 세상의 경계선인 때와 장소를 넘어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간다 하여도
나는 바라노라, 모랫톱을 건넌 뒤에
길잡이를 만나서 마주 보게 되기를.
髣髴濠梁 방불호량
이제 방불과 호량의 뜻을 알았으니 “髣髴濠梁”(방불호량)은 어렴풋이 보면 마치 다리같이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왜 오작교이고 선교이고 성교이고 그렇게 다리가 중요한가?
세계 최초의 아치교로 알려진 조주의 安濟橋(안제교)-일명 대석교(大石橋)-는 수당 교체기인 605년에 건설되었다. 안제교는 창견식(敞肩式) 아치형 다리로 못 하나 나무 하나 안쓰고 돌로만 쌓아 만든 다리이다. 예술성이 높은 아치형 다리는 순천 선암사의 다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안제교는 64미터가 넘는 다리이니 작은 개울을 넘나드는 선암사의 다리하고는 기술적으로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된다.
당나라 현종 때 장관을 지낸 장가정(張嘉貞)은 605년에 만들어진 안제교 다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安濟橋銘(안제교명)에 남겼는데, 여기에서 “製造奇特 人不知其所以為(제조기특 인부지기소이위)”: ‘다리의 모습과 만든 기법이 기이하고 독특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만든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당나라 시절에 그런 다리를 만들 수 있었던 당시의 건축 토목 기술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다.
延錦石
延(연)은 연장하다 延年益壽(연년익수)의 예문처럼 어떤 것이 연이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끊이지 않는 것을 이르니, 綿延不絕(면연부절), 連延不絶(연연부절)이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金石(금석)하면 철석(鐵石)같이 믿다, 磐石(반석) 위에 세운 교회당 이러한 예문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으로 견고하게 세운 金石(금석)의 의미가 상정된다. 고인돌처럼 큰 돌하면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의 뜻, 굳건하고 오래가는 것을 의미한다. 금석은 다이아몬드 보석의 금강석의 뜻도 가지고 있다. 종교적으로 불교의 음역으로 금강이라는 말이 흔하게 이용되어서 금석의 원래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하였지만, 신라 김씨의 金글자가 바로 金자인데 金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이러한 돌의 상징적 의미에서 변치 않는 우정을 의미하는 말로 金石之交(금석지교) 또는 金石契(금석계)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 비문에서 한자를 비단 금 錦石(금석)으로 썼다. 라함(羅含, 292-372)의 “湘中山水記” 중 "衡山 有錦石 斐然成文(형산 유금석 비연성문)”의 구절 표현에서처럼 錦石(금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 美石(미석)을 뜻한다. 그냥 돌이 아니고 아름다운 돌이니 좀더 멋진 시적 표현이 아닌가? 아름답게 표현해서 錦石(금석)으로 썼지만 이는 金石(금석)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면 延錦石(연금석)은 ‘아름다운 돌로 연달아 쌓았다’는 의미가 된다. 천리장성을 축조했다는 기사에 “築長城 綿延千餘里(축장성 면연 천여리)”라는 표현처럼 면연(綿延)의 말을 쓰는데, 면연은 예기의 “連延不絶 父没子繼(연연부절 부몰자계)”-끊어지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이어받는 것, 連續(연속), 綿延(면면연연), 계속 이어 내려져 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국편위는 이를 어떻게 번역 해석했는가? 국편위는 “延錦石(연금석)”을 “비단과 돌을 펼쳐”-이렇게 번역했다. 이런 빈약한 번역을 두고서 그냥 애교로 봐주고 넘기고 갈 사안인가? 아니지 않는가? 문화국가 헌법이론에 따르면 국사기관인 국편위는 문화창달과 진실 전달의 의무를 지고 있다. 비단 금자 돌 석자이니 “비단과 돌을 펼쳐”-이같이 번역한다고 해서 무슨 큰 잘못인가 하면서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구절의 내용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延錦石(연금석)”을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비단과 돌의 상징적인 의미와 실질적인 내용을 먼저 파악해내야 한다. 보석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수주 화씨벽옥을 다듬은 화씨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문가는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받쳐서라도 보답하고자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구원이 있으리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공자는 오늘 진리를 알면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 論語, 里人). 사마천이 예양열전에서 적어놓은 그 유명한 경구-“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를 다시 한번 상기하라. “충신은 자기를 써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르고,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꾸민다.”
11행 요약
□□□□ |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던 문무왕을 위하여 천정을 마련하고 빈객으로 모시겠으니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
□而開沼 |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
髣髴濠梁 | (돌로 쌓은 그것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마치 호수 위의 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延錦石以 | 아름다운 돌로 연달아 쌓은 그것이 |
□□□□ | (수주화씨벽처럼 돌을 다듬고 서로 부지하게끔 쌓아 올려 굳건히 오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
[1] 예기 중용의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其人亡 則其政息”, 사람은 그가 죽으면 그의 정치도 끝난다. 죽으면 다시 빈객이 되어 유유자적 길 위의 삶 나그네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정사에 실제로 참견하는 것이 아니다.
[2] 당태종의 《賦得浮橋》 “曲岸非千里 橋斜異七星 暫低逢輦度 還高值浪驚 水搖文鷁動 纜轉錦花縈 遠近隨輪影 輕重應人行”; 왕포(王褒)의 《和庾司水修渭橋》 “東流仰天漢 南渡似牽牛 長堤通甬道 飛梁跨造舟 使者開金堰 太守擁河流 廣陵候濤水 荊峽望陽侯 波生從故舶 沙漲湧新洲 天星識辨對 檢玉應沉鉤”; 유신(庾信)의 《在司水看修渭橋》 “大夫參下位 司職渭之陽 富平移鎖柱 甘泉運石樑 跨虹連絕岸 浮黿續斷航 春舟鸚鵡色 流水桃花香 星精逢漢帝 釣叟遇周王 平堤石岸直 高堰柳枝長 羨言杜元凱 河橋獨舉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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