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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해산 심판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정당의 대리인인가

by 문무대왕 2025. 5. 1.

9.        의원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정당의 대리인인가?

 

9.1. 의원의 성격과 지위-정당의 대리인

 

대의제 민주 정치 제도에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개념 하나는 의원은 사익을 추구하는 지위가 아니라 공직 public service에 봉사하는 진실한 “수탁자 trustee”의 지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점이다.  하지만 의원이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공익에 봉사하는 공직자라는 모델은 오늘날에는 별로 현실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많은 나라에서 현재의 의원들의 의정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공익을 추구하고 공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공직자의 모습을 느끼기 보다 그와 반대로 큰 실망감을 보이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에 충실한 제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의원들도 의회 로비 제도에 비추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면 이들 또한 사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실증적인 사회과학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정치의 기초인 의원을 공익에 봉사하는 공직자의 개념이 순수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의원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면이 크다고 강조하는 공공선택이론의 주장은 수긍할만하다.  이러한 근거에 따르면 선출직 대표를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선량한 관리자[1] 개념으로써 상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모델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독일은 현대적인 정당 정치의 현실을 인정하고, 정당을 헌법상의 지위로 격상시킨 “정당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독일은 대의제 민주 정치 제도의 전형적인 모습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정당 비례대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2]

 

독일은 나치일당 독재 국가전체주의 체제에서 헌법이 파괴된 아픈 상처를 경험한 바 이와 같은 일당독재체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정당 국가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정당 또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로비스트 그룹과 같은 기능을 가진 정당으로 보고 정당을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는 당파성을 가진 정당의 대리인 agent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보다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정당 해산의 법리를 이끌어 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독일 헌법에서 의원의 법적 성격을 대리인의 개념으로써 분명하게 단정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뜻은 아니다.  독일헌법재판소가 밝히듯이 기본법 제38조에서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헌법 규정을 보면 의원은 자신을 선출해준 선거구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의원 자신의 독자적인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하는 양심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독일 헌법에서 상정하는 의원은 대의제 민주주의 기초인 공익을 위해서 “성숙한 판단 mature judgment”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의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는 “성숙한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는가의 그 과정에 있다.  의원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독자적인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는 원천은 ‘토론’에 있다는 점이다.  판례법 국가에서는 12명의 배심원들이 모여 숙의 deliberation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다수의 지혜’를 존중하는 배심원 제도가 법제도와 법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배심원 제도는 판사 한 명의 판단 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숙의의 과정을 통해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도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다수의 지혜(집단 지성) wisdom of the mulitide”는 숙의 deliberation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사숙고의 과정은 각자의 반대의견들이 하나의 일치된 결론으로 이끌어내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반대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황선출제도와 같이 한 방에 몰아넣고 거기서 하나의 일치된 결론이 얻어지는 것이다.  숙의의 과정에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치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 한 방 room에 들어가 토론한다는 것은 반대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수의 배심원들이 하나의 일치된 결론에 도달하는 배심원 제도의 숙의의 과정과 같이 의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당연하다.  다수의 지혜는 타인으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얻음으로써 생겨나는 하나의 과일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의원의 면책특권을 보장하는 이유와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전제가 여기에서 나온다. 

 

반대의견의 존재와 자유토론의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의 제도 측면에서 보면 선출된 대표자의 지위는 대리인의 성격에 보다 가깝다.  그러나 자신을 선출해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숙의의 과정에 참가하고 토론함으로써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며 전체의 대표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독일헌법재판소가 민주정치체제의 정치적 개방성에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큰 정당해산 제도의 딜레마를 해결할 법적 논리의 하나로써 나찌 일당독재의 뼈아픈 정치적 경험의 반성에서 찾고 있다.  이를 수긍하고 나서 하나 추측을 해보면 정당국가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일견 숙의의 전통이 배심원제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자라는 헌법 38조의 법적 장치하고는 조화되지 못한 결론을 가져왔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의원은 전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의원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지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의원의 모습일지라도,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의원들이 숙의의 과정을 통해서 전체 이익에 합의하는 과정을 판례법국가들이 이해하는 만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아무튼 독일헌법재판소가 내린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판결의 논리적 배경에는 의원의 지위를 비현실적인 개념 (legal fiction)인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 보다 현실적인 개념인 정당의 대리인으로써 의원의 성격과 지위를 파악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9.2.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입법부 의원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국민의 대표자인가?  아니면 선거주민 (또는 정당)의 대리인인가?

 

현대의 정당국가와 이익단체의 의회 로비의 현실적 측면에서 본다면 의원이 전체국민의 대표자라는 인식은 법적 허구 legal fiction에 지나지 않는 비현실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대의제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압력단체 또는 이익집단의 로비 경향을 고려하면 의원은 어떤 집단들의 이익을 대리하고 그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모습을 강하게 그려진다.  또한 독일의 정당 국가 체제에서 정당비례대표제로 당선된 의원은 소속정당의 대리인에 보다 가깝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의원의 의정 모습을 그려보면, 전체국민의 대표자보다 어느 한 지역 또는 어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파악된다. 

 

하지만 독일헌법에서 의원을 전체국민의 대표자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독일에서도 의원의 지위에 대한 법적 성격은 완전하게 해소된 것이 아니다.  독일헌법 38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독일연방의회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3]

 

영국의 버크 Burke는 그의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에서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의원의 위임 개념을 웅변적으로 설명했다.  의원은 선거구민의 단순한 대리인 agent이 아니라 국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interest of the nation as whole 위해서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 헌법상의 의원의 법적 성격은 버크가 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또 정당국가체제이면서도 책임정치[4]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또 지역정당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는 의회 정치의 현실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의원은 대리인의 모델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또 법적으로 분명하게 해결된 것도 더욱 아니다.  현대 정당국가에서 의원은 정당 소속으로서 선출된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감안해 보면, 의원의 지위가 대리인이냐 아니면 대표자이냐 Delegate vs. Trustee의 논쟁은 어느 한 쪽으로는 결론내기 힘든 영역에 속한다.  정당은 국가의 기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적 정치결사단체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정당국가의 현실에서 정당은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의무 또한 지고 있는 존재다.

 

우리나라 헌법 46조에서 의원 위임에 대한 법적 성격을 독일의 규정과는 약간 차이가 나게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2)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헌법상의 규정으로 볼 때 “국민의 대표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청렴의무와 국가이익의 우선 그리고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원의 지위를 트러스티로서 설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원의 법적 성격과 지위를 트러스티로서 이해하고 주장한 버크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분명하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륙법국가에서는 의회에서 정부가 내린 결론을 밀어 부치려는 경향이 강하고 또 정치 토론의 문화가 부족하다는 반성의 측면에서도 버크의 의원의 법적 성격과 지위를 분명하게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9.3. 버크의 브리스톨 연설

 

버크는 의원이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한 의견에 따라 독자적으로 성숙한 판단 mature judgment’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현명한 판단은 모든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지는 완전한 토론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현명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전제조건을 우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버크는 선출된 의원의 위임 mandate의 문제에 있어서 의원은 선거구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거기에 구속받는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의원 독자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자라는 독립적인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버크는 의원의 지위를 영미법의 트러스트 Trust 법원칙으로 파악하고 의원에게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청렴의무가 강조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의제 민주정치에서 모든 정치 권력은 트러스트 trust로서 이해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의원은 트러스트 지위에 있으므로 사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익을 추구하여야 하며 그런 내재적 도덕적 양심과 외재적 트러스트로서의 법적 의무를 강하게 부담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의원의 트러스티 trustee 지위를 웅변적으로 말해준 버크의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 일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의원이 지역구 선거권자와 철저하게 융합하고, 가장 가깝게 교류하고, 아무런 제한없이 소통하는 것은 의원의 행복이자 명예인 것입니다.  의원에게 지역선거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고 그들의 의견이 가장 존중되어야 하고 그들의 생업에 무한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원 자신의 휴식과 기쁨과 만족은 선거민들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선거민들의 이익이 우선하여야 한다는 것이 의원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의원의 편견없는 의견, 의원의 현명한 판단, 의원의 깨인 양심에는 여러분이나 또 어떤 다른 사람이나 또는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도 결코 희생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의 기쁨에서도 나오는 것이 아니고 또 법이나 헌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트러스트(trust 신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남용한다면 의원은 깊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의원은 자신의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의원이 자신의 판단을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희생한다면 그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 의회는 서로 다른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리인이자 대변인으로서 서로 각각 대립하는 회의체가 아니라, 의회는 단일한 국가의 숙의deliberative 기관으로서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단일한 이해 관계를 갖는 것이고, 따라서 한 지역의 목표나 한 지역의 편견들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보편적 이성의 결과인 보편적 선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한 의원을 선출하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 의원을 선출했을 때 그 의원은 브리스톨의 의원이 아니라 의회의 의원입니다.[5]

 

 

 

9.4. 의원의 공익 봉사와 청렴 의무와 트러스트 Trust 법윈칙

 

의원의 국민 전체의 대표자라는 지위는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신탁)” 법제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 대륙법 전통에는 트러스트 법제도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정치제도 차이뿐만 아니라 법문화적으로 영미판례법국가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며 그런 관계로 트러스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6]  배심원 Jury 제도, 트러스트 Trust 법제도를 가지고 있는 영미법국가들은 대륙법국가들과는 정치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대륙법국가에서 배심원 제도는 실시되지 않거나 다만 변형적인 모습으로 무늬만의 배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뿐이며, 트러스트 법제가 도입된 시기 또한 가장 최근의 일이고 그것도 일반법제로써가 아니라 단지 상사신탁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가장 최근인 2007년에서야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제도가 도입되었다.[7]  우리나라에서 투자신탁 등 은행증권 상품에 존재하는 예와 같이 상사법 트러스트 제도는 일부 존재하나 이것은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법제도의 진수하고는 거리가 있다. 

 

트러스트의 법적 관계는 대리 관계도 아니고, 위임 관계도, 계약관계도 아니다.  트러스트는 신임 관계 fiduciary relation에서 존재하는 신인 의무 fiduciary duty가 가장 중요한 내용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인의무에 대한 법적 개념이나 법문화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트러스트 관계의 전형적인 예는 부모와 자식, 교회 목사(신부)와 신자, 의사와 환자,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관계들에서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관계의 법적 개념과는 다른 상황이고, 법제도와 법문화가 역사적으로 달라서 트러스트 제도를 정착시키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법이론적으로도 자산이란 한 사람에게 귀속된 물건과 채무에 의해 구성되는 권리의 총체로서 모든 사람은 각자 하나의 자산을 가지고 자산의 유일성이라는 개념과 또 인격과 자산은 불가분이라는 자산의 불가분성 개념으로 법체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트러스트 제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영미국의 판례법국가들은 헌법상 정당 해산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나 독일과 우리나라의 대륙법 국가들은 헌법상 정당 해산 규정을 갖고 있다.  독일의 정당국가 체제와 영미국의 대의제정부 체제는 서로 완전하게 동일시되는 개념이 아니고, 두 법체계에서 의원의 법적 지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이가 나타난다.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의 원형인 영미법국가에서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이고, 또 공공 이익 public interest에 봉사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 발전한 트러스트 개념은 국가에서 국가와 사회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로서 서로 공존하는 개념에 가깝다.  판례법국가들에서 공무원의 부패가 적고, 정부의 투명성이 높이 나타나는 이유는 트러스트 법제의 존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트러스트법제에서는 법과 양심이 별도로 유리된 것이 아니라 법과 양심이 함께 용해되어 있다. 

 

반면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과 같은 대륙법국가는 국가주의 전통이 강하고 국가와 사회를 분리해서 보는 이원론에 기반하여 국가를 지탱하는 공무원의 중립의무가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책임윤리가 부족하여 부패의 수준이 심각하였고 또 국가의 권력 남용(나찌 독재정권 국가전체주의체제 사례)이 크게 나타났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공익을 추구하게 만들고 또 책임윤리를 강제하는 Trust 법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일견 분석할 수 있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트러스트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버크가 의원을 트러스트 지위로 설명하고 트러스트 법원칙에 근거한 공공봉사와 청렴의무를 설명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8]

 

의원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아니면 선거주민(또는 정당)의 대리인인가?  이러한 이분법적 구별은 무의미하거나 또는 불가능한 영역인지 모른다.  사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는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정당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결론은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 ‘정당의 대리인 agent, delegate’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지도 모른다. 

 

현대 국가에서의 민주·대의·정당 정치의 혼합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하나의 법적 잣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의원이 자기 양심에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절차적 정의의 측면을 잘 숙지할 것을 요구한다.  버크가 말한 대로 국가적 입법은 이성과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토론 없이 이성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9]  버크는 국민의 행복만이 국가 정책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고 또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행복과 불행의 결과를 가져온 다양한 국가 정책들을 경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모든 정부-사실 모든 인간의 이익과 기쁨, 모든 미덕과 모든 신중한 행위-는 타협과 교환에 기초”[10]하기 때문에 토론의 과정은 필수적이고, ‘성숙한 판단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나온다.



[1]선량한 관리자 (trustee)’는 법적 의제 legal fiction로써 ‘수탁자’로 주로 번역되지만 영미법상의 트러스티 trustee 법개념은 독일법의 ‘선량한 관리자’ 개념보다 법적 의무와 지위가 보다 높고 강하다.

[2] 독일과 미국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경험했고, 독일은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의 경제 파국을 경험했다.  대공황이 미국인들의 공황 공포 심리를 만들어 낸 반면 초인플레이션이 독일인들의 경제공포 심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국가 경제가 무너진 현상은 같아도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반대적인 경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과 독일인의 경제 공포 심리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3]독일연방의회 의원은 보통, 직접, 자유, 평등, 비밀선거로 선출된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  Members of the German Bundestag shall be elected in general, direct, free, equal and secret elections. They shall be representatives of the whole people, not bound by orders or instructions, and responsible only to their conscience.”

[4] 우리나라에서 의원의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원 지위에 대한 개념이 강하지 않는 이유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한 영미국만큼 오랜 의회 민주주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 트러스트 trust 법원칙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은 국가 전체 이익에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는 개념보다 선거구민의 대리인으로 이해하는 개념이 보다 강한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5] “Parliament is not a Congress of Ambassadors from different and hostile interests; which interests each must maintain, as an Agent and Advocate, against other Agents and Advocates; but Parliament is a deliberative Assembly of one Nation, with one Interest, that of the whole; where, not local Purposes, not local Prejudices ought to guide, but the general Good, resulting from the general Reason of the whole. You choose a Member indeed; but when you have chosen him, he is not Member of Bristol, but he is a Member of Parliament.”, The Works of the Right Honourable Edmund Burke. 6 vols. London: Henry G. Bohn, 1854-56.

[6]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를 두고 미소간에신탁 통치 Trust”가 논해지고서 있을 때 한국인들은 해방 정국에서의신탁 Trust”에 법적 성격에 대해서 이해가 크게 부족했음을 나타냈다.

[7] 2001년 유럽의회 결의 참조.  De Waal, “In search of a model for introduction of the trust into a civilian context”, Stellenbosch Law Rview vol 12 2001, at 71.  프랑스 경우 2007년도에야 도입됐다.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은 비교적 최근에야 영미법상의 Trust 법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금융 및 상업적인 영역에서의 부분적 제도 도입에 머물고 있다.  일부 부분적인 도입만으로 트러스트 법체계와 트러스트 법원칙들이 바로 근본적으로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고 오랜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8]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막스 베버의소명으로써의 정치을 참조하라.

[9] “My worthy Colleague says, his Will ought to be subservient to yours. If that be all, the thing is innocent. If Government were a matter of Will upon any side, yours, without question, ought to be superior. But Government and Legislation are matters of reason and judgement, and not of inclination; and, what sort of reason is that, in which the determination precedes the discussion; in which one sett of men deliberate, and another decide; and where those who form the conclusion are perhaps three hundred miles distant from those who hear the arguments?” 버크 연설, 1775.

[10] "All government—indeed every human benefit and enjoyment, every virtue and every prudent act—is founded on compromise and barter.", 버크, Speech on Conciliation with America, 1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