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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해산 심판

사상의 자유와 공무원의 충성 의무

by 문무대왕 2025. 5. 1.

7. 사상의 자유와 공무원의 충성 의무-케이시안 Keyishian 판례

 

케이시안 사건 Keyishian v. Board of Regents 514 U.S. 673 (1967)

변론 1966 11 17, 판결 1967 1 23

 

(1) 케이시안 Keyishian 사건 개요

 

당시 매카시즘의 분위기 속에서 사상 검증의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불순분자를 가려내기 위한 목적으로 충성 서약 loyalty oath제도가 실시되었다.  1962년 뉴욕주 한 대학교에서도 교직원에게 충성서약을 요구했다.  충성서약의 내용은 교직원 채용 제출 서류에 자신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것이 진실하다는 서명을 요구하였다.  이는 좌경 사상을 가졌거나 그런 전력 있는 사람들을 교육직원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한 뉴욕주의 교육법과 공무원법 등의 규정에 따른 조치이었다. 

 

하지만 영문학 강사였던 케이시안 Keyishian은 다른 동료 몇 명과 함께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충성 서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다.  대학 측이 고용 계약 연장을 거부하자 이들은 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 청구 이유는 관련 법규가 구체적이지 않고 애매모호하여 헌법원칙으로 보장되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에서 연달아 패소하였고 결국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게 되었다. 

 

법적 쟁점은 “선례 구속성”의 원칙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전의 선례가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면 과거 선례를 뒤집거나 변경하여 새로운 판례를 수립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

 

(2) 선례 구속성 법원칙

 

대륙법 국가에서 선례구속성의 원칙 stare decisis에 대한 태도와 이해의 정도는 영미국의 판례법국가의 그것과는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울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판례를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하여 변경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영미국의 법원은 법을 의회입법부의 법률 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대법원이 새로운 법을 직접적으로 창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판례와 영미국에서의 판례 (case 선례 precedence)의 지위와 성격은 차이가 난다.

 

미국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의 합의체로 운영되는 관행상 사안이 똑같거나 비슷한 사건에서 이전의 선례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선례를 마련할 것인지의 판단 문제는 실질적인 법리 문제뿐만 아니라 절차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어려운 법영역에 속한다. 

 

케이시안 사건하고 사안이 똑같거나 비슷한 사건인 1952년 아들러 Adler 판결이 선례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단을 변경할 만한 매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좀처럼 변경되기 힘들다. 

 

1952년 아들러 판결에서 대법원의 판결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교사는 학교의 교실이라는 민감한 장소에서 근무한다.  거기서 교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정신 태도를 형성시킨다.  여기에 주정부의 중대한 관심 영역이 된다.  주정부는 학교의 본질성을 보존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질서 잡힌 사회의 한 부속물로서 학교의 본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육공무원, 교사, 직원들을 걸러낼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1]

 

1958년 베일리안 Beilan 사건하고도 비슷한 사안이었는데 베일리안 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공립 학교에서의 가르치는 일을 맡음으로써 청구인이 사상, 언론 또는 집회 결사의 자유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구인은 공립 학교 교사로서 근무할 수 있는지의 적합성을 검증하려는 인사위원회가 묻는 질문들에 답변함에 있어서 솔직함, 진실함, 협력의 의무를 부담한다.[2]

 

이전의 선례에 따라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 왜 법을 꼭 바꾸어야 할만한 새로운 특별한 사정의 존재 또는 이전의 판례에 어떤 큰 잘못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5명 이상의 대법관이 동의를 해야 새로운 법이 탄생되는 것이다. 

 

마침내 1967년 대법관의 5:4의 판결로 교육당국의 자기 보존권이 우선한다고 본 15년 전의 아들러 선례를 변경하고, 학문의 자유가 교육 자치권에 우선한다는 새로운 케이시언 선례를 수립하게 되었다. 

 

(4) 판결 이유 -브레난 대법관 다수의견

 

대법원은 15년 전의 Adler 판례에서 뉴욕주의 교육법과 공무원법의 특정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검토했다.  문제된 교육법 제3021조에서 “반역이나 불온선동적인 말이나 글을 퍼트리는 것 또는 반역이나 불온선동적인 행위”는 공립 학교로부터의 해고 사유에 해당한다.  

또 문제된 공무원법 제105조는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을 지지하는 주장을 옹호하거나 또는 그런 주장의 문건들을 배포하거나 또는 그런 주장의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사람이라면 공무원 및 교육기관에 채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15년 전의 저희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된 공무원법 제105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왜 대법원의 과거의 판례를 뒤집고 새로운 판결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저희 대법관들은 본안 판단에 있어서 해당 법률 조항의 문구에 사용된 “불온 선동적인 Seditious”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따져보았다. 

 

3021조는 해고사유로 “반역이나 불온선동적인” 주장이나 행위 “treasonable or seditious” utterances or acts를 규정하고 있다.

 

105조에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법률 사이에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제3021조에는 “반역이나 불온선동적인”에 대한 개념 규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105조에는 이에 대한 개념 규정을 하고 있다.  즉 반역 발언이나 불온 선동적 행위를 정부 수반이나 고위 공무원을 암살 또는 다른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불법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는 것으로 정하는 형법상의 개념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역적인 treasonable”과 “불온 선동적인 seditious”을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고 해도 불확실성의 문제는 제거되지 않는다.  “반역적인”에 대한 개념은 형법 규정상에도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불온 선동적 seditious"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형법 제160조는 반란 발언이나 내란 선동적 행위를 정부 수반이나 고위 공무원을 암살 또는 다른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불법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주장을 하는 경우 형법상 불법무정부상태 선동죄로 처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다음 표현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한 주장을 말이나 글로써 체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 제105, 형법 제 16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구가 “불법 무정부 상태 선동”을 금지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온 선동적인” 발언이나 행동의 적용 범위는 사실상 한계가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누군가가 강제력, 폭력, 어떤 불법적인 수단을 통하여 현 정부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 옹호, 선전, 홍보하는 책을 공공장소에서 펼쳐 보이는 경우” 불법적 무정부 상태를 선동 조장하는 중범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공의 거리에서 “공산당 선언”의 인쇄본을 들고 다니는 교사 역시 불법무정부 상태를 옹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양심적이고 사려깊은 행동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불명확한 문구에 잠재한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교사는 어느 정도가 추상적인 논리에 대한 단순한 주장인지 아니면 교조화하거나 잘 개념 정리된 교리에 따라 직접 행동을 불러올 정도가 “불온 선동적인” 주장에 해당되는 정도인지를 알 수가 없다.  결정적인 것은 “불온 선동적인” 발언과 행위와 불온선동적인 아닌 것과의 사이에 정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교육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뉴욕 정부가 반역불온세력으로부터 교육 기관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적법하다는 것에 어떠한 의문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목적이 아무리 적법하고 정당하다고 해도, 만약 목표가 다른 대체 수단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면 그 목적이 기본적인 개인의 자유권을 크게 억압할 우려가 있는 수단에 대치되어서는 아니된다.  해당 법률이 교육자 신분을 반역불온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차원이므로 이 원칙이 적용 배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단지 해당 교육자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들 모두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높은 가치인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다하고 있다. 따라서 학문적 자유는 수정헌법 1조에서 보호하는 언론 자유의 특별한 보호 영역에 속하는 바, 이는 학교 교실에서 정통파교리의 검은 장막을 치려는 법률을 용납할 수 없다. 학교 교실은 특히 “사상의 시장”인 것이다. 국가의 장래는 진실은 “일종의 권위적인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발견된다”고 여러 생각들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것을 폭넓게 경험하고 또 그런 환경에서 훈련 받은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 

 

대학 사회에서 자유가 가장 핵심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나라의 젊은이들을 지도하고 훈련시키는 그런 교육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민주주의제도에서의 핵심적인 역할을 누구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된다.  교육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모두 완전하게 알려져서 새로운 발견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법칙이, 있다고 해도, 거의 없는 사회과학 부문에서 특히 그렇다. 의심과 불신의 풍토에서는 교육이 꽃피울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자유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에서 법규정이 명확해야 된다는 점은 가장 기초적인 요건”이라는 법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권의 행사에 대한 겁주기 효과 chilling effect의 위험성은 교사들에게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민감한 장치에 의해서 제어되어야 할 것이다.

 

뉴욕주가 제정한 법률에 나타나는 규정상의 혼란은 “객관적인 측정 objective measurement"이 가능한 개념을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법규상 치명적인 “극히 예외적인 애모모호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법률, 명령, 규칙의 방대함과 많은 규정들 때문에 또한 관련 법규들간의 겹겹으로 준용규정에 의해서 더욱 문구의 불명확성의 문제가 나타난다.   따라서 해당 법률 조항들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한다.

 

또 공산당 가입의 전력만으로 교육자의 자격을 불허하는 규정하고 있는 교육법 제105조 제1(C)항이 위헌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겠다.

 이 규정은 미국 공산당 단체가  “반정부 subversive” 단체로 열거된 이후 1958년 삽입되었다.

 

(그러나) 어떤 조직 단체의 불법적 목표를 수행하려는 특정한 의도없이 단순히 가입한 전력만으로 문제 삼아 개인이 갖고 있는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없다. 

 

비슷한 사례로 이전의 대법원 판례들이 존재한다.  “어떤 단체에 가입하더라도 그 조직의 불법적인 목적을 공유하지 않고 또 실제로 불법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민으로서나 공무원으로서나 분명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 임용 시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문서 서명하게 요구한 법률들은 대법원에 의해서 이미 위헌 무효화되었다.  

 

이전의 압테커 Aptheker 판례에서 어떤 정당단체에 가입하더라도 그 조직단체의 불법적인 목적 그리고 불법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특정한 의도를 아는 바 없이 가입한 경우에는 해외 여행 자유권리를 박탈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전 판례에서 판시한 바.  법률이 특정단체의 불법적 목표를 수행하려는 “구체적 의도 specific intent” 없이 단순하게 가입한 것에도 적용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보호하는 자유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연좌제 guilt by association” 처벌에 해당한다. 

 

따라서 단순한 정당 가입 여부 또 심지어는 정당의 불법적 목표들을 인지한 상태에서 가입을 했다고 하더라도 형법상으로 처벌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충분한 것이 아니며, 해고의 정당한 사유로써 드는 도덕적 결함이라는 결론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써 대법원은 해당 법규 문제의 조항들이 미국 혹은 뉴욕주 공산당의 불법적인 목표들을 수행하려는 구체적인 의도가 없는 단순한 정당 가입까지를 금지한다는 측면에서 그런 법률들은 위헌 무효임을 판결한다.

 

(5) 클라크 대법관의 소수반대의견

 

클라크 대법관의 소수반대의견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다수의견은 현재법률이 “구체성이 없이 너무 애매모호한”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을 존중하는 만큼 그와 마찬가지로 유감스럽게도 다수의견은 가장 소중한 권리의 하나인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 의 권리를 쓸어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공교육 제도는 민주주의 훈련장이다.  젊은이들의 정신이 거기에서 발달되고 이 발달의 성격은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진실로 우리들의 생존이 이것에 달려 있다. 

 

누군가가 무력이나 폭력 또는 기타 불법적 수단으로 정부를 전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옹호, 권고, 교사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주장을 옹호하는 서적이나 논문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인쇄 출판하였거나 또 그러한 주장을 스스로 직접 옹호하거나 그러한 주장을 옹호하는 단체에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회원 가입한 것으로 모든 법정 증거를 통해서 판명되는 경우 주립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주정부가 별도의 반대증거 없이 내릴 수 있는지 여부가 법적 쟁점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지금까지의 모든 선례들의 입장과 같이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다수의견에 반대한다.[3]



[1]A teacher works in a sensitive area in a school room. There he shapes the attitude of young minds towards the society in which they live. In this, the state has a vital concern. It must preserve the integrity of the schools. That the school authorities have the right and the duty to screen the officials, teachers, and employees as to their fitness to maintain the integrity of the schools as a part of ordered society cannot be doubted.” Adler v. Board of Education 342 U.S. 485 (1952).

[2]By engaging in teaching in the public schools, petitioner did not give up his right to freedom of belief, speech or association. He did, however, undertake obligations of frankness, candor and cooperation in answering inquiries made of him by his employing Board examining into his fitness to serve it as a public school teacher.” Beilan v. Board of Education, 357 U.S. 399 (1958).

[3] Keyishian v. Board of Regents 385 U.S. 589 (1967), 62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