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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영웅의 조건

by 문무대왕 2025. 4. 23.

후기 5- 영웅의 조건

 

和氏之英 화씨지영

 

대부분의 사람들은 和氏之璧화씨지벽이라고 말하면, 그 뜻을 쉽게 파악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굳이 和氏之英화씨지영으로 쓰고 그것을 강조하는 걸까? 이 말은 옛사람 선현들이 썼던 말 그대로이다. “英”은 고문에서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바로 아름다운 보석 美石을 뜻한다. 금은 보석 다이아몬드 철광석 석탄 모두 돌에서 나온다. 다듬지 않는 원석 말이다. 그래서 아직 꽃을 피우기 전의꽃부리영이라고 우리는 한자훈독을 한다. 영웅은 누구인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화씨지벽이란 말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강조되어 있다. 로마의 페비안의 전략을 기억하라. 대기만성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우리들 생활영역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마도 도자기 굽기일 것이다. 불의 완급 조절과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사에서 조급증은 대사를 그릇치기 쉽다. 강태공 같은 기다림을 갖지 못하고 또 그것과는 반대로 자본주의는 급조하고 쉽게 소비하는 속성의 과정일지 모르지만. “화씨지영으로 쓰면 임권택 감독의 영화취화선의 주인공의 마지막 삶 같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보다 강조하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지벽의 고사를 잘 알 것이다. 화씨가 깊은 산 속에서 보석이 숨어 있는 원석을 발견하고 그것이 국가의 최고 보물임을 직감하여 국왕에게 갖다 바쳤다. 국왕은 전문가에게 감정을 시켰고 그저 돌맹이에 불과하다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고 화씨를 돌을 보석으로 사기친다고 판정하여 그의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 포악한 초려왕 다음으로 무왕이 즉위해서 또 다시 감정을 시켜보니 이번에도 돌맹이라는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에 화씨는 다른 다리마저 잘려나간 형벌을 받았다. 그래서 깊은 산 속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어 사는 백두옹이 되었다. 다시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그 슬픈 사연을 물어보니 화씨의 대답은 이랬다.[1]곧은 선비에게 보배스런 옥을 돌이라 사기친다고 한 것에 슬퍼한 것입니다.” 이에 문왕이 그 옥석을 다듬게 하니 야광에도 별처럼 빛나는 천하의 명옥이 탄생되었는 바 그것을 지금까지 화씨지벽이라고 부른다. 다만 천하의 보물 화씨수주는 예수의 성배의 향배처럼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영웅의 조건

 

조셉 캠벌은 신화의 연구 방법을 통하여 영웅으로 탄생되기 위한 영웅의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사마천의 자객열전을 읽고서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한대로 용기가 영웅의 조건이지 않나 생각된다. 영웅은 자객 예양의 경우처럼 그들이 맡은 임무가 그토록 어렵지 않다면 영웅은 탄생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영웅의 한자 英은 우리가 흔히 꽃부리 영으로 훈음과 독음을 하기에 英자의 의미가 용기 즉 영어의 ‘courage’라는 그 뜻을 그냥 흘겨 버리는 우를 범하기 쉬운데 영웅의 이 글자의 의미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용기란, 시카고 대학의 고전 교양문고 시리즈에서 설명하듯이,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을 말한다. 英雄영웅이란 단어는 고대에서는瑛雄이라는 단어와 함께 같은 뜻으로 쓰였다. 구슬이 빛내는 광채는 원석을 갈고 닦아서 나타난다. 따라서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영웅이란 모든 간난을 무릅쓰고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을 극복해내고 끝내 승리를 쟁취해 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불평불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 탄생시킨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이 말 또한 영웅적 지도자는 그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갈고 닦아서 구슬처럼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이 아닌가?[2] 

 

기적의 해

 

1905년은 우리나라에게는 치욕의 역사인 을사보호조약이 강박된 해이지만 전세계적 역사로는 위대한 해로 기록된다. ? 1905년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되는 아인슈타인의 기념비적 논문 3편이 연달아 발표된 특별한 연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905년을 기적의 해 annus mirabilis’로 부른다.[3]  우주천체물리학의 공식을 세우고 세상을 뒤바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아인슈타인의 논문 한 개는 매우 짧은 분량으로 3페이지에 불과하다. E=mc2 공식이 등장하는 상대성이론에 대한 두 번째 논문 “Does the Inertia of a Body Depend Upon Its Energy Content?”을 참조하라.[4] 하지만 그것을 세상에 밝히는 작업이 그리 간단하였을까?   

 

나 혼자서는 이미 문무왕릉의 비문과 삼국사기와 다른 사료와 사서를 종합적으로 읽고 분석하여 그 내막을 알아 차렸지만, 그 진실을 세상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작업을 필요로 하였고, 또 그것을 끝마치지 않으면 부족하다고 여겼다. 앞서 꺼낸 화씨가 갖다 바친 보석을 돌맹이에 불과하다고 감정한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서 오히려 내 다리가 잘려나간 그런 모진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으로 여겨졌다. 나는 최소한 논문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여기고 있는데 내가 어찌 화씨가 당한 슬픔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모든 증거로써 입증된다고 확신하더라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화씨처럼 보석을 보석이라고 그것을 세상에 발표할 수 있는 개인적 용기를 내가 정말 가졌는가의 문제였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결단이 필요하였다.[5] 내 혼자만의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면서 내 죽은 후에라도 갚을 수 있으리라는 도연명의 싯구로 결심하였다. 황금을 돌같이 여겨라는 비정상적 교훈이 회자되고 지록위마가 판치는 사바세계의 상사중사하사의 평가에 맡기기보다 변화씨와 사마천이 택한 3대의 기다림 그 천추에 맡기기로 다짐했다. 사마천의 시대와는 2천년의 간격이 있는 오늘의 현대이라고 해도,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 탄생 이후 1919년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으로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이론이 만인에게 입증되기까지 10여년이 흘렀고, 1921년 노벨상을 받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또 그런 일반적 측면과는 다르게 모든 사료와 문서의 기록들이 한문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도 글의 의미를 깨닫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즉 널리 읽혀서 집단지성의 힘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원문이 우선 한글로 번역되어야 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 그것부터 먼저 물어야 했기에 이중의 고역이 필요했다. 어느 한 곳 기 번역된 글이 없는 황무지 같은 척박한 연구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이중삼중의 고난한 작업이 수행되어야 했다. 영어로 번역된 사마천의 사기[6]를 읽고 이해해야 했고 백양편 자치통감을 읽어야 했고, 하다못해 수많은 한글번역이 나와 있는 노자 도덕경마저 일본어나 독일어로 번역된 것까지 찾아 읽어내고서야 기존의 한글 번역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이 아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되고 또 남이 모르는 것까지를 내가 알지 못하고서는 새로운 논문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든 구석을 찾지는 못했지만 당태종 유언은 중국어나 일본어나 영어 등 현재까지 어떤 번역이 시도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영역에까지 천착하여 당태종 유언 등의 사료를 한글로 번역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작업으로 인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번역이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여는 것이고, 알맹이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깨는 것이며, 지극히 성스런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 장막을 거두는 일이며, 야곱이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면 우물가의 돌을 들어내 치워야 하듯이 샘물을 길러 올릴 수 있도록 우물 덮개를 여는 일과 같다. ( 29:10).[7] 사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로 된 번역이 없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샘이 깊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두레박이나 떠올릴 수단이 없어 마냥 서 있는 어린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요, 성경의 이사야에서 언급한 대로 내가 말하노니, 이것을 읽으시오라고 쓰여 있는 봉투에 넣어 봉인된 책을 내밀자 봉인되어 있어서 내가 읽을 수 없소이다라고 대답했던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 29:11][8]

 



[1] 한비자, 화씨 부분,三日三夜 泣盡而繼之以血 王聞之 使人問其故 曰 天下之刖者多矣 子奚哭之悲也 和曰 吾非悲刖也 悲夫寶玉而題之以石 貞士而名之以誑 此吾所以悲也 王乃使玉人理其璞而得寶焉 遂命曰 和氏之璧”.

[2] 영웅의 의미를 사마천의 자객열전에서 찾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영웅은 희생으로 태어난다는 점일 것이다.  2002년 개봉된 장예모 감독의 영화英雄을 시청했는데, 진시황제가 칼 劍 검 글자를 크게 써놓고천하통일의 의미를 설명해내는 장면이 압권으로 느껴졌다. 칼 검자에는천하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진시황제는 자신을 죽이려 온 자객에게 칼 劍검에서의天下의 의미를 찾아내며 서로 싸우고 있는 중국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 더 이상 인민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설명한다.  자객은 비로소 진시황제의 이러한 천하통일의 취지를 확인하고서 치밀하게 준비해 온 진시황제를 죽이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선다. 이 포기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오태백의 길처럼 싸움을 하기보다는 대신 새로운 땅으로 가서 그곳에서 개척하여 다시 일어선다는 그런 겸양과 모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따라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내 자신을 비켜준다는 양보와 희생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칼 劍검 자에 희생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생각은 제왕절개의 수술을 ‘Caesarian section’(시저리안 섹션)이라고 말하는 영어의 뜻에서도 발견된다. 천하를 얻으려면 먼저 희생이 결부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가 피를 흘리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 원죄의 개념을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지 모르지만, 오늘날 미국의 Affirmative action 적극적 차별 해소 정책이 생겨난 배경과 취지를 살펴보라. 현대는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더라도 아이와 엄마가 동시에 살아날 수는 것이 확실하지만 로마 시대 시이저가 황제로 등극한 시기 이천년 전 전의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아이가 엄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필시 그 엄마는 제왕절개 수술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가 죽는 대신 아이가 태어났던 것을 말한다. 결투하는 사람이 결투의 대결에서 한 번 칼을 쓰게 되면 결투하는 양자가 다같이 사는 법이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둘 중에 어느 하나는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우리 인간 세상에서 다른 하나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죽게 된다면 그 죽음을 택하는 사람은 누구이던가? 죽음이 있고서 새로운 삶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던가? 장예모의 영화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소개한다. “生死相守 人不離人”. “나와 비설은 생사를 함께 지켜온 사이이고, 우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결코 이별하지 않는다고 다짐했건만, 제왕절개 수술이 말해주는 엄연한 사실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서도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은 죽는다는 사실 베이비 M을 증거하고 있다. 이 기회에 칼 劍검자의 의미를 해석해 보자. ‘글자는모두 함께를 뜻한다.  영어로, all, together, unanimous.  글자는 to assemble, to gather together의 뜻을 갖는다. ‘글자는 다투다의 변형으로 ‘variant of’ 의 뜻을 갖는다고 한다. ‘글자는 ‘from, by, since, whence, through’의 부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면 글자를모두 함께를 뜻하는 것으로 통틀어 해석할 수 있겠다. ‘all, together, unanimous’. 그런데 여기서 그 속을 다시 분리해 들어가 보면, 인간 세상에서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모이면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칼로써 베어내 해결하는 것이 바로 칼 검자의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를 가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칼 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복잡한 문제를 단칼로 해결해 버린다는 뜻의 알렉산더 대왕의 칼 즉 뫼비우스의 의미하고 일치된다. 이런 결론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영웅에서 천하가 통일되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고 그래서 싸움을 없애기 위해서 천하통일을 이루어내겠다는 의미하고 일치된다. 그런데 장예모 감독이 놓치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강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바로 희생의 의미라고 여긴다. 칼 검자에서 칼 도 부수가 들어가 있는 의미는 칼을 쓰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희생이 결부된다는 엄연한 진실 말이다. 제왕절개 수술이나 진시황제의 칼 검자로 해석하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이 말해주는 영웅의 의미는희생이 우리들의 삶에 결부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연한 우주만물의 법칙을 말해준다는 그것.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는다면 어찌 이 세상의 빵을 공급할 수 있겠는가?

[3] "extraordinary year", On a heuristic point of view concerning the production and transformation of light.”-초기 양자역학 관련 논문으로 1921년의 노벨상 수상 배경이 되는 주요 업적. “On the motion of small particles suspended in a stationary liquid, as required by the molecular kinetic theory of heat”-브라운 운동에 대한 논문.  “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상대론 최초 논문.  Does an object’s inertia depend on its energy content?”-상대론에 관한 두번째 논문.

[4] 아인슈타인 논문 모음집 “the collected papers of Albert Einstein”, https://einsteinpapers.press.princeton.edu/.

[5] 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 개념. “Becoming a self before God is both a divine gift and an anxious obligation”, “Before we can know God, or ourselves, we must come to a moment of recognition.”

[6] “The Grand Scribe’s Records”, 9 vols, Indiana University Press.

[7] Translation it is that openeth the window, to let in the light; that breaketh the shell, that we may eat the kernel; that putteth aside the curtain, that we may look into the most Holy place; that removeth the cover of the well, that we may come by the water, even as Jacob rolled away the stone from the mouth of the well, by which means the flocks of Laban were watered [Gen 29:10].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 Preface to the King James Version 1611.

[8] Indeed without translation into the vulgar tongue, the unlearned are but like children at Jacob's well (which is deep) [John 4:11] without a bucket or something to draw with; or as that person mentioned by Isaiah, to whom when a sealed book was delivered, with this motion, "Read this, I pray thee," he was fain to make this answer, "I cannot, for it is sealed." [Isa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