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뜻 어휘 주해 추가 설명
1. 천명론
묵자墨子는 “壽夭貧富 安危治亂 固有天命 不可損益 窮達賞罰幸否有極 人之知力 不能爲焉”이라고 말하며 천명론을 설파했는데, 천명天命은 사람의 일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세계관이다. 당태종 유조 첫 문장에서의 천명天命은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인데, 유교적으로 말하면 공맹의 사서삼경 경전 전적이 되겠고, 도교적으로 말하면 부록符箓 도록圖籙이 될 것 같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상서尙書에 나오는 河圖洛書하도락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때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는 부명符命 즉 모세의 십계명 동판 같은 것 즉 정권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근거이다.
우리들에겐 조선시대 “정감록”으로 잘 알려진 도참설의 의미인데 민심을 요동시켜 개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도참설이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사건은 후한을 열어 중흥지주가 된 광무제 유수이었다. 광무제 시기에 도참사상을 설파했던 학자가 桓譚환담이었다. 광무제를 황제에 오르게 만든 참위설은 “四七之際火爲主”, “劉秀發兵捕不道 卯金修德爲天子”이었다. 유수가 황제에 오른다는 예언인데, 여기서 卯와 金은 卯、金、刀의 글자로 형성된 劉를 의미하니 바로 유수를 지칭한다. 당나라 무측천이 무주를 열 때의 참기讖記는 “聖母臨人 永昌帝業”(성모임인영창제업)이었다. 강가에서 주은 흰 돌에 새겨진 말이라지만 이 말을 쓴 사람이 누구이었겠는가? 현대의 정치학으로 풀이하면 ‘스핀 닥터’이고, 하락도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강놀이를 통한 ‘여론’ 조성의 수단이었다. 臨人(임인)은 인재를 선발한다는 뜻이다. 중니가 “政在選賢”이라고 말했는데, 정치는 사람들을 써서 목적을 달성한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고려 개국의 정당성에 관한 도참설은 “操鷄搏鴨盡靑丘”(조계박압진청구)이었다. 이 문구는 닭을 잡고 오리를 잡아서 한반도를 멸한다는 뜻인데, 닭은 신라 계림의 상징이고 오리는 압록강의 경계를 뜻한다고 해석하여 중국 태생인 왕건이 신라와 궁예의 태봉을 멸하고 한반도를 접수한다는 고려 개국을 예언한 참위설이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여는 결정적 사건인 위화도 회군 당시 세상에 나돌았던 참위설은 “西京城外火色 安州城外煙光”(서경성외화색 안주성외연광)이었다. 이 구절은 ‘서경성 밖에 불빛이 나고, 안주성 밖에 연기가 타오르네’의 의미이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알다시피, 도참설은 예언서에 속하는 성격으로써 끼리끼리 서로 통하는 말인 은어隱語, 의사나 법률가 등 소수 특정집단 사이에서 통하는 전문적 용어에 통하는 수준이 아니고서는 그 말의 숨어 있는 내용을 알아차리기 힘든 문장을 담고 있다.
한편 이성계의 조선 개국 관련 도참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아마 그것은 유학자들은 도참을 혹세무민하는 요설 妖言요언으로 치부했고 그렇게 도교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이 도참을 배척한 내용은 후한서 장형전에 나오는 初光武善讖 及顯宗 肅宗因祖述焉 自中興之後 儒者爭學圖讖 兼附以妖言 妖言 구절이 설명해준다. 사실 광무제의 참위설 “四七之際火爲主” 문구에서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의 도참설 문장에서 알다시피 도참은 음양오행설에 기반하고 있다. 음양오행설은 도교와 직접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은 사상이었고, 한나라를 개창한 유방이나 당나라를 건설한 당태종이 설명해주었듯이, 개국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데, 개국의 정치철학은 도교가 제공하지만 개국 후 정치 사회가 안정궤도에 오르면 기득권 이해를 치밀하게 관리해 나가는 통치술이 중요해지고 이것에 적합한 유교의 정치철학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역사적인 과정으로 도식화된다.
국가의 삼요소는 국민, 최고 통치자, 사직이다. 종묘사직은 국가 제천 의례 즉 오늘날 민주국가의 헌법과 같은 외부 가시적인 전통적 상징적 표현물로써 국가가 계속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해당한다. 국왕은 민중에 의해 수립 옹립되고 또 국왕의 자리는 그 민의에 합당할 만큼 실적을 쌓아야 정통성이 유지된다는 제한적 존재이므로 만약 국왕이 국민이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고 큰 실책을 범한다면 역성혁명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왕조교체가 빈번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통해서 쌓여 왔다. 이는 일본 천황의 역사와는 배치되는 사실인데 이러한 역사관의 차이가 한중일 세 나라 사이의 역사에 숨어 있는 큰 차이점 중 하나에 해당한다.
당태종 유조 첫 문장에서의 천명론이란 소극적 숙명론을 뜻하지 않는다. 한나라가 무너지고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위촉오 삼국시대 이강李康(196-265)의 “운명론”에 따르면, 좋은 세상과 어지로운 세상이 번갈아 나타나는 변혁의 시기에는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자신 혼자만의 노력이나 의지에 달려 있기보다는 다른 외적 요소인 명命에 달려 있어서 함부로 나서지 않고 조심할 요천지명樂天知命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자세가 필요하다. 운명론은 전해 내려오는 현재의 처한 상황을 받아 들이는 것이 자기 몸 보전하고 살아가는데 유리하다는 결론인데 종교적으로 보면 핏줄로 정통성을 유지해 가고 또 핏줄의 근거로 통치자를 정하는 유교의 국가관에 가깝다. 하지만 도교는 최고 지도자의 정통성은 로마 교황의 후계자 지명처럼 핏줄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선양의 방식을 선호하였다. 따라서 서구의 부동산 소유권의 증명은 대대로 전해지는 문서의 서명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Deeds 등록 제도와 같이 도록에 의해서 최고 지도자의 정통성이 전해진다. 도록은 도서 즉 문서 전적을 말한다. 당태종 유조문의 천명론은 하늘이 우주만물의 주재자라는 도교적 의미이고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보면 수나라를 엎어버리고 당나라를 세운 것 그 정통성을 지칭하고 이는 맹자의 역성혁성론과 같은 맥락이다. 현대 정치학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천명이란 여론(public opinion)을 의미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가 백성이고, 통치자는 그 국민의 뜻 즉 민심 민의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들의 뜻과 마음을 외부적으로 표현해 주는 수단이 말과 글이고 이는 문서 저서 책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착오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 최고 통치자는 민심에 의해 지탱되는데,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뜻을 나타내 주는 수단이 글이고, 여론 형성의 방편이 문자 도서 책인데, 민심은 천심이지만 그런 여론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다. 당태종 유조문 첫 문장의 뜻은 경전의 절대적 ‘무오류성’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적은 것이 성경인데 그 경전에도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역사관과 맥락을 같이한다. 당연한 논리귀결로, 세상의 잘못이 있을 때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성혁명이 가능하다는 취지이다.
당태종 유조문의 해석과는 직접적 연관이 크지는 않지만 잠깐 역성혁명의 다른 한 측면을 살펴 보기로 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역성혁명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중국이 세계적 최대강국으로까지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해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중국은 국왕의 성씨가 바뀐 것이 대략 30여 차례이고, 서역과 북방 오랑캐들이 처들어 와 왕위에 오른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춘추 시대 240여 년 동안만 해도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경우가 25차례 있었고, 그 앞 뒤로 일어난 반역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조선은 중국에서 건너온 기자가 중국의 허락을 받고 왕위에 올라 조선을 세운 이후 역성혁명으로 나라가 바뀐 것이 4 차례였다. 한국은 나라가 멸망하여 중국의 군현이 되었거나, 고씨는 멸절되었다. 이런 경우가 대략 2번이나 일어났다. 이씨조선의 경우 28년 사이에 왕을 시해한 것이 네 차례나 된다. 그 앞뒤로 일어난 반역들이야 짐승들이 서로 죽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위 인용은 야마가 소고우(山鹿素行)의 유명한 책 1669년 발간된 “中朝事実”(중조사실) 중 황통의 일부분을 번역한 글이다. 어찌 역성혁명의 폐해를 논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거대한 삼국 사기의 역사까진 꺼낼 필요도 없을 성싶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해외 망명 후 하와이에서 객사했고, 2대 윤보선은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로 실각했고, 박정희는 김재규의 10.26 총탄에 시해당했고, 최규하는 전두환의 12.12쿠데타로 강제 퇴위당했고, 전두환과 그 후계자 노태우는 사형 언도를 받았고, 김영삼은 IMF 환란을 불러왔고, 박근혜는 탄핵당했던 한국 현대 정치사의 불행의 한 단면을 보라.
기자가 건너와 조선을 세운 이후 한반도 왕조 역사상, 왕들이 폐위되거나 유폐되거나 시해된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한번 탄핵당한 불행한 왕들이 역사상 복권된 사례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또한 흥미롭다. 어린 나이에 찬탈당해 숨진 애사 때문에 동정을 받기도 했던 단종의 경우에도 영정조 때 복권되기는 했지만 국민적인 시각에선 결코 복권되지 못했다.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처럼 나라가 망하거나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뀌면 그 왕족 성씨들은 씨까지 마르고 단절되어 철저히 멸절되고 말았다. 이런 결과가 한반도에 사는 내재적 민중의 탓인가? 아니면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개입 탓인가? 역성혁명이 일어나면 왕씨 족속들까지 멸절된 역사를 보면, 그 원인이 내재적 요인인지 아니면 외부적 요소의 개입의 결과인지 정확한 인과관계를 가름해 보기가 모호해지고 망연해진다.
“唯我が中國は開闢からこのかた人皇に至るまで二百万歳にも近く 人皇から今日まで二千三百歳を過ぎてゐる 而も天神の皇統は違ふことなく 其の間に弑逆の乱は指を屈して数ふる程もない 其の上外国の賊は吾が辺藩をも窺ふことも出来なかった.
일본은 천지가 개벽한 이후 삼황人皇에 이르기까지 거의 이백만해에 가깝게 내려왔고, 삼황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천3백년이 지났다. 하늘이 정해준 황통은 잠시도 어긋나지 않았고, 반란이 일어난 경우는 겨우 손꼽을 정도이다. 더욱이 외적들은 일본의 국경을 넘볼 수조차 없었다.” (山鹿素行, “中朝事実”, 皇統 부분 중).
야마가 소고우는 유학자이고 그의 역사관은 유교적 교리에 의존하고 있어서 부족함이 있기는 분명하지만 한반도의 비극적 정치 역사를 상기해 볼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당태종 유조문의 天命之重綠錯奉其圖書(천명지중록착봉기도서)의 내용은 도교는 ‘무오류성’에 함몰된 교조주의가 아니라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역사발전론에 가깝고,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개념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진실을 추구하면서, 진리를 탐구하면서, 기존의 학설이나 지식에 대해서 잘못이 개입될 수 있다는 열린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어찌 새로운 지식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문무대왕릉비 연구-제4권-역사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神不滅論 신불멸론 대논쟁 (1) | 2025.04.22 |
---|---|
天子之尊 赤縣先其司牧 (1) | 2025.04.22 |
당태종 유조문 해석-8 (0) | 2025.04.22 |
당태종 유조문 해석-7 (0) | 2025.04.22 |
당태종 유조문 해석-6 (0) | 2025.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