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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주해서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1

by 문무대왕 2025. 5. 9.

 

필경사 바틀비 스토리

 

 

 

나는 이제 장년에 접어든 사람이다.[1] 지난 삼십년간 종사해온 내 전문직업[2]의 성격상 나는 재미나고 다소 특이한 집단의 사람들을 좀 특별하게 접해 왔다.  내가 알기로는 이들에 대해 다룬 글은 여지껏 없는 것 같은데 바로 법률-문서필경사 또는 스크리브너[3]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이들을 많이 알고 지내왔고, 따라서 내가 마음만 동한다면 마음씨-좋은 양반들은 너털웃음을 짓거나, 다소 감상적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전개해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필경사 중에 가장 이상한 바틀비의 삶에 관한 몇몇 구절만 남기고 다른 모든 필경사들에 관한 전기를 쓰는 일은 포기하고자 한다.  다른 필경사에 대해서라면 일생을 다루는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런 전기를 쓸 수가 없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충실하고 만족스러울 정도의 전기를 쓸만한 자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4] 이는 문학에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바틀비는 원본 자료 말고는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중의 하나인데 그에 대해서는 그런 원본자료가 매우 적다.  그와 관련해서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모호한 소문 하나를 제외하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바틀비를 경험한 충격적인 사실 그런 정도가[5]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내게 처음 모습을 보인 필경사 바틀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 직원들, 내가 하는 일, 내 법률사무소, 전반적인 주위 환경에 대해 약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을 어느 정도 해놓는 것이 곧 등장할 주인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저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삶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줄곧 견지해 왔다.  그리하여, 나는 다들 알다시피 활력이 넘치고, 또 때론, 심지어 분격하기도 하는, 긴장의 연속인 직업에 속하고 있긴 해도 그런 격렬함으로 인해서 나의 평화가 깨뜨려지는 경우를 겪어 보지 않았다.  나는 어려운 배심원 재판[6]을 맡거나, 대중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 적이 없는 그런 야심없는 변호사 부류에 속하고, 더욱이 아늑한 휴양지[7]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채권, 담보증권, 부동산 매매 업무를 주로 맡으며 안정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나를 아주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최근 고인이 된 존 제이콥 아스토르[8]는 시적 정열 따위에는 거의 관심도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내가 가진 제일 큰 장점이 신중함[9]이고, 그 둘째는 업무 체계성[10]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자랑하려고 하는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 또한 나의 고객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 이름을 즐겨 반복 사용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름은 혀굴리기 좋은 둥근 홀소리 발음이어서, 금괴처럼 낭랑하게 울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의 호의적인 의견에 내 자신 무감각하지 않다는 점을 거리낌없이 추가하고자 한다.[11] [12]

 

내가 이 단편 소설에서 말하려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13] 크게 늘어났다.  -요크 주에서 지금은 없어진[14] 예전의 그 좋은 형평법 법원[15]의 판사[16]자리가 내게 주어졌던 것이다.[17]  그 자리는 크게 힘든 업무도 아니었고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로 급여도 좋은 자리였다.  내가 화를 내는 경우란 거의 없다. 불법행위와 중범죄에 대해 분개해 마지않는 그런 위험스런 행동은 내게서 더더욱 볼 수 없다.[18]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성급한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다면 새로운 뉴-욕 주헌법에 근거하여 형평법 법원의 판사직이 갑작스럽고 일거에 폐지된 것은 그건 너무 섣부른 행동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19]  또한 그 자리는 평생 동안 유지하는 종신직[20]이었는데 나는 불과 몇 년밖에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여담이다.[21]

 

내 사무실은 월스트리트 00번지의 2층에 있었다. 사무실의 왼쪽 끝에서는 건물 맨 꼭대기에서 마루바닥까지 관통하는 햇빛이 드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하얀 벽으로 마감된 내부가 보였다.[22] 이런 광경은 풍경화 화가에게 요구되는 생동감이 결여된 것 같고, 아니면 축처진 모습 같았다.  하지만 사무실 반대편에서 보이는 광경은 확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쪽 방향으로 내 사무실 창문[23]을 통해 보면 오래되어 거뭇해지고 늘 그늘진, 우뚝 솟은 벽돌담이 쭉 내려다 보였고, 그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망원경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근시를 가진 구경꾼도 볼 수 있게끔, 유리창가에서 약 3미터 안까지벽이 바싹 붙어 있었다.  주변 건물들이 굉장히 높기도 하고, 또 사무실이 2층에 있는 관계로, 옆 담벼락과 사무실 사이의 간격은 거대한 정사각형[24] 물탱크와 적잖이 닮았다.[25]

 

바틀비가 새로 들어 오기 직전까지, 내 사무실 직원은 법률문서필경사 두 명과, 장래가 촉망되는 한 소년을 사환으로 두고 있었다.  이들 순서대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의 이름을 가졌다.[26]이들 이름은 사업자 명부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사실 직원 세명이 서로를 부르는, 별명으로, 각자의 외모나 성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터키는 키가 작고, 좀 뚱뚱하여 숨을 헐떡이는 영국인[27]이었는데, 나이는 내 또래, , 예순이 그리 멀지 않는 정도이었다.  그의 얼굴은 오전에는, 불그스름한 혈색이 좋다고, 보이는데, 일단, 12-그에게는 저녁시간[28]-를 지나면, 석탄을 가득 넣은 크리스마스 때 피우는 벽난로불처럼 확 타올랐고, 계속 빛을 내 타오르다, 만사가 그렇듯이, 서서히 줄어들고, 오후 6시 무렵이 되면, 사그라졌다.  6시 이후에는 태양과 함께 절정에 이르는, 그 얼굴 주인을 내가 더 이상 보지 못했는데, 그 얼굴은 아마도 해와 함께 지고, 일어나, 절정에 오르다, 다음날까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는 마치 규칙적이고 변치 않는 영광의 승리처럼 보였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는 기이한 우연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터키가 붉고 환한 얼굴색으로 아주 즐거운 미소를 짓는 때, 바로 그 중요한 순간이, 내가 보기에 하루 24시간 중 그의 업무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시간대이고, 그 때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는 것, 이 또한, 기이한 사실이었다.  그 시간 때에 그가 일을 아예 손 놓고 있다거나, 업무를 마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그가 지나치게 원기 왕성해진다는 데 있었다.  그는 특이하고, 흥분하고, 당황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부주의하고 경솔함을 나타냈다.  그는 잉크병에 펜을 담그면서 조심하지 않는 듯 했다.  내 서류들에 그가 남긴 잉크 얼룩들은 모두, 정오, 12[29]를 넘긴, 오후에 떨어뜨린 것이다.  실로, 터키는 오후만 되면 경솔해지고 또 얼룩을 만들어 사고를 칠 뿐만 아니라, 어떤 날에는 더 심한 경우도 있고, 또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럴 때는, 그의 얼굴 또한, 무연탄 위에다 검은 숯댕이불을 붙여 댕긴 것처럼, 화염에 쌓인 깃발마냥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의자로 불쾌한 소음을 내고, 또 모래통을 쏟기도 하고, 또 펜을 고치려고, 안달하다가 산산조각이 나자, 불 같은 성미로 바닥에다 홱 내던져버리고, 또 자리에 일어서서 탁자 위에 기대어, 엉망진창으로 서류를 뒤섞여 쌓아두기도 했는데, 이런 것은 그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아주기에는 매우 민망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여러모로 내게 무척 중요한 사람이고, 또한 12, 정오가 되기 전까지는 가장 빠르고, 꾸준한 존재로써, 쉽게 견줄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단한 분량의 일을 완수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비록 내가 그에게 가끔, 잔소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의 기행을 기꺼이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타이르더라도 아주 부드럽게 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오전에는 매우 정중하고, 아니 더없이 온후하고 공손한 사람이지만, 오후에는 자극을 받으면 말투가 약간 급해지는, 사실상, 무례해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가 말한 대로, 그의 오전 근무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그를 내보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12시 이후 나타나는 그의 불같은 태도가 불편했다.  나는 사태를 평온하게 해결하려는 사람이라서, 혹시라도 그의 험악한 반박을 불러오지 않도록, 그를 면전에서 야단치는 것은 삼갔고, 대신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내가 시간을 따로 내서 (그는 토요일이면 언제나 더 심해진다), 아주 부드럽게, 넌지시 말해보기로 했는데, 이는 이제 그도 늙어가고 있고, 그러니 근무를 단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12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없이 점심 식사 후에바로 숙소로 귀가해서, 오후 차 마시는 시간[30] 때까지, 조용히 쉬고 있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된다고 말하며, 그는 헌신적인 오후 근무를 고집했다.  그가 긴 자로 사무실 맞은 편 끝을 겨냥하는 동작을 보이면서까지- 만약 자신의 오전 근무가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오후 근무는 더더욱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내게 웅변조로 장담할 때, 그의 얼굴색은 참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존경하는, 변호사님,”[31] 터키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스스로 변호사님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전에는 그저 부대원들을 소집해서 배치시키면 되지만, 오후에는 제가 직접 부대의 선두에 서서, 적진으로 용감하게 돌격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그러면서 터키는 자를 들고 격렬하게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터키, 얼룩은?” 이렇게 내가 말하며 넌지시 비추었다.



[1] 나는 나이가 꽤 든 사람이다.  나이든 사람(elderly man)이란 어휘는 올더맨(alderman)이 연상되는데 올더맨(alderman) 젠틀맨(gentlemen)은 지역의 법관, 정치행정을 담당한 지역 유지급 인사를 지칭하는 단어다. 

[2] “avocation”은 직업이라는 뜻에 앞서서 부업이란 뜻으로 통했다.  기독교 국가에서 본업은 하나님의 사명에 봉사하는 천직 vocation은 성직자이면서 세속의 부업(avocation)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의 일을 한다는 의미를 준다.  직업은 본업과 부업으로 구분된다.  변호사는 최소한 두 개의 복수 학위 (당시에는 신학과 법학)를 가졌다.

[3] “legal scrivener” 직업에 대한 III11.A.장의 자세한 설명을 참조하라.

[4] “I believe~“이 말은 자기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이 인지했거나 알고 있는 정도와 범위내에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은 자기 자신이 직접 오감으로 경험한 사실에만 효력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2차적인 정보(“전문 증거”)는 증언으로써의 효력이 원칙적으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5] 단어의 강조 표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이탤릭체의 사용은 낱말의 강조를 의미하는데 이 책의 한글번역에선 이탤릭체를 사용하는 대신 밑줄을 그어 표시했다.  자모음이 결합된 한글의 특성상 이탤릭체보다 밑줄 강조가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6] 역사상 자료인 키케로의 연설은 영미국의 판례법 재판의 현실적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면이 많이 보인다.  판례법에서 재판 진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인 심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지, 판례법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사가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류의 보통 사람들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지,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 신파극으로 유명했던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처럼 방청객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연설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에 가깝다.  물론 법정 재판에서 모두연설과 최후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법정 증거의 도입과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취조심문이나 반대심문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것은 증인에 대한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오는 대화의 일부에서 포착되는 것이지,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의 일장연설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판례법 재판에서는 키케로가 재판의 승소 요인으로써 든 수사학적 유머 능력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는 듯하다.

[7] retreat는 휴양지, 별장, 기도원의 뜻을 갖는다.  바틀비의 은둔처를 hermitage라고 표현하는데, 허미티지는 수도원으로써 포도밭을 일구면서 일과 공부를 함께 해나가는 곳을 말한다.  우리말의 은신처와 은둔처는 격리된 곳을 의미하는데 도망자로서 몸을 피해 숨기고 있는 곳을 은신처라고 하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조용한 곳으로 낙향한 경우를 은둔처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다.  원문에서 자유 의지의 정도가 따라 구분되는 어휘를 사용한 경우 그에 따라 번역에서도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8] 등장인물들의 성명은 이름의 상징성, 프라이버시 존중,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명 대신 가명을 쓰고 하고 있는 가운데 이름과 가족성씨까지 그것도 두 세 번씩 거론하면서 강조한 인물은요한 야곱 아스토르이다.  아스토르는 당대 미국 재계 서열 18위에 오를 정도로 대부호이었다.  III11장 설명을 참조하라.

[9]신중 prudence”의 가치에 대해서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61편에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5장을 참조하라.

[10] 여기서 말하는 방법론 methodology”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따를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이해하면, 우선 개념을 정의 definition하고, 이에 따라 분류해 나가고, 그것을 다시 subdivision department 세분해가는 체계적인 방법론이 떠오른다.  뒷부분에서 화자가 설명하는 대로 전제와 가정 assumption”을 먼저 하고 그 바탕 위에다 자신의 것을 추가하는 일 처리 방식을 말하는 것 같다.  법조인들이 이런 체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아마도 동일한 개념에 대해 같은 정의(definition)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논쟁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론은 뉴튼의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only by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의 고백해서 알 수 있듯이, 선례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일구어 내는 통합적 방법론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만약 이상론에 반대되는 현실론(realism)으로 이해한다면, 객관성(objectivity)을 확보하는 객관적인 분석(objective analysis) 태도를 취한 실증주의(positivism)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 같다.  “I do not generate the object from the thought, but the thought from the object.”  콩트는 말했다: “과학으로부터 예측이, 예측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Saoir pour prevoir et prevoir pour pouvoir.”

[11]I will freely add that I was not insensible to the late John Jacob Astor’s good opinion.” ‘거리낌없이(freely)’는 뒤에 나오는 바틀비가 자주 쓰는 ‘prefer not to’ 즉 탐탐치 않게 여기고 주저하는 모습을 말하는 ‘recalcitrant’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단어이다.

[12] 당대 최고 부호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변호사라면 돈과 지위를 함께 가진 성공한 변호사라는 것을 암시한다. 

[13] avocations은 본업(vocation)에 접두어 a가 붙어 부업의 뜻을 갖는다. 

[14] 뉴욕 주에서 1848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형평법 법원(Equity Court; Chancery Court)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Common Law Court)으로 통합되었다.  형평법은 왕의 직속하에 설치되어 보통법원이 법적 엄격성을 너무 강조한 결과 보통법원에서는 구제받지 못하는 사건들을 취급함으로써 출발했다.  법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정의의 관념에서 보통법 법원에서 외면받는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형평법은 국왕의 직속 법원으로 설치된 역사적 유래와 그 사명으로 인해서 정의의 사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형평법원의 최고재판관으로는 도덕성이 매우 높고 정의감이 투철한 천주교의 주교 가운데서 임명되었다.  형평법원이 발전해 감에 따라 형평법원의 법관을 변호사들이 맡기 시작하였는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1478–1535)가 변호사 출신으로서 최초의 형평법원 수장이 되었다.

[15] 형평법 법원은 보통법 법원(Common Law)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지금은 형식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실제 내용적으로 보면 아직도 각자의 법 체계와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최근까지도 형평법 법원이 남아 있었다.  법인격체인 회사의 경우는 인격체인 회사의 대표자가 행사하므로 어떤 사건이 종결되려고 하면 형평법 법원이 관할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형평법 법원 체계가 현재까지 존재하는 대표적인 주가 델라웨어 주이다.  미국에서 절대다수의 회사의 본사가 델라웨어 주에 법인 주소를 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델라웨어 법원은 회사에 관련된 일을 전문적으로 특화하여 형평법 법원의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어 기업들이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기업은 환경오염이나 소비자보호법의 사례에서 보여지다시피 배심원(jury) 재판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있고, 또 현대의 고도로 전문화된 기업 소송 업무는 전문 판사가 아니면 맡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전문 법관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형평법 체계를 선호한다.)

[16] 형평법 법원에서 마스터(Master in Chancery Court)”는 판사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가 매우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사법부 독립의 영미법 체계에서 기능적으로 행정부의 관료적(편의적) 판단과 사법부의 사법적 판단의 경계는 분명하게 (magistrate의 경우 불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원래 마스터라는 자리는 어떤 사건이 대법관 판사에게 보고해야 할 사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하는 즉 대법관을 보좌하는 (사법 판단은 판사만이 할 수 있다) 자리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행정적 관료와 사법적 판사의 위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자리였다.  이런 중간적이고 혼합된 성격은 대륙법 국가에서의 검사의 자리에서 볼 수 있다.  (1850년대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형평법 법원의 마스터라는 자리는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법부 판사의 위치에 속한다.

[17] “Old Boy” 네트워크를 가진 변호사에 속한다.  권위와 전통은 자랑할만한 가치가 있고 대개 존경의 대상이 된다.  ‘old’가 들어가는 명칭은 대개 좋은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래된 법원 건물을 자기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은 오랜 전통과 최고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 법관의 덕목 중에 최고는 침착성에 있을 것이다.  Horace: “aequam servare mentem (To preserve a calm mind; equanimity).”

[19] 화자인 변호사가 형평법 폐지에 대해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면서도 일단 형평법 법원 폐지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모든 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하고 섣부른 단정을 거부하였던 그가 왜 여기서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에 통합되는 법원 개혁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진화론자들이 자유방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사회에는 자연 법칙같은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으로 (예컨대 적자생존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인위적인 강제 개입은 우려된다.  다른 이유는 인위적인 강제 개입을 시도하게 되면 인간 사회의 본성상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시도라고 해도 결과는 엉뚱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 13장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을 참조하라.

[20]종신직“life lease”의 어휘를 쓴다.  “Life Lease”는 물권법 법률용어로써 살아 있는 동안까지는 계속 권리를 향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는 죽을 때까지 평생 근무할 수 있는 종신직이다.  보통 판사직은 오래 근무하는 평생 직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화자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 그도 오랫동안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지만 갑작스럽게 형평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화자는 형평법원의 판사직을 그만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N. Y. Field Code of 1848).

[21] 화자가 해고된 사정이 도입 부분에서 설명되는데 결말 부분에서 바틀비가 우체국에서 해고된 사정과 비교된다.  헌법과 행정부의 교체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해고되었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선 형평법 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에 통합된 때는 1873년이었다.  뉴욕은 이보다 앞선 1848년에 양 법원이 통합되었다. 

[22] 빅토리아 시기의 건물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데, 디킨스의 황폐한 집소설에 묘사되는 법원의 건물 풍경과 비슷하다.

[23] 원문에서 “dead-wall window”, “my windows”, “his window” 표현을 쓰고 있다.  보스가 자리잡은 곳은 창문이 두 개 이상인데 비해 부하직원은 창문도 없이 막힌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변호사의 사무실 위치는 고층빌딩에서 주변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view 있는 창가를 가장 선호한다.  요즘의 먹방이라는 법조 은어는 창문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진 방에 자리잡고 있는 신참 변호사를 의미한다.  대저택에는 방 room이 많은데 대개 주택 가격의 차이는 방의 수로써 결정된다.  방은 빛이 들어와야 좋으므로 창문은 방마다 달려 있게 되고 그리하여 창문 숫자가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오늘날 시내 전체가 조망되는 펜트 하우스는 부유층의 전유물인데, 빛이 드는 창문의 숫자가 부의 척도를 나타냈다.  영국에서 창문의 수에 따라서 세금을 매겼는데 이로 인해 세금을 줄이려고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 동안 150여 년간 시행되어 오던 창문세 window tax”가 폐지된 때는 1851년이었다.

[24] 왜 법원은 정사각형 구조 court를 선호할까?  궁정이나 법원의 건물 구조는 대개 사각형 구조를 띈다. “four corners rule”라는 법해석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four corners”는 글이 써진 4각형의 문서 종이를 말한다.  법관은 문서에 써진 문구로써 해석하지 다른 별도의 보충 자료를 필요치 않는다는 법 해석 원칙을 말한다.  4각형 종이는 균등, 평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군대 병영의 막사나 사무실을 쿼터라고 부른다.  천막을 치고 외국인들이나 피난민들을 임시 수용하는 곳을 쿼터라고 말한다.  보통법원의 초기 형태는 지방을 순회하면서 열린 순회재판소이었다.

[25]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1850년에 지어진 트리니티 교회 (영국 성공회 소속)이었고, 그 높이는 284피트(86m)에 달했다.  당시 뉴욕 인구수는 약 50만 명이 조금 넘는 대도시로 급팽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높은 빌딩에서 뉴욕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서 성당 계단을 오르는데 1실링을 지불했다고 한다.

[26] 등장인물의 이름들 속에 내포된 의미에 대해서는 III11장을 참조하라.

[27] 1806-1807년 영국과 터키는 전쟁을 벌였고 (이후 세계1차 대전에서 적대국으로써 맞선) 영국(기독교)과 터키(이슬람)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적대관계였다.

[28] “Dinner over”라는 말에서 영국 이민자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정찬 the big meal of the day이 저녁 만찬 dinner이지만 그에게는 점심이 정찬 dinner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가 저녁에 먹는 음식은 저녁식사 Supper라는 말을 쓸 것 같다.  영국식 간단한 아침 식사를 “English breakfast”라고 말한다.

[29]정오시간은 시간의 중요성 time is of essence과 결정적인 순간 critical moment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30] tea-time, 오후 티타임 휴식 시간은 전통적으로 오후 4시경에 갖는다.

[31]존경하는, 변호사님은 원문의 “with submission, sir,”이란 표현인데, 이 말은 상대방이 공적으로 지위가 높을 때 공손함 the sense of humility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법정에서 “with submission”을 쓰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기 의견을 나타날 때 쓰는데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정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이렇게 쉼표를 넣는 까닭은 존경의 대상이 법관이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한 논리가 타당하기 때문에 수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사람의 지위를 보고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경향이 커서 쉼표 없이 존경하는 변호사님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우리말에는 한자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쉼표 물음표 등 문장부호를 활용하는 글쓰기가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With submission” 이 말을 법정에서 쓰는 것을 들어보긴 했지만, 봉건제가 폐지된 오늘날 흔히 쓰는 말투는 아닌 것 같다.  오늘날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이런 종류의 말은 "with all due respect" 또는 "with respect to my learned opponent" 이런 표현을 선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