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해 두었어야 하는 일이지만 반투명유리 접문을 사이에 두고 내 사무실 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쪽은 필경사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내가 일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이 문을 열거나, 닫을 수 있었다. 나는 바틀비를 접문 바로 옆의 한구석에 배치하기로 했다. 사소한 작은 일들을 처리해야 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 조용한 사람을 내가 즉시 부를 수 있는 위치에 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의 책상을 사무실 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옆창문에 바싹 붙여놓았다. 원래는 그 창을 통해서 벽돌집과 그 지저분한 뒷마당의 모습을 위에서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으나, 나중에 건물이 높이 세워지는 바람에, 현재는 약간의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외에는, 전혀 경치를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유리창가에서 1미터 이내 사이로 벽 하나가 있었고, 빛이 마치 거대한 둥근 천장의 아주 작은 구멍 틈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저 높은 곳에서, 두 고층 건물 사이를 타고 내려왔다. 더욱 완벽한 배치를 위해서 나는 바틀비 쪽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그를 내 시야에서 완전히 가릴 수 있게끔, 높다란 접이식 녹색 칸막이를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그런대로, 사적인 자유와 서로간의 소통이 공존할 수 있었다.[1]
바틀비는 근무 초기에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해냈다. 필사하기를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2] 마냥, 그는 내 문서들을 막 집어 삼키는 듯했다. 소화를 시킬 휴식 시간도 갖지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3]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해냈다. 만약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무척 기뻐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필사 일을 묵묵히, 단조롭게, 기계적으로 해나갔을 뿐이었다.
글자 한자한자[4]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의 정확성을 검증해 내는 것도, 당연히, 필경사의 일중에 빠뜨릴 수 없는 한 부분이다. 한 사무실에 두 명 이상의 필경사가 있으면, 한 사람은 필사본을 읽고, 다른 사람은 원본을 쳐다보면서, 필경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이런 검토 작업을 한다.[5] 이 일은 아주 따분하고, 피곤하고, 졸리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활기발랄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정말 참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나는 쉽게 상상이 된다. 예컨대, 활기 넘치는 시인 바이런[6]이 바틀비와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서 꼬불꼬불한 필기체[7]로 손수 꼼꼼하고 빽빽하게 쓰여진, 무려 오백 페이지 정도에, 이르는 법률 문서를 검토했으리라고는 나는 믿기 어렵다.
가끔씩, 일이 한창 바쁠 때는, 조금 간단한 서류를 비교하는 일을 내가 손수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런 목적으로 나는 터키나 니퍼즈를 불러왔다. 바틀비를 칸막이로 가리고, 내 가까이에 둔 내 의도는 이런 사소한 경우에 그를 바로 부리고자 함이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근무 시작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바틀비가 끝낸 필사를 검토할 필요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 소소한 일이긴 하지만 바로 처리해야 될 일이기에 즉시 일을 끝내려고, 나는 급히 바틀비를 불렀다. 내가 급하기도 했고 또 즉각적인 반응을당연히기대하면서,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책상에 놓인 원본을 들여다보면서, 필사본을 쥔 오른손을 책상 옆으로, 조금 힘들 정도로 내뻗었다. 이는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에서 나오는 즉시, 사본을 넘겨받아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작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런 자세를 하고 계속 앉아 있는 채 나는 그를 부르면서, 내가 그에게 요청한 일이 무엇이었는지–즉, 작은 분량의 문서를 나와 함께 검토하는 일-에 대해 빠른 속도로 말했다. 바틀비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움직이지도 않고서, 그의 특유의 온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8] [9] [10]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놀란 것, 아니, 대경실색한 것을, 한 번 상상해 보라.[11]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는 한 동안 아무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귀로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잘못 오해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12]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어조로 내가 요청한 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매우 분명하게 들려온 것은 종전과 같은 대답인,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이었다.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되물어보면서, 나는 몹시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저쪽으로 성큼 큰 걸음으로 내걸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정신 나간 거니? 내가 여기 이 문서를 서로 비교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거다-자 이걸 받아.” 라고 말하며 그 종이 문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이 뚫어지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야위게 생겼고, 회색 빛 눈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불만의 인상이라곤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불안, 분노, 초조하거나 불손하다는 태도가 나타났더라면, 다시 말해, 그에게서 보통 사람의 면모가 있었다면,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를 사무실 밖으로 사정없이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라리 키케로 석고흉상을 문밖으로 내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섰다. 나는 그가 자신의 필사 일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서, 잠시 동안 그를 노려 쪼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내 책상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이것 참 묘하네’, 이런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일까? 아무튼 나는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서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고심 끝에 그 문제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이 나면 다시 꺼내기로 하고 당분간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른 방에서 니퍼즈를 불러 서류 검토를 신속하게 끝냈다.[13]
이 일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서, 바틀비는 장문의 문서를 완성했는데, 그것은 형평법 법원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된 증언[14]에 관한 네 통의 사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문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크게 중요한 소송이었고 따라서 고도의 정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사전준비를 다 마친 다음, 4통의 사본을 4명의 직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내가 원본을 읽을 생각으로, 옆방에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을 불렀다.[15][16] 이에 따라 터키, 니퍼즈, 진저넛이 각자 손에 문서를 들고, 차례대로 앉았을 때, 나는 이 흥미로운 그룹에 동참하라고 바틀비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
카펫이 깔려 있지 않은 맨바닥에 책상다리가 살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그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타나 서 있었다.
“어떤 일이 필요하세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필사본, 필사본이야.” 내가 재촉하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필사본을 검토할 거야. 자 이걸 봐.”라고 말하면서 그를 향해 네번째 사본을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17] 라고 그가 말하고는 조용하게 칸막이 뒤쪽으로 사라졌다.[18]
그 순간 나는 마치 얼어붙은 소금기둥[19]이 되어, 앉아 있는 직원대열의 맨앞에 그대로 꼼짝없이 서 있고 말았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나서, 칸막이 쪽으로 다가 가서, 그렇게 예사롭지 않는 행동을 보인 이유를 캐물었다.
“왜 거절하는 거야?”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당장 무섭게 격노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그를 내 면전에서 모욕적으로 내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이상하게도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묘한 방법으로 나를 움직이고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틀비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해봤다.
“이 문서들은 바로 네 필사본이고 이걸 우리가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건 네 일을 덜어주는 것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한번의 검토로 네 개의 사본이 모두 처리되니까. 이건 다들 쓰는 보편적인 관례다. 필경사라면 누구라도 자기 필사본을 검토하는 일에는 돕고 나설 테다. 그렇지 않니? 말도 하지 않을 텐가? 대답해 봐!”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플루트 소리 내듯이 높은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바틀비에게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발언을 주의깊게 새겨듣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아주 확실한 결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대답할 때는어떤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에 지배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20]
“그렇다면, 나의 요청-즉 일반적인 관례와 일반 상식에 따라 내가 한 요구를 따르지 않기로, 네가 결정했다는 뜻인가?”
그는 그 점에 대해서는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그의 결정은 두번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21]
[1] “프라이버시와 교류 privacy and society”의 개념은 서로 상충되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즉 균형 잡기가 중요하다. 프라이버시 권리의 확립은 미국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립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라이버시 기본권의 중요성을 갈파한 미국의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유명한 “프라이버시 기본권 The Right to Privacy" (4 Harvard L.R. 193 (1890)) 논문이 하버드대 로스쿨 논문집에 실린 해는 1890년이었다.
[2] 그가 영국으로부터 온 이민자임을 암시한다. 당시 큰 사회적 혼란이었고 또 그 결과 더욱 미국 이민을 부추긴 대사건이었던 1845년-1852년 사이에 걸쳐 일어났던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가 연상될 만하다.
[3] 미국에서 노예노동은 악명 높았다.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여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는 “탈주 노예 법 Fugitive Slave Act”이 1850년에 제정되었다.
[4] 법조인에게 글쓰기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철자법도 무척 중요시 여긴다. 일반인들에게는 철자법이 하나 정도 틀렸다고 해서 큰 사단이 벌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 법조인의 경우엔 약간 다르다. 판결이라는 영어 단어는 judgment이다. 흔히 잘못 하기 쉬운 실수로 judgement으로 쓰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실제로 로스쿨 수업 시간에 한 교수가 시험 답안지에 “judgement”으로 철자법을 틀리게 쓰는 학생에게는 감점을 주겠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문제가 된 실제 법원 케이스도 존재한다. 물론 지금은 법이 개정되어서 소송 문서에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판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겠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 no reformation for mistake"예전에는 그런 사례가 발생했다. 법률문서는 제 아무리 확실하게 문구를 작성한다고 해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기고 또 사람의 일인 이상 “문구를 실수로 잘못 작성할 가능성”-이를 “scrivener's error”이라고 말한다-이 결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 예전에는 한 문구가 틀리면 전체 법률문서가 무효로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유언장에서 실수가 발견되는 경우는 대개 유언을 남긴 사람이 이미 사망하고 난 뒤의 일이기에 사소한 실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여부는 법률 쟁점이 되기도 한다.
[5] 이러한 확인 작업을 Proofreading이라고 말한다. 이런 작업은 무미건조하고 보통 사람들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따분한 성격의 일이다.
[6] 바이런 Byron (1788-1824)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으로 귀족계급이었다. 그는 터키(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독립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하기에서도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습은 모방을 통해 습득된다. 즉 모방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7] 타자기 typewriter가 처음 개발되고 특허 등록되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1872년 이후이다.
[8] 바틀비가 “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니까 화자인 변호사는 “You will not?”이라는 의미이냐며 되묻는데 이에 바틀비는 다시 “I prefer not.”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I would prefer not to.”는 표현은 거절 의지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선택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다는 외양적인 뉘앙스의 측면에서 법정의 판사들이 선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유는 법정은 양 소송 당사자 중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려는 본래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명령적인 command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제시한 기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고 따라서 재판관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내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편 대륙법국가의 소송체계는 양당사자를 배제하고 국가의 대리인으로서의 검사가 양당사자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는데, 이런 진실 발견의 소송체계하에서는 선택적인 판단이 아니라 “최선의 the best”의 판단 모형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9] 영미법국가의 법원(특히 형평법)의 소송 형식은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원고의 입장이든 방어권을 행사하는 피고의 입장이든)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자기에서 가장 유리한 방안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을 선택할 수 있다니! 이런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영미법은 보통법 법원에 제소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형평법 법원에다 제소하는 것인지부터 당사자의 선택적인 사정에 놓인 경우가 흔하다. (소송을 해야 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의 판단 그 자체부터가 선택적인 의미를 갖는다). “법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는 격언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대응책이 달라진다는 법 구제의 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기, 바둑, 체스를 둬 보면 알겠지만, 전투는 공격과 수비로 이루어지고 수비전술은 공격전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10] 선호 preference, 선택 choice, 경향 inclination, 습관 등 이런 단어들은 인간은 자유 의지 free will를 가졌는가의 철학적 사고에 관련되어 있다. 근대 이전까지는 (예컨대 부모에 의한 중매 결혼의 사례에서와 같이) 인간의 삶(생로병사, 직업, 결혼 등)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부신 산업혁명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자연의 과정으로서 단순하게 받아들여졌던 운명적인 문제들이 선택의 문제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낙태에 대한 찬반여부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것도 의학의 발전에 따른 선택 choice의 문제로 인식이 전환되었기 때문이리라).
[11] 법조인은 뉴튼의 물리학 법칙처럼 마치 기계가 돌아가듯이 정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상식이 깨졌을 때의 놀라움을 한번 상상해 보라.
[12] 자신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의 문제 즉 의사 소통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긍하고 있다.
[13] 여기서 바틀비는 자신이 마치 독립적인 사업자의 경우처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록 변호사 사무소에 직접 고용된 상태이기는 하나 요즈음 같으면 같은 직장 내에서의 하청업자의 신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글 내용으로는 고용 계약상 지배인과 종업원 사이임이 분명하지만 다시 말해 여기서 고용계약은 구두계약이었는데 바틀비가 독립적인 사업자의 신분인지 아니면 고용된 피고용인 신분인지는 별도로 따져볼 여지없이 고용자인 변호사가 상사와 직원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고용 계약이 문서상 존재했다면 보통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겠지만 구두계약이었으므로 만일 소송을 제기할 경우 형평법 법원의 관할 대상이 된다. 이러한 소송의 종류가 구두 계약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assumpsit”이다. 바틀비의 입장에선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감을 받아서 일을 처리해준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단독 사업자에 해당하고 또 바틀비는 자신을 그렇게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 독립적인 사업자 신분은 도예공이나 대장장이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설령 고객이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그 일을 시작할 의무가 없었고 따라서 일을 제 때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부담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 장인들이나 예술가들은 고객이 성화를 부린다고 해서 일을 끝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내켜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며, 고객이 아닌 그들 장인 자신이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고 또 끝낼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이러한 장인들은 노예 신분하고는 달랐다. 노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적인 일 preference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주인이 시키면 그것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노예의 계약 관계와 장인의 계약 관계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14] 화자인 변호사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배심원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해본 경험도 없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라고 말했는데, 형평법 법원에서 이렇게 일주일간의 긴 증언을 받아내는 일을 했으면서도 자신은 정작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펼친 적이 없는 변호사라고 말하는 까닭은 형평법 법원에서의 재판은 12명의 배심원단이 개입되는 배심원 재판이 아니라 판사 한 명이 재판을 주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배심원 재판을 행하는 보통법 법원과는 달리 형평법 법원에서는 단독 판사가 진행한다. 따라서 재판의 절차와 법원칙에서 양법원간에 차이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15] 궁정, 법원, 대학 건물들은 대개 정(직)사각형 구조이다.
[16]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은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4가지 기본 덕목으로 지혜, 정의, 용기, 중용을 들었다. 지혜: 선한 마음, 훌륭한 판단력, 재치, 사려깊음, 창조성, 정의: 경건함, 진실성, 공정성, 공평무사함, 용기: 인내, 자신감, 고상함, 순종, 근면함, 중용: 절제, 위엄, 겸손, 자제력.
[17] “I would prefer not to”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하고 싶지 않습니다”. “preference”의 표현은 인간의 자유 의지 free will와 외부적 속박 constraints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또 선택적 대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형평법적 측면에서 살펴 볼 여지도 충분하다.
[18] 이 글에서 경제적인 측면은 크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우선주” 열풍이 연상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주를 영어로 preferred stock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우선주가 처음 발행된 때는 1836년이었고 그 후 철도건설 산업이 굉장히 크게 일어나 우선주 발행의 붐이 불었다. Evans, “The Early History of Preferred Stock in the United State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9, No. 1 (Mar., 1929), pp. 43-58. 회사가 우선주 (preferred stock; preference shares) 발행을 통하여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1840년 영국에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우선주 발행 광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1849년 영국 철도 회사의 주식 발행 총액 중 66%가 우선주 발행이었다고 한다. 회사가 우선주 발행을 선호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채권은 이자지급이 연체되면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우선주는 배당금 지급을 연체해도 파산을 신청할 수 없었던 당시 우선주 발행의 특권에 기인하였다. 우선주 발행은 당시에 가히 혁명적인 수단이었음은 그 후 1880년대 미국에서 철도 건설 붐이 일어날 때 우선주 발행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의 역사를 통해서 여실하게 알 수 있다.
[19]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적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세기 19:26).
[20] 형평법 법원은 비록 일반적인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다고 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자연 법 정의 natural justice”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법철학적 사고를 전통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형평법은 보통법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의의 관념에 크게 지배하고 있다. 형평법 판사는 만약 일반적인 법원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터무니 없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 그런 법원칙은 잘못된 것임으로 그 경우에는 새로운 법원칙을 세울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형평법에서는 법보다 정의가 우선 적용되고, 따라서 정의가 “최고의 고려사항paramount consideration”이 된다. 인구에 회자되는 “정의가 승리한다 justicewill prevail.”는 표현은 형평법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21] 법정의 결정-배심원의 평결이나 판사의 판결-은 한번 내려지게 되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irreversible)” 성질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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