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 이번에는 내가 고함치듯 불렀다.
귀신은 마술적주문을 외워야 [1] 등장하듯, 세번의 소환 끝에 비로소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타났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한테 내가 부른다고 말해줘.”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그는 공손하고 차분하게 대답하고는 그냥 사뿐히 사라졌다.
“그래 아주 잘했어, 바틀비,” 나는 아주 침착하고 매우 엄정한 목소리로 내리깔고 나지막이 말하며, 당장이라도 어떤 끔찍한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번복할 수 없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비쳤다. 그 순간에는 실제로 내가 그런 식의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 반쯤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무엇보다, 오늘은 심적 부담감과 당혹감으로 고통을 많이 겪었으니, 이만 모자 쓰고 바로 퇴근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 모든 일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어느 새 내 사무실에서 확정된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바틀비라는 이름의 창백한 모습의 한 젊은 필경사가 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는 시중의 요율대로 한 장(100단어)당 4센트의 돈을 받고 내가 일감을 주면 문서 필사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필사한 사본을 검토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면제받고, 그 의무는 철저함이 말할 것도 없이, 더 뛰어나다는 칭찬 한 마디로, 터키와 니퍼즈에게 전가된다는 것. 게다가, 이 바틀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건 심부름이란 일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결코 맡아 하지 않는다는 것. 설령 그런 일을 맡아 달라고 그에게 간청을 하더라도, 그는 “그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는 것-이걸 달리 표현하면,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한다는 것-을 거의가 다 알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틀비와의 화해가 눈에 띄게 이루어졌다. 그의 착실함, 전혀 방탕하지 않은 점, 부단한 근면성 (그가 칸막이 뒤에서 선 채로 공상에 빠지고 싶어하는 그 때를 제외하고), 높은 침착성,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서 그는 사무실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그 중에 으뜸가는 것은 바로 이것-바틀비는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와 있고, 하루 온 종일 그 자리를 지키며, 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정직성에 각별한 신뢰감을 가졌다.[2] 내게 매우 중요한 서류들도 그에게 맡기면 지극히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때로는 아무리 해도, 내가 그에게 간헐적으로 무심코 화를 내는 것까지는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에 머물면서 바틀비가 누리는 암묵적인 약속 사항[3]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기이한 행태, 특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면제사항들을 항상 명심하고 있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급한 용무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열망에서, 무심코 짧고, 급한 어조로, 바틀비를 소환[4]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빨간 끈[5]으로 어떤 서류들을 하나로 묶을 때 첫번째 끈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달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랬다. 그러면 당연하다는듯이, 칸막이 뒤에서, “나는 그걸 안하고 싶어요,”라는 뻔한 대답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러면, 인간 본성중의 하나이고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6]을 지닌 한 인간인 이상, 그렇게 삐뚤어진 것[7]- 그런 비합리성에 대해 어찌 언짢아 하며 호통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당하는 이런 종류의 거절이 매번 누적됨에 따라 부주의로 인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실수를 내가 다시 반복할 개연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찬 법원 근처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다수 법조인들의 관례에 따라, 내 사무실문 열쇠도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 사무실을 매일 먼지 털고 바닥 치우고 매주 걸레로 바닥을 닦아 청소하는 다락방 아주머니가 갖고 있었다. 또 하나는 편의상 터키가 갖고 있었다. 세번째 것은 가끔 내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네번째 것은 누가 갖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 트리니티 교회[8]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 도착하니, 설교 시간보다 조금 일러서 잠깐 내 사무실에나 들렀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열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물쇠에 꽂아 넣으니, 열쇠가 안쪽에서 끼워놓은 뭔가에 걸려 들어가지가 않았다. 깜짝 놀라서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안쪽에서 열쇠가 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야윈 얼굴모습을 내게 들이밀면서, 문을 반쯤 정도 열고 붙잡은 채, 위는 셔츠 차림에다, 아래는 요상하게 헤진 아침 속옷 차림의, 바틀비 유령[9]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미안하게 됐지만, 지금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한창 하는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당장은 내가 들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간단히 한두 마디 말을 그가 덧붙였는데, 아마도 내가 근처의 구역을 두세 번 걸어 돌아보는 것이 나을 테고, 그 때쯤이면 자기가 하던 일을 끝낼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내 변호사 사무실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곧 쓰러질 듯 야위었고 신사같이 태연하되,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 바틀비의 전혀 얘기치 못한 등장에 정말 묘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나는 바로 내 사무실문 앞에서 황급히 도망치듯 나와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가 바라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 황당한 필경사의 차분하고 뻔뻔스런 대범함에 무모한 반항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격정이 치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를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예전에 있던 남자다운 박력마저 앗아가 버린 것은 바로 놀라울 정도의 그의 유순함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종업원에게서 오히려 지시를 받고, 더욱이 자기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 그렇게 어이없는 일을 당할 때도 태연한 사람이라면, 바로 그러는 동안, 남자다움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틀비가 셔츠 차림에다 또 헤기진 옷을 입은 상태로 일요일 아침에 내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좌불안석이되었다. 뭔가 그릇된 일을 저질렀을까? 그건 분명 아닐테지.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이불가능한 거고. 바틀비가 부도덕한 사람이라고는 한 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가 거기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필사를? 그것도 분명히 아니야. 그가 무슨 기이한 행동을 보이든 간에, 바틀비는 정말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었어. 그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책상에 앉아 있을 사람이 결코 아닐 꺼다. 더욱이, 오늘은 일요일인데, 무슨 세속적인 일 때문에 이날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예법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바틀비에게는 아예 꺼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끝없는 호기심으로 넘쳤고, 그러다가 마침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무런 막힘 없이 열쇠를 꽂아 넣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틀비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사무실 안을 쭉 둘러보고, 칸막이 뒤쪽까지 들여다보았으나, 그가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그 자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기간은 분명하지 않지만 바틀비가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입고, 잤으며,[11] 그것도 접시, 거울, 침대도 없이 그렇게 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빠진 소파의 쿠션있는 자리에는 살짝, 드러누운 형태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둘둘 말아놓은 담요 한장이치워져 있었고, 텅빈 난로의 받침대 아래에는 검은 구두약 통과 구두솔이 놓여 있고, 의자 위에는 비누와 더러운 타월 하나가 들어있는 양철 대야가 놓여 있고, 신문지 속에는 생강빵 부스러기와 치즈 한 조각이 싸여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바틀비가 이곳을 거처로 삼아, 독신자 숙소로 혼자 이용해 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2] 그러자 즉각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여기서 드러나는 구나! 그의 곤궁함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의 고독은 얼마나 더 끔찍한가! 생각해 보라. 월 스트리트는 일요일이면, 폐허가 된 고대 도시 페트라[13]처럼 인적도 없이 텅 빈다. 평일 밤도 텅 빈 그 자체다. 이 건물 역시 평일 낮에는 일과 사람들로 법석대다가, 밤이 되면 적막함만이 메아리 칠 뿐이며, 일요일은 내내 쥐 죽은 듯 쓸쓸하다. 그런데 바틀비는 여기에 거처를 트고, 한 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바로 그곳이 적막함만으로 가득 찬 광경을 홀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순진해서 당한 마리우스[14]가 카르타고[15]의 폐허 속에서 시름에 잠긴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가슴이 찔리듯 참을 수 없는 격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껏 나는 아름다운 슬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다같은 인간이라는 형제애를 느끼면서 나는 슬픈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길이 없다.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아마 나나 바틀비나 다같은 아담의 자손이어서가 아닐까!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화려한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고, 미시시피시 강 같이 넓은 브로드웨이 거리를 백조가 미끄러지듯 유유히 나아가는,[16]그 화사한 비단옷[17]과 생기발랄한 얼굴들을 기억했다. 나는, 그들을 윤기없이 창백한 필경사와 대조해 보고, 내 스스로 자문해 봤다.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기에 사람들은 세상이 밝다고 여기는 반면, 불행은 저 멀리 숨어 있기에 사람들은 불행이 없다고 여길 뿐이 아닌가! 이런 슬픈 공상들은-분명 병들고 어리석은 두뇌가 낳은 키메라[18]같은- 바틀비의 특이한 행동과 관련된 좀더 특별한 다른 생각들로 이어졌다. 어떤 이상한 것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 필경사의 창백한 형체는, 낯선 사람들이 무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수의에 덮인 채 입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문득 자물쇠에 여는 쪽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 바틀비의 닫혀진 책상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가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비정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책상은 내 소유물이고, 거기에 들어있는 내용물 또한 내 것이므로, 나는 대담하게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여겼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서류들도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서류 정리용 분류함은 깊이 들어가 있어서 내가 서류철들을 꺼내고, 깊숙한 곳까지 더듬어 보았다. 바로 거기에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그걸 끄집어 냈다. 그것은 오래된 밴대나[19] 비단 손수건으로써, 무겁고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매듭을 풀어 보니, 그건 푼돈을 모아 놓은 저축은행 저금통이었다.[20]
그동안 내가 이 사람에게서 발견한 그 모든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막 떠올랐다. 내 기억에 그는 대답할 때 빼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고, 때로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서하는- 아니 신문이라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희미한 창가에 서서, 벽돌로 막혀진 벽[21]을 쳐다보곤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내 분명한 기억으론 그가 무슨 카페나 식당을 찾아간 적이 없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터키처럼 맥주를 마신다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처럼, 커피나 차를 마신 적도 없었다. 내가 알만한 어떤 특별한 곳에도, 간 적이 없다. 사실 지금의 이 경우 외에는 산책 한번 나간 적도 없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 세계 어디에라도 사는 친척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토록 야위고 창백하지만 자신의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스스로 꺼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으론 그에게는 어떤 창백함의 무의식적인 분출- 내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희미한 귀족적 도도함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준엄한 과묵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정말로 그런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그의 특이한 행동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가 오랫동안 쭉 전혀 꼼짝도 않는 것으로 봐서 내가 알아차릴 수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칸막이 뒤에 선 채 막혀진 벽을 응시하며 공상에 빠져 있을 것이 분명할 텐데도, 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미미한 일 하나 그에게 부탁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1] 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도 베드로가 하루 밤에 3번이나 부정하였고.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3번 확인해야 한다는 “삼세번 원칙(three times rules)”이 거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도 속칭 “삼세번” 원칙이 흔히 등장한다. 악령 소설 등을 보면 대개 악령은 한 번 불러서는 즉시 나오지 않는다. “수리수리마수리”“Abracadabra” 사례와 같이 주술은 같은 것을 여러 번 반복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진실과 창의성은 반복을 싫어한다.
[2]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직성(honesty)이다. 정직성을 기반으로 신뢰 관계(confidence)가 형성된다.
[3] 여기에서 변호사와 직원의 고용계약은 구두로 맺어진 계약이지 문서상의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님을 상기하라. 구두상 고용 계약을 맺었기에 만약 분쟁이 일어나면 형평법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assumpsit”소송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문서상 고용 계약을 맺었다면 보통법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영미법은 대륙법과는 달리 구두상 계약 (단기 임차권 계약의 사례)이라고 해도 물권법상의 (채권법상의 보호법익과 구별되는) 보호 법익이 창출될 수 있다.
[4] 소환(summon)의 형식은 형평법 법원의 특징에 해당하였다. 보통법 법원은 “대물소송(in rem)”인 반면 형평법 소송의 효과는 “대인소송(in personam)”인 경우가 많으므로 형평법 법원은 직접 당사자를 법정으로 소환하게 된다. 서로 체계가 다른 법원 (예컨대 일상생활에 관계된 사건을 다루는 주법원과 연방차원의 공공 문제를 다루는 연방법원에서 쓰는 특정 법률 용어(court jargon)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존재한다. 만약 소환에 불응할 경우 형사법적 제재가 따르는 경우의 소환을 서브피나(subpoena)라고 부른다.
[5] 영국 정부기관, 법원, 변호사사무실에서 중요 서류를 빨간 끈 “red tape”으로 동여매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현재도 여러 다른 색깔들로 구별하여 서류를 정리하는 법조인의 사무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정부 기관들이 어떤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서 판단을 즉시 내리지 않고 회피하거나, 다단계 의사 결정 과정을 돌려 거치게 하면서 판단을 교묘하게 늦추거나, 또는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비효율적인 관료 행정의 문제점이 나타남을 지적하는 용어로써 “레드 테이프(red tape)”라는 말을 쓴다.
[6] infirmities는 병적 나약함, 인간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결함을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기 마련이며, 창조된 사람인 이상 완전한 인간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7] 삐뚤어짐(perverseness)은 단정함(straightness)과 반대된다.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경우 즉 바른 견해를 견지한 경우를 straight 라고 표현한다. 한편 속어로 동성애자(gay) 등 삐뚤어진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pervert”라고 표현하고, 그렇지 않고 성적으로 바른 사람을 “straight”라고 표현한다.
[8] 월 스트리트 “Trinity Church”(트리니티 교회)는 1846년에 세워진 영국 성공회 Anglican Church 소속 교회이었고, 남북전쟁 후 미국 성공회 Episcopal Church of America를 결성하였다. https://www.trinitywallstreet.org/. 개신교단인 성공회의 예배나 전례 등은 다른 개신교단에 비해 카톨릭에 가깝다. 예배에서 “공동기도서 (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사용하는 등 교회 통합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교회 통합 운동은 성공회 교회 건축 양식을 고딕 양식으로 추구한 방향에서도 잘 나타났다.
[9] “바틀비 유령 (the apparition of Bartleby)”은 변호사가 맞부딪힌 사람이 바틀비인지 아니면 바틀비하고 똑같이 닮은 바틀비 유령인지 모를 정도로 놀란 상태를 말해준다. 바틀비가 일요일 오전 시간에 교회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와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기에 “바틀비가 유령처럼”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바틀비하고 꼭 빼닮은 “바틀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강한 의미 전달 효과를 가져온다.
[10] 일요일 휴무 법률 (일요일에 가게 문을 닫게 하거나 또는 술 판매를 금지하는 법 포함)을 미국에서 “Blue laws”라고 속칭한다. 일요일 강제 휴무법은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아직까지도 시행 준수되고 있다. Blue laws는 1676년 영국에서 제정된 일요일 휴무 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일요일 모두가 쉬게 된 것은 blue law 때문인데 이 법의 원래 취지는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를 보라는 것에 있었다.
[11] 인간 생활의 필수적 3 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먹을 것 eat의 순서가 입고 자는 것에 앞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12] 개인 사유지가 아닌 공공의 어떤 장소를 무단 점유하고 생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를 Squatting (물권법 용어로는 adverse possession)이라 한다-은 그 자체로써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의 식민지국가들은 점유 시효 취득의 법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왔다. 바틀비가 점유한 빌딩 사무실 공간은 일반주거지역이 아니므로 건물 점유 사실만으로는 범죄행위에 해당되지 않았을 것이며 다만 건축물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은 될 수 있었다.
[13] 사막 가운데 한 때 번창했다가 폐허가 된 고대 유적 도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버건은 페트라 유적을 1845년 옥스포드대 수상작인 그의 시 “Petra”에서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 (A rose-red city - half as old as time!)” 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14] 로마 제국의 여러 정복 전쟁을 통해서 승승장구하였던 마리우스 Marius는 노년에 들어 판단을 그르치고 새로 부상한 정치 군인들에게 패배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마리우스는 아프리카 카르타고까지 쫓기며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을 겪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 마리우스-그의 누더기를 걸친 모습을 그린 미국 화가 Vanderlyn(1775 –1852)의 그림이 있다.
[15] 카르타고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는 지중해 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근접해 있고 로마 제국의 등장 이전까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던 대도시였다. 노예를 기반으로 한 농업 그리고 지중해 상권을 장악해서 해상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도시였으나 로마의 침공을 받은 3차 포에니 전쟁 (BC 149-BC 146)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카르타고의 전멸에 관한 설명을 곁들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전멸 정책을 주장한 키케로의 입장에 반대한 스키피오의 견해를 지지하였는데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프리스틀리의 견해에 연결된다. 이와 같은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근래 들어 1차 대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에게 물린 전쟁배상금의 가혹성을 비판한 케인즈의 입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적을 전멸하기 보다는 교화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6] 법원의 연초 시무식에는 고위 법관과 변호사들이 화려한 법복을 차려 입고 참석하는데, 시무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광경을 보면 이와 같이 묘사된다.
[17] 그날이 일요일이라면 비단옷(silks)은 화사하게 비단옷을 차려 입은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갈 때 입는 법복은 비단(silk)으로 만들어진 옷인데 이에 연유하여 존경 받는 변호사들을 “silks”라고 속칭한다.
[18] 서로 다른 동물이 교합하여 보기 흉하게 태어난 이상한 잡종 괴수를 키메라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조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될 때 우려되는 문제점을 키메라 같은 괴물이 출현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의미는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혼합되기 어려운 점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 무늬가 들어 있고 밝은 색깔의 스카프 크기의 큰 손수건. 밴대나(Bandanna) 손수건은 오늘날 길거리 데모 시위군중(이슬람의 시위 군중 군사독재정권에 항의 시위)이 돌을 던질 때 얼굴 가리개로 쓰는 모습-“복면 시위”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밴대나 (포르투갈어)는 해적이 머리에 두른 두건을 말한다. 오늘날 대개 해적 영화를 보면 해적은 머리에 빨간 색의 밴대나 손수건을 동여맨 모습(해골 모습의 해적깃발과 함께)으로 등장한다. (동양 역사에선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홍건적의 난을 기억하라). 손수건은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는 무기로도 작동하였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밴대나 수건의 표현은 갱단 소유나 훔친 물건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암시한다. 그런데 매듭을 풀고 보니 저금통장이었다. 사람들의 의심은 종종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화자인 변호사가 가졌던 전제나 가정들 중 많은 부분들이 바틀비와의 겪은 사건을 통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20] 저축 은행(Savings bank)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은 이전에는 신용금고로 불렀다) 주로 서민들의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1] 창은 인식의 틀을 상징하고 또한 세제 법률과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재산세를 굴뚝의 숫자로, 벽돌 두께로, 창문 수로 매기는 굴뚝세, 벽돌세, 창문세 등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