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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비 연구-제2권-비문 뒷면 해석

비문 뒷면 6행 해석-천황대제

by 문무대왕 2025. 4. 2.

비문뒷면 제6행 천황대제

 

6   ▨▨▨▨▨▨天皇大帝    
천황대제(天皇大帝)께서

 

(如喪皇)(耀魄寶)天皇大帝

수서《隋書 禮儀장에 “迎氣 皆是祭五行之人帝太皞之屬 非祭天也 天稱皇天 亦稱上帝 亦直稱帝 五行人帝亦得稱上帝 但不得天”으로 기술되어 있고, 진서 천문지에서 천황대제 자리를 勾陳宮中一星曰天皇大帝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執萬神圖으로 기술하고 있고, 661년 양형이 지은 渾天賦”(혼천부)에 나오는 天有北辰 衆星 天帝威神 尊之以耀魄 配之以勾陳구절이 천황대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천황대제의 별자리 모습은 무측천의 승선태자비에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북극성 자리 요백보에 대해서 유교에서는 정현의 주해와 같이 昊天上帝”(호천상제) (天皇大帝者 耀魄寶也)로 부르고, 도교에서는 勾陳上宮天皇大帝로 부른다. 

 

  □□□-如喪考妣 여상고비

 

考妣(고비) 돌아가신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순임금님이 돌아가시자 백성들이 마치 자기 부모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했다는 기록이 상서 순전에 보인다. “帝乃殂落 百姓如喪考妣. 제갈량이 유비의 죽음을 맞이하는 삼국지의 기록에도 똑같은 如喪考妣”(여상고비) 구절이 있음을 참조하면 문무왕릉 비문에서 결자된 부분 ▨▨▨글자는 여상고비(如喪考妣) 구절이 아닐까 추측된다. 순임금님이나 삼국지 촉한 황제 유비의 죽음 때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문무왕의 서거를 마치 자기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했다는 내용의 문장을 기술했을 것으로 보인다. 

古今圖書集成”(고금도서집성)에 곡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문장을 읽어보면 애곡을 표하는 그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송서에 보이는 문장을 옮기면, “帝嗟悼之 河朔之人 望柩而泣”, 문상한 사람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왕도 탄식하고 애도를 표했고, 고향의 하삭 사람들 다수가 영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삼국유사에서의 표현과 비슷한 말로 望柩流涕라는 표현이 그런 애도의 표시 장면이다. “國人聞者 皆流涕에서 유체는 눈물을 흘리다의 뜻이다. 애강남부에서의 표현인 悽愴流涕(처창유체)가 같은 뜻이다. 

 

   天皇大帝

문무왕릉 비문 뒷면 6행에 나타난 구절인▨▨▨天皇大帝▨▨▨▨“에 대해서 추사는 여기의 천황대제의 의미를 올바로 해석해 내지 못한 결과 문무왕릉 비문의 건립 시기를 잘못 추정했다.[1]

 

왜 추사 김정희는천황대제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는가?


여기서天皇大帝”(천황대제)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종교상 어휘로써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추사 김정희처럼 관직명이거나 특정인의 시호로 이해하는 경우,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말 위험성이 크다. 추사는 문무왕릉 비문 파편이 발견된 1796(정조 20) 이후 조금 먼 시간이 지난 시점인 1817년에 경주를 직접 답사하고 그 때 사천왕사에서 문무왕릉 비문 하단 부분을 직접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후 추사는天皇大帝”(천황대제)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문무왕릉비가 687 8 25일 혹은 9월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추사의 이 논문에 따르면 天皇大帝(천황대제)라는 명칭은 당나라 高宗(고종) 시호이므로 당고종이 운명한 해인 683년 이후에라야 가능하다는 논리에 입각하여 684년 이후부터 신문왕 재위 기간 중景辰(경진) 25을 만족시키는 날짜 즉 일간지를 추적하여 그에 해당되는 687 8-9월 무렵이 문무왕릉 비문의 건립 시기라고 주장한 것이다.[2]


高宗(고종) 당나라 제3대 황제로 649년부터 683년까지 삼십사년 동안 임금으로 지냈다. 책부원귀에 따르면, 묘호(廟號) 고종이고 시호(諡號) 天皇大帝(천황대제)이다. 추사는 유배 귀양살이로 많은 세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평생 행정관료로 살아온 그의 신분과 가계의 배경으로 보아 정치행정적 용어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아닐까? 추사는 그같은 자신의 출신 배경과 유교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한 그의 의식 구조의 제한성 때문에 자신이 직접 답사까지 하면서 비범한 관심과 흥미를 갖고 추적하면서 문무왕릉 비문 해석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유감이지 않을 수 없다. 문무왕릉의 비문에서천황대제의 단어를 종교적 의미 즉 도교에서의 천황대제를 지칭하는 의미로 이해했다면 아마도 비문의 진실적 발견에 보다 근접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천황대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서 천문지를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천문지 사료에 설명된 자료를 바탕으로 천황대제를 별자리 천문지식 영역에서 이해하면 결론이 도출되는데, 이에 따라서 비문에서 명시한천황대제는 당고종의 시호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도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의미 그리고 별자리 천문 지식 영역에서의천황대제를 뜻한다.

 

천황대제와 선계 승천

천황대제가 어떤 힘을 갖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백제평정비(大唐平百濟國碑銘)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묘사는 천황대제를 바르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왜곡되게 표현했음으로 올바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측천이 지은 승선태자비의 비문 구절 가운데 천황대제의 모습을 진실되게 묘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자.

寥廓出寰區之外 驂鸞馭鳳 升八景而戲仙庭 駕月乘雲 驅百靈而朝上帝 元都迥辟 玉京不死之 紫府旁開 金闕乃長生之地”.

이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세상 속세를 벗어나니 하늘은 넓고 탁 트여 광활하구나. 새들과 함께 신선의 길로 날아가네. 화려한 무지개색깔 그곳을 넘어 신선이 사는 선경에 다다르네. 달나라 수레를 타고 구름을 타고 꾀꼬리 새들(새는 천사를 의미함)을 이끌고 옥황상제를 뵈올 듯한데. 신선이 사는 그곳은 저 멀리 아득하네. 달나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지향이라고 했는가? 신선이 사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지. 신선이 사는 불로장생의 그곳 말일세.

 

寥廓(요곽)空曠(공광), 深遠(심원)하다, 널리 탁 트여 있다의 뜻이고, 寰區(환구)人世間(인간세상) 즉 속세를 뜻하고, 鸞鳳(란봉)은 신비스런 란새와 봉황새를 합쳐 부른 말이고, 驂馭(참어)는 몰다, 이끌다의 뜻으로, 驂鸞馭鳳(참란어봉)仙道飛升(선도비승)의 뜻이다. 八景(팔경)八景勝(팔경승) 八采景色(팔채경색)의 뜻이고, 仙庭(선정)仙境(선경)의 뜻이고, 上帝(상제)天上萬物主宰神(천상만물주재신)을 지칭하고, ()는 몰다. 빨리 달리다의 뜻이며, 百靈(백령)百靈鳥(백령조) 즉 우리말로는 새목소리가 아름다운 종달새나 꾀꼬리에 해당한다. 玉京(옥경)은 달(月亮-월량)의 별칭이고, 紫府(자부)仙人居所地(선인거소지)의 뜻이고, 旁開(방개)廣開(광개), 四旁展開(사방전개)의 뜻이며, 元都(원도)神仙居所地(신선거소지)의 뜻이고, 金闕(금궐)仙人居所地(선인거소지), ()은 멀다의 (), 먼 곳에 숨어 있다의 뜻이고, 長生(장생)은 장생불로,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한다.

신선이 거처하는 곳은 주위로 산봉우리가 줄줄이 보이고 일출을 볼 수 있으며 아래로 구름바다가 보이는 그런 깊은 산 속 벼랑 끝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북송의 황정견이 도를 묘사하는 구절 萬丈祝融紫霄 路當窮處架仙橋 上觀碧落星辰近 下視紅塵世界遙”-이 구절 또한 승선태자비에서 묘사하는 선계의 모습 그것과 의미가 상통한다. 

한편 백제평정비라고 말하는 그것에 실려 있는 구절의 표현을 살펴 보자.  原夫皇王所以朝萬國 制百靈 海外而天維 宅寰中而恢地絡 莫不揚七德以馭遐荒 耀五兵而肅邊徼”. 대저 천자(天子)가 만국(萬國)에게서 조회를 받고 백령(百靈)을 지배하는 까닭은 해외(海外)를 맑게 해서 천유(天維)를 일으키고 환중(寰中)에 자리를 잡아서 지락(地絡)을 넓힘으로써, 칠덕(七德)을 드날려 먼 오랑캐의 땅을 어거하고 오병(五兵)을 빛내 변방을 고요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의 백제평제비의 한글 번역은 국편위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왔다).[3]

 

승선태자비에서의 百靈”(백령)은 백령조를 지칭하므로 즉 아름다운 새소리를 내는 종달새나 꾀꼬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반해, 백제평정비에서의 백령의 의미는 신선이 사는 곳 그런 풍류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파악하라.  

 

도교에서 삼청존신은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이다. 도교에서 天皇大帝(천황대제)는 병권을 쥐고 있어 핵심적인 파워를 행사하는 사람이고 그러기에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성조황고선덕여왕이 두모신앙, 자미신앙, 부작신앙에서 병권을 장악한 천황대제이었다. 구진상궁 천황대제는 병권을 쥐고 있는 그 파워가 말해주듯, 궁궐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화덕진군인 성모 두모원군에 대해서는 太上玄靈斗姆大聖元君本命延生心經경전을 참조하라.

문무왕릉 비문에서 천황대제의 의미는, 장례식에 참석한 래회장자(來會葬者)들이 시신이 안치된 수천다발의 나무 쌓인 화장식 주변을 빙 둘려 쌓고 지켜보고 있는 마지막 가는 길인 송왕의 의식을 마치 천사들과 신하들을 함께 데리고 옥황상제에게 올라가는 승선의 모습에 견주어 보고 그 화장식 거행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승선태자비의 표현대로, “仙庭 駕月乘雲 驅百靈而朝上帝의 모습으로 그리며 群臣陪臨 佇立以泣”(군신배림 저립이읍)의 화장 장례식 거행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천황대제를 당고종의 시호로써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천황대제는 정치행정적인 용어의 의미로써 쓰인 것이 아니다. 비문에서 천황대제라는 말은 화장식의 거행 장면 모습을 신선이 하늘을 노니는 승천-망자의 죽음에 대한 완곡적 표현법- 모습에 비유하는 표현 기교로 쓰였다. 따라서 결자 부분의 문장 내용은 아마도 이러한 신선의 원유 모습을 그려 내고 있는 내용일 것으로 추측된다. 신선의 원유 모습은 굴원의 초사 遠遊”(원유)에서 잘 그려 놓고 있다. 그것을 음미해 보라. 수많은 래회장자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화장식이 거행되면 나무다발에 불이 당겨지고 그러면 하얀 연기가 마치 구름처럼 피어 올라가는데 그런 엄숙한 장면에서 망자가 신선처럼 하늘나라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가월승운하고, 그렇게 신선이 천상낙원으로 승천하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지 않는가? 

 

耀魄寶 天皇大帝

위와 같이 천황대제를 이해하면, “▨▨▨天皇大帝의 결자 부분의 세 글자는 耀魄寶 天皇大帝일 것으로 추측된다. 요백보(耀魄寶) 구진상궁 천황대제를 지칭하는 대칭어임으로 요백보와 천황대제는 같은 의미이다. 

耀魄寶(요백보)는 사전에 찾아보면 별자리 天帝星(천제성)을 말하는데 이 별은 北極五星(북극오성)에 속한다. 星經(성경)의 천황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天皇大帝一星 在鉤陳中央也 不記數 皆是一星 在五帝前座 萬神輔錄圖也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也. “主御群靈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승선태자비의 驅百靈而朝上帝이라는 구절의 묘사하고 상통한다. 晉書(진서) 천문지에서도 “鉤陳口中一星曰天皇大帝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 執萬神圖-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나라 양형이 611년 지은 渾天賦(혼천부)에서 天有北辰 眾星環拱 天帝威神 尊之以耀魄 配之以勾陳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주위의 별들을 둥근 환으로 거느린 중앙 별자리가 요백보 천황대제이다. 북극성은 북두칠성에서 기준점으로 찾아지는 별이고, 이 북극성이 후대의 문창성과 같으냐 아니면 다른 별자리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할 필요는 없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자 즉 천사가 문창성이 되는 거고, 그런 천사들의 별들을 거느리는 중심별이 요백보 구진상궁 천황대제이기 때문이다. 구당서 예의지를 보면, “圓丘所祭昊天上帝北辰星耀魄寶”, 원구단에서 제를 지내는 대상 호천대제를 요백보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호천은 유교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주나라의 상징이다. 도교에서는 옥황상제라고 부른다. 北辰星拱(북진성공)이라고 말하는데 북진-북극성은 항상 제자리에 있기 때문에 뭇별들을 빙 둘러 앉은 형태로 거느리고 있다-群星環繞. 천황대제 앞에 耀魄寶” (요백보)라는 말을 덧붙인 그 이유는 천황대제라는 말의 해석에 오해가 안 생기도록 특정하여 강조한 의미가 있다.

  

6행 요약  
▨▨▨
(
如喪考妣)
(문무왕의 서거를) 마치 자기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했다.
▨▨▨天皇大帝
(耀魄寶)天皇大帝
(화장의 장례식에서 자작나무단 위에 누어 있는 문무왕의 모습은) 요백보 천황대제는 주위의 별들을 둥근 환으로 거느리며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천황대제가 천사들을 이끌고 상서로운 붉은 구름을 타고 천상낙원으로 들어가는 신선의 승천 모습 같았다.

 

 



[1] The meaning of the word is its use in the language.” (단어의 의미는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구조에서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는지 보다, 오히려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 사회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It is more important how the term is used in the common life of the community of speakers, rather than how it is defined in a logical system.”)  천황대제 당시 언어 사용자(competent speakers) 가운데는 별자리 점성학의 생생한 살아 있는 의미로 쓰였겠지만 유교 사회의 최정점기 조선 후기 그것도 관료사회의 직업적 배경이 매우 강했던 추사로서는 신라 당시의 도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것이다.

[2] 김정희 해동비고”, 내용을 전하는 배영대, 중앙일보, 2007.7.1.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60167#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