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4-글의 힘과 코토다마 言靈 信仰
글의 힘
사회과학의 연구는 글을 읽는 것부터 시작한다. 흙 속에 묻힌 뼛조각을 찾아내는 고고학자일지라도 글을 읽어내지 못하면 지식의 확장이나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은 지식의 소통수단이고, 따라서 글을 읽고 그 글의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는 한 발전과 진보의 과정은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잘못된 오류가 들어 있는 글을 읽는다면 올바른 지식의 함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1]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이 “논육가요지”를 쓴 목적은 ‘학자들이 그 의미를 통달하지 못하고 잘못된 오류가 있는 것을 배우고 있는 그 사정이 딱해서’라고 말했다.[2] 내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사마담의 취지처럼 현재까지 학자들이 문무왕릉 비문을 읽어내지 못하고 또 그 의미를 통달하지 못하며 또 오류를 범한 잘못된 내용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지금까지의 참 안타깝고 딱한 사정을 헤아려 그 비문을 올바로 해석하고 설명하여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자 함에 있다.
학자와 예술가들이 권력 앞에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고
바보들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인냥 능력있는 전문가들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간단명료한 진실이 알맹이 없는 단견으로 치부되는 것을 보고[3]
앞 뒤가 상반되어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거나 오류가 심한 말과 글로 혹세무민하고 혼란상을 부추기며 거짓의 패악질을 일삼는 도당들이 난무하는 혼란의 세상이 되어감을 좌시하거나 묵과할 수 없다는 분노와 미래에 대한 근심우려가 커졌다. 이에 어그러진 세상을 가져온 거짓과 잘못을 바로잡을 어떤 큰 발판과 획기적 계기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한민족의 최고의 역사 보배인 첨성대와 문무왕릉 비문의 정확한 내용과 그 의미를 재발견하여 이를 세상에 충실히 전달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呵壁問天 하벽문천
하지만 내 자신의 부족한 능력으로 인해 이런 분에 넘치는 주제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학자들이 그 의미를 통달하지 못하고 어그러진 것을 배우고 있는 사정을 심히 염려하여 육가 철학의 요지를 정리했다는 사마담의 높은 뜻을 새겼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졌고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수행해 낼 수 있다는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에 답하고 또 그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세간과 절연하고서 혼자 끙끙거리며 밤새 머리를 싸매며 채근하다가 밤잠을 설쳤으며 글의 뜻을 몰라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이 솟구칠 때는 하늘에라도 하소연하고 싶은 절망적인 상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멱라수에 몸을 던진 굴원[4]의 “呵壁問天” 하벽문천[5]과 같은 심정으로 통곡의 벽에 이마를 부딪히며 하늘에 물어봤고, 그렇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자신과의 투쟁을 이끌었고, 몸과 마음이 상해지는 죽음의 계곡을 침묵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건넜다.
하늘은 인간의 시초이고 부모는 인간의 근본이다. 인간은 어려운 궁지에 처하면 자기의 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6] 그래서 힘들고 피곤함이 극도에 달하게 되면 하늘에다 호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병들어 고통이 극에 달해 아프고 슬프면 부모에게 호소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다.[7]
침묵 & 시편 38장[8]
하늘은 말이 없다. 언제나 침묵한다. 오로지 靈성령으로 인도할 뿐.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겪게 되는 상처와 아픔과 절망과 포기가 엄습할 때 나를 구원한 메시지는 욥기 23장의 말씀이었다. 내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는 아시나니 주님이 나를 단련시킨 후 나는 정련된 순금같이 나오리라.[9] 어머님께서 18합금으로 코팅해서 건네주신 욥기의 성경 말씀을 난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다녔다. 피와 땀과 눈물로 단련되고, 회개의 불씨로 화씨벽의 화덕을 통과하면 영원한 수주의 보배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의 동앗줄을 붙잡고 버티었다.
심연의 깊은 바다 속에 빠진 도자기 장사꾼이 어찌 정금같이 다시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인지? 물과 불은 상극인데. 나는 예전에는 미처 알 수 없었다.[10] 하지만 하나님은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를 주셨고 그 징표의 무지개는 내 마음을 언제나 설레이게 했다. 지구 땅끝까지 가는 방황과 혼돈 속에서 절망의 단애 끝에 섰을 때 콸콸 솟는 생명수의 기쁨을 얻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함을 증거하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히브리서 10:31).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경청한다면 우리를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해 줄 것이며 이것은 복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을 따라 읽으십시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뻗어 우리를 부르시면 응답하십시오. ‘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또 섬기게 하시려고 우리의 깊은 마음과 양심에 역사하시며, 그리하여 우리는 성령이 함께 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지식의 충전과 알림의 기쁨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부활을 맨 처음으로 목격하면서 슬피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라는 황급함으로 동산을 달음박질쳐 내려왔다. 마치 마라톤 평야를 한 숨에 달려 승전의 기쁨을 전하고 가뿐 숨을 거둔 마라톤 전사 페이디피데스처럼.
문무왕릉의 비문의 비밀을 풀고 나서, 삼국사기의 조작을 결정적으로 밝혀낼 스모킹건을 찾아 나섰다. 사료의 바다의 빠지고 표류하면서 마침내 앙드레 지드가 말한대로 새땅 새로운 육지가 멀리서 어렴풋이 보였고, 삼국사기 유조문이 당태종의 유조문을 표절하였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놀라운 발견의 기쁨을 마라톤 전사처럼 달음박질치며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았다. 예수의 부활을 알린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한국사의 비밀을 간직한 문무왕릉 비문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알고 깨우쳤다는 것과 이 사실과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른 별개의 문제였다. 발견과 그것을 알린다는 것은 또 다른 과제를 주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승리는 사람, 자원, 전략의 이 3가지 주 요인을 어떻게 잘 동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쿡 선장처럼 대영함대와 영국 학술원의 전폭적인 지원 같은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고 그래서 순전히 개인적인 모험과 탐험을 감행한 개인적인 여정에 불과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수행해 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부족했다. 자원 부족에 앞서 정확한 번역과 마지막 퍼즐까지를 완성해 내는 종합적 분석력이 필요하였으나 나의 부족한 능력으로는 그것을 감당해내기가 어렵다는 잠정적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발견의 기쁨보다 그것을 알리는 보고의 방법론을 두고서 발견의 기쁨은 금새 사라지고, 대신 홀연히 2천년 이상 묻혀 있던 진실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고 역사조작의 거대한 장막을 들추어 낼 수 있을만한 용기를 내가 과연 가졌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또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한문 원문에 대한 번역을 과연 내가 정확하게 해낼 언어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와 저 멀리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의 연기처럼 자욱히 퍼져나갔다.
[1] 독수독과 이론.
[2] 사마담, 論六家要旨, “愍學者之不達其意而師悖 乃論六家之要旨”.
[3] And right perfection wrongfully disgraced,
And strength by limping sway disabled
And art made tongue-tied by authority,
And folly, doctor-like, controlling skill,
And simple truth miscalled simplicity, 세익스피어, 소네트 66 중에서.
[4] 屈原, “天問”, 하늘에 묻습니다, 초사 구절 일부분. 曰遂古之初 태고의 처음을 / 誰傳道之 누가 전해 주었을까 / 上下未形 천지가 형성되기 전에 / 何由考之 어떻게 천지가 나왔을까 / 冥昭瞢闇 천지와 일월의 이치는 어두워 모르는데 / 誰能極之 누가 그 이치를 끝까지 다 살펴보았을까 / 馮翼惟像 천지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를 상상할 뿐인데 / 何以識之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5] 呵壁하벽, 王逸, 天問序, “屈原 放逐 彷徨山澤 見 楚 有先王之廟及公卿祠堂 圖畫天地山川神靈 琦瑋僪佹 及古賢聖怪物行事 因書其壁 呵而問之 以渫憤懣.”
[6]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 카프카의 “돌아온 탕아”;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 정해진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하고는 달리 현실은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 후 그 동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뒤늦게라도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봤고 거기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탕자가 돌아온 이유는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실제로 이루어 보려 한 것에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아픔일지라도 결코 피하지 않고 실제로 과감하게 맞서 보려고 결심한 것이다. 눈물젖은 얼굴로 무릎을 끓고 있다.
머나먼 외국으로 떠난 탕자는 오랜 방랑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 동안 허망한 꿈을 쫓느냐고 지친 끝에 심한 궁핍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부지할 의욕마저 상실하게 되자 떠나온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가 허리 굽혀 보듬어주던 넉넉한 공간의 침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울타리가 처져 있어서 항상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던 농장, 우애는 없었지만 방탕한 성격의 동생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동생 몫의 땅을 팔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온 인색한 형님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고, 탕자는 스스로 생각해 보니 자신의 행복도 찾지 못했고, 행복 대신에 그가 추구했던 무절제한 향락 또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성경 욥기 스토리를 기억하리라.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 (새번역). “Trial”은 “재판 받는다”는 의미이다. 욥은 평소 올바른 행실만을 쫓으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당한 고통이 너무 심하고 그래서 너무 억울한 생각에 하나님이 주재하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자 간절한 원하였다.
[7] “夫天者 人之始也 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 疾痛慘怛 未嘗不呼父母也”, 부천자 인지시야 부모자 인지본야 인궁즉반본 고로고권극 미상불호천야 질통참탄 미상불호부모야, 사마천, 사기, 굴원열전 가운데.
[8]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9] "But He knows the way I take; When He has tried me, I sha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10] 孟子, “孟子”, “故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괴롭힌다. 그 사람의 뼈와 근육을 피곤하게 만들고, 그 사람의 살과 피를 말리고 굶주리게 만든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심신이 궁핍되게 한다. 더 나아가 무슨 일을 하건 매사에 실패를 맛보게 하여 단련시킨다. 하늘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들고 참을성을 더 키워서 마침내 그가 큰 임무를 맡아서도 좌절하지 않고 꼭 완수해내도록 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다.
“人恆過 然後能改 困於心 衡於慮 而後作 徵於色 發於聲 而後喻”.
대체로 인간은 허약한 존재여서, 잘못을 본 후에야 고칠 줄 알고, 마음이 지치고 생각이 막혀 본 후에야 분발하며, 얼굴빛이 노랗게 되고 간절한 소리로 호소해 본 후에야 깨닫기 때문에 하늘이 이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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