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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1권-비문 앞면 해석

비문 앞면 23행 해석-無爲(무위) 사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by 문무대왕 2025. 3. 31.

23행 無爲(무위)와 無不爲(무불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朝野懽娛縱以無爲無□□□□

 

국편위 번역: 조야(朝野)가 모두 즐거워하니, 굳이 애써 행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추홍희 해석: 조정의 관리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다들 좋아라 하였다.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게 만들고, 무위의 정치 이념에 따라서 나라 전체가 스스로 굴러 가게 만드니, (사람들은 본성대로 제 스스로 알아서 자기 일을 해나갔고 그리하여 국가와 백성은 날로 부강해지고 잘 살게 되었다. 무위의 사상이 천하를 통치하는 제왕의 원칙으로 적합하다.)

朝野懽娛 조야환오

懽娛(환오)는 歡樂(환락), 喜樂(희락) 즉 좋아하고 기뻐한다는 뜻이다.  ()은 歡()과 같은 글자이다. 여씨춘추에 나오는不謀而親 不約而信 相爲殚智竭力 犯危行苦 志懽樂之 此功名所以大成也 固不獨.” (불모이친 불약이신 상위탄지갈력 범위행고 지환락지 차공명소이대성야 고불독) 구절에서 쓰이고 있다.  굳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 전에도 서로 마음 속으로 통하고, 굳이 문서를 만들어 꼭 도장을 찍지 않아도 서로 신뢰한다.  서로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고 있는 힘을 다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괴로움도 참아가면서,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크게 날리는 까닭이 된다.  진실로 혼자서는 공을 이룰 수 없다.’

朝野懽娛(조야환오) 즉 조정의 관리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다들 좋아라 하였다.  왜 모두들 좋아라 하였겠는가?  정치에서 무위의 개념을 실천해서-縱以(종이), 정치가 깨끗하고 투명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요순우 시대와 같이,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고 내 밭에 우물 파서 물 먹고, 내 밭 갈아서 먹으니 천하의 왕인들 내게 뭐라고 할 것이 있을까?’  日出而作 日落而息 鑿井而飲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  含哺鼓腹皆歡聲”(함포고복개환성).  한 나라가 잘 살려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 왜 조야가 환오하는지 그 내용과 이유에 대해서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도 於是朝野歡娛 池台鐘鼓” (어시조야환오 지대종고)의 표현으로써 그 핵심을 잘 묘사하고 있다. 

 

無爲而無不爲

無爲無□□□ 결자 부분은無爲而無不爲 天下自和 清寧無事” (무위이무불위 천하자화 청녕무사)라는 표현으로 메꾸어진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시키거나 거짓으로 일을 꾸며내서 조작하거나 공치사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 될 일은 할 필요가 없으니 사람들이 다들 좋아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위(無爲)의 개념을 실천하면 세상이 맑고 깨끗해지기 마련이지 않는가?  이는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이 된다. 

무위의 개념은 노자도덕경 제45장의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거짓으로 꾸미거나, 가리고 은폐하는 것은 불평과 원망을 사게 마련이지 않는가?  맑고 깨끗하게 만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면 천하가 바르게 선다.  무위의 정치이념 개념에 대해서는 수많은 석학들이 수없이 분석하고 갈파해왔다.  무위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은조작을 하지 않는 것에 있다.  내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조작질에 분노하고, 그것을 연원을 명백하게 밝히는 첫 번째 이유와 동기가 여기에 있다. 

노자도덕경 제38장의 개념을 보자.  上德無爲 而無以爲 下德爲之 而有以爲” (사덕무위 이무이위 하덕위지 이유이위).  높은 덕을 가진 사람은 하려고 함이 없으므로 조작질을 시도할 필요성이 없다 낮은 덕을 가진 사람은 억지로 일을 꾸미려고 하니 조작을 하게 된다.’

또 노자도덕경 제48장의 구절을 보자.  도를 행하면 일들이 줄어드는데,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줄고 또 줄어 하는 일이 없게 된다 이 경지에 이르면 기어이 해야 할 일이 없어지고 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또한 없게 된다.’[1] 

縱以無爲

()은 放任(방임), 不拘束(불구속) 즉 구속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縱以無爲(종이무위)는 오늘날의 정치이념으로 치면,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 방임주의에 들어맞는다.  無爲無不爲(무위무불위)의 개념에 대해선 道德眞經傳序(도덕진경전서), 운급칠첨의 총서도덕 부분의 설명을 참조하라.  夫惟老氏之術 道以為體 名以為用 無為無不為 而格於皇極者也(陸希聲, 道德眞經傳序”).

 

值天下之無爲

자유민주주의 사회는자치[2] 개념에 기초한다.  자화, 천하자화, 天下自治(천하자치)의 개념에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발전의 길이 놓여 있으므로 현인양재의 훌륭한 인재를 구해서 쓰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는 비단에 염색물이 순식간에 번지듯이 역병이 한순간에 퍼져나가듯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당태종의 제범 제3구현(求賢)편에夫國之匡輔 必待忠良 任使得人 天下自治구절이 나온다.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천하를 무위의 개념에 따라서 정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구절을 보자. “值天下之無爲 值天下之無爲 尚有欲於羈縻”.  ()는 수치, 가치라는 단어들에서 잘 알다시피, 그만한 값어치, 밸류(value)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마땅하다는 當()의 뜻이 있다.  ()는 말 굴레, 고삐, 羈絆(기반), ()은 올가미, , 채를, ()는 소를 매는 고삐, 밧줄을 뜻하는 낱말이니 羈縻(기미)는 굴레, 고삐를 뜻한다. 

우리 사람들은 말고삐를 자기가 쥐려고 하는 욕구가 있지 않는가?  그런 인간의 속성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다.  스스로 굴러 가게 만드는 것 아닌가?  우주만물을 보라. 누가 명령해서 누가 강요해서 그렇게 돌아가는가?  우주 천체 만물이 제 스스로 돌아가듯이 정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강요하지 않고 조작하지 않고 인간의 자기 이익 추구 본성에 맞게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게 만드니 행정관료나 일반 백성이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좋아라 한다는 것 아닌가?

사람은 자기이익에 따라가는 존재이니 제 스스로 알아서 자기 뜻대로 스스로 하게 만들어라.  강요하거나 윽박지르면 아니되고, 잘 구슬려야 한다.  사람들은 말고삐를 자기가 직접 쥐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고 그것을 존중해 주어라. 

비문의 23행 구절의 뜻은 이와같이 유자산의 애강남부의 구절에서의 의미하고 상통한다.  우리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사는 존재이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잘만 돌아간다는 것 아닌가?  저 유명한 경제학의 태두 아담 스미스의자유방임주의의 내용 그대로이다.  그런데 아담 스미스의국부론이 언제 출판되었는가?  겨우 1776년이었다.  반면 우리는 그보다도 2천년 전에 이미 국부론을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국정으로 반영했던 관중이 있었고, 그처럼 문무왕이 존재했었다.

자기 이익추구 본능(self- interest)과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자

아담 스미스의 인구에 회자되는 저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자.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3]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기애의 본성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니었다.  양심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힘에 속한다.  양심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는 도덕감정론의 33장의 한 구절을 간단하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소극적인 감정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사람의 적극적인 원칙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기애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의 물렁한 힘이 아니며, 신이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있는 동기이다.  그것은 이성, 법칙, 양심, 가슴 속의 살아 숨 쉬는 것, 인간 내면의 흉중에 있는 것,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자이고 조정자이다.[4]

여기에 참고가 될만한 코멘트를 간단히 덧붙인다.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경제적 이해와 정신과의 관계를 도출했는데 그 분석으로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되지 않았는가?  베버는사상이 역사의 실질적 힘이 된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데 그것은사상이 경제적 상황의 반영이나 또는 상부구조로서 기능한다는 마르크스 견해를 반박하는 것이었다.  막스 베버는 사람들의 행위 선택이 개인의 경제적 이익 추구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여기며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무엇이 자신에게 이득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 다시 말해 이익이 지닌 의미는 문화나 관념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문화를 “railroad switchman”(철로의 전철수)와 같은 것이라고 파악했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면 각주와 같다.[5]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또는 이념적 이해관계야말로 인간의 행위를 직접 지배한다. 그러나 관념(ideas)으로 만들어진 세계상(world image)이 이해관계(interests)의 동학에 의해 추진된 행위의 경로를 마치 철로수(switchman)처럼 바꾸어 놓는 경우도 매우 빈번했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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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野懽娛 조정의 관리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다들 좋아라 하였다.
縱以無爲 강요하거나 구속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게 만들고,
無□□□-
(不爲而
格於皇極者也)
무위의 정치 이념에 따라서 나라 전체가 스스로 굴러 가게 만드니, (사람들은 본성대로 제 스스로 알아서 자기 일을 해나갔고 그리하여 국가와 백성은 날로 부강해지고 잘 살게 되었다. 무위의 사상이 천하를 통치하는 제왕의 원칙으로 적합하다.)

 

 



[1] Less and less is done until one reaches non-action.  When nothing is done, nothing is left undone.

[2] Self-governance, self-government, or self-rule.

[3]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4] “It is reason, principle, conscience,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the man within, the great judge and arbiter of our conduct.”

[5] “Not ideas, but material and ideal interests, (this) directly govern men’s conduct. Yet very frequently the ‘world images’ that have been created by ‘ideas’ have, like switchmen, determined the tracks along which action has been pushed by the dynamic of 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