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행 勲超三皇 훈초삼황 天下貴人 천하귀인
□□□□□□□□□□□□□□問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巍巍蕩蕩不可得而稱者 我新
국편위 번역: 그 능한 바를 다 잘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지니, 땅은8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 그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 그 높고 넓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추홍희 번역: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고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끝낸 일이든 끝내지 못한 일이든 말한 것과 실제 결과가 꼭 일치하였다.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덕망도 겸비하고 더욱 높아졌다. 그의 활동 반경과 영역은 사방 팔방 먼 변방까지 걸쳐 뻗어나갔다. 공훈이 현저하게 뛰어난 사람이어서 (출사를 권유받았지만 겸손하게 3번이나 왕의 자리를 사양하였다/그의 공훈은 현저하게 뛰어나서 삼황을 뛰어넘을 수준이었다). 그런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 고대 장관의 그의 모습은 어떻게 말로 꼭 끄집어내서 표현하기가 다 어려울 정도이었으니, 천하의 귀인이었다.
우리 신라 (사람들의 선조는 멀리는 황제 헌원씨이고, 제곡 고신씨이니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4행 문장을 이해하기 쉽도록 4자 띄어쓰기로 재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1]□□□□□□□□□□□□□問盡善其能 名實兩濟 德位兼隆 地跨八夤 勲超三□ 巍蕩蕩
不可得而稱者 我新
□□□問盡善其能
“□□□問盡善其能” 부분의 결자는 問과 盡善의 글자를 조합하여 의미를 찾아보면, “不恥下問盡善其能”으로 메꾸어 볼 수 있다. 盡善(진선)하면 진선진미(盡善盡美)-더할 수 없이 훌륭하다-는 말이 바로 떠오른다. 善能(선능)은 “상선약수”의 노자도덕경 제8장에 나오는 “心善淵 … 言善信 … 事善能” 글을 참조하면 결자를 메꾸기 쉽다. 心善淵(심선연)은 마음은 깊고 그윽하게 가지도록 하고 (think in the right depth), 言善信(언선신)은 말은 믿을 수 있는 바른 말만 하고 (speak with the right confidence), 事善能(사선능)은 일은 자신있게 처리하며 (work with the right competence)라는 의미이다. 善能(선능)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즉 자신감 있게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이다. 자기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을 담당하면 자신감 있게 일을 처리하지 않겠는가? 善能과 問글자를 연결하는 문맥상 의미를 찾으면 下問(하문)이 떠오른다. 하문은 자기보다도 지위, 학문, 나이 등의 조건이 낮은 아랫사람에게 묻는다는 뜻이다. 즉 질문하기를 잘 한다는 문맥상 의미가 찾아진다.
불치하문 不恥下問
통치자가 모든 것을 전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수치로운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나무 베는 일이나 꼴을 벨 때는 하찮은 신분인 그들 나뭇꾼이나 초동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추요(芻蕘)는 꼴 베는 사람과 나무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경에 詢于芻蕘(순우추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높은 사람이라도 꼴베는 아이나 나무꾼에게도 물어 보왔다’는 말로써, 勿恥詢芻蕘(물치순추요) 즉 아랫사람에게도 질문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를 뜻한다.
이를 종합하면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잘하고 결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不恥下問盡善其能”(불치하문진선기능)으로 결자 부분이 메꾸어진다. 不恥下問(불치하문)은 不愧下學(불괴하학)의 뜻과 같은 말이다.
고대로부터 제왕은 신하들과 토론을 즐겼다. 당태종의 정관정요를 참조하라. 제왕이 경청하고 질문하고 활발한 토론하기를 멈추면 나라를 잃게된다는 경구를 안자춘추의 내편 문상의 “聞善不行”(문선불행)의 기사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不恥下問盡善其能”은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또 이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名實兩濟
兩濟(양제)는 역경의 “既濟”(기제)와 “未濟”(미제) 이 양괘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未濟(미제)는 역경의 64괘 중 離上坎下(리상감하)인데 그 상은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慎辨物居方”이다. 이에 대한 고형의 주해는 “火炎在上 水浸在下 水未能滅火 是救火之功未成”이다. 既濟(기제)는 離下坎上이고, “既濟 亨小利貞 初吉終亂”이라고 한다. 이 말을 현대식으로 대체해 풀이하면, 미제는 결재가 아직 안된 것, 기제는 일을 완성 처리한 것을 이른다.
명실(名實)은 명성과 실제가 일치한다는 뜻이니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숙어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러면 名實兩濟(명실양제)라는 말은, 끝낸 일이든 끝내지 못한 일이든 말한 것과 실제 결과가 꼭 일치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德位兼隆
德位兼隆(덕위겸융)은 한자 낱말 뜻 그대로,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덕망도 겸비하고 더욱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구양수의 신당서 당태종본기 찬에 나오는 “功德兼隆”(공덕겸융)의 표현과 같은 뜻이다.
공훈(功勳)과 地位(지위)가 서로 직결되어 있다는 “덕위겸융”의 개념의 다른 표현은 사기 경포전에 나오는 “同功一體”(동공일체)가 있다. 장수가 먼저 솔설수범하는 것이요, 이로인해서 지위가 높은 장수가 그 지위에 걸맞게 높은 공적을 얻을 수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처신의 조건을 요즈음의 개념으로 바꿔쓰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사회의 고위직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개념으로 오늘날 자리잡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해서는 저자의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책을 참조하라.
문무왕릉의 비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덕을 실천하여 나라 전체를 화합시키고, 그렇게 하여서 부강한 나라를 지속해 나간다는 것을 전해준다. 비문뒷면의 내용과 숱한 사서에 등장하고 화랑의 실천도이었던 “一人善射 百夫决拾”(일인선사 백부결습) 지도층 솔선수범의 개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바로 일치된다.
살아서는 만승군이었고 죽어서는 청용의 화신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문무대왕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법이고 신이며 국가의 화신’(인카네이션)이 된 것 아닌가? (He will no longer be a man, but the living law; no longer an individual, but the Nation incarnate). 그런데 우리의 신적인 존재와 같은 우리 역사의 진정한 영웅이 언제적부터 잊혀진 인물이 되었으며, 누가 그 민족혼의 화신을 죽였단 말인가? 어찌하여 통일영웅은 잊혀지고 나쁘고 악하고 비라투성이의 사람들이 온나라를 휩쓸고 다니고 이러한 뉴스들로 온세상을 덮고 있지 않는가? 언제적부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고개를 들고 물어봐야 한다. 하늘이 아니라 이제 우리 자신이 직접 답할 차례이다!
隆
노영광전부(魯靈光殿賦)에 “隆崛岉乎靑雲” 구절이 나오는데 隆崛岉(륭굴물)은 몹시 높은 모양을 이른다. 隆崛岉乎靑雲(륭굴물호청운)은 ‘푸른 구름이 닿을 듯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네’의 뜻이다. 이와 같이 隆(륭)은 하늘높이 우뚝 솟은 모습을 이른다.
地跨八夤 지과팔인
跨(과)는 가랑이를 벌리고 한계를 뛰어넘다는 과월(跨越)의 뜻, 변경 지역에 붙어있다-附在旁邊(부재방변)의 뜻이고, 地跨(지과)하면 변경 지역에 걸쳐 있는 먼 지역을 이른다. 인(夤)은 심야 밤 깊은 시간의 인 글자의 뜻이고, 八夤(팔인)은 멀리 떨어진 팔방 오지 지역 八方邊遠之地(팔방변원지지)를 이른다. 그로므로 地跨八夤(지과팔인)은 그의 활동 반경과 영역이 사방 팔방 먼 변방까지 뻗어나갔다는 뜻이다.
勲超 훈초
대개 공훈이 뛰어난 초월(超越)적인 사람을 초대빈객(招待賓客)으로 모신다. 제갈량의 삼고초려의 고사가 유명하다. 따라서 勲超(훈초)는 纁招(훈초)와 같은 뜻이다. “纁招”(훈초)를 한어사전에 찾아보면, 제갈량의 삼고초려처럼 은거하고 있는 재야인사를 조정으로 불러내는 招聘(초빙)을 뜻한다. 그러므로 은거하고 있던 야인 隱士(은사)가 出仕(출사)하는 것을 이른다. 훈초의 출전인 후한서 일민전 엄광(嚴光)에 나타나는 구절을 보자.[2]
이와같이, 纁招(훈초)는 제갈량의 삼고초려, 김춘추의 삼양 고사, 오태백의 천하삼양(天下三讓)의 의미이다. 따라서 “勲超三□”은 “纁招 三讓”(훈초삼양)의 뜻으로 해석된다.
三讓
김춘추가 3번이나 왕의 자리를 사양했다는 기사는 김춘추전에 십분 서술되어 있다. “遂奉爲王 春秋三讓 不得已而就位”, “마침내 김춘추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 하니 그가 세 번이나 사양하다가 결국 마지 못해 받아들이고 왕위에 올랐다.” 공자가 오태백을 그토록 칭송한 까닭이 바로 오태백이 왕의 자리를 3번이나 사양했다는 겸손함에 있다는 것을 논어 태백전은 물론이고 사마천 또한 빠트리지 않고 재삼 웅변해주었다. “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공자는 말했다: 오태백은 참으로 고상하고 지고의 품덕을 갖고 있었다고 정말 말할 수 있다! 천하의 임금 자리를 세 번이나 양보하였으니 백성들은 그를 무슨 말로 어떻게 칭송해야 할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勲超三讓
勲超三□의 해석은 국편위의 번역대로의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공훈이 현저하게 뛰어난 사람이지만 겸손하게 3번이나 왕의 자리를 사양하였다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인물됨을 가르키는 말 즉 “勲超三讓”(훈초삼양)으로 새기는 것이 문맥상 십분 옳다.
국편위가 “勲超三□” 부분을 “三韓”(삼한)으로 추측하여 해석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국편위가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삼한이라면 나라가 각기 다른 3 나라인데 어찌 훈공이 적국인 삼한에까지 뛰어나다는 말이 성립되겠는가? 풍신수길은 일본에게는 통일 영웅이지만 한국에게는 임진란을 일으킨 침략자 원흉일 뿐이며 이순신은 조선에게는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이지만 일본에게는 전쟁 패배를 안긴 원수에 해당할 것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역사상 최고의 나라로 올려 놓은 프랑스의 국민영웅이지만 프랑스의 경쟁적국인 영국에게는 대서양 작은 섬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간 전쟁 포로에 지나지 않았다. 워싱톤은 미국의 국부이지만 오늘날 중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편위가 “훈초삼한”이라고 해석한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고 언어표현법으로도 맞지 않고, 다만 역사를 빙자하여 적당히 끼워 맞춘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훈초삼한이 아니라 훈초삼황 또는 훈초삼양이라는 말이 훨씬 타당하다. 임금 자리를 세 번이나 양보하여 성군으로 이름난 오나라 시조 오태백의 “삼양”의 오래된 역사와 문무왕의 아버지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3번이나 왕위를 사양하였다는 그 같은 겸양지덕의 성인을 지칭하는 뜻을 가진 “삼양”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공훈이 현저하게 뛰어난 사람이었지만-훈초(勲超), 겸손하게 3번이나 왕의 자리를 사양하였다- 삼양(三讓)은 勲超三讓(훈초삼양)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후 문맥상 큰 무리가 없다.
勲超三皇 훈초삼황
勲超三讓의 의미로써의 삼양이 아니면 삼양의 미덕을 보여준 성인철현의 대표적인 사람들을 총칭하는 개념인 三王(삼왕) 또는 三皇(삼황)이란 말이 쓰였을 것이다. 더욱이 당태종의 제범에 나오는 德超三皇(덕초삼황)의 표현을 참조하면 불을 보듯 명약관화하다. 제범의 “以爲德超三皇 材過五帝 至於身亡國滅 豈不悲哉 此拒諫之惡也” 구절을 참조하라.
삼황(三皇) 시대는 역사서가 존재하기 이전의 고대 시기(BC 6727-BC 3077)를 말한다. 이 때 인류를 다스린 전설적인 시조나 이 시기 성왕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황은 논자에 따라 또는 사서에 따라서 각기 지칭하는 인물들이 다르나 대개 인류의 시조라고 말하는 복희씨 신농씨 황제 등을 지칭하는 경칭으로 쓰인다. 역사 유적과 사서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역사시대는 요순우 하나라 때부터라고 여겨지고 있고 따라서 그 이전의 삼황 시대는 전설적인 인물로 내려온다.
巍巍蕩蕩
“勲超三□□巍蕩蕩” 부분의 깨어진 두 글자를 메꾸어 보충하면, “巍巍蕩蕩”(외외탕탕)이라는 잘 알려진 숙어 표현임이 거의 분명하다. □巍蕩蕩(외외탕탕) 앞의 결자 부분의 글자를 외글자로 쉽게 추측하는 까닭은 “외외탕탕”이라는 단어가 논어 태백에서 보이듯이 어떤 사람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표현할 때 인구에 회자되는 익숙한 숙어 표현이기 때문이다.
巍巍(외외)는 산이 높은 고대장관(高大壯觀)의 모습을 일컫는 형용사이고, 탕탕(蕩蕩)은 탕탕거리는 가없이 넓은 물소리를 빗댄 의성어이다. 따라서 외외탕탕의 뜻은,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은 정말 고대장관이었다.
巍巍蕩蕩(외외탕탕)의 巍의 해석에 대해서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내용을 해설하는 “곡신불사 영광불멸 문무왕릉비 비문 연구” 책을 참조하라. “곡신불사영광불멸” 이 책에서 영광불멸의 개념과 관련하여 유신의 애강남부에 나오는 “靈光巍然”과 왕연수의 노영광전부의 “靈光巋然獨存”의 표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不可得而稱者□□□
노자도덕경 제1장에서 언어는 한계가 있어서 한마디 말로 본질적인 개념 규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을 단순한 말로써 설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의 바벨탑을 보라. 말은 소통을 분명하기 위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말은 단순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위해서인데 왜 말은 그토록 끝없이 우주팽창하듯이 바벨탑으로 쌓여 가는가? 국어 사전을 보고 한자 옥편을 보라. 프랑스 언어 사전을 보고 옥스포드 사전을 보라. 간단하게 하자면서 오히려 더욱 많이 쌓여만 가서 더욱 복잡하게 만든 말이 아닌가? 이건 모순이지 않는가? 그런데 우주를 보라. 진리란 무엇인가?
꼭 끄집어 낼 수 없는 그것을 꼭 끄집어 내어 한 마디로 표현하겠다는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심오한 진리 그 道(도)를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노자도덕경 제56장에서 “불가득이명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노자도덕경 제56장 중 “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疎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 天下貴”.
이름 자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 부모님 존함이 있고 내 이름이 있고 내 자식의 명자가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우리 부모님 나 내 자식의 본질 그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누구와 친소 관계 때문에 달라질 것이 아니고, 누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도 아니고, 누군가 귀하고 천하게 취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달라질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이나 관계 때문에 달라질 것이 아니니 천하에 귀한 것 귀인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와같이 노자도덕경 제56장의 구절을 이해한다면, “不可得而稱者□□□” 부분의 결자를 “不可得而稱者 天下貴”으로 메꾸어 볼 수 있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선왕(先王)의 위풍당당한 그 모습, 고대 장관의 그 모습은 어떻게 말로 꼭 끄집어내서 표현하기란 거의 어려울 정도이었다. 그는 천하의 귀인이었다.’
이상의 설명과 같이, 2행에서 5행까지의 비문 문장은 문무왕의 부친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영웅적 인물상을 묘사 서술하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렇게 비문이 시작되는 맨 처음 부분을 부모의 공적으로 적고 또 비문 마지막에서 충효정신을 강조하며 끝맺고 있는 점으로 판단해 볼 때, 비문 내용은 부모 세대와 후대 자손과의 상호연결적 대응적 구성 형태가 되고 이는 영원성을 이어가는 영원불멸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我新
“我新 “의 결자부분은 우리 신라 사람들의 선조는 멀리는 황제 헌원씨, 제곡 고신씨라고 기술하며, 조상의 먼 뿌리까지를 거슬려 올라가는 내용이라고 여겨지므로, “我新羅人之先 祖自軒轅 帝嚳高辛氏之苗裔 三五之聖君”으로 메꾸어 본다. 교(教)란 설교의 의미를 갖는 말이라고 앞에서 설명했는데 그것처럼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림에 있다. 文心雕龍(문심조룡)의 詔策(조책)에서 “教者 效也 出言而民效也 契敷五教”라고 풀이하였는데, 그러므로 비문의 내용이 설명조이며, 我新(羅)(아신라)-‘우리 신라인’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이 행은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아이덴디티를 동일시하는 문장들이 나타나고 따라서 공통된 선조를 열거하고 있다.
4행 번역 정리
□□□問- (不恥下)問 |
아랫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
盡善其能 |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또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
名實兩濟 | 끝낸 일이든 끝내지 못한 일이든 말한 것과 실제 결과가 꼭 일치하였다. |
德位兼隆 |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덕망도 더욱 높아갔다. |
地跨八夤 | 그의 활동 반경과 영역이 사방 팔방 먼 변방까지 뻗어나갔다. |
勲超三□- 勲超三(讓/皇) |
공훈이 현저하게 뛰어난 사람이지만 겸손하게 3번이나 왕의 자리를 사양하였다. (공훈이 현저하게 뛰어나서 삼황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
巍蕩蕩- -(巍)巍蕩蕩 |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은 정말 고대장관이었다. |
不可得而稱者 - 不可得而稱者(天下貴) |
(위풍당당한 그 모습, 고대장관의 그 모습은) 어떻게 말로 꼭 끄집어내서 표현하기란 거의 어려울 정도이었으니, 천하의 귀인이었다. |
我新 - 我新(羅人之先 祖自軒轅帝 嚳高辛氏之苗裔 三五之聖君) |
우리 신라 (사람들의 선조는 멀리는 황제 헌원씨이고, 제곡 고신씨이니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
[1] 3행 추홍희 해석:
이에 경진씨를 파견하여 한반도의 약점을 조명하고 반영하게 하였다. 한반도는 동쪽으로는 개오라는 지역을 국경으로 마주 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팔계 지방에 맞닿아 삼고 있는데, 이는 바다로 서로 접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은 천자가 여름철 서기어린 구름과 맑은 산천의 기운을 타고 준마처럼 빠르게 배를 달려 내려와 백호-서쪽 호랑이를 능히 제압하니 (백호는 자기죄상을 빌었다) (그리하여 도의의 정치가 펼쳐지니 사방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궁안에는 봉황이 내리고 교외밖엔 기린이 뛰어 놀며 바다에는 청룡이 나타났다).
[2] “少有高名 與光武 同游學 及光武即位 乃變名姓 隱身不見 帝思其賢 乃令以物色訪之后 齊國上言 有一男子 披羊裘釣澤中 帝疑其光 乃備安車玄纁 遣使聘之 三反而后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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