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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神不滅論 신불멸론 대논쟁

by 문무대왕 2025. 4. 22.

7. 神不滅論 신불멸론 대논쟁

 

왜 불교에서 形神生滅論(형신생멸론) 대논쟁이 벌어졌는가? 불교는 우리의 전통 종교가 아니라 인도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전래된 외래종교였다. 사마담의 논육가요지에 불교의 요지는 들어 있지 않다. 대개 변혁의 시기에 외래종교가 유입된다. 조선말기에 기독교가 유입된 것을 상기하라. 단순도식화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한계를 수긍하고서 도식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도교는 유신론, 유교는 무신론, 불교는 이 둘을 결합하고 통합을 시도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 그 지파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삼국사기에 짧은 최치원의 분석 문장을 참조하라. 그런데 궁극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종교적 믿음이 과연 통합이 될 수 있겠는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후손들로 자처하는 조상이 같다고 하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가 상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7세기 이후 진행된 기독교와 이슬람교 대립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종교는 바둑의 흑백의 문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o, x 이지, 둘 다를 함께 어우를 수 있는 육면체 주사위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이고, 따라서 사람의 죽음은 오로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터스가 말한 것 같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굴 수는 없는 법이고, 한 번 흘러간 물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流水不歸유수불귀. 두 번의 죽음은 없는 법이라면, 어떻게 죽음을 통합할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한편 공자의 유교는 요즈음의 표현으로 말하면 휴머니즘, 인간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교는 유일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유교 또한 조상에 대한 제사는 지낸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정령의 존재는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정도자의 신불멸론과 환군산자의 新論形神신론형신론을 참조하라. 환군산자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의 사람이다.

 

薪盡火傳

 

薪盡火傳신진화전은 장자莊子의 養生主양생주에 나오는 柴雖燒盡 火種仍可留傳 구절의 설명대로 땔나무는 불이 다 타고나면 사라지지만 불은 영원히 전해진다는 뜻에서 불굴의 정신이 이어지는 인류의 전통,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영원한 인류의 지식 승계와 전통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을 사전에 찾아보면 薪火相傳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薪火신화는 횃불, 우리 어릴 적 소나무 방울에 불씨가 남아 옮겨 붙는 관솔불, torch, 火炬화거를 뜻한다.  불씨는 다른 장작 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그 장작나무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형체와는 다르게 다른 나무에 옮겨붙어 불씨를 이어간다.  그래서 불씨는 대대상전代代 相傳 대대로 전해진다-代代流傳.  사람은 몸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자손과 후손을 통해서 상속되는데, 나무가 불을 이어가듯이 계속 살아 남는다는 비유인 것이다.  여기서 불에 타는 나무는 사람의 몸 형체이요, 불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비유된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의 출처는 指窮于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문장이 나오는 장자의 양생주이다. 火傳은 불씨가 꺼지고 나도 다시 살아나 이어지듯이 어떤 물건의 물질이나 정신의 정수가 대대로 이어진다-代代流傳의 뜻이다. 화전火傳은 양나라 왕승유의 예주묘지명의 구절에도 나타난다: “思魯連之辭賞 慕田疇之高蹈 而火傳川逝 長途已迫”.  여기의 川逝천서는 강물이 흐르듯, 세월이 흘러도의 뜻이다. 그러므로 指窮于爲薪火傳也不知其盡也 번역은, “불씨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기름을 붓고 땔감을 태우면 기름이 다 타더라도 불은 차례대로 옮겨져서 그 끝이 없이 계속 타오른다.” 사전에서의 영어 해석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As one piece of fuel is consumed, the flame passes to another.”

여기서 指() 글자를 기름 지방 뜻의 脂()를 가르키는 말이라고 의역하는 것이 장자의 구절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이 해석했는데, () 글자는 손가락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고대에서는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러므로 취지라는 말처럼 意義(의의),目的(목적)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에 입각하여 장자의 구절은 땔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불씨는 계속 이어진다는 결론을 알기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爲薪위신은 여기서 위글자는 取자의 의미 즉 取柴薪 취시진 의미이므로, 窮於爲薪궁어위신은 땔나무가 다 타고 나더라도, 화전火傳은 대대로 이어진다. 땔나무는 다 타버리고 난다 해도 불 자체는 그 땔나무가 있는 한 계속 옮겨 가는 거니, 어느 누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다-不知其盡也. 땔나무가 타더라도 불 자체가 꺼지는 일이란 결코 없지 않는가? 다시 땔나무를 갖다 대면 불은 옮겨 붙는다.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 타듯이 사람의 삶 또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땔나무와 불과의 관계를 비유해서 우리 인류의 삶에서 비록 우리 몸뚱아리는 유한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간 정신은 면면이 이어진다는 대대상전의 의미를 설명한 말로 이해된다.

 

靈光不滅 영광불멸

영광전靈光殿은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에 세워진 사당인데, 한경제의 비 정희가 낳은 자식인 노공왕 유여(?-BC 128)가 이곳의 제후로 있던 시절에 중건했다. 경제와 정희 사이에 낳은 자식의 후손으로는 유명한 삼국지 시대 촉한을 세운 유비 황제가 있다. 유방의 아들인 한문제와 한경제는 한무제의 어머니 두태후처럼 도교를 신봉하고 도교의 정치철학으로 한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진 현왕이었다. 왕연수가 영광전부(魯靈光殿賦)에서 다른 궁전들은 전란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는데 오로지 영광전만이 살아남은 이유를 서술했고, 여기에 皆見隳坏而靈光巋然獨存(개견휴배 이영광규연독존) 표현이 있다. 隳坏(휴배)(훼괴), 廢棄(폐기)의 뜻이고, 巋然(규연)은 홀로 우뚝 선 모양을 뜻하고, 靈光(영광)은 영광전의 이름 이외에 다른 뜻이 있는데, 신비한 광채, 왕이나 성현의 덕택, 인간의 선한 본성, 碩果僅存(석과근존) 즉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큰 열매 그리고 이에 비유적인 의미로 오래 남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의 뜻이 있다. 靈光영광의 靈은 靈氣영기 즉 살아 있는 정기精氣를 내뿜는 것의 의미와 통한다. 또 忽眇以響像 若鬼神之仿佛(홀표묘이향상 약귀신지방불) 표현이 나오는데, 그렇게 신기하게 쌓은 사당의 의미가 구름 속에 숨은 달처럼 희미해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금방 귀신이라고 나올 것 같은 그렇게 숨어 있는 그 무언가에 홀린 듯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숱한 전란 속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지 않았을까? 

또 영광전부 마지막 연에서그 모습 정말 신기하지만 전각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窮奇極妙 棟宇已來 未之有兮 표현이 나온다. 만약 화려한 전각들로 채웠으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갈홍葛洪의 포박자 君道군도에 鑒章華之召災 悟阿房之速禍 경계 글이 있고, 진자앙은 昔日 章華宴 荊王樂荒淫이라고 탄핵했는데, 역사를 통해 보면 그런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왜 영광전만이 홀로 살아 남았겠는가? 그 명당 묘지에서 오묘한 광채의 빛이 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광靈光 말이다. 영광전부에 蔥翠紫蔚 礧碨朅瑋 含光晷兮 구절이 있다. 蔚울은 文貌 즉 禮文儀節예문의절의 뜻이고, 이는 순자의 예론에 나오는 忠信愛敬之至矣 禮節文貌之盛矣 구절이 이 뜻이다. 뢰락은 곽박의 산해경주에서 大石이라고 풀이했고, 朅瑋걸위는 珍琦, 光晷광귀는 日光의 뜻이다. 따라서 이 총취자울 뢰락걸위 함광귀혜 구절의 뜻은, ‘푸르른 들판에 우뚝 솟은 저 촘촘히 돌로 쌓은 대의 모습 정말 진기하구나, 햇빛을 품고 있음이여.’

 

왕연수는 영광전부에서 숱한 전란 속에서 홀로 살아 남은 영광전처럼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하기를 기원했다. 神之營之 瑞我漢室 永不朽兮: 신이시여, 보살피소서! 상서로운 우리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토록!  그런데 왕연수의 영광전부가 나오게 된 배경이 한나라의 멸망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예언해 준 것인지는 몰라도 한나라는 이 영광전부가 나온 지 (왕연수는 165년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60년도 안되어서 조조의 위나라에 나라를 넘기고 말았다. 천의인가? 인사인가?

유신은 불후의 작품 애강남부에서 영광전부의 靈光巋然獨存 구절을 따와서 靈光巍然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이 표현은 고국인 양나라가 망하고 타국에 억류된 자신의 인생역정 속에서도 석탑같이 후세들에게 영원히 남아 전할 장엄한 인류 역사의 의미를 담아둔 말이었다. 왕연수의 巋然(규연)이나 유신의 巍然(외연)이나저 높이라는 高大의 뜻으로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유신의 삶은 비록 자신의 조상들처럼 전란의 풍진 속에 여러 곳을 옮겨야 했던 부평초 같은 삶이었다. 삼협의 방랑시인 詩聖시성 두보가 유신의 삶에 대해 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이라고 노래했다.  유신평생 최소슬 모년시부 동강관: 유신은 평생을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매우 쓸쓸한 삶을 보냈지만 그가 만년에 쓴 시와 글은 유유히 흐르는 양자강마저 울릴 정도이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삼협댐이 있는 곳 초사를 통해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굴원[1]과 송옥과 두보가 있는 형주 강릉의 그 곳, 청산은 의구하고 거대한 양자강의 강물은 구비구비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부딪쳐 부서지는 큰 강물결에 씻겨 갔는지 옛 영웅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네,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곤곤장강동서수 랑화도진영웅). 

하지만 유신은 비록 자신의 후손들이 세상 부귀영화와 절연되고 또다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영광(靈光) 즉 위대한 인물-꼭 유신의 가문 중의 큰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은 계속 전해지리라. 여기서 영광은 큰 업적을 나타낸 큰 인물이라는 뜻 이외에 우리의 감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인류의 마음 속에 면면히 살아 전해져 온 고귀한 정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영광 그 영원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끝까지 계속 살아 남을 것이라는 역사와 민족과 인류의 존속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칭할 것 같다. 그런 굳센 마음은 사마천이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끝내 살아남아 부친의 유언을 완수해 내고 불후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그의 위대한 정신의 힘과 같다. 여기서 영광靈光이라는 의미는 사람은 형체와 정신 즉 몸뚱아리와 마음 body and soul이라고 볼 때 비록 몸은 사라져도 그 마음과 정신이라는 신비스럽고 신령스러운 빛나는 광채, 영원한 별빛과 빛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은 계속 살아 남아 전해질 것이라는 그 영원불멸성을 말해 준 것으로 이해된다. 

또 우리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DNA같이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영광靈光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있는데,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에서 살펴본다면 영광은 조상과 성현聖賢들이 전해준 덕택德澤 음덕을 뜻하기도 한다. 애강남부의靈光영광은 홀로 높이 남아 있으리라는 표현에서 여기서 영광을 마지막 잎새나 큰 바위 얼굴처럼 모든 산천초목이 변해도 끝내 변하지 않는 위대한 그것으로 해석한다면 물적으로는 화씨벽 수주보배나DNA같은 사리 엑기스가 되겠고 정신적으론 유심론 즉 사람의 몸은 죽어도 사람의 마음과 가슴과 정신과 혼백과 영혼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믿음을 웅변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인간세상이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소크라테스 노자 석가 공맹 예수 같은 성인철현은 영원히 전하고 있지 않는가? 이같은 역사인식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는 애강남부에서의 靈光巍然영광외연 구절을 문무왕릉 비문의 결자 부분을 메꾸어 주는 표현으로 도입하였다.

문무대왕은 장례식을 화장식으로 치뤄 비록 자신의 몸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토록 살아 남아서 우리들 우리민족 우리국가를 무궁토록 보호하리라. 문무왕의 후세들을 위한 고귀한 사랑과 위대한 역사정신은 자손만대에까지 전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문무왕이 이룩한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비추는 햇빛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문무대왕의 위대한 통일정신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대불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되어, 영원한 성화(聖火)로 타오르리라.

 



[1] 굴원의 초사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문학과 역사와 우주천체물리학의 결합적 측면을 생각해 보라.  또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Big History”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