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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주해서

필경사 바틀비-9

by 문무대왕 2025. 5. 9.

만약 내 사무실 방을 드나드는 법조계 친구들이 내가 청하지도 않은 혹독한 비평을 마구 해대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지혜롭고 성스런 정신 구조를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고 나 자신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다 보면 마침내 좀더 관대한 사람들이 내린 최상의 결정마저 고갈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통제불가능한 바틀비의 기이한 면모에 놀라서, 그에 대해 조금 거친 말을 내뱉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변호사가 업무상 필요해서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 필경사 혼자 밖에 없음을 알고, 그에게서 내가 현재 어디 있는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했는데, 바틀비는 그가 불쑥 꺼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를 잠시 지켜보고 난 뒤, 그 변호사는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 위치를 모른 채, 사무실을 그냥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 중재가 진행 중이라서, 사무실이 여러 변호사와 증인들로 붐비고 업무가 급하게 돌아갈 때, 거기에 참석하여 그 중재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법조계 인사가 바틀비에게는 아무런 맡은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이 법조계 인사의) 사무실에 달려가서 그가 말한 어떤 서류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단다.[1][2]  이에 대해, 바틀비는 차분하게 거절하면서 이전과 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대로 있었으리라.  그러면 그 변호사는 눈이 휘둥그래 해져 한참 째려 보다가, 대신 내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내가 직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 모두를 통해서 나도 알게 된 것은, 내 사무실에 두고 있는 그 이상한 존재를 놓고서, 호기심 어린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걱정 가운데는 그가 혹시나 질기게도 명이긴 사람처럼 오래 산다든가, 그가 내 사무실을 계속 점유하고 있다든가, 내 권위를 부정한다든가, 내 방문객을 당혹스럽게 한다든가, 내 직업적 명성에 먹칠을 한다든가, 사무실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로 물들게 한다든가, 마지막 남은 저축으로 목숨을 연명해가면서 (그는 하루에 5센트밖에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게 되고, 그리하여 영속적 점유권[3]을 근거로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든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런 모든 불길한 예견들로 인해 내 마음이 더욱 더 혼란해 지고, 또 내 친구들이 내 방의 귀신 같은 존재에 대해 듣기 거북한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해댐에 따라, 내 속에서 거대한 변화가 형성되었다.  나는 내게 잠재된 능력까지 모두 동원하여서, 이 참을 수 없는 몽달귀신 같은 존재를 영원히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이 목적에 맞는 복잡한 계획을 궁리해 내기 전에, 나는 먼저 바틀비에게 영원히 떠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유를 간단하게 제시하였다.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는 그런 이유에 대해 그가 세심하고 성숙한 자세로 심사숙고해 보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는 삼일간 심사숙고를 거듭한 뒤, 자신의 원래 결정이 이전과 동일하게 변함없음을 내게 통지해 주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그대로 계속 내게 머물러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코트의 마지막 단추까지 채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가?  마치 귀신과도 같은,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심[4]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를 네게서 떨쳐 내 버려라.  그래요, 내가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떠나 보내버려라.  그래요, 그는 떠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방법은요?  당신이라도 그 불쌍하고, 야위고, 활기 없는 인간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이라도 그렇게 힘없는 생명을 문밖으로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이라도 그런 잔인함으로 자신의 불명예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가 여기서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그런 다음에 그의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을 택하겠습니다.[5][6]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이 직접 어르고 달랜다 해도, 그는 꼼짝도 않을 텐데요.  그는 당신의 책상에 당신의 문진으로 눌러 놓은 뇌물마저도 그대로 남겨둔 사람입니다.[7]  결론적으로, 그가 당신을 꼭 붙잡고 싶어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8]

 

그렇다면 뭔가 중대하고, 뭔가 예외적인 조치를 취하라.  뭐라고요!  그렇다고 경찰서 순경을 시켜서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오게 하고, 그 죄없는 사람을 얼굴이 창백하다는 이유로 형사범을 가두는 감옥[9]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겁니까?[10]  부랑자? 그는 부랑자가 아니더냐?  뭐라고요!  그는 몸 하나 꼼짝하는 것도 거부하는데, 그가 어떻게 부랑자나, 길거리의 떠돌이에, 해당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를 부랑자로 취급하려는 이유는 그가 부랑자는 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네요.[11]  그건 너무 터무니 없습니다.  생계를 유지해 나갈만한 자산이 있다는 재산 증명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그에게 그건 그렇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 최소한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 바로 그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그가 날 떠나려고 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를 떠날 수밖에 없어.  내가 내 사무실을 바꾸는 거야.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리하여 만약 새 사무실에서도 그를 발견할 시 그때는 불법침입자[12]로 법원에다 소송을 개시하겠다는 뜻을, 그에게 정식으로 통고하는 거야.

 

이러한 나의 방침에 따라서, 다음날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직접 말했다.“이 사무실이 시청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고.  공기도 안 좋고.  간단히 말해서, 다음 주에 내 사무실을 옮길텐데, 이제 더 이상 네가 하는 일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이런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 네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보라는 뜻이지.”[13]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정해진 이삿날에 나는 짐수레와 인부들을 구해서, 내 사무실로 들어 갔고, 가구가 조금 밖에 없어서 몇 시간 이내에 모든 짐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내내, 그 필경사는 칸막이 뒤에 서 있었고, 나는 칸막이를 맨 나중에 옮기라고 지시했다.  칸막이가 철거되고, 그것이 마치 거대한 2절판 책처럼 접히고 나자,[14]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에는 꼼짝도 않는 그 혼자만 남게 되었다.  내가 입구에 서서 잠시 그를 지켜보는 동안, 내 속에서 무엇인지 모르게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15]그런데 그런데-막상 들어가니까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16]

 

바틀비, 잘 있게나.  나는 이만 가네.  잘 있게나.  어찌됐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약소하지만 이것 받게나.” 라고 말하면서 뭔가를 그의 손에 슬쩍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이상하지만- 내가 그토록 떨쳐버리기를 갈망했던 그였음에도 막상 내 손을 억지로라도 떼어낼 때 밀려오는 큰 아픔을 느꼈다.

 

나는 새로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하루 이틀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일했고, 복도의 지나가는 발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내 방으로 돌아올 때면, 열쇠를 꽂기 전에 문지방에 잠깐 멈춰 서서, 조심성 있게 주의를 살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바틀비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낯선 사람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찾아와 내가 최근까지 월 스트리트 00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사람이 맞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으로 스쳤고, 나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신사양반,” 나중에 변호사로 밝혀진 그 낯선 사람이 말했다.  신사양반 당신이 거기 남겨둔 그 사람은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사람은 어떠한 필사도 거절하고, 어떠한 일도 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만 할 뿐이고, 그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신사양반, 내가 보기에도 매우 딱하군요.”  나는 차분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언급한 그 사람은 나하고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소- 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일가친척 관계도 아니거니와 내 수하의 도제도 아니란 말이오.”

 

왜 우리끼리 이래야 된다 말이오.  제발, 그 사람이 누군지나 말해 주겠오?”[17]

 

내가 신사양반 당신한테 그걸 알려줄 형편이 전혀 못되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고요.  이전에 내가 그를 필경사로 고용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내 밑에서 일을 그만 둔 지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처리하겠소, 좋은 하루 되세요, 신사양반.”

 

며칠이 지나갔으나, 나에겐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곳에 들러서 불쌍한 바틀비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픈 자선의 충동이 일어남을 종종 느꼈지만, 뭔지 모르는 어떤 소심함 같은 것으로 인해서 그걸 실행하지는 못했다.

 

또 한 주가 지나도 내게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쯤은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났겠지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신경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오는 바로 저 사람이야.  그가 이제 나타나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누군지 보니 이전에 혼자서 나를 방문했던 그 변호사이었다.

 

신사양반, 당신이 그를 즉시 데려가도록 하시오.”  그들 가운데 뚱뚱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며 외쳤는데, 그는 월 스트리트 00 번지의 건물 주인임을 내가 알고 있었다.  여기 신사양반들, 이들 내 건물의 세입자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답니다.” 하고 그 변호사를 가리키며 건물 주인이 말했다.  미스터 비 (B***)라는 사람이 그를 사무실에서 쫓아냈더니, 그는 이제 건물 곳곳에 출몰하여, 낮에는 계단 난간에 앉아 있다가, 밤에는 건물 현관에서 잠을 잔답니다.[18]  모든 사람이 염려하고 있어요.  고객들이 사무실을 떠나고 있고요.  시위 군중이 몰려들지도 모를 위험도 있다 하고요.  당신이 뭔가 어떤 조치를 취해주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것도 지체 없이 즉시.”



[1] 중재 재판은 당사자들과의 합의에 의해서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열린다.  영미법 국가에서 변호사 사무실은 (증인의 진술을 취하거나 또는 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정 참석과도 같은 효력을 갖는 등) 법정의 역할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 

[2] 중재 제도는 영국에서 출현하였고, 영국인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미국에서 최초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의 유언에 나타나는데 워싱톤은 상속 분쟁 시 법원이 아니라 대신 중재를 이용해서 분쟁을 해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최초의 중재 조항 arbitration clause이 들어간 사례는 1829년 문서에 보인다. (The Journeymen Cabinet-Makers from Philadelphia).

[3] 인간의역사 초기에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가진 자가 임자라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미국의 토착민인 인디언 또한 그런 법사고를 가졌으나 미국에 이주해 들어온 유럽 정복자들은 소유권과 점유권의 구분 개념이 명확했다.  신탁법에서 죽은 사람이 영구히 물권적 재산권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영구 구속 금지 원칙(rule against perpetuities)”을 두고 있다. 물권법에서영속적 점유권(perpetual occupancy)”의 개념은 인디언에게 있어서는 보통법의완전한 소유권(fee simple title)”과 같은 의미이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정복되기 이전에 살고 있던 토착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은 부족 단위의 공동 소유의 개념이었으므로 소유권과 점유권의 분리 개념은 불필요하였다.  하지만소유권을 행사하는 데 점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분의 9에 해당한다. (Possession is nine tenths of the law.)”는 법격언이 말해주듯이우선 현실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복자와 토착 원주민 인디언과의 관계는 조약이나 계약법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토지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인디언에 대한 정복 전쟁을 통한 무력으로 해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디언의영속적 점유권은 소수의 제한적인 경우로 한정되어 인정되었다.

[4] 형평법에서 요구되는 처리 기준의 핵심이 양심, 정의, 자연법, 천상의 명령이다.  전례도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그런 난감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최후의 준거 기준은 오로지 이와 같은 단어들의 통칭인 양심이다.  어려운 케이스를 만나면 오로지 양심에 따라서 분쟁을 처리해야 되는데 이 때 양심이 내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5]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래서 자신은 죽어서라도 여기서 뼈를 묻겠다고 하는 인디언의 심정을 상기해 보자.  미국 정부군과 인디언 사이의 마지막 전투는 1890년이었다.  "내 여기 머물지 않고 / 내 일어나 넘어 가리리 /내 심장을 피비린내 나는 운디드니 그곳에 묻어주오I shall not be here / I shall rise and pass /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베넷의 시 "American Names" (1931) 구절 중에서.

[6] 전쟁터에서 병사가 전사하면 전사자의 유해를 그의 고향으로 운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디언 정복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를 죽은 자리에 그대로 묻는 이유는 시체를 운반할 관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을 택한 것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사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을만한 유산이 없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거기 벽 속에 묻을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암시한다.

[7] 유럽 정복자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으려고 인디언을 서부로 내몰면서 갖은 수단을 써가며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인디언에게 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인디언을 정복하고 몰살하는 정책을 폈다.  내 뼈를 여기 이 언덕에 묻겠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투쟁을 택한 인디언의 역사가 상기된다.  물론 이 글 속에서 인디언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속적 점유권 perpetual occupancy”과 관련하여 그리고 (로마 시대 카틸리나의 경우처럼 인디언이 자살적 전멸이라는 최후의 항전을 택하게 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충분하게 연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8] 이 단락의 독백 부분은 양심의 법정 (형평법 법원)”에서 양심에 따라서 내리는 천상의 명령을 의인화하여 양심과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 때 양심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9] 중대범죄는 보통법원의 관할이었다.  형평법 법원에서 부랑자 여부를 판결하고 또 노예 도망자를 감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얼마 못 가서 폐지되었다.  부랑자를 형사중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영미국의 판례법 국가에서 사법부와 행정부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의해서 엄격히 구분된다. 

[10] 당시 형평법 법원이 부랑자에 대한 강제 수용 여부를 결정하였다.  별도로 전담 판사가 있었다.

[11] 부랑자에 해당하는 요건을 정한 법률규정에 모호성이 있었고 따라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위험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파산자라고 해도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만한 최소한의 수단(means of support)이 있음이 입증되면 강제 수용소(the poorhouse)에 수용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12] 불법침입자(trespasser)에 대한 소송(불법행위법은 민사법정에서 다룬다-대륙법국가처럼 검찰에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영미법은 보통 법원에 정식 소를 제기해야 한다)은 보통법에 따라 보통법원에 제기한다.  “The law”, “common law”, “law and equity” 이런 단어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보통법에 따른 소송은 그 결과를 비교적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법은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반면 형평법은 판사의 재량적인 사항이 많고 항변사유가 보다 폭넓게 인정되어 예측가능성이 줄어든다.  화자인 변호사의 판단으로는 현재 사무실에서의 바틀비와의 법적 관계는 보통법의 관할 사항이 아니라 형평법의 관할 사항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론 뉴욕에서는 1848년에 보통법원과 형평법원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겠지만 법의 실질적 내용적으로는 현재까지도 구분적 의미가 존재한다.). 

[13]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정당한 해고 사유에 속하고, 통상적으로 사전 통지 절차를 밟는다.

[14] 우리들이 흔히사업을 접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가 folded”이다. 

[15] “put one's hand in one's pocket: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3장을 참조하라.

[16]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and—and my heart in my mouth.” “my heart in my mouth”목이 잠기다”, “목이 메이다뜻의 영어 관용구에 해당한다.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To be extremely frightened or anxious.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Fig. to feel strongly emotional about someone or something.”  자세한 설명은 I3장을 참조하라.

[17]In mercys name, who is he?-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on earth""in God's name"은 의미가 비슷하므로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굽니까?” 이렇게 해석해도 무난하다.  하지만 "in God's name"의 말은 좀더 유감스러움을 표현한다고 보면, 강조점이 “what”이 아니라 “why”에 주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왜 바보같이 우리 둘이(변호사 이인) 서로 실랑이를 벌어야 한단 말이요! 내가 법적으로 추궁하지는 않을 테니 인간적으로 제발 그 사람 이름이라도 알려줄 순 없겠소?’뭐 이런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in God's name!”은 마태복음 9:13 구절에 나오듯이 “In the name of mercy give!”하고 같은 뜻이다.  솔로몬의 명판결로 유명한 성경의 일화 (열왕기 상 3:16-28),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엄마들의 다툼을 보자.  그 사건의 입장과는 반대로 여기서의 두 변호사는 바틀비를 서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서로 미루는 상황이다.

[18] 그가 노숙자, 부랑자, 걸식자의 법률 요건에 해당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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