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변호사님,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나른한 오후에 얼룩 한 두 점이 나온다고 해서 이렇게 머리가 희끈희끈해진 사람을 심하게 문책할 정도는 아닙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설령 문서 한쪽 전체를 얼룩지게 할지라도- 존중받을만 합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우리 둘 다 같이 늙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동료 의식[1]이라는 감정에 호소하게 되면 내가 이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가 일찍 퇴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가 그대로 남아 있도록 내버려 두기로 생각을 굳혔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후 시간에는 덜 중요한 서류를 다루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 직원명부에 두번째에 올라 있는 니퍼즈는 구레나룻수염을 기르고, 창백한 얼굴인데, 대체적으로, 약간 해적같이 보이는 스물다섯 살 가량의 젊은이였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가 두가지 사악한 권력-야망과 소화불량-의 희생자로 보였다. 야망은 단순한 필경사에게 요구되는 일을 참아내지 못하는 어떤 성향, 예컨대 법률문서의 원안 작성처럼, 엄격히 전문가[2]의 영역에 속하는일에 주제 넘게 끼어드는 것에서 포착되었다.[3] 소화불량은 간혹 신경질적으로 성미 급하고 또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낸다든지, 필사중에 실수를 저지르면 소리나게 이를 간다든지, 한창 열 올려서 일하는 가운데, 입안에서 쉿쉿거리며, 쓸데없는 악담을 내뱉는다든지, 특히 그가 일하는 책상 높이에 끊임없는 불만을 표한다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니퍼즈는 기계를 만지는 데는 매우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자기 책상 하나 자기 마음에 맞게끔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책상다리에, 종이 판지조각 등, 갖가지 종류의, 토막들을 넣다가, 마침내는 압지를 여러 번 접어서 절묘한 조정을 시도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떠한 새로운 시도도 답이 되지 못했다. 만약, 그의 등을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뚜껑을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각도로 높이고, 책상을 마치 네덜란드식 가파른 집 지붕처럼 이용해서 글을 쓰고자 할 때면, 그의 두 팔이 저려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는 다르게 책상 높이를 허리춤까지 낮추고서, 책상 위로 몸을 구부려 글을 쓰려고 하면, 이번에는 그의 등이 따끔거리게 아팠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안의 진실은, 니퍼즈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4] 그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이 달리 있다면, 그것은 필경사의 책상을 아예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병든 야망의 표출 가운데는 그가 자기 고객이라고 부르는, 초라한 외투를 입은 정체불명의 친구들이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끼어있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가 때로는, 꽤 중요한 지역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간혹 소액전담법원[5]에서 사소한 업무도 보았으며, 더 툼즈[6]형사 법원 주변에서도 조금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 사무실로 니퍼즈를 찾아와,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가 그의 고객이라고 주장한, 한 사람이 다름아닌 빚쟁이였고, 부동산 소유권증서라고 주장한 것은, 어음장[7]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든 결점과, 그가 내게 끼친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니퍼즈는 같은 영국 출신인 터키와 마찬가지로 내게 매우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깔끔하고, 민첩하게, 필기를 했고, 제 마음이 내키면, 신사적인 태도를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그는 항상 신사답게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면, 그런 모습이 내 사무실의 신망을 더해주었다.[8] 반면에 터키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가 내 사무실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의 옷은 기름때에 찌든 모습인데다 음식점의 찌꺼기 냄새를 풍기기 십상이었다. 그는 여름에 바지를 아주 헐렁하게 입고 다녔다. 그의 외투는 매우 초라했고 그의 모자는 집어 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영국인답게 타고난 예의바름과 정중함을 갖추었고, 또 서로 믿을 수 있는 영국인인만큼,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항상 모자를 벗기 때문에,[9] 모자는 내게 상관이 없지만, 그가 입은 코트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의 코트 복장에 대해서, 내가 그를 설득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내가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니, 사람은 소득이 매우 초라할 정도로 적으면, 그토록 윤기나는 얼굴과 윤기나는 외투를 동시에 뽐내고 다닐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언젠가 니퍼즈가 목격한 대로, 터키의 돈은 주로 값싼 적포도주를 구입하는데 쓰여졌다. 어느 겨울날 나는 터키에게 매우 고상하게 보이는 내 코트, 부드러운 솜털이 들어간 회색 코트로써, 매우 편안하고 따스했고, 무릎에서 목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터키가 내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오후만 되면 나타나는 그의 경솔함과 난폭스러움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솜털 담요같이 포근한 코트를 감싸고 단추를 꽉 채워주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었다고 나는 진정 믿는다.[10] 말에게 귀리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말에게 해롭다[11]는 속담과 마찬가지에서 말이다. 사실, 경솔하게 날뛰는, 말이 귀리를 먹으면 더욱 날뛴다는 속담과 꼭같이, 터키도 코트를 입고서는 더욱 잘난 체했다. 코트가 그를 건방지게 만든 것이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오히려 망쳐지는 그런 사람이었다.[12]
터키의 자기 방종의 습성[13]에 관해서는 내 나름대로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측은한 니퍼즈에 대해서는 그가 다른 방면에서 어떤 결함이 있던 간에, 적어도,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젊은이라는 것을 나는 사뭇 확신하고 있었다.[14] 그러나 사실, 그는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고, 또 쉽게 흥분하고, 술기운이 있는 성격을 타고나서, 별도로 음주할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내 사무실에서, 니퍼즈가 가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위로 몸을 구부리고, 팔을 넓게 벌려, 책상 전체를 붙잡고는, 마치 책상이 자기를 방해하고, 괴롭힐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임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이리 움직이고, 저리 획 내치면서, 책상을 바닥에 심하게 갈아대는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건지 생각해 보면, 니퍼즈에게, 술과 물은 둘다 불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15]
니퍼즈가 툭하면 짜증내고 그에 따른 신경과민이 그것의 특이한 원인-소화불량- 때문에, 주로 오전에 나타나고, 오후에는 그가 비교적 순해진다는 사실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터키의 발작은 12시경이 되어서야 시작되므로, 두 사람의 기행을 한꺼번에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작은 경비병의 근무 교대처럼 서로 번갈아 이어졌다. 니퍼즈의 발작이 시작되면 터키의 발작이 그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자연의 배려였다.
내 사무실 직원 중 세번째인 진저넛은 열두살쯤 된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짐마차 마부였는데, 자기가 죽기 전에 아들이 마부석 대신 판사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주당 1달러[16]를 받고, 법학도[17]이자, 심부름꾼이자,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부로서 내 변호사 사무소에서일하게 만들었다.[18]진저넛은 자기만의 자그마한 책상을 갖고는 있으나,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책상 검사를 해보면, 서랍에는 여러가지 견과류 봉지들이 수북했다.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대한 법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하나의 과일 열매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19] 진저넛이 하는 업무일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없이 민첩하게 수행하기도 하는 일은, 터키와 니퍼즈에게 빵과 사과를 배달하는 임무였다.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일은 다들 알다시피 무척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일이라서,내 사무실의 두 필경사는 세관과 우체국[20] 근처의 수많은 노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잘 익은 스피첸버그 사과[21]로 자주 목을 축이고 싶어했다. 또한 그들은 그 특이한 빵-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아주 향긋한-을사러 진저넛을 뻔질나게 보냈는데 이 빵의 명칭을 따서 그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어느 추운 날 오전에 업무가몹시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터키는 생강빵을 그저 바스락거리는 얇은 비스킷처럼 여러 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했는데–사실 생강빵은 1페니에 여섯개나 여덟개씩 팔린다–그럴 때면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입에서 바삭거리는 조각들을 집어 삼키는 소리와 뒤섞였다. 어느 무더운 오후에 터키가 흥분해서 저지른 실수 가운데, 그가 한번은 생강빵을혀에 갖다 대고 침을 묻혀서, 그것을 봉인해야 할 저당담보증서에다 살짝 갖다 붙인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를 즉시해고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가 아시아인이 깍듯하게 절하듯이 고개를 숙이며,[22] “존경하는, 변호사님, 제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라고 말하며 사과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진정되었다.[23]
현재 나의 주요 업무-부동산 매매 및 등기 전문 변호사, 그리고 각종의 난해한 법률 서류 작성-는 법원의 판사직을 맡고 난 이후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24] 이제 법률문서 필경사의 일감이 크게 불어났다. 나는 기존의 직원들을 다그쳐야 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했다. 구인 광고를 보고, 어느날 아침 한 젊은 남자가, 여름이라, 사무실 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사무실 문 앞에 꼿꼿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의 모습-맥없이 단조롭고, 애처로워 동정이 가는, 정말 슬픈 표정이 내 눈에 선하다! 그가 바로 바틀비였다.
그가 가진 자격증에 대하여 몇 마디 물어본 다음 나는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토록 특별하게 침착한 면모를 갖춘 사람이 나의 필경사 군단에 들어오게 된 것이 기뻤는데 이는 그런 면모가 터키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니퍼즈의 불같은 성격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리라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25]
[1] 변호사는 동료 의식 fellow feeling이 매우 강한 집단에 속한다. 동료 의식은 법조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기초적인 개념인데 이것은 자신이 상대방을 공정하게 대우하면 그 상대방 또한 자신을 공정히 대우할 것이라는 상호 호혜성에 기초한 관계이다. “association”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 III부 2장 연상주의 이론을 참조하라.
[2] 변호사는 특수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전문가에 속한다. 변호사는 직원을 고용해서 즉 분업을 통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는 일 즉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하는 고유의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 예컨대 증인의 선서를 주재한다든가, 법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 등을 처리할 때는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고 자신이 직접 손수 처리해야만 한다. 변호사가 부담하고 있는 의무의 성격상 변호사가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서 문서 작성만 해 주는 “대필” 성격의 업무를 맡지는 않을 테고 또 설령 대필 정도만 했다고 해서 변호사 자신의 전문가 책임 의무를 면책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같은 법률 사무소 직원이 제한적으로 대필해 주는 경우 고객은 전문가 책임을 묻지 못할 수도 있다.
[3]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제 국가에서 공무원은 상하관계에 있고 결재 제도를 택하고 있으므로 공무원은 상관의 지시 사항에 따르면 대개 면책되기 때문에 공무원 자신의 고유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고는 엄격하게 구별해 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예컨대 사법적 판단을 행사하는 검사마저 행정부의 편의성이 우선하여 “검사 동일체”라는 허구적 법리(한국에서의 검사는 실질적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헌법적 기관이고 사법적 판단이란 독립성을 의미하고 독립성이란 수직적 수평적으로 독립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검사는 결재 지시 제도에 기반하는 국가 대리인 모델을 따르고 있으므로 사법 판단의 독립성 원칙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를 신봉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개인의 고유 업무의 개인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대륙법국가의 직업공무원제도에서 공무원은 국가의 지시를 행하는 대리인의 지위이므로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다른 곳으로 전출입이 가능하고 따라서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그에 개별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륙법국가에서 개별적 책임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은 국가책임으로 귀결될 뿐이다. 현재 행정부에서 기안자 또는 담당자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상 관리 의무를 높인다는 차원이지 영미법국가처럼 법적 책임을 부담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4]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고,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그 내용을 우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예컨대 트러스트 설립 조건 등의 법률 문서를 작성할 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고객 자신도 포함된다) 문서를 정정하고 수정해야 하는 반복적 수고를 하게 된다. 고객의 요구 지시 instruction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이나 소액 사건을 다루는 소액전담법원 (뉴욕주에서는 “Justices’ Courts”으로 불렀다) 이곳에서는 변호사의 개입이 꼭 요구되는 곳은 아니다. 소액사건인 경우 서로 원만하게 합의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도되는 곳이기도 하여 변호사의 개입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6] 더 툼즈 형사 법원 건물은 1836년에 설치되었다. “더 툼즈 The Tombs”는 “툼즈 (공동묘지)”라는 무시무시한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흉악범을 다루는 형사 법정과 중범죄인을 수감하는 감방이 있는 그곳의 속칭이다. 더 툼즈에 해당하는 영국 런던의 표현은 “올드 베일리(Old Bailey)”이다. “뱃속에서 무덤까지 (from the womb to the tomb)"는 복지구호로 잘 알려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말과 같은 뜻이다. “무덤”은 죽음을 뜻하고, “잠들었다 (fell on sleep)”는 표현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의 유퍼미즘 (euphemism)에 해당한다. 유퍼미즘은 당사자가 가질 수 있는 정서상의 거북함을 순화시키는 간접 어법의 표현 방식이다.
[7] 주식이나 채권의 소유권 증서하고 어음장은 그 증서 모양이 비슷하다. 흔히 “어음이 부도났다”고 말하는데 어음증서의 모양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부동산 소유권 증서하고는 법적 효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원문에서 “bil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의 “bill”은 법원 소장을 bill, 영장을 bill, 어음장을 bill이라고 하므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8]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들이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는 까닭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인간 세상이나 만물의 움직임에는 인과법칙이 작용한다는 사고에서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대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정중하게 대할 것이라는 “self-fulfilling prophecy 자기 실현적 논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9] 영미국의 문화는 “실내에선 모자를 쓰지 않는 것 No Hats Indoors”이 에티겟이다. 특히 미국 군대에선 예의범절의 차원을 넘어서 엄격하게 지켜지는 규율에 해당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빵모자(야물케 또는 키파라고 부른다)를 쓰는 유태인이라고 해도 미국 군대에서는 실내 모자 착용이 금지된다. (Goldman v. Weinberger 475 U.S. 503 (1986)). 우리나라에서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착용하는 문화이기에 영미인들의 에티겟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10]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unintended consequence)”에 대해서 III부 13장을 참조하라.
[11]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면 배가 거북스럽게 불러오고 소화불량을 가져오게 된다.”“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겐 호의를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12] 여기서 자선 charity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드러난다. 자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영미법에서의 “구빈법 Poor Law”의 기본 개념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1601년 처음으로 국가가 나서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구빈법이 제정된 이후 산업 노동력이 크게 부족할 당시인 1834년 영국은 구빈법을 개정하였는데 “New Poor Law 신구빈법”의 기본적인 관념 하나는 “열등처우의 원칙 the principle of less eligibility”를 도입한 것이었다. 열등처우의 원칙이란 산업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졌는데 노동 의욕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빈민 구제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생계 보조금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이 받는 임금수준보다 더 적어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있어서 최저 생계비 이상을 지급하면 다른 사람들(현재 일을 하고 있어서 생계비 지급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일하면서 받는 임금 수준보다 일하지 않고 대신 국가에서 생계보조비를 받는 금액이 보다 많다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이라는 전제가 이 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13] 자기 방종self-indulgent과 자기 통제 self-control는 서로 반대 개념이다.
[14] 당시 “금주 운동”(예컨대 The Drunkard's Progress)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메인 주에서 금주법이 제정된 때가 1851년이었다.
[15] 포이에르바하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 The Essence of Christianity”은 1841년 독일어 초판 되었고, 조지 엘리어트의 영어 번역판이 1854년 출간되었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설명한 대로, 인간은 물(자연의 힘)과 술(인간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은 육체의 불순물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는 눈에 씌어진 비늘이 벗겨지므로 보다 분명하게 볼 수가 있고, 보다 분명하게 생각하고, 보다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물은 탐욕의 불길을 끄고 없애준다. 물 속에 들어가면 불타는 개인 이기심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물은 마음과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효력을 가졌다. 하지만 물이 가진 신성성은 보충될 필요성이 있다. 물은 자유와 평등의 근원적인 요소이다. 물은 인간에게 자연의 힘을 상기시켜주지만, 인간은 또 한편으론 동식물과 같은 자연과 구별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포도주와 빵으로부터 자기 만족을 얻는다. 사람들은 물에서 자연의 순수한 힘을 찬미하고, 빵과 포도주에서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찬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례에서 물을,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예식으로 여긴다.
[16] 당시 1850년대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얼마였을까? 당시에도 소년 노동 착취 금지법이 존재했다. 당시 직물 공장에서 하루 일하고 받는 급료가 25센트에 불과했다. 막노동자의 하루 급료는, 72센트-$1.12이었다고 한다. 1860년, 막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96센트-$1.25이었다고 한다. (Margo, “Wages and labor Markets in the U.S” at 33). 변호사 사무소에서 12세 소년이 장차 변호사가 되기 위한 도제 수업을 받는 조건으로 주당 $1의 임금을 받았다면 그건 소년 착취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여진다. 세계 최고 갑부이자 최고의 자선가로 유명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15살 때인 1850년 피츠버그 전보 회사에 사무실 심부름꾼 소년으로 취직하여 주당 $2.50 급료를 받았음을 상기하라.
[17] 변호사 사무실 수습 사원의 급여 수준이 박봉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변호사 감독하에 법 지식과 법 실무를 배우고 익히면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도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변호사 제도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법률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식 법조인 교육 제도이었다. 하바드대 로스쿨이 설립된 때는 1817년이었다. 미국의 일부 주(캘리포니아주)는 현재까지도 로스쿨 대학 학위를 수여받지 않고서도 대신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식으로 일정 기간 일하고 배우고 나서 (로스쿨 이수 요건을 면제받는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정식으로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 방식을 아직까지도 유지해 오고 있다.
[18] 오늘날 “Law clerk”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 수업을 받는 법학도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졸업하여 판사 시보 등으로 근무하는 법조인을 지칭한다. 오늘날은 선진국은 거의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 제도이기 때문에 최소한 14-16세 정도까지는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할 나이는 최소 12세 이상은 넘어야 가능하다. (현재 미국의 경우 의무 교육 16세까지, 일할 수 있는 최소 나이 14세 이상).
[19] Nutshell은 땅콩이나 아몬드처럼 씨를 가진 과일을 말하고, “in a nut-shell”은 관용어구로써 핵심 요점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뜻한다.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때는 1836년이었다. 물론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왜냐하면 링컨이 변호사로 임명된 주된 요인은 그가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법률 제정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이미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참작하여 법원이 특별하게 변호사로서 임명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영미법은 사법부 국가이기에 변호사는 법원에 의해서 최종 임명된다. 그리고 의회 의원은 법률 제정의 임무를 담당하고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변호사로서의 업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된다. 영미법국가에서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여기 문장 부분은 법률 과목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핵심 요점이 잘 정리된 요약집을 통해서 시험 공부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화자 변호사가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대한 법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하나의 과일 열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법학이라는 큰 학문은 하나의 간결 요약집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강조하는 것 같다. 법은 “6법전서”를 통째 암기한다고 해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들에서 하나의 통일된 법체계를 완성하려고 (예컨대 나폴레옹 법전) 시도했던 거대한 야망은 (통일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 그 자체에 대한 의미는 차치하고서) 결국 (법의 본질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밀려들어오는 이민자들로 뉴욕은 크게 발전해 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밀려 들어 오면서 세관과 우체국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21] 스피첸버그 사과는 뉴욕의 명산품. “스피첸버그Spitzenbergs”는 독일어이다. “spitzen: to sharpen, to peek”.
[22] 당시 뉴욕 근처 농장에서 흉년이 들어 임차농들이 지주들에게 임차비 인하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그 중 다수가 인도인이었다고 한다. 뉴욕 주정부는 인도인들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는 것 같은 괴기한 복장을 금지한 법률 “An Act to prevent Persons Appearing Disguised and Armed”을 1845년에 제정했다. “The law made it a crime for any person to “appear in any road or public highway, or in any field, lot, wood or enclosure” with their “face painted, discolored, covered or concealed” or disguised in any manner to hide their identity. If they were arrested and could not give “a good account” of themselves, they faced being deemed a vagrant and being sentenced to six months in jail.” http://occupywallstreet.net/story/new-york%E2%80%99s-anti-mask-law.
[23] “With submission, sir, it was generous of me to find you in stationery on my own account.” 원문의 영어표현은 터키 자신이 잘못을 범했고 그런 큰 실수를 하면 즉시 해고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변호사에게 깎듯이 절을 하면서 사과를 하는 장면 같다. 자신의 실수가 들키자 이에 변호사가 자신을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당황해서 말이 헛 나오면서 문법도 약간 틀리게 말해진 것 같다. 작가가 이런 정황을 전달하고자 일부러 문법을 약간 틀리게 표현한 것 같다. 터키가 자신의 실수가 변호사에게 들키니까 임시변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면 “(생강 과자를 검인지로 사용한 실수 그건) 회사를 위해서 내 돈 들여서 문방구를 사온 것인데요 그러니 한 번 봐주세요”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하였는데 그게 바로 예기치 않게 변호사에게 들켰으니 바로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당황한 표정을 살린다면 “존경하는 변호사님, 제 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유가증권, 유언 상속, 트러스트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seal 문서 봉하는 밀랍)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Signed, sealed, and delivered” is the ceremony with the authenticity of legal documents.중요한 법률문서를 다루는 일에 잘못을 범하면 해고당할 수 있다. 화자인 변호사가 즉시 해고해버릴 마음이 일어났다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런 상황을 터키가 즉시 알아차리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 같다.
[24] 영미법 판사는 거의 종신직이고, 또 “전관예우”의 부패 비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인 변호사는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형평법 판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 형평법 법원의 판사 경력은 그 변호사가 유능하다는 징표가 되고 그 결과 고객이 더욱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미판례법국가는 유능한 변호사 중에서 판사를 임명하는 법관임명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의 판검사 재직 후 변호사를 개업할 시 “전관예우”의 관행에 기대어 큰 돈을 버는 법제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5] 히포크라테스의 “인간 본성론 On the Nature of Man” 이후 4기질론 Four Temperaments: 다혈질 sanguine, 신경질 choleric, 우울질melancholic, 냉혈질 phlegmatic이 자리를 잡아왔다. 사상의학적 관점에서 화자 변호사는 냉혈질, 바틀비는 우울질, 터키는 다혈질, 니퍼즈는 신경질로 분석한 각자의 성격 비교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Wright, N., "Melville and 'Old Burton," with 'Bartleby' as an Anatomy of Melancholy", Tennessee Studies in English 15 (1970),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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