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뒷면 제2행
2행
□□□□□□□□□□□□□直九合一匡東征西□□□□□
2행의 국편위 번역은,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直九合一匡東征西」[1]
이를 4자 띄어쓰기로 재정리하면,
□□□直 九合一匡 東征西□
(長驅進)直 장구진직
□□□直 결자부분을 메꿀 수 있는 문맥상 의미가 통하는 표현을 찾아보면, “長驅進直”이라는 의미의 표현이 적절한 구절로 들어갈 수 있다. 長驅進直(장구진직)은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다, 승승장구하다의 뜻으로 長驅直入(장구직입)과 같은 말이다. 파죽지세로 쳐들어가서 그 다음 이어지는 표현인 “九合一匡(구합일광)하고 東征西伐(동정서벌)” 했다는 의미가 된다.
九合一匡 구합일광
九合一匡(구합일광)은 一匡九合(일광구합), 一匡天下(일광천하)하고 그 뜻이 같은 말이다. 일광천하는 建立霸業(건립패업), 立國大事(입국대사)를 뜻하니, 나라를 일으켜 세운 그 큰 일을 해냈다는 뜻이다. 관중이 제한공(齊桓公)을 보좌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관중의 공적을 “一匡天下 九合諸侯”이라고 기술했다. 九合(구합)은 多次會盟(다차회맹)을 뜻한다. 논어 憲問헌문에서 “桓公 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으로 기술했는데, 형병(邢昺)은 “言九合者 史記云 兵車之會三 乘車之會六”으로 풀이했다. 九合의 의미에 대해서 사기에서 제환공 때 제후들간의 군사 회맹을 세 번 했고, 편하게 수레 타고-乘車승거- 모인 회합 즉 평화 회합이 여섯 번 있었다는 역사를 인용하여 9번이나 모인 회맹 즉 여러 번의 회합을 가르키는 말로 풀이된다. 兵車(병거)는 군사 작전용 수레를 뜻하고 乘車(승거)는 우마뒤에 부인이나 노약자들을 태우는 수레를 뜻하니 전자는 군사회맹을 후자는 평화 회담을 의미한다. 전쟁회맹보다 평화회합을 두 배나 많이 했으니 그 공은 관중에게 있다고 관중을 높이 산 것이다.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선호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환공을 보좌한 관중은 상업중시자이니만큼 기본적으로 도가에 속한다. 하지만 관중은 그의 정책이 실용주의자였던 만큼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인 치우침이 없었다. 비록 공자는 관중을 인자(仁者)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유가에서 관중을 유가로 분류하려고 시도하였다.
一匡(일광)은 匡正(광정)을 이룬 것을 말한다. 양나라 임방의 상주문에 “伐罪吊民 一匡靖亂”의 표현이 나온다. 匡正(광정)은 糾正(규정), 改正(개정)을 말하니 요즈음의 말로 바꾸면 개혁(改革)이고 혁신이고 유신(維新)이고 경장(更張)이다.
위의 설명을 통해서, 九合一匡(구합일광)은 “九合諸侯 一匡天下”의 줄임말임이 도출되므로, 이 구절은 ‘혼란하고 불안정한 시국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국편위가 “九合一匡”을 “直九合一匡”으로 보고 “곧바로 9주를 일광(一匡)하고” 이같이 번역한 것은 명백한 오역이고 잘못되었다는 점이 확연히 들어난다. 九合은 9주를 말한 것이 아님은 위의 설명을 통해서 명백하게 밝혀진다.
구합일광의 맨 처음 패권을 이루어냈던 제환공이 그 공은 관중에게 있다고 평가한 것처럼 관중은 탁월하고 출중한 국정담당자였다. 문무왕 또한 왕위에 오르기 전에 담당했던 국정 업무가 太宰府(태재부) 재상이었다. 태재부는 현재 정부 기관으로 치면 재무부장관에 해당한다. 문무대왕은 관중처럼 실용주의자로서 국가 재정을 튼튼히 쌓아 올렸던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삼국통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東征西▨(동정서벌)
동정서벌 東征西伐인가? 西征北討 서정북토인가?
東征西伐(동정서벌)은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정벌(征伐)했다는 뜻이다. 征伐(정벌)은 무력을 동원하고 군사 작전을 펼쳐서 실력으로 외국을 제압했다는 말이다. 東征西▨ 결자 부분은 상식적으로 東征西伐이라는 표현으로 쉽게 추측된다. 그런데 이 문무왕릉 비문 표현을 삼국사기에서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삼국사기에는 “西征北討”으로 기록되어 있다. 西征北討는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의 뜻이다. 삼국사기 보장왕 기사에 “帝謂我困弊 議以明年發三十萬衆 一舉滅之 或以爲 大軍東征 …”으로 적고 있다. “648년 6월 (음력),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다, 황제가 우리가 곤궁하고 피폐하였다고 하여 명년에 30만 무리를 동원하여 한 번에 멸망시킬 것을 의논하니, 혹자가 말하기를 “대군이 동으로 정벌하려면 모름지기 한 해를 견딜 식량을 준비하여야 하고, 가축과 수레로는 실어 나를 수 없으니 마땅히 배를 갖추어 물로 운반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서남북의 국경을 비문에서 분명하게 나누고 기록하고 있음을 보라. 비문 앞면 해석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비문에서 동거, 남린, 서승, 북접이라고 기술하며 동서남북의 방향을 엄격히 구분하고 국경을 기술하고 있음을 다시 상기하라.
진흥왕 순수비에도 나오는 문장 표현이고 평양 남포 덕흥리 고분 벽화에서도 적혀 있는 “태세 신앙”은 방향감각을 매우 중요시한다. 왜 동남쪽을 중시하는가? 지구의 자전과 천체의 기울기하고도 연관이 되어 있는 문제이다. 조선 땅이나 평양은 본시부터 우리 선조의 땅이기에 굳이 별도로 칠 필요가 없었다. 중국을 괴롭힌 주요 적들은 서쪽의 갱족과 북동쪽의 흉노족속이었고, 남동쪽의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서쪽 침입자들이었고, 동남쪽의 왜인들이었다. 서정북토나 동정서벌을 외국을 정벌했다는 뜻에서 거의 의미의 차이가 없는 말이긴 하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의 성격에서 본다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수나라의 그것과 수나라를 엎고 일어선 당나라의 정벌사는 차이가 나타난다. 그런데 삼국사기가 국사 편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국가의 전쟁 참전 기록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고 또 조작했음이 확인된다. 삼국사기는 국경의 확정에 대한 기사들은 아예 깡그리 제외시켜 버렸다. 진흥왕 순수비에서 분명하게 명시해 놓은 국경선과 그 범위를 깡그리 무시하고 빠트려 놓은 삼국사기의 국사 편찬의 배경과 저의가 무엇이겠는가?
한자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언어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Chinese written characters have remained essentially unchanged for more than 2,000 years”, (National Geographic, December 1999, Forum).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게재된 위와 같은 독자 투고란의 의견이 흥미롭다. 2천년 전의 사마천의 시대 당시나 2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거의 똑같은 한자로 소통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시대도 한문 원문을 쓰는데 왜 1천년 전 삼국사기를 편찬할 고려시대 때에 한문 원문을 빠트리고 달리 조작한단 말인가? 오랑캐 족속들과 김부식 도당이 저지른 국사 조작과 망작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다. 삼국사기의 조작과 망작임을 마침내 입증해 낸 필자의 작업의 처음은 삼국사기의 기술이 왜곡되었다는 울분을 참지 못해서 단기필마로 뛰어들고 시작되었다. 손빈은 다리를 잃고 전쟁이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자 불후의 손자병법을 썼고, 굴원은 유배당하고 나서 인구에 회자되는 명문장 이소부를 지었으며, 유신은 적국에 사로잡혀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자 불멸의 명문 애강남부를 썼다.
누군가 글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과 같다고 말했는데, 사마천이 열거하듯이 춘추전국시대 난세 때 제자백가가 탄생하고 난세 때마다 현자와 명문들이 나타났지 않았는가?
2행 요약
□□□直- (長驅進)直 |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쳐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
九合一匡 | 혼란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수습하고 분열된 국가를 통일했다. |
東征西□- 東征西(伐) |
동쪽과 서쪽의 나라들을 군사 정벌했다. |
[1]□□□□□□□□□□直九合一匡東征西□□□□ 이 결자부분의 내용을 추측 보충한다면, 沖虛精忠(沖虛超然 靜思精忠 赤心報國) 守一全眞 九合一匡 東征西伐 臨軍 櫛風沐雨 不遑暇食 席不暇暖 俄俄忽宮前寢 時年五十六歲
(하늘의 뜻을 받아 근본을 지켜 내고자, 평생 올곧은 생각을 견지하고, 세상일에 초연하면서, 오로지 지극정성으로 득도하여, 하늘의 뜻을 실천하려는 큰 뜻을 품었고), 적폐로 피폐해진 바깥 세상을 바르게 펴고자, 동정서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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