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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해산 심판

국가 기관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

by 문무대왕 2025. 5. 1.

11. 국가 기관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

왜 민주정치에서는 토론의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한가

 

1949년 독일헌법 기초자들은 나치 일당 독재정권의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반성하고 정당국가의 위험성에 어떤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고, 또 동시에 정부가 소수정당을 탄압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정부가 정당 활동을 금지시키는 권한을 남용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 심판을 맡겨놓은 것이다. 

 

국민적 합의에서 정권의 정통성이 나온다고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견해는 타당하다.[1]  헌법재판에서는 완전한 토론이 보장되고 또 합의제인 헌법재판소의 구성에서 “다수의 지혜”를 통해서 “성숙한 판단”이 기대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은 헌법개정으로도 개정될 수 없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인 법원칙에 속할 것이고, 절차적 정의의 실체적인 내용이자 사법권 독립의 외양적 표현이다.

 

양당사자주의 adversarial와 심문주의 inquisitorial 제도 비교

 

영미법 국가의 법제도를 살펴봄에 있어서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양 체계상 기본적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현재 우리나라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영미국의 민사소송법상의 기본적 구조는 원고와 피고의 양당자자에게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를 양당사자주의 adversarial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반면 독일 일본 한국의 대륙법 체계는 판사가 소송의 모든 단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 지휘하는 것으로 이를 심문주의 inquisitorial system’라고 말한다.

 

두 법률체계에서 판사는 불편부당한 역할을 하는 지위에 있으나 영미법에서 판사는 보다 수동적인 입장이고 양당사자가 제시하는 증거에 따라 판결을 내리며 양당사자가 절차적 원칙과 증거법 원칙을 정확하게 따르는 지를 감독하는데 있다.  영미법에서 소송개시후 재판전 단계 절차, 소송 문건, 소장 등은 최종재판을 준비하는데 중요하게 취급된다.   

 

영국의 유명한 데닝(Denning) 대법관이 50년 전에 양당사자주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해 주었다.  “영국이 발전시켜 온 법정 재판의 구조에서 판사는 재판정에 앉아서 양당사자가 제기한 법률 문제를 듣고 판단을 내린다.  영국의 판사는 다른 나라들이 행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 사회 전체를 대변해서 사건조사나 심문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판사는 “어떻게 되죠?”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단순한 심판관이 아니다.  판사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법에 따라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법을 추구하는 모든 일에서 변호사는 영예롭고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질문에 대한 양쪽 당사자들의 팽팽한 주장에 의해서 진실이 발견된다’는 뛰어난 명구를 남긴 이가 엘든 대법관이었나요?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양당사자들의 주장 사이에 끼어들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판사에 의해 실현된다’고 설명한 이가 그린 대법관이었나요?[2]

 

우리나라도 이제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헌법재판소(법원)은 가치를 평가하는 특정한 방식을 반영하고 또 소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법의 표현적 기능 expressive function of law’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열려진 마당에서 모든 정보의 교환과 유통이 이루어지고 자유로운 토론의 과정과 숙의 과정을 통해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는 구조를 유지할 것이 요청된다.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고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의 2003 NPD 정당 해산 심판 사례가 시사점을 줄 것 같다.

 

절차적 정의와 헌법 재판의 전제 요건

 

비록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의 판결이 나긴 했지만 정당 해산 심판에서 가처분제도의 존재는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말했듯이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판결 이전에 정당 금지 또는 해산에 대해 가처분을 할 수 있다면 왜 헌법에서 정당해산 심판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별도의 특별한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 흠이 있다고 보여진다.  정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는 그 자체가 헌법재판을 하기도 전에 정당 금지나 해산에 대한 사전적인 임시 가처분의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은 자명한 논리적 도출이기 때문이다.  정당해산에 대한 헌법재판 제도가 존재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정당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아니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보다 마땅하다.[3]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자명한 법적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헌법재판소가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만을 따지고 그에 따라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결론이 계속된다면 정당 해산 제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예리한 무기-그것도 양날의 칼을 가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는 안중에 들어오기 힘들지 모른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반민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에 진입하고, 따라서 모든 국민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의 혜택을 받는 대한민국이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자조적인 생각을 견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의 과거 1956년 사례에만 파묻혀 있어 통일독일 이후의 1994년과 2003년의 새로운 판결에 대한 이해를 놓치는 잘못을 보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독일의 2003 NPD 판례는 정당국가의 현실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정당 개입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가 헌법재판소의 주된 법적 쟁점이었지,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지 여부는 따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4]  법은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이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는 성격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당 해산 심판에서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 소수정당의 환상과 한계, 정당국가에서의 작용과 반작용의 기본적 정치적 역학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민주정치 대의정치 정당정치는 서로의 경계선을 두부처럼 칼로 반듯하게 오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수학의 교집합으로써 서로 혼합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당 해산 문제를 어떤 독단적인 법이론에 의존하여 깔끔하게 해결해 낼 수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무리다.  정당해산 심판은 민주 정치 대의 정치 정당 정치에서 요구되는 근본적인 가치, 국가기관 선거 개입 문제, 절차적 정의의 문제 등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의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나라에서 정당 명부제 도입 등 정당법 개정 측면뿐만 아니라 권력 구조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5]  이러한 여러 상황들에서 정당 해산 심판은 민주·대의·정당 정치의 근본적인 가치, 사법부의 독립, 권력분립, 인권의 존중 등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의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재점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독일의 판례가 말해주듯이,[6] 최고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할 헌법재판에서는 모든 법적 정치적 사회적 쟁점들이 아무런 제한없이 충분히 토론되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고속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과정과 절차는 크게 중요시되지 않았고 단지 승부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승자독식의 정글의 법칙(특히 한국은 대통령제도의 엽관제[7]의 폐해가 크게 드러나는 정치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 지배하게 된 결과 “법과 정의 law and justice”의 원칙이 빗겨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보편적 법의 발전 단계를 참고한다면, 공평하고 공정한 정의의 시대를 요구하는 흐름이 한국에서는 예외적으로 비껴갈 것이라고는 내다보기 힘들다.

 

또 정당 해산 심판이 일회성으로 그칠 성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치이념과 체제가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진 나라의 현실에서, 정당해산 제도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조직화된 적에 대한 예리한 무기에 해당되므로 정부는 언제든지 꺼내들고자 하는 유혹이 큰 정치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당해산제도가 예리한 무기이고 또한 양날의 칼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조심성은 최종적인 판단을 맡고 있는 헌법재판소 또한 예외적일 수 없다.  국가기관이 판단하고 국민은 그저 따라오면 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된 과거의 낡은 생각이고, 지금은 국민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설득의 정치 시대[8]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1] Bickel, “Democracy functions not merely as a sharer of power, but as a genenator of consent.”

[2] Jones v National Coal Board [1957] 2 QB 55 at 63.

[3] “Art. 21 Abs. 2 GG schütze eine Partei in ihrem Bestand und vor Behinderungen ihrer politischen Tätigkeit, solange das Bundesverfassungsgericht ihre Verfassungswidrigkeit nicht festgestellt habe.”, NPD 판결문

[4] 그 동안 한국에서 이런 측면의 연구는 질과 양에서 거의 황무지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2003년의 NPD 판결문에 대해서 자세한 소개마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형편이다. 

[5] 정당국가가 민주정치 대의정치 정당정치의 근본적 가치를 잘 구현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 같이 소선거구제도와 대통령제를 함께 결합한 대통령제 권력구조 형태에서는 소수지역정당에 머무는 제3의 소수당으로서는 정권교체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결론을 독일의 정당 해산 심판 사례들에서도 파악된다.

[6]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통해서 우리나라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고 독자들을 어떤 정해진 결론으로 이끌려는 예단적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다.

[7] ‘엽관제도(spoils system)는 승자독식의 미국식 대통령제도의 전형적 폐해로 잘 알려져 있고 한국과 같은 전제적 대통령제도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로 부각되어 있다.  정당국가의 후원자 제도(patronage system) 문제하고 연결되는 개념이다.  또한 내부 부패로써 횡령과 배임의 문제 또한 정실주의 문화의 결과일지 모른다.

[8] Not to decide but to persuade, 설득의 시기에는 합의를 도출하는 절차적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의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러미 월드런의 법철학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