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과 소통
이 책을 통해서 제기하는 도전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존의 통용되는 역사와 학설이 편견과 선입관을 넘지 못한 잘못이 있음에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을 업고 학교의 교과서나 대학의 연구서에 버젓이 역사로 설명되어 온 바 이런 배경에는 식민지사학, 문화제국주의, 후기식민주의, 신자유주의, post-truth시대[1] 등의 여러 분석적 도구로 설명되어지는 학벌 파벌 재벌 전관예우 정치계 교육계 문화계 출판계 경제계 종친 종단 이러한 수없이 열거될 정도의 문제들과 각계 각층의 조직적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히고 섞여 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 동안 누적되어 적폐로 쌓이고 쌓여 있는 학교 교과서와 학계와 연구계의 기득권 구조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스며들어 있는 복합적 관계를 고려하면 나의 책에서 제기하는 연구 의제들이 의미 있다고 해서 그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까다로운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선 학교와 대학 그리고 각 연구 기관들 간의 협업이 필요하고 또 국회와 정치인,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와 문화재청 등 문화 관련 정부 부처, 언론사를 비롯한 모든 이해당사자는 물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요구된다. 224년 아니 1340년 아니 이천년 아니 오천년 그동안 묻히고 묻힌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므로 이에 대한 단순한 연구와 분석만으로 잘못된 역사의 적폐를 청산하고 그 진실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렇게 가볍게 인식하지 않는다.[2] 하지만 인류의 영원한 유산에 대한 문제이고 지식의 전승과 전인류적 진실과 역사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자 궁극적인 문제제기와 해결을 찾고 있는 역사중의 역사 핵심 중의 핵심적인 문제이므로 어떠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실을 회복할 것으로 믿지 않을 수 없다. 학문과 진실 추구의 문제이므로 진보냐 보수이냐의 이념이나 당파성을 떠나서 객관성과 학문성에 대한 기본적 기준을 확보하여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매우 두텁게 막혀 있을지 몰라도 헤게모니는 열려진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위의 연구 의제와 과제를 처음 제기한 긴 여정을 시작한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역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국문학 중문학 등 관련되고 인접한 다양한 학문 제분야를 통틀어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할 의제와 과제가 무궁무진하고 지천으로 쌓이고 널려 있다. 따라서 이 모든 연구 과제들을 검토하고 관련 법령을 수정하고 그리하여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과서나 대학 교재의 기술된 잘못을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학문과 진실 추구는 국가의 가장 큰 의무와 책임에 해당한다. 이는 국가 안보와 국가 경제의 문제이고 국민 건전성과 국민 소득 향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단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현재와 미래의 절실한 부분이다. 따라서 관련자나 관심있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과 다같이 학문적 욕구 충족과 국민적 필요와 정치적 담론 형성을 위하여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적극 기대한다.
향후 어떻게 변화될까?
담대한 예측
한국사의 혁명은 불가피하다. 이 책의 연구 결과에 따라 앞으로 한국사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에 대해서 거대하고 혁명적 변혁이 물결처럼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으로 예측하고 싶다. 개인적 분노가 공적 분노로 폭발하는 것도 순간적인 일이며, 민란도 혁명도 한 순간 우연한 계기로 폭발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 예측의 영역은 어느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다. 다만 내가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모든 혁명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혁명은 불가능하게 보인다.”[3]
단초와 요원의 불길
‘내 하나가 공고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는가?’-하고 주저하거나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물 한 방울이 모여서 큰 바위를 뚫는다는 사실,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積土成山積水成淵(적토성산적수성연)의 교훈을 기억하라. 이런 측면에서 나는 로자 파크스의 역사적 측면을 잠깐 여담으로 여기에 적고 싶다. 한 사람의 용감한 행동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새역사를 쓸 수 있다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당시 흑백인종 격리 법률에 따라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위협을 거부하여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당시 인종격리법령에 따르면 파크스는 공공버스안의 백인만에게만 허용되는 자리에 앉아 있어서 백인이 타면 그 자리를 양보하고 흑인 해당 구석으로 밀려나야 했었다. 버스 운전사가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세요”라고 위협했지만 파크스는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결국 백인 경찰관 두 명이 버스에 올라와 강제로 밀어내자 파크스는 “왜 이렇게 우리를 밀쳐 내는 것이요?”라고 말하며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의 반응은, “그건 내가 알 바 없고 단지 법은 법이니까 그래서 당신을 체포합니다.”[4] 파크스는 곧바로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버스 안타기 운동을 촉발시키고 흑인 인권 향상 저항 운동이 촉진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파크스는 움추려 들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결과를 사회와 국가의 공적 미래로 연결시키는 확신하에 담대한 행동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한 미천한 개인이 정의롭지 못한 부당한 법에 항의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대항한 사건은 한갖 사소하고 무의미한 별건으로 치부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하나의 사건-event이건 account이건-의 행동은 인종분리 정책 폐지라는 역사상 큰 의미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는 이념의 발현에 따르지 않고 사소한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되어 하나의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5] 인종차별의 무시무시한 법에 대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의 일환으로 일으킨 한 사람의 순간적인 조용하지만 용감한 행동 하나가 후에 바위에 계란던지기 같았던 불의한 세상의 거대한 벽을 허무는 큰 계기로 작동한 것이다. 불평등한 인종 차별에 반대하여 저항 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졌던 미국의 50-60년대 정치적 흐름을 다시 상기해 보라. 평범했던 그녀의 삶 속에서 하나의 작은 행동이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로자 파크스가 2005년 사망하자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이자 흑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의회 의사당에 안장되었는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작은 행동에 불과했던 한 순간의 움직임으로 로자 파크스는 미국이 변화하고 세계가 변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추모사를 올렸다.[6]
[1] Rand 연구소, “진실의 쇠퇴: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사실과 분석의 역할 감소에 대한 기초 연구” (요약본).
[2] 1796년 문무왕릉 비문의 파편이 당시 경주부윤 홍양호洪良浩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耳溪集 권16 참조, 문무왕릉 비는 서거 1주년인 682년 칠월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왕릉 비문에서 신라의 개국 시조를 밝히고 있고 또 첨성대의 관련성 그리고 신라 이전의 상나라까지 거슬려 올라가는 한민족의 시원과 내력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3] “In retrospect, all revolutions seem inevitable. Beforehand, all revolutions seem impossible.” (Michael McFaul).
[4] “Why do you push us around? / and his answer: I don't know but / the law is the law and you / are under arrest.” 이 부분은 리타 도브의 시 “The Enactment” 법률의 한 문단의 일부를 번역 인용한다.
[5] 카오스 이론으로 꼭 끄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람시의 헤게모니 작동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게모니 이론은 꼭 닫혀진 구조만이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내는 열려진 구조로 작동될 수 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계급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지배 질서를 지속 유지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헤게모니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대중들의 동의와 순응을 통한 통제를 위해서 교묘하게 언어나 제도기관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거나 끊임없는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대중들은 불평등하고 억압을 받고 있는 기존의 지배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체제 내부가 취약한 곳에서 대중은 돌발적으로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 (식민지에서의 항거가 그 예) 무력과 억압적인 통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은 교육과 문화적인 헤게모니 과정을 통해 지배 질서를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소프트 전략을 취한다. 푸코가 밝힌 대로, 학교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적 기관이고 지배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사람들은 지배권력에 순응하지 하지 않으면 지배적 질서 체제에 편입될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의사, 변호사, 기술사 등 전문직업군은 전문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 전문가로서의 직업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전문가로서 직업을 가지려는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대학의 교수들이지, 전통적인 정치 권력 개념으로써 장관이나 의원들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은 미래 세대의 순응 구조를 길러내고 유지해가려는 지배권력에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6] 뉴스기사에 인용된 오바마 대통령의 말, “In a single moment, with the simplest of gestures, she helped change America and change the world.” , <The New York Times> A Southall, 27/0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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