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선’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선 charity-“믿음 소망 사랑”의 고린도전서 13장 해석
“믿음, 약속, 자선-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이다.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이 유명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고린도 전서 13장은 성경 말씀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으로 기억되고 있다.“믿음 소망 사랑”의 구절에 대해서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은 “faith, hope, charity”으로 번역했고, 이 “charity”를 “love”으로 새롭게 번역하게 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근 사백년간 영어권의 언어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왜 17세기초 당시 성경번역자들은 고대 그리스어 “아가페”를 “사랑(love)”이란 단어 대신 “채리티(charity)”으로써 번역했을까?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는 오로지 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교회의 존재 기반은 사람들의 자선과 기부에 의해서였다. 자선과 기부가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고 따라서 사회적 약자 또한 살아갈 길이 없었다. 따라서 자선은 사람의 생명과도 같이 중요했던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의미는 사백년이 지난 오늘날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체제가 잘 확립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다면 킹제임스성경이 처음 출간된 17세기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을 새롭게 번역해 보는 시도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에 저자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번역하고자 한다.
“믿음, 소망, 사랑 (faith, hope, charity)” 이들 단어를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3 단어 모두 “trus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구절은 성경본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구절 중 하나이다. 여기서 믿음은 loyalty 즉 기독교 교리에 순종한다는 뜻이고, 소망은 내가 미래에 기부하겠다는 의사가 있는데 그렇게 할 것을 분명하게 약속한다는 뜻의 “약속, 확신, 자신감(confidence)”을 말하며, “사랑”은 “아가페”를 번역한 말인데,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아가페란 단어를 “채리티(charity)”로써 번역했다. (우리나라 성경 번역본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루어졌으므로 “자선”이라는 말 대신에 “사랑”이라는 말의 번역으로 통용되었다). “실천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관점에서 킹제임스성경에서 “아가페”를 “Charity”이란 말로 번역한 것이라면 그것은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더욱이 17세기 당시에는 교회가 구제를 전담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더욱 분명하다.
사랑과 선의와 구제라는 것이 외부적으로, 결과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멈추고 만다면 그러한 선의의 마음이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이다. 누구든지 꿈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 반대로 악몽을 꾸고서 악몽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큰 믿음을 가졌고, 또 그 믿음에 따라서 미래에 자선을 행하고 재산을 기부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즉 그런 믿음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지금 바로 ‘자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만큼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자선인 것이고, 이 자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자선이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게 와닿지않는다면 자선의 개념을 영미법상의 트러스트(Trust) 법제도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되리라. 영미법상의 트러스트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성경 구절이 더욱 쉽게 이해될 것같다. 그러면 ‘트러스트’란 무엇을 말하는가?
기부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자기 재산을 공공 목적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기부 의도’와 목적을 문서로써 표시하고, 해당 재산을 내놓으면 기부자하고는 상관없이 자선 단체가 독립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이런 구조가 트러스트 제도다. 트러스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법제도라고 흔히 말해지는데, 이는 트러스트는 표면만을 보고서는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내막을 자세하게 알기 어려운 이중의 법체계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트러스트는 등기상의 명의와 실질적인 소유자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 개념을 영어를 써서 반복하면, 트러스트(신탁)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 기부 의사(intention), 기부 대상의 신탁 재산 특정(gift, certainty of subject matter), 신탁 수혜자(certainty of objects)의 특정 이렇게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1] 하지만 일단 기부 재산부터 먼저 내놓으면 다른 2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법적으로 신탁이 설정될 수 있다. 법원은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기부 재산을 공공목적으로 내놓았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법은 자선의 실체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트러스트 법제에서는 형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직인이 누락되었다는 등의 형식적인 흠결을 이유로 신탁의 설정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또 기부자가 기부약정을 통해 기부목적이나 사용방법을 지정했다면 그런 경우 기부금 운영자가 기부자의 의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영미법 국가를 일반적으로 보면 교회, 회사, 국가의 운영과 구조는 기본적으로 트러스트이고 따라서 트러스트 법제에 내재된 기초적인 형평법 법원칙에 의해서 운용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미법상의 트러스트(Trust) 법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탁금융상품 등 상사 트러스트 제도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영미법 일반법상의 트러스트 법제하고는 차이가 있다) 자선과 트러스트 관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영미국인들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배경에는 트러스트 법제도가 확립되어 있다는 법의 영향이 크게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역사상 교회는 거의 국가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재산 규모를 가진 실체이었고, (교회가 곧 국가라고 이해되는 배경에는 교회 성직자가 형평법원의 법관을 맡았던 형평법원의 태동과 발전의 법역사측면에서도 짐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회사’가 가장 큰 재산을 가진 실체를 이루고 있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대학과 학교의 모든 교육 기관 (공립이든 사립이든)은 그 구조와 운영이 기본적으로 트러스트 법 제도에 따르고, 작은 개인 회사일지라도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은 트러스트 법원칙에 따른다. 작은 공동체 운영이든 국가 정책 결정자이든 이들은 트러스트의 법제에 의해 통제된다.
트러스트를 세우고 운용하고 유지해 나가는 실체는 변호사들이다. 교회, 회사, 국가를 이어주는 실체적 손발이 변호사(법원)인 것이다. 재산이 힘과 권위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 변함없는 진실이라면, 변호사들(법원)이 힘과 권위를 가진 실체라는 결론은 자연스런 도출이다. 이와 같이 영미판례법 국가는 변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와 사회가 움직여지고 있으므로 영미법은 국가와 개인이 정반합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서로 발전적 관계에 놓여 있다.
영미판례법 국가의 변호사들은 (대륙법국가의 국가공무원의 신분과는 다르지만) 국가 공무(대표적 공익 부문인 형사법 분야를 제외하고 민사법 분야를 보면 예컨대 변호사의 등기 업무 수행이 대표적이다-우리나라는 등기업무를 국가공무원인 법원조직이 담당하고 있다)를 수행하는 위치에 있다. 영미법 국가의 변호사의 성격과 조직을 보면 대륙법 국가의 국가와 개인의 일체적 관계하고는 대비되는데 이러한 구조적 장점으로 인해서 영미법 국가가 세계적 초강대국을 건설하는데 유리하였을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데 여기서“믿음, 소망, 사랑”을 단지 추상적인 의미로써 이해한다면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기 재산을 내 놓을 리는 만무할 테고 따라서 자기가 죽으면 당연히 교회 재산이 된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또 미래 시점에 기부하겠다는 그런 약속의 말도 믿을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우선 지금 즉시 기부하는 자선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는 의미로써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영미국의 기독교 국가는 교회와 국가는 서로 일치하는 개념이다. 물론 미국은 영국과는 달리 미국독립 전쟁을 통해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헌법상 선언하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트러스트 법제에 의해서 국가와 공익 추구의 종교는 일치된다.
“믿음, 소망, 사랑” 표현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변치 않는 법칙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 즉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글로 옮긴 성경과 동일하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진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소망’은 미래에 기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소망은 미래의 기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신뢰이고 그 신뢰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confidence)’을 나타낸다. ‘사랑’은 사랑하는 내적 마음의 추상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재산을 지금 바로 내놓는 기부행위를 지금 실천하는 ‘자선’을 의미한다.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을 이해한다면 “믿음, 소망, 사랑”이란 말은 “과거, 미래, 현재”라는 말로써 서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과거(성경은 과거에 기록됐다)에 해당하고, 약속은 다음에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므로 미래에 해당하고, 사랑은 지금 바로 실천한다는 현재의 의미를 갖는다. “과거, 미래, 현재”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현재”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추측은 별도의 추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수긍할 것이다. 위와 같은 근거들로 보면 “믿음, 약속, 자선”으로써 성경의 말씀을 번역하는 것은 자연스런 결론이 된다. “믿음, 약속, 자선” 이 3가지가 모두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 현재 바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faith, hope, charity”으로써 번역했을 것이다. 이를 우리말로 보다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믿음, 약속, 자선”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의 복음과 사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했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텍스트를 충실하게 따라서 어떤 편견없이 바른 번역을 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렇게 올바르게 성경을 번역한 번역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킹제임스성경은 400년 이상을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 온 것이 아닐까. 킹제임스성경의 “faith, hope, charity”의 한글 번역을 “믿음, 약속, 자선”으로 번역한다면 자선과 기부를 실천하는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현재 너무 ‘진부해져’‘사랑’의 본래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는 현실적 인식에서, “믿음, 약속, 자선”으로써 새롭게 번역한다면 “원래의 의미로 되돌아가자 (Back to basics)”[2]는 근본적인 태도 변화의 운동에도 도움을 줄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킹제임스성경 번역자가 ‘추상적인’‘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구체적인’‘자선’을 지금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번역한 것은 문맥상이나 법적이나 기독교 교의적으로 모두 완전하게 일치하게 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은 기독교 전래가 시기상 늦었고 또 영미국의 현실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400년 동안 영미국인에게 가장 심오하게 영향을 끼친 킹제임스성경에서 “Charity”로 번역한 그 의미를 놓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자선(charity)의 현재적 의미를 재강조하는 뜻에서 영어 표현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자.
1 내가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와 천사들이 쓰는 언어로 말할지라도, 자선[3]을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변죽만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2 내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고, 모든 신비를 꿰뚫고, 모든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또 완전한 믿음을 가져서 태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요.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and have not charity, I am nothing.
3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4]또 내 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런의미가 없을 것입니다.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4 자선은 오래 가고, 공감하는 것이며,[5] 자선은 더 가지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선은 뽐내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자선은 부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4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5 관례에 어긋나게 행하지 말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쉽사리 즉흥적으로 나서지 말며, 악의적인 의도를 품지 마십시오. 5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6 나쁜 짓을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진리를 추구하십시오.[6]6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7 모든 것을 주며, 모든 것을 진실로 믿으며, 모든 것을 확신하며, 모든 것을 참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7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8 자선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7] 반면 신의 계시자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은 곧 그치고 맙니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곧 사라지고 맙니다. 8 Charity never faileth: but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 whether [there be] knowledge, it shall vanish away.
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우리가 예견하는 것도 부분적인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그러나 완전한 전체가 되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없어지게 됩니다. 10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8]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은 내가모두 버렸습니다. 11 When I was a child, I spa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만알고 있으나 다음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고 또 내가 이해한대로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12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13 따라서 믿음, 약속, 자선, 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입니다. 13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Knight v Knight 49 ER 58 (1840).
[2]“A return to previously held values of decency.”
[3] “믿음 소망 사랑”의 유명한 성경 구절에서 ‘사랑’의 그리스어 텍스트는 ‘agape’이고, 이를 킹제임스성경은 ‘charity’라고 번역했다. 이에 대한 에드워즈의 설명을 인용한다. “But, then, the word “charity,” as used in the New Testament, is of much more extensive signification than as it is used generally in common discourse. What persons very often mean by “charity,” in their ordinary conversation, is a disposition to hope and think the best of others, and to put a good construction on their words and behavior. Sometimes the word is used for a disposition to give to the poor.” 에드워즈는 ‘Charity’를 ‘Love’로 어휘를 바꾸는 것이 보다 낫다고 지적하였다.
[4] “가난한 사람들을 먹일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 이 구절은 우리나라 성경번역에서는 거의 일률적으로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영어 번역 “bestow all my goods to feed” 중 ‘bestow’라는 단어를 ‘주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라고 번역하는 것 같다. 하지만 ‘bestow’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첫 번째 “to present as a gift or an honor; confer”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축적하다, 쌓아놓고 저장하다”는 뜻의 “to store, or house”의 의미가 있다. 앞의 ‘bestow’를 ‘준다’고 해석하면 뒤에 나오는 “자선(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가난한 자’를 ‘먹여 살리다’라고 말할 때 ‘가난한 자’ 부분의 단어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지 않는 것을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문맥이 통하도록 추가한 것이고, 이런 사실을 그 해당 부분의 단어를 이탤릭체로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해도 직접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가 무슨 이익을 받을 수 있겠는가?-이런 해석이 보다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5]우리나라 성경 번역은 일률적으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long’은‘오래 간다’,’지속’의 의미이다. 교회는 개인 재산이 아니다. 교회는 신탁 재산이다. 신탁재산(트러스트)은 몇 백년을 지나 영구히 지속되어 내려왔다. 신탁은 한 사람의 목숨처럼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Kind’를 흔히 ‘친절하다’고 번역하는데 ‘kind’의 의미는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고 훈계할 때 그것을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하는 뜻을 갖고 있다. 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나의 잘못을 깨우쳐 줄 때 그래서 내가 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그 결과에 있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말은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을 때 내가 화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한 그러한 남의 친절에 공감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이런 열린 태도를 사도 바울은 가르쳤다. ‘kind’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kind’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Let the righteous smite me; it shall be a kindness: and let him reprove me; it shall be an excellent oil, which shall not break my head: for yet my prayer also shall be in their calamities. 의로운 사람이 내가 뉘우치도록 책망하면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비판하고 꾸짖으면 그것은 내 머리 속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지, 결코 내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또 원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재난을 당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니 그것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시편 141:5). “의로운 자들이 나를 치고 책망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좋게 여기며 거절하지 않을 것이나 악인들의 악한 행위는 내가 대적하고 항상 기도하리라.“(“현대인의 성경”) “의인에게 매를 맞고, 그 사랑의 벌을 받게 하소서. 나의 머리 위에 악인들이 기름 바르지 못하게 하소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반대하여 기도 드립니다.”(“공동번역 성경”).
[6]우리나라 성경 번역은 거의가 일률적으로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rejoice’ 단어를‘기뻐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rejoice’를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Tohave or possess“의 뜻을 갖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 번역은 ‘가지고 있다’라는 뜻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번역한 것 같다. 특히 ‘rejoice in’이라고 분명히 ‘in’이 붙어 있는데도 ‘기뻐하다’로 단순하게 번역하는 것은 재고해야 함이 요구된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대로 ‘rejoice in’은 ‘가지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기꺼이 진리를 추구하되, 나쁜 짓을 행여 마음 속에 품지도 말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7]자선은 영원하고, 실패하는 법이 없다. 기부자가 재산을 일단 내놓으면 공공목적으로 쓰여지지 결코 사적으로 전용될 수 없다.
[8]신탁 trust은 부분적으로 조금 부족할지라도 법해석을 통해서 완전하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리가 형평법의 기초와 요소이다. 신탁은 설령 부분적으로 부족하더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전체를 위해서 부분 부분을 이어서 완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부분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 가고, 개체가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체에서 개인을 내동댕이쳐 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 하나 하나가 모여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벌집의 예처럼 벌은 각자의 영역과 각자의 할 일이 주어져 있어 각자는 부분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국가공동체 전체적으로 즉 하늘에서 높이 내려다 본다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개인은 공동체 전체에서 조망할 때 비로소 각자의 이익과 각자의 몫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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