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정치학
1장
행복학 연구들이 축적해온 성과
행복에 대한 실증 연구가 1970년 이전에까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붐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의 행복이 국가별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집단의 하위그룹에 따라 행복수준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1], 사람들이 각자 삶에 대해 느끼는 방식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조건이나 인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해서 산더미같이 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행복에 대한 주제로 수 천건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행복해지는 법에 대한 책은 보더스와 반스앤노블의 서고 한 코너를 꽉 채우고 있다. 국제 학술회의도 많이 열린다. 행복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 저널도 발행되고 있다.
*행복에 대한 주제로 책을 쓰는 저자들 중 일부는 행복이란 말을 쓰고, 다른 일부는 웰빙 또는 삶의 주관적 만족도란 말을 쓰고 또다른 일부는 삶에 대한 만족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 의미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행복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느낌과 기억을 의미하고, 만족은 전체로서의 삶을 인지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가까운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질문해보면 표본그룹별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결론이다.[i] 따라서 학자들은 이러한 용어를 서로 바꿔쓰고 있는 것 같다. 나또한 마찬가지로, 간혹 특별한 용어를 쓰는 경우 사람들의 반응에 유의할만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이러한 용어들을 상호호환해서 쓰기로 한다.
행복이란 단어는 느낌과 감정의 여러 측면을 아우르는 큰 말이다. 한 마디의 개념정의로는 행복이 담고 있는 모든 뜻을 완전하게 설명해 낼 수 없다. 미국에서의 행복학 연구 중심 인물인 에드 디이너(Diener) 일리노이 대학 교수는 행복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어떤 사람이 삶의 만족과 흔한 기쁨을 경험하고, 그리고 슬픔이나 분노같은 불쾌한 감정을 어쩌다 겪으면 매우 행복하다(웰빙)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사는 것이 불만족스럽고, 기쁨이나 애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분노나 불안같은 불쾌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면 그사람은 행복수준(웰빙)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ii]
현재까지 실증 연구의 대다수는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각자 삶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개인별로 질문하는 방식인 서베이조사에 의존한다. 그러나 개인별질문조사가 연구에 이용된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곧 살펴보겠지만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하루 중(직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때, 집안을 청소할 때, 친구들과 어울릴 때 등) 여러 정해진 시간대에 어떻게 느꼈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 후자의 방법은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지만 전자의 방법이 훨씬 흔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설명하는 연구결과들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 한 전자의 방법에 따른 것이다.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을 알아내고자 학자들은 노력해 왔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소득이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조금 더 많은 돈이 있다면 자신들의 인생이 변화되어 분명히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무척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돈의 효과는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밝혀진다.
다음 연구 하나가 분명히 말해준다. 어느 한 시점 미국에서 행복의 평균 수준은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더 높아진다. (표1 참조).
이와 유사한 것으로, 전세계별 조사를 보면 국가들 사이에 나타나는 평균 행복의 차이는 일인당 소득 평균의 차이와 높은 상관관계[2]가 있다. [iii]
표 1
소득 분포 4분위별 행복 수준 (1975-1992)
상위 25% | 중상위 25% | 중하위 25% | 하위 25% | |
매우 행복하다 | 40.78% | 34.80% | 29.46% | 24.07% |
꽤 행복하다 | 53.14% | 65.22% | 58.02% | 56.04% |
행복하지 않다 | 6.08% | 8.98% | 12.52% | 19.88% |
위의 표에서 수치는 라파엘 디 텔라, 로버트 맥커로크 앤드류 오스왈드의 논문, “행복의 거시경제학” 경제와 통계 리뷰 85호 (2003) 809페이지에서 표 1 인용.
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가정해 온 것 즉 소득이 사람들의 행복에 주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장기간 동안 선진국에서 표본연구대상의 행복을 추적하는 방식인 추적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대한 행복은 경력을 쌓고 승진하고 또 은퇴할 때 수반되는 소득의 상승과 하락과는 관계없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iv] 더욱 놀라운 것은, 서문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일인당 실질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동안 삶의 대한 만족의 평균수준은 눈에 띄게 상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다수의 연구가 있다.[v]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이 더 높은 사람들이 소득이 더 낮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면 왜 번영의 수준이 높아졌어도 행복의 수준은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는가? 패러독스같이 보이는 이문제를 설명해내는데 몇 가지 이론이 제시되었다.
그중 한 이론을 보면 는 잘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는데 그 이유는 높은 소득 때문이 아니라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돈을 더많이 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살펴볼만한 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 입학할 당시 행복하다고 답했던 학생들의 40세 무렵 소득수준을 보면 입학당시 행복하지 못하다고 답했던 학생들보다 30%가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vi] 그러나 이런 설명이 부유한 미국인과 가난한 미국인 사이의 행복의 간격 중 일부분 이상을 설명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번 째 이론를 보면, 소득 증가가 실제로 더 큰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소득효과가 높아진 이혼율, 범죄율,마약사용율, 실업율등과 같은 행복을 저해하는 사회적 동향에 의해서 상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뜻보면 이 이론은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 성장 이외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알려진 모든 사회 동향을 분석해내는 학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긍정적인 추세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서 순효과는 행복을 줄어들게 하기보다는 행복을 더 크게 상승시켰을 것이라고 본다.[vii]
세번째 이론을 보면, 1975년 이후 이루어낸 미국의 경제 성장은 주로 소득최상위계층 20%에게 돌아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적은 소수자들만이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인구 전체로서 평균적인 행복이 상승하지 못한 것은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viii] 이 설명도 일견 타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서 문제점 하나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행복의 분배는 지난 30년간 불평등하게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으로 이것은 소득상승을 맛본 전체인구의 20%[3]에 해당하는 최상위소득계층도 결과적으로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ix]
또 하나 문제점은 미국에서 행복 수준이 정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단지 1970년대 이후 나타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이라는 점이다.[x] 사실 행복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까지부터 조금씩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간중에 소득은 인구 전체로 모든 계층에서 고르게 상승했다. 마지막 문제점은 이 이론은 번영의 과실이 미국보다 더 평등하게 분배된 벨기에, 스위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 잘 사는 나라들에서도 왜 행복이 상승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네번 째 설명으로, 사람들의 금융 상황에 대한 만족 수준은 자기의 소득이 다른 사람의 소득과 비교해서 얼마나 되는 지 그것에 따라서 주로 결정된다고 보는 이론이다.[xi] 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 수준 변화에 따른 행복 효과는 친구, 동료, 이웃, 특히 함께 하는 사회친구들의 소득에 비교해서 어느정도인지 생각하는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xii] 따라서 소득이 올라서 생기는 행복은 주위의 사람들의 소득이 함께 따라 오르면 급속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나라 전체가 번영해지더라도, 행복의 평균 수준이 같이 따라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사람들이 높은 소득수준에 익숙하게 되면 그리고 더 큰 부를 추구하기 시작하면 사라질 수 있다.[xiii] 이에 대한 예가 있다. 1975년은 소득이 정체된 시기인데 이 때 미국인 74퍼선트가 “우리 가족 수입이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을 충족시킬 만큼 높다”고 대답했다. 1999년에는, 일인당 소득 수준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61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xiv] 이와 비슷하게 미국인들이 “자기들 꿈을 충족시키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예상 소득의 중앙치를 보면 1987년에 약 5만달러이었으나 1996년에는 필요한 액수가 9만 달러(불변가격 기준)로 상승했다.[xv] 이러한 추세를 확인한 학자들은 금융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제자리 뛰기”로 표현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욕망은 끝없이 계속되고 그리하여 언제나 만족하지 못한 채로 남게 되는 현상을 말해준다.
욕망의 상승과 더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적응이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행복 상승이 일어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줄 지 모르나 이러한 이유들은 대체로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행복의 평균수준이 더 높다는 것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문을 밝혀줄 수 있는 다른 이론이 요구된다. 부유한 계급의 부가된 행복은 돈 그 자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에서 주로 생기지 않을 것이고, 더 큰 부를 수반하는 어떤 보상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그러한 혜택의 하나는 더 크게 성공했다거나 또는 덜가진 사람들에 비해더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는 느낌에서 생기는 만족이다. 두 번째 혜택은 높은 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갖는 직업군과 관련된 도전, 독립, 타고난 흥미다. 이같이 부가된 만족을 설명하는 위계구조가 항상 존재해 왔고 또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이 얼마나 크게 오르든 적게 오르든 상관없이 어느정도 일정하게 유지될 것이므로 만약 행복의 전반적인 수준과 분배가 성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것에 놀라서는 아니된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하든 정체되든 또는 하락하든 상위계층의 사람들은 언제나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며, 행동의 자유를 누릴 것이며, 소득사다리 구조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은 그일들이 단조롭고 또 사회적 경제적 위계구조에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보다 가치를 덜 받고 보다 종속적인 것에 따른 좌절과 실망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이론들의 장단점에 대해 학자들이 최근까지 토론을 벌였다. 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결론은 경제성장이 행복을 실질적으로 상승시킨 경우는 국민 다수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이었다는 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1만5천달러에 이르고 나면 더 큰 성장을 이루더라도 행복의 상승은 아주 미미했다. 그러나 2007년 앵거스 디톤이 최근의 갤럽 세계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만약 절대적인 금액의 상승이 아닌 일인당 국민 소득 증가의 비율로 비교하고 또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나라들인 구소련연방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주어진 비율의 국민총생산(GNP) 상승이 선진국가들에서 행복의 상승을 가져다 준 비율은 후진국가들에서의 그것만큼 크다고 한다.[xvi]
베치 스티븐과 자시틴 울퍼스의 후속연구도 이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xvii] 만약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역설의 의문은 걷혀지고 더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게된다.
그러나 디톤의 결론은 현재까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결코 아니다. 이전의 다수의 연구와 충돌하고 또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이 행복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그상승률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을 흔히 발견한다. 유럽의 행복 연구가 루드 베엔호벤은 미국에서 행복이 지난 40년간의 상승률로 계속 상승한다면 10점 만점의 행복 저울에서 1단계를 올라가는데 167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다.[xviii] 최근의 갤럽 자료를 분석한 스티븐과 월퍼스를 포함한 다른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것은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에서 행복이 상승한 폭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xix] 갤럽 조사 결과를 통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으나 중요한 의문점을 설명해내는데 있어 아직 일치된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전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큰 가게를 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격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35년간 미국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매해 실시해온 조사에서 항상 발견되는 사실은 응답 대학생의 70퍼센트 이상이 큰 돈을 버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xx] 이들은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고 또 결국에는 금전적 성공이 부가된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치게 되는 것일까?
물론 금융 사다리의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그보다 낮은 계단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경향이 있다. 부유한 생활양식을 거의 누리지 않는다거나 또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별장, 고급 차, 호화 사치품을 즐기는 것이 한 순간적이라고 해도, 그들은 최소한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미묘한 만족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의 직업은 대체로 더 흥미롭고,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 조절할 능력이 있으며, 명령을 받기보다 명령을 내리는 편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삶에 더 만족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금전적인 성공에 보다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부를 성취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불행과 실망을 겪는 경향이 있다.[xxi]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부자가 되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야망을 성취해내는데 실패하게 되고 그결과 심한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또 성공한 사람은 돈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는 수도 있다. 사실 사람들이 부유해지는데 더 많이 신경 쓸수록 가족 생활에서 오는 행복은 더 적다는 연구결과가 있다.[xxii] 마지막으로, 금전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부가된 행복이 잠시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감에 따라 더 많이 가지는 것에 익숙해진다.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변하고, 욕망이 상승함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은 그이전보다 나아지지 않게 된다.
이러한 서로 총돌하는 연구결과를 어떻게 통합해 낼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부유층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금전적인 성공에 전혀 매달리지 않고 가족과 친구관계를 희생시키지 않고 잘 지내면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일에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이룬 사람들일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돈버는 것에 관심을 많이 쏟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성공에 만족해 한다. 이런 성공은 삶의 다른 면을 희생함으로써 오는 행복의 손실을 상쇄하는 것이다.[xxiii] 그러나 부자가 되고싶다고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최소한 심리학의 연구결과는 부자가 되려는 생각에 너무 집중하면 결국 불행해지고 실망하게 될 상당한 위험이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여겨진다.
부를 추구하는 것이 그렇게 불확실한 보상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를 이룰려고 그렇게 힘들게 시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단지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돈과 재물에 대한 욕심은 아주 오래 전부터 즉 대부분이 매우 가난하였기 때문에 소득이 늘어나야만 극심한 곤궁과 결핍을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예전부터 생겨난 것 같다. 부자들의 재산과 그들의 생활양식에 대해 생생하게 다루는 언론의 지나친 과장보도와 광고에 의해서 물질적 욕망이 계속 장려되고 재확신시켜지는 것 같다. 다른 설명이 있다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운 혼돈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삶에서 달성한 것과 미래에 달성하고 싶은 것에 대해 눈에 보이는 측정도구로써 소득, 봉급, 재물, 이윤, 매출, 시장 점유률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돈이 없고 또 사고 싶을 때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다면 다수의 미국인들은 야망을 키우거나 그들 삶에 큰 의미를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소득이외의 다른 행복의 조건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행복에 대한 기여도가 낮게 보이는 삶의 중요한 측면으로서 금전적 성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미국에서는 인구 통계학적 차이 또한 상대적으로 영향이 미미하다. 나이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xxiv]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에서부터 약 40세까지 행복이 하락하다가 70대에 이를 때까지 점차 상승한다 (건강 요인은 제외된 것으로 가정한다).[xxv] 성별차이를 보면 백인여자가 백인남자보다 조금 더 행복하나 행복수준은 근래 몇십년간 하락해와서 현재는 남자 수준 이하로 약간 낮아졌다.[xxvi] 백인 여자들의 행복이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이유는 설명이 쉽게 잘되지 않는다. 왜냐면 여자들이 오랫동안 투쟁해 온 취업 기회가 초기 몇 십년간보다도 훨씬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업기회 가능성이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준까지 욕망을 높혔거나, 아니면 직장과 가정 사이의 갈등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누구도 확실한 이유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다.
현재까지 인종문제는 행복과 상관관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난 단 하나의 주요 인구통계적 요인이다.[xxvii] 지난 30년간 그 간격이 반으로 줄어 들었고 또 시간이 감에 따라 더 좁혀들 것으로 보이지만 흑인들은 쭉 백인보다 훨씬 행복하지 못하다. 흥미있는 점은 백인여자들과는 달리 흑인여자들은 흑인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기간 불행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이 알고 있는 삶의양식의 선택 문제도 예상과는 다르게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기후 좋은 곳으로 이사가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젼을 시청하거나 영화를 보러가는 시간은 긍정적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며 운동, 정원손질, 스포츠 경기하는 것보다 만족이 덜하다.[xxviii] 레스토랑에서 좋은 식사나 야구장에서 흥분 같은 즐거운 경험등은 행복의 일시적인 상승을 가져올지 모르나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어떤 삶의 측면이 지속된 행복과 연관이 있을까? 사람들에게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통해서 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으로 6가지 (타고난 성격은 제외) 요인을 들고 있다. 이 여섯 요인은 결혼, 사회 관계, 직장, 건강 상태, 종교, 정부의 질이다.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부부는 싱글, 이혼, 별거, 동거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한다.[xxix] 결혼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살고, 이혼하거나 별거한 사람들보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낮고 건강문제도 적다고 말한다.[xxx] 행복한 결혼 생활은 불행을 막아내는 완충역활을 하고 병을 막아내는 면역체계역활을 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학자가 지적하듯이, 결혼이 부가된 행복의 조건이라고 설부른 결론을 내려서는 아니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더 행복했을지 모르며 즐거운 성격이 성공한 결혼생활에 기여했음도 분명하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인과관계는 양쪽 방향으로 영향이 나타난다.[4] 결혼한 사람들은 (특히 30세 이전에)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 그러나 결혼이전과 결혼후에 대한 연구를 보면 결혼과 연애기간은 확실히 행복을상승시켜준다고 한다.[xxxi]
결혼이 행복의 상승을 크게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학자들은 동의하지만 그러한 느낌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어떤 학자는 결혼이 행복을 상당기간 상승시킨다고 주장하는데 다수설에 따르면 행복감은 2-3년이 지나면서 결혼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 간다고 주장한다.[xxxii] 물론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연구결과는 단지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몇 십 년동안 함께 잘 살아온 결혼생활에서 계속 부가된 행복을 얻는 부부들과 초기에 어려움을 겪고 관계가 악화된 다른 부부들을 연구조사에 함께 포함하고 있다. 종합평균에 포함되는 다른 하위그룹의 시간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을 규명할 연구를 통하여 그러한 변동요인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결혼으로 인한 변화가 어떻든간에 추적연구에 의하면 결혼의 끝 즉 이혼, 별거, 배우자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행복의 상실을 겪게된다는 것이다.[xxxiii] 분명한 것은, 대체로 이혼 커플은 빨리 회복하고 결국에는 거의 모두가 회복한다. 아주 심한 갈등으로 결별한 이혼일지라도 양쪽 모두 결별 이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보면, 이혼이나 별거는 행복의 평균 하락과 연관되어 있고 (한 연구에 의하면 100점만점기준으로 이혼은 5점 별거는 8점으로 평함), 또 그 효과는 간혹 거의 십년까지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xxxiv]
* 한 연구팀은 새로운 통계기법을 이용하여 독일 커플들을 대상으로 8년간 종단연구 조사를 통해 샘플 집단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결혼 효과를 추적하였다. 최고의 평균 행복수준을 나타낸 가장 큰 집단(79.6%)은 결혼하기 4년 전이나 4년 후에 행복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집단(9.1%)은 결혼하기 4년전에 행복이 하락하기 시작하다가 결혼 4년후부터는 점차 상승함을 나타났다. 그다음집단은 (6.0%) 결혼하기 1년전까지 행복이 상승하다가 그후 5년동안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급속한 속도로 늘어 났다. 마지막 그룹은 소집단으로 (5.2%) 결혼하기 4년 전 가장 행복하지 않다가, 그 후 점차 행복해 지고, 가장 큰집단과 동일한 수준 즉 결혼 후 1-2년이 가장 행복하고 그 2년후부터는 점차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앤소니 만시니, 조지 보나노, 앤드류 클라크, “행복의 쳇바퀴에서 내려오기: 주요 인생 이벤트에 대한 반응의 개인 차이 잠재 계층 분석 ”[5]
** 위의 연구팀은 이혼 전후 4년간을 추적한 8년간의 종단연구도 진행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앞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행복하고 가장 큰 집단 (71.8%)은 이혼 전이나 이혼후에도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두번째 큰집단은(19.1%) 이혼하기 2년전부터 행복하지 않다가 이혼 후 2년도 계속 행복하지 않았고 그후 2년까지도 상당히 회복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행복하지 않은 3번째 크기 집단은(9.1%) 이혼하기 3년전 행복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마지막 2년의 약간 하락하기 전까지 5년간은 점차 상승하였다.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정신적 고통은 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인생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몇 달 지나면 적응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xxxv]
자녀가 있는 경우는 좀더 복잡하다. 대부분의 결혼 커플은(또 결혼하지 않은 사람 일부를 포함하여) 자녀를 가질려고 하고, 자연적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려고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같은 복잡한 절차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경우 행복에 미치는 실제적 효과에 대해서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각각 다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합의한 커플은 자녀가 있는 부부들 만큼 똑같이 행복하다.[xxxvi] 또 다른 연구를 보면 자녀가 없는 커플보다 자녀를 두고 있는 커플이 갈등, 우울증, 정신적 고통을 크게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xxxvii] 하바드대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Gilbert)는 부부의 행복이 자녀 출산 후에 하락하고 자녀가 출가할 때까지 재상승하지 않는다는 논문들을 인용하고 있다.[xxxviii] 자녀가 성장하고 그 자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부모들이 부가된 행복을 얻는다는 것으로 많이들 믿고 있지만, 성인 자녀가 있는 부모가 같은 나이대에 자녀가 없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xxxix]
이러한 결론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인생에서 자녀가 기쁨의 원천이라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도 분명하다.[xl] 더구나 자녀가 살아있는 동안 부모들이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대부분 사람들은 자녀의 죽음을 부모들이 겪는 가장 최악의 것이라고 여긴다는 조사가 있고, 자녀의 죽음은 특히 갑자기 사고로 잃은 경우 부모에게 마음 속 깊이 오랫동안 큰 슬픔을 안겨 준다고 말한다.[xli] 그렇다면, 일반인의 생각처럼 부모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동안 행복을 크게 상승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모든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자녀 유무가 행복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없다.
가족이외의 인간 관계는 행복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줍어하는내향적인 사람과 활달한 외향적인 사람 모두 자기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관계와 많은 연줄이 행복상승에 기여한다고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xlii] 친한 친구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고 특히 가장 친한 친구(행복한 결혼생활에서의 배우자만큼 친할 수는 없지만)는 중요하다.[xliii] 행복한 결혼처럼 친구 관계망은 불행이나 우울증을 막는 완충역활을 하고 병을 막아내는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준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인간관계 소통의 또 다른 원천은 지역사회 단체와 지역사회 집단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단지 매달 클럽 회의에 참석하거나 한 달에 한번 자원봉사 참가하는 것이 소득이 두 배로 오른 것만큼 행복의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라고 한다.[xliv] 분명하지 않는 것은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여부다. 참가한 단체(또는 친구) 수가 많은 것이 행복을 상승시키는가? 또는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은 그룹에 속하고 친구가 더 많은 경향이 있는가? 이에 대한 답 또한 양 쪽의 모두 존재하는 것 같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많은 친구와 인간적 연줄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애초부터 행복하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람들 다수는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또 중요한 인간관계 하나는 직장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만족에 영향을 끼칠려면 얼마끔 직무만족도가 높아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아직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초기 연구들은 자기직업에 대한 감정이 전반적인 행복과는 관련이 미미하다고 주장했으나 보다 근래에 행해진 연구들은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고 주장한다.[xlv] 원인과 결과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인데, 연구조사에 의하면 직업에 대한 만족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도 하고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부터 더 즐거움을 얻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한다.[xlvi]
헬리웰,황, 푸트남의 최근 연구논문에 따르면,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업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이것이 행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면에서 급여를 훨씬 능가하는 영향을 미친다.[xlvii] 헬리웰과 동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신뢰가 노동조합이 있는 공장에서는 상당히 낮은데 그 이유는 신뢰성이 낮은 직원은 노조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고 또 다수의 노조들이 경영층의 잘못을 강조하고 경영진의 의도를 공격함으로써 조합원사이에 충성심과 연대의식을 높힐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행복에 대해서 직무만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나눠지고 있는데, 대량해고이든 아니면 어떤 이유로든 직업을 잃는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xlviii] 해고된 사람은 지속된 고통을 겪게 된다고 모두가 주장한다. 행복의 평균 하락은 상당하다-한 자료에 따르면 100점 만점기준 약 6점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살가능성, 우울증 증상, 알콜이나 마약 중독에 빠질 위험이 크다.[xlix] 이들 고통의 일부는 소득이 갑자기 줄어 들어서일지 모르나 고통의 큰 부분은 자존심의 상실과 다른 것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따라서 충분한 실업수당이 제공되더라도 그러한 고통을 완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l] 해고된 뒤 급여수준이 비슷한 다른 직장을 잡은 사람일지라도 그 이전의 행복수준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행복에 밀접하게 연관된 다른 조건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건강에 대한 느낌이다. 건강에 대한 스스로 평가에서 20퍼센트가 떨어지면 상당한 수준(평균적으로 100점 만점 기준 6점 해당)으로 행복을 하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li] 그러나 놀랍게도, 의사의 건강 진단결과가 환자들 의견하고는 일치되는 경우가 매우 적은 편이고 환자들의 행복과는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lii] 병원 진단 결과보다 자기 스스로의 건강 상태 평가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기평가가 스트레스, 인간관계 고립, 또는 특별한 외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우울증 같은 다른 조건들이 개입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자기평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질병과 신체적 결함에 빠르게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반영하고 있다. 한 쪽 팔다리를 잃거나 사지가 마비된 사람일지라도 일 년내에 이전 수준의 삶의 행복을 거의 되찾는 것으로 보여진다.[liii] 적응을 못하고 행복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부담을 주는 고통은 극소수다. 만성통증이 하나의 예고, 우울증이 두 번째, 에이즈나 암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세 번째 예에 해당된다.
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행복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미국인들이 보다 건강하고 보다 오래 사는 것 같고,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혼을 하거나 자살을 할 가능성이 보다 적은 것 같다.[liv] 또한 동료 예배자들의 지역 모임에 가입하거나 교회 활동에 참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독립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다. 리차드 라야드에 따르면 100점 만점의 행복척도에서 평균 3.5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난다.[lv]
*리차드 루카스, 앤드류 클라크, 야니스 게오르엘리스, 에드 디이너, “실업이 삶의 행복 기준점을 바꾼다” 심리 과학 2004년15호 18p. 직장을 잃어서 받는 고통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다. 따라서 해고된 사람들이 갖는 불행한 감정은 전반적으로 실업율이 높은 수준이거나 또는 다른 가족마저 일자리를 잃은 경우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 같다.
종교적 믿음의 중요성은 다른 행복의 조건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람들의 인생과 일은 자신들을 가치있게 하는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러한 가설이 아직 확실히 논문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최소한 다음 두 편의 연구가 있다. “환경 친화”와 “자발적 단순화”같은 개인 가치관을 달성하는 삶의 양식으로 변화를 택한 집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높은 수준의 행복을 경험하였다.[lvi] 이를 역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목적과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자존심의 상실을 가져오고 결국 나날의 삶에서의 기본적 흥미를 앗아가고 말 것이다.
또 다른 흥미있는 발견은 자원봉사나 친절하게 도움을 주는 행동이 행복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lvii] 최신의 한 실험의 예를 보면, 두 그룹으로 나뉘어 이들에게 얼마의 현금을 주고 이 돈을 24시간 내에 소비하라고 지시했다.[lviii] 무작위로 뽑힌 한 그룹에는 그돈을 자신들에게 쓰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돈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쓰게 했다. 하루 이틀 지나서 이들을 테스트한 결과 자신들에게 돈을 쓴 사람들보다 남에게 돈을 주었던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시간을 남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에 쏟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행복한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더 많이 하는지 아니면 자원봉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없다. 추적연구결과에 따르면 양쪽 방향으로 영향이 나타난다고 한다.[lix] [6]
마지막으로, 정부의 질이 행복과 연관이 크다는 연구가 많이 있다. 개인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에서 사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긍정적인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지는 불분명하다. 예컨대 구소련연방국가 대부분에서 공산주의체제의 갑작스런 붕괴 직후 격랑의 시기에 불행이 급속도로 상승했다.[lx] 그러나 상황이 차츰 정리되자, (정부의 질이 어느정도 괜찮다는 가정하에), 민주체제의 장점에 대한 인식이 점차로 높아지고, 행복도 결국 상승한다. 이점애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 가운데 삶에 대한 전반적인 행복도가 가장 높은 순위에 드는 나라들은 민주주의정치체제를 80년 이상 성공적으로 유지해 온 나라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lxi]
정부의 여러 역활이 행복과 관련되어 있다. 미국 같은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개인적 자유가 특히 중요한 역활을 하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경제적 자유가 크게 문제가 된다.[lxii] 상관관계가 높은 다른 조건들에는 법의 지배 확립, 효율적인 정부 기관, 낮은 부패와 폭력 수준, 공무원에 대한 높은 신뢰도(특히 경찰), 시민과 공공기관과 공무원간의 소통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 연구에 따르면 소수자 집단(인종, 종교, 남녀, 성별 차별에 의한)에 대한 관용 또한 행복에 크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소수자집단의 행복 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lxiii]
이 장에서 설명한 행복의 요인들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대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에 크게 관련되어 있다. 선진국가들 사이에 행복의 전체 수준이 차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들의 결합효과로써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삶의 측면들을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행복 수준의 국가별 차이와 비교
행복학의 연구 다수는 미국 이외의 나라들을 포함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데이타를 이용하여 각나라 국민의 전체적 삶의 행복수준을 비교해 낸다.
*존 헬리웰, 하이팡 황, “좋은 정부와 행복과의 관계: 국가별 비교 연구” (미발표논문, 2006). 그러나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좋은 민주 정부가 행복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민주정부를 유지해 가고 정부의 질을 높이는가? 한 연구에 의하면 양쪽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보다 강력한 영향은 행복한 사람들은 질 높은 정부 아래 나타난다는 것이다. 로널드 잉글하트, “민주주의와 행복:원인과 결과?”(행복의 새로운 방향 노틀담 컨퍼런스 발표 논문, 2006.10.22-24).
표 2
비교 조사: 삶에 대한 평균적 만족도
나라별 | 삶에 대한 평가 | |
1 | 덴마크 | 8.02 |
2 | 핀란드 | 7.67 |
3 | 스위스 | 7.47 |
4 | 네덜란드 | 7.46 |
5 | 노르웨이 | 7.42 |
6 | 스웨덴 | 7.38 |
7 | 호주 | 7.36 |
8 | 캐나다 | 7.33 |
9 | 뉴질랜드 | 7.31 |
10 | 벨기에 | 7.26 |
…. | ||
한국 추가[7] | ||
15 | 미국 | 7.11 |
참조 락사 아로라(Raksha Arora),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행복 성적 카드(2008년 1월17일, )….…
국가별 순위는 달라지지만, 130국이상을 대상으로 국가별 행복을 조사한 갤럽의 최근 보고서가 여러 표작성 가운데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표2”를 보면 미국과 상위 10위 국가국들의 점수를 보여주고 있다. 점수는 11점 척도(0-10)를 사용하는데 5점은 중간 10점은 가장 만족 0점은 가장 불만족의 상태를 나타낸다. 생각해볼만한 점은 표3에서도 발견된다. 평균적 삶의 만족도 또는 주관적 삶의 만족도(SWB)와 평균기대수명을 결합하여 수치로 각 나라별 전생애행복도를 비교하였다.
(표3는 미국을 포함하여 상위 10권 국가들만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표작성목록은 많이 나와 있다. 북유럽국가들이 상위에 빠지지 않고 오르며 여기에 네덜란드나 스위스등이 포함되고 있다. 대체로 미국은 이러한 표에서 하위그룹 정도로 조금 처져 있는데, 선진국중 상부 1/3정도에 위치하는 것 같다.
표 3
비교 조사: 삶의 질 고려 기대 수명(QLY)
나라 | SWB* 기대수명 | |
1 | 스위스 | 63.0 |
2 | 아이슬란드 | 61.8 |
3 | 코스타 리카 | 60.8 |
4 | 캐나다 | 60.6 |
5 | 덴마크 | 59.9 |
6 | 스웨덴 | 59.9 |
7 | 아일랜드 | 58.4 |
8 | 네델란드 | 58.3 |
9 | 노르웨이 | 57.5 |
10 | 핀란드 | 57.1 |
…. | ||
13 | 미국 | 56.9 |
한국 추가[8] |
루드 베엔호벤, ”나라별 외부적인 삶의 질 조사: 얼마나 오래 살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사회 지표 연구 (2005년 71호 61쪽).
각 나라별 비교 조사에서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전세계나라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매우’ 또는 “꽤 상당히” 자기들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포로이드나 자크 라캉등 유명한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는데 이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실증연구결과가 보여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이나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다.[lxiv] 사실 사람들이 행복이나 삶의 만족도를 수치척도같은 것으로 평가할 때 전세계 나라 전체를 통해서 평균이하에 속한다고 보는 나라의 국민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인도의 대도시 캘거타의 빈민촌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행복한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다른 빈민촌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lxv] 아주 소수의 나라들-그루지아나 불가리아등 주로 구소련연방국가들과 하이티나 짐바브웨같은 가난·폭력·소요로 황폐화된 몇나라들-에서만이 전체 국민의 다수가 어느정도 또는 아주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가 지구상 전인류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는 상황을 의미한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세계에 10억의 인류가 영양실조·원시적인 건강관리·비참한 위생상태에서 최저 생활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믿기 어렵다. 아마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어려운 상황에서 처해 있어도 행복하다고 보는 타고난 경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좋은 경험을 찾고 좋지 않는 경험을 피하려는 대다수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로 인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낙관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이로인해서 좋지 않은 면보다는 주로 좋은 측면만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행복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lxvi]
대체로 행복의 국가별 수준은 매년 크게 달라지지 않으나 예외가 있다. 가장 특징적인 수치는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연방국가들에서 나온다.[lxvii] 이들 나라의 평균 행복도의 하락은 공산주의 붕괴이전에 시작되었고 붕괴이후 경제성장이 떨어지고, 실업율이 상승하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몇 년까지 하락이 지속되었다. 1990년대 중반이후 상황이 호전되면서부터 이들나라들에서 반전이 이루어지고 행복 수준이 상승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수준보다에 아직도 뒤져있고 또 서유럽국가와 북미국가들의 평균적 행복수준과는 아주 크게 떨어져 있다.
서유럽국가들의 행복의 평균수준은 지난 몇 십년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적임을 보여주고 있다.[lxviii] 여기에서 특징적인 예외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자신들을 “매우 만족한다”라고 보는 사람들의 국가별 비율이다.[lxix] 구체적으로 보면, 1975-2005 사이에, 덴마크에서 “매우 만족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44%에서 66%으로 상승했다. 벨기에에서는 2002년 38%에서 15%로 크게 떨어졌고 2005년에 32%으로 반등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그 비율이 32%에서 거의 49%로 상승했다.
이러한 나라별 행복 수준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 일부 독자들은 정부 정책을 통해서 미국에서 행복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결국 미국인들은 행복의 높은 수준을 이미 달성했다고 보인다-가장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행복한 나라들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수준. 어찌됐건 불만족은 있기 마련인데 이들 대부분은 어느 정부라도 해결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왜냐면 국가별 행복 수준은 모든 나라에서 꽤 안정적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점 이하의 적은 점수의 행복수준 상승 시도가 정말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 질문을 생각해봄에 있어서 미국 같이 인구 수가 많은 나라에서는 아주 적은 퍼센트의 상승일지라도 많은 수의 사람이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미국인의 10퍼센트 이상은 “행복하지않다”고 한다.[lxx] 이 퍼센트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3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앞에 놓인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선을 넘는다고 해도 단 일부만 도와준다고 해도 수 백만의 삶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인구수의 약 1/3 (이 수치는 덴마크 수준보다 최소한 30퍼센트 포인트 이하다) 정도가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다. 30퍼센트 포인트는 약 9천만명의 사람수에 해당하는데 이는 사람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경험표집법(Experience Sampling)
지금까지 설명한 연구결과의 다수는 얼마나 각자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직접 물어보는 조사방법에 의존한다. 그러나 학자중 일부는 경험표집법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는 하루중 여러 시간대에 일어나는 순간적 심리상태를 물어보는 방법이다. 자기들 삶에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만족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와 일치하는데, 경험표집법을 이용한 주요 연구가 발견한 내용은 응답자들이 대개 행복한 때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때이었으며, 이 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경우는 34%에 불과하였다.[lxxi]
표 4
행복에 대한 특별활동 효과
시간 보냄(1일기준) | 행복에 대한 활동 효과 (1부터 5단계 척도) | |
친밀한 관계 | 0.2 | 4.74 |
일과 후 친목어울리기 | 1.2 | 4.12 |
저녁식사 | 0.8 | 3.96 |
휴식 | 2.2 | 3.91 |
점심 | 0.5 | 3.91 |
운동 | 0.2 | 3.82 |
기도 | 0.5 | 3.76 |
업무 중 어울리기 | 1.1 | 3.75 |
TV시청 | 2.2 | 3.62 |
집에서 전화하기 | 0.9 | 3.49 |
낮잠자기 | 0.9 | 3.27 |
요리 | 1.1 | 3.24 |
쇼핑하기 | 0.4 | 3.21 |
집안일 | 1.1 | 2.96 |
애돌보기 | 1.1 | 2.95 |
저녁 퇴근 | 0.6 | 2.78 |
일하기 | 6.9 | 2.65 |
아침 출근 | 0.4 | 2.03 |
다니엘 카네만, 알랜 크루커, 데이비드 슈카데, 노버트 슈바츠, 아서 스톤, “ 국가 행복 계정에 대해” 94 미국 경제 리뷰 (2004년 94호, 429쪽).
*그러나 응답자가 자신들을 10점만점 기준(0-10)에서 0이 최악의 삶을 나타나고 10이 최상의 삶을 나타내게 하는 어느정도 다른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 질문은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도출해 내고 평균점수보다 낮은 결과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2007년 갤럽 세계 조사에서 이와같은 척도를 사용하였는데 조사된 나라들 중 42퍼센트가 중간척도 이하의 평균점수를 나타냈다.
경험표집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중에 변하는 만족의 정도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통계방법이다. 표4는 경험표집법을 이용하여 얻은 결과를 기록하고 있는 2004년 논문에서 가져온 표다.
문제는, 경험표집 통계기법으로 얻은 결과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기의 삶을 평가하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얻어진 결과하고 일치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험표집법을 이용해서 결혼, 이혼, 정부의 질 등과 같은 다른 조건들의 효과를 알아보면 그들의 삶에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지를 질문해서 얻은 결과보다 훨씬 더 무뎌진다. 특히 소득 차이는 부자와 빈자의 삶의 평균적 만족도하고 비교해서 얻은 수치보다 훨씬 적은 행복 차이를 나타낸다. 악몽을 꾸고 나면 다음 날의 행복에 돈이 없다는 것보다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친다.[lxxii]
삶의 다른 조건들에 관해서 보면 경험표집법과 회상적 평가은 실제로 서로 충돌하는 결과를 나타낸다. 예컨대 자기 삶을 평가하는데 있어 프랑스사람들의 만족도수준은 미국사람들의 그것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니엘 카네만과 그의 동료학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프랑스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루중 특정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느낌을 기록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의 대답은 미국인수준만큼 긍정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lxxiii] 이러한 이유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고 않고 있다. 아마도 두 가지 통계조사방법이 어느 정도 측정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응답자가 자기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자에게 솔직히 대답을 하는 태도가 사람들의 문화 차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험표집법과 삶의 만족도 조사는 특별한 상황에 대한 반응에서도 종종 달리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분명하게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경험표집법에 따르면 이혼한 부부들이 실제로는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부부들보다 약간 더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다.[lxxiv]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혼에 대해 생각할 때 홀로라는 사실에 포커스를 두는 경향이 있는 반면, 집안 일에 시간을 덜 쓸 수 있게 되어 친구나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어울릴 수 있음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된 만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경험표집법으로 얻어지는 연구에서 가장 특이한 결과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일의 대부분은 직장외에서 일어 난다는 것 즉 섹스하고, 가족과 함께 있고, 친구를 만나고 등등이다. 하루 중 보다 즐겁지 않는 일들은 직장 업무하고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출퇴근시 통근이 포함된다. (아이를 돌보는 것, 집안 허드레일 같이 꼭 해야할 일들도 낮은 점수를 나오게 하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직업은 일에 몰두하고 싶고 만족스러워서 스스로 오랜 시간 일하고 높은 긴장감을 받기도 한다. 보통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즐겁지 않다라기보다는 더 즐겁다고 여긴다. 그러나 통상 하루의 일과중에서 직원들은 무료하거나 또는 필요 이상의 압박감을 종종 겪는다. 그러한 감정들이 가까운 몇 십년 사이에 더 많이 표출된 것 같다. 1955-1991년 사이, 업무에 쏟는 시간보다 업무 이외의 활동에 더 시간을 보내겠다고 여기는 미국인의 비율이 49퍼센트에서 68퍼센트로 상승했고 반면 여가활동보다 일하는데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경우 그 비율은 38퍼센트에서 18%으로 하락했다.[lxxv]
이러한 결과들은 각자 하는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조사에서 나오는 결과하고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 조사 경우 응답들이 긍정적으로 나타나기 쉬운 면이 있는데 그것은 급여, 안정된 직장, 부수적 혜택, 일하는도중 순간순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 등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조사결과는 직무 만족도의 하락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직무 만족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조사한 결과에서 그렇다.[lxxvi] 예를 들어 한 산업별 컨퍼런스 보드 자료를 보면 자기 하는 일에 만족하는 직원의 비율은1987년 61퍼센트에서 2006년 47퍼센트로 하락했음을 나타내고 있다.[lxxvii]
행복이 가져다 주는 혜택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쭉 살펴보았다. 어떤 것은 예상과 다르고 어떤 결론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들 연구가 확실한 결론 하나를 주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는 인식과 조건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는 바로 이것들이다: ① 굳건한 결혼, ② 친한 친구관계, ③ 기부활동과 지역사회 봉사, ④ 건강하다는 믿음, ⑤ 종교적 신념, ⑥ 즉시 소통하고·효율적이고·책임있는 정부를 가능하게 하는 안정된 민주주의. 마찬가지로 기쁜 발견은 지속적인 행복이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고 타인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만약 행복은 타인을 이용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는 것에서 생긴다고 한다면, 행복은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써 어울릴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행복한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일을 하고 또 그런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얻게 된다는 보다 바람직한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가장 어려운 난관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이해하는 것이 아니며 그 결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정부체제에서 선거로 뽑힌 정치적 공무원들은, 설령 잘못된 길로 나아갈지 모른다고 해도, 다수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공공정책은 어떻게 조건을 만들 수 있고 유권자 주민들에게 보다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점들이 다음 장들에서 그 답을 찾아 보려고 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답을 설명하기 전에 이장에서 설명한 연구의 핵심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류많은 학자가 오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함으로써 얻어지는 정보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회의적일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연구의 가치는 오로지 발견사실의 정확성에 있으므로, 이러한 방법으로 얻은 결과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두어야 하는지 잠시 쉬면서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역자 주: 통계에서 표본 추출은 모집단(population)의 모든 개체들을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때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사용한다. 모집단을 몇 개의 하위그룹(subgroup;층)으로 나눈 후 각 하위그룹에서 개체들을 확률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이 있다. 대개 인종, 지역, 성별, 소득수준, 교육수준 등을 기준으로 하위그룹을 분화(stratified)시킨다.
[2] 역자 주. 상관관계는 단순히 두 변수 간의 관계가 밀접 한가 아닌가를 살피는 것이고, 인과관계는 한 변수가 다른 변수의 원인(cause)이 되는지 살피는 것이다. 상관계수는 두 변수 간 관계의 밀접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상관계수는 추세선으로부터 수직, 수평 측면에서 편차가 작을수록 크게 나타난다. 상관관계 계수의 비교는 절대값을 취해서 크기를 비교한다. 상관계수의 절댓값이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수 간 관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인과관계는 두 변수 간에 상관관계가 존재할 때, 이들 간 관계에 대하여 두 변수 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때로 이는 인과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장에서 저자는 인접학문의 연구결과를 요약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심리학 통계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심리학 통계학 경제학의 기초 개념을 꼭 알고 있어야만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들 학문에서 사용하는 정립된 용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이책에서 설명하는 분석방법과 논문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을 것임은 분명하다.
[3] 역자 주. 원문에서 표현하는 “fortunate fifth”는 노동경제학자 로버트 라이히(Reich)가 만든 용어로 “행운의 5층”은 전체인구중 소득구간이 높은 상위20%에 해당되는 돈있고 복받은 계층을 가르킨다.
[4] 역자 주: 상관관계는 단순히 두 변수간의 관계가 밀접한가 또는 밀접하지 아니한가를 따져보는 것이고, 인과관계(causality)는 한 변수가 다른 변수의 원인(cause)이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5]역자 주: 잠재 계층 분석 (Latent Class Analysis )은 겉으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즉 잠재적인 객체 사이의 이질적 특성을 잠재 계층 또는 잠재 군집별로 밝혀내고 개별 객체가 각 군집에 속할 확률 (membership probability)을 찾아내어 관측된 대상 객체들을 세분화하는 분석방법을 말한다.
[6] 역자 주. 한쪽 방향으로 영향이 나타나는 관계를 인과관계라고 한다. 두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경우 즉 양쪽 방향으로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고 한다. 상호작용이 인과관계의 불가능과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다.
[7] 역자 주: 한국 추가.
[8] 역자 주: 한국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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