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행 列陣黃山蝟聚鴟張 열진황산 위취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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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편위 번역: 황산(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 …
추홍희 해석: 황산에 전투 전개의 군진을 쳤다. 송곳모양처럼 돌격해오는 적의 어린진 공격에 대해서 독수리매가 양날개를 펼치듯 학익진을 치고 적을 포위하고, (적의 결사대가 직진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서) 중앙지휘부는 뒤로 약간 물러나 있다가 (양 옆에서 조이고 뒤에서 후려치는 전술을 구사했고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목계술을 견지했다).
列陣黃山 蝟聚鴟張 欲申距□
列陣 黃山
列陣(열진)은 布列陣勢(포열진세)를 말하고, 황산은 지명이다. 列陣黃山(열진황산)은 황산벌 전투에서 양측이 전투 전개의 진을 치다, 포진(布陣)하다는 뜻이다. 황산 전투가 실제로 벌어진 구체적인 장소를 정확하게 비정할 수 없으나 대개 현재 육군 논산훈련소가 위치한 충남 논산 평야 지대로 알려져 있다.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소정방이 이끄는 당 수군의 전황에 대해서만 기재하고 있고,[1] 신라와 백제가 벌인 황산벌 전투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서들로써 상호 교차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삼국사기에서도 삼국의 본기와 각 열전에 기록된 전투에 관한 기록이 서로 불일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체적 전투 상황을 복원하기란 매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전투 대열-팔진도-10진도-12진도
전투를 전개하는 전투 대열이나 대형은 제갈량의 “팔진도”가 유명하다.
손빈병법에서 팔진도를 기술하였는데, 적을 뚫고 들어갈 때 쓰는 方陣(방진), 대오를 형성하는 圓陣(원진), 진지를 넓히는 疏陣(소진), 대열이 깨뜨리지 않도록 밀집대오하는 數陣(수진), 송곳처럼 적진을 돌파하는 錐行陣(추행진), 기러기가 날듯이 화살을 빗발치듯 쏘는 雁行陣(안행진), 굽어진 해안선처럼 양옆으로 에워싸는 鉤行陣(구행진), 수많은 깃발을 휘날리며 적과 대치하는 玄囊陣(현냥진)이 팔진의 명칭이다.
수당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의 대진법에 비해서 군사기술의 발전상 많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당태종은 633년 “破陣樂舞圖”(파진악무도)를 직접 지었는데, 파진무도는 후대에 칠덕무(七德舞)로 알려졌다. 여기의 “舞圖 左圓右方 先偏後伍 魚麗鵝貫 箕張翼舒 交錯屈伸 首尾迴互” 구절이 말한대로 이러한 기본적인 전투전개형을 응용한 12진도를 직접 고안했다. 임진왜란 이후까지 이러한 전투 대열의 기본적인 대형이 내려오고 있는데 고대의 전투 대열 전법이 최근까지 비교적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경우는 특히 산록파의 병법학이 발전한 무사가 통치한 섬나라 일본이다. 한국에선 이순신 장군이 전개한 학익진이 가장 유명하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진형은 장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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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일본의 백과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팔진도 모형>
蝟聚 鴟張
魚麗鵝鸛 箕張翼舒
蝟聚鴟張(위취치장)은 전장터에서의 양측이 어떻게 대형으로 전투를 전개했는지를 묘사해주는 구절이다. 신라와 백제는 황산벌 전투에서 삼국사기가 기재한 “수오전” 즉 결렬한 섬멸전을 전개하였다. 제갈량의 팔진도와 당태종의 파진도 그리고 후대에 들어 좀더 발전된 전쟁론의 전투대열을 참조한다면 위취진은 어린진, 치장진은 학익진에 해당한다. 魚鱗陣(어린진)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모양과 같이 낚시대처럼 종대로 나아가는-進(진) 대형으로써 송곳모양처럼 돌격형에 해당된다. 鶴翼陣(학익진)은 백조가 긴 날개를 양쪽으로 펼치면서 덥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쭉 횡렬로 늘어서서 상대방을 포위하는 대형을 말한다. 학익진을 칠 때 지휘부는 중앙에서 뒤로 물러서고 군사들을 양 옆으로 늘어서 상대방을 포위하는 대형이 학익진인데 이는 돌격해 오는 상대방의 예봉을 꺾으려고 할 때 적용하는 전투대형이다.
어린진과 학익진은 당태종이 죽기 일년전인 648년에 완성하여 아들에게 전한 “帝範”(제범) 서문의 “夕對魚鱗之陣 朝臨鶴翼之圍” 구절로써 등장한다. 633년 지은 파진무도에서는 魚麗(어려)진 鵝鸛(아관)진으로 말했는데(“魚麗鵝鸛 箕張翼舒”), 제범에서는 요즈음의 표현과 같은 어린진과 학익진으로 썼다. 아(鵝)는 고니 백조를, 관(鸛)는 황새를 지칭한다. 학익진(鶴翼陣)은 장자의 서무귀(徐無鬼)편에 나오는 “鶴列陣”(학렬진)이고, 유신의 마사부에 나오는 “鸛列陣”(관열진)과 동의어이다. 고니나 백조나 황새나 백학은 모두 비슷한 새이름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춘추좌전에서는 아(鵝)진과 관(鸛)진의 별개의 전투진으로 나누었는데, 당태종 시기에는 어린진과 학익진이라는 명칭으로 통합된 것이다. 구당서 소정방전에서 기재하고 있는 금강 전투 장면의 기사 중 “定方於岸上擁陣”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의 擁陣(옹진)이 적을 포위하는 학익진의 전투 대열을 말한다. 팔진도의 전투대형은 공격형과 수비형의 진형으로 나눠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비와 공격 양쪽의 전략으로 쓰이고 전투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변화 응용된다.
진나라가 조나라의 사십만 대군을 몰살시킨 장평대전을 두고서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碎於長平之瓦”(쇄어장평지와)-“장평의 기왓장처럼 부서졌네”이라고 애절하게 표현하였는데, 장평대전에서 그토록 수많은 살상자가 나온 까닭은 어린전의 전투대형으로 섬멸전을 전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진은 물고기의 비늘을 어린으로 말하고, 그처럼 기왓장이 촘촘히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고기처럼 지붕을 잇는 기왓장처럼 병사들이 촘촘히 서로 같이 붙어 평야에서 상대방과 몸으로 붙어 사생결단을 내는 섬멸전이기에(공성전과 반대되는) 살상자가 그토록 많이 나온 것이다. 장평대전과 같은 섬멸전에서는 한 장의 기왓장이 떨어져 깨진 듯 별다른 의미가 없듯이, 사마천이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 螻蟻之命(루의지명)-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보잘것없는 목숨- 의미와 같이, 오합지졸들의 아까운 목숨만 희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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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편 독수리> | <고슴도치> |
蝟聚(위취)
鴟(치)는 큰수리매 올빼미를 말하고 鴟張(치장)은 鴟囂張(치효장) 즉 큰수리매가 날개를 쫙 펼치다는 뜻이다. 당태종의 파진무도에서 그려낸 ‘날개를 펼친다’는 翼舒(익서)와 같은 뜻이다. 날개는 옆으로 쭉 펼쳐지는 것이니 익서는 횡렬대열로 펼치는 대진법을 묘사한다.
箕張(기장)은 “兩旁伸張開去如簸箕之形”, 箕張而進(기장이진), 낙엽을 쓸어가는 빗자루를 말하고 이는 예리한 송곳과 같다. 또 물고기를 낚는 고기잡이 낚시대를 드리우는 것에 비유되므로 종렬대열을 말한다. 어린진은 당나라 권덕여의 명경책문(明經策問)에서 논한 대로 鵝鸛(아관)진 즉 학익진은 어린진에 대응해서 이기고자 치는 진법이다. 당태종의 무도에서 기술한 “鵝鸛魚麗 箕張翼舒”의 구절은 이미 한나라 장형의 동경부(東京賦)에서 똑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錐刺股(추자고)
문무왕릉비에서의 蝟聚(위취)는 고슴도치가 움추리는 모습을 뜻한다. 蝟(위)는 고슴도치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위)는 고슴도치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고슴도치는 그 온몸에 송곳 같은 뾰족한 가시가 솟아나 있어 적이 고슴도치 몸에 대면 찔리게 된다. 따라서 고슴도치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공격형을 의미한다. 聚(취)는 聚集(취집)하다, 모이다, 會合(회합)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蝟聚(위취)는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송곳들이 모여서 찌르며 돌격하는 전투 대진을 비유한다.
나무기둥을 땅바닥에 세우면 그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에서 알다시피 종렬대형을 의미하는데, 이런 뜻에서 전국책 진책에서 소진이 주장한 합종법과 비슷한 의미이고 바로 소진이 말한 공부법 錐刺股(추자고)를 지칭한다. 소진은 공부할 때 밀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서 날카로운 꿩의 깃털 끝으로 발바닥을 찌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발바닥을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으로 마사지해주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돕고 이중의 이익을 얻게 된다. 소진의 錐刺(추자)는 ‘송곳으로 치른다’의 뜻으로 적을 돌파하려는 공격진을 펼칠 때를 비유한다. 아닌게 아니라 소진이 추진한 합종책이 약한 제후들이 서로 남북의 종대로 연결하여 강한 진나라에 맞선 전략으로써 진나라와 동서로 횡적으로 연대하는 장의의 연횡책과는 반대가 되지 않는가? 추자고라는 글귀가 동서와 남북, 가로 세로의 合縱 連橫(합종연횡)책의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다니!
고구려-백제-일본으로 남북 종대로 서로 연계해서 슈퍼 파워 당나라에 맞서려고 했던 것은 소진의 합종책에 가깝고, 신라와 당나라가 동서로 서로 연결된 전략적 제휴를 구사한 장의의 연횡책과 가깝다. 진나라의 통일과정을 보면 결과적으로 소진의 합종책은 장의의 연횡책에 각개격파되었다. 소진은 거열형을 받고 저자거리에 목이 매달렸고. 고구려-백제-일본의 약소국 합종책은 당-신라의 연횡책에 의해서 격파되고 문무왕의 삼국통일의 역사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섬멸전의 황산벌 전투에서 일대십의 절대적 수적 우위를 점한 신라군이 절대적 수적 열세의 백제군을 포위하는 학익진 즉 문무왕릉비문에서의 “鴟張”(치장)진을 쳤으면 백제군이 취할 진형으로는 일당천명의 결기로 오천 결사대를 조직하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계백의 오천 결사대는 전부 몰살하고 말았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12만 대군의 동군에 포위당한 시마즈의 1500명 결사대는 적군의 정중앙을 돌파하는 최후의 선택을 하고 결국 많은 인명 피해는 입었지만 소수의 장수는 탈출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백병전에서는 상대방 적진의 군사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직진해서 중앙을 돌파할 때에는 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계백의 오천결사대가 몰살했지만 그 가운데 충상과 상영 등 장수 20명은 살아남아서 신라의 포로가 되었다. 백강의 전투에서나 이후 9백년이 지난 임진왜란에서나, 황산벌 전투에서나 이후 일천년이 지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나 기본 전투대형과 전쟁론의 기본적 전략전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전쟁의 폐해를 어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무왕릉비의 “蝟聚 鴟張”은 건릉 술성기의 구절 “殲蝟結而殄鴟張”의 표현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聚(취)는 聚集(취집)하다, 모이다, 會合(회합)하다의 뜻으로 술성기의 結(결)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국편위가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었]”다고 해석한 것은 큰 잘못이다. 蝟聚鴟張(위취치장)은 고슴도치와 올빼미라는 개별적 낱말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당태종의 좌전과 손빈병법과 제갈량의 팔진도, 당태종의 파진무 12진도, 무측천의 술성기에서의 “蝟結鴟張”과 같은 의미로써 황산벌 전투에서 펼친 전투 군진법을 지칭하는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
계백의 오천결사대가 고슴도치형 결사적 공격을 취할 때 신라군은 독수리가 양날개를 펼치듯이 군사들 양 옆으로 쭉 벌려 펼치는 독수리날개진 치장 즉 학익진의 포위전술을 구사했음이 추측된다. 삼군 중 중앙지휘부는 약간 뒤로 물러서서 마치 닭의 며느리발톱이 뒤로 나 있지만 그 며느리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한순간에 냅다 후려 갈겨치는 닭싸움 같은 전략-이러한 전투대열을 묘사하는 구절이 문무왕릉비문의 이어지는 “欲申距□” 표현이다.
欲申距□
닭싸움, 투계의 기본 전술은 상대방을 뛰어올라 며느리발톱이 있는 뒷쪽발로 차는 것이다. ‘며느리 발톱을 숨기고’라는 말이 있듯이 수탉의 발톱은 뒤로 향해 있다.
斂(렴)은 숨기다, 은장(隱藏)의 뜻을 갖는 단어이고, 그래서 收斂(수렴)이란 말은 언행 행동거지를 각별히 신중하고 조심하다는 뜻이다. 이런 수렴의 의미는 전쟁론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공격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조심하고 신중하게 준비한다. 뒤로 물러서는 경우가 정말로 패배해서가 아니라 삼국사기 김유신전에서 기술하듯이 “거짓 패배한 척 풀로 위장하고 밤에 빠져 나왔다”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이순신장군의 노적봉 위장술로 유명한 수비전술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위장전술을 전개하기도 한다.
비문의 “距”(거)는 拒(거)하고 동의어이기도 하지만 서로 떨어진 거리(距離)의 뜻 그리고 수탉의 며느리발톱(雄雞爪子后面突出像) 腳趾(각지)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비문의 欲申距□의 결자부분의 글자는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저항(抵抗)하려고 했다”는 뜻이 아니라, 학익진의 기본전술을 펼쳤고 적의 결사대가 중앙부를 직진돌파하려고 시도할 것을 예상하고서 중앙지휘부는 뒤로 약간 물러나 있다가 양 옆에서 조이고 덮치면서 뒤에서 후려치는 투계의 기본술을 구사했다는 의미의 欲申距斂(욕신거렴)으로 해석된다. 欲申距斂(욕신거렴)은 斂足(렴족) 즉 收住脚步 不往前進(수주각보 불왕전진)의 뜻이다. ‘저항했다’는 뜻의 欲申距張(욕신거장)의 의미가 아니다.
유명한 병법서 六韜(육도)에 “鷙鳥將擊 卑飛歛翼”(지조장격 비비렴익) 문장이 나오듯이, 독수리는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있다가 단숨에 하강해 먹이사슬을 날쌔게 낚아챈다.[2] 歛翼(렴익), 斂足(렴족) 날개를 접고, 발을 거두고 있다.
국편위는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라고 번역했는데 이런 해석은 잘못되었다. 신라군이 취한 전투 행위를 말한 것이지, 백제군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욕신의 주어는 신라군이지 상대방 적군인 백제군이 아니다. 국편위는 문법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범한 결과 올바른 해석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국편위는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라고 해석하였는데, 이런 잘못된 해석은 비문의 列陣黃山(열진황산)의 의미를 놓친 결과이다. 열진은 전투대열을 갖춘 것 그 布陣(포진)대열을 이른다. 따라서 손빈병법 제갈량과 당태종이 논한 팔진법의 기본을 먼저 이해해야, 列陣黃山 蝟聚鴟張 欲申距의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또 欲申(욕신)이라는 말에서도 申(신)은 屈伸(굴신)의 의미가 들어 있다. 즉 당태종의 무도에서 말한 交錯屈伸(교차굴신) 즉 앞으로 전진하고 뒤로 후퇴하기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런 유형은 실제로 전투대형에서 흔히 일어나는 경우이다.
개미처럼 모여들고
蝟(위)는 고슴도치를 뜻하는 낱말이고 猬(위)자가 같은 말로 쓰임을 볼 때 猬(위)자로 해석하여, 곤충이나 뱀 등 그 숫자가 우글거리고 득실거리는 ‘떼거리’라는 뜻으로 달리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우글거리다 떼거리로 해석하고자 할 때 蝟聚(위취)와 비슷한 말로는 蟻聚(의취)가 있다. 蟻(의)는 螞蟻(마의) 즉 개미를 뜻하는 낱말이고, 聚(취)는 모이다는 뜻으로 結(결)과 같은 뜻이다. 蟻聚(의취)는 개미처럼 모인 숫자가 많다는 뜻이다.
평백제비는 이런 가차적 해석으로써 의미를 비틀어 표현했는바, “稽天蟻聚迊地蜂飛”으로 표현했다. 국편위는 이 구절을 “하물며 하늘 끝까지 개미처럼 모여들고 땅을 삥 둘러 벌떼처럼 날아드는 것”으로 번역했다.
19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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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陳黃山 | 황산에 전투 전개의 군진을 쳤다 |
蝟聚鴟張 | 송곳모양처럼 돌격해오는 적의 어린진 공격에 독수리매가 양날개를 펼치듯 학익진을 치고 적을 포위하고 |
欲申距□- 欲申距(斂) |
(적의 결사대가 직진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서 중앙지휘부는 뒤로 약간 물러나 있다가 양 옆에서 조이고 뒤에서 후려치는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목계술을 전개했다) |
[1] 구당서 소정방전 “定方為神丘道大總管 率師討百濟 自城山濟海至熊津口 賊瀕江屯兵 定方出左涯 乘 山而陣 與之戰 賊敗 死者數千 王師乘潮而上 舳艫 御尾進 鼓而譟 定方將步騎夾引 直趨真都城 賊傾國來酣戰 破之 殺虜萬人 乘勝入其郛 王義慈及太 子隆北走 定方進圍其城 義慈子泰自立為王 率眾固守 義慈之孫文思曰 王與太子出 而叔豈得擅為 王 若王師還 我父子安得全 遂率左右縋城下 人多從之 泰不能止 定方使士登城 建唐旗幟 於是泰開 門請命 其將禰植與義慈降 隆及諸城送款 百濟平 俘義慈 隆 泰等獻東都 定方所滅三國 皆生執其王 賞賚珍寶不勝計 加慶節尚輦奉御”.
[2] 가도가도 큰 없는 황야를 홀로 걷다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을 내 눈 바로 앞에서 똑똑히 목격한 행운을 잡은 적이 있었다. 평생을 살아도 그런 모습을 한두번 목격하기란 쉽지 않은 흔치 않는 일인데 아무도 쉽게 도전하지 않는 깊은 산 속 홀로 여행에서 얻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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